투기꾼은 천당 갔고 투자자는 지옥 가네
  • 장영희 기자 (view@sisapress.com)
  • 승인 1999.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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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주 폭등 후 급락, '작전'에 휘말린 일반 투자가 큰 피해

몇몇 사람이 우선주를 갖고 '폭탄돌리기 게임'을 했다. 이들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 천만한 도박에 나선 것은 내 차례에는 절대 터지지 않으리라는 믿음 때문. 그러나 한국판 러시안 룰렛 게임을 벌인 이들의 믿음은 무참하게 깨졌다. 짧게는 10여 일, 길게는 한 달 가까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우선주들이 9월 들어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9월3일 우선주 투자자들은 천당과 지옥을 넘나들었다. 오전 9시 동시호가 때만 해도 가격 제한폭(15%)까지 올랐다가 10시께부터 폭락세로 돌변해 가격 제한 폭까지 떨어진 것이다. 이 날 장중 상한가에서 하한가로 떨어져 등락률이30%나 된 우선주는 무려 86개 종목이나 되었다.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우선주 총 2백개 가운데 하이트맥주 2우B와 같이 주인(싱가포르 투자청 소유)이 있어 거래가 전혀 안되는 16개 종목을 때면 거의 절반이 이런 이해할 수 없는 흐름을 탔다. 그 날 이후 9월10일 현재까지 우선주들은 그야말로 내려꽂히는 주가 흐름을 보이고 있다. 전체 하한가 종목에서 우선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80~90%, 상한가 종목의 80~90%를 차지하던 9월3일 이전 모습과 완전히 정반대다.

  우선주들이 본격 오름세를 탄 8월2일부터 거꾸러지기 직전인 9월2일까지 상황을 보자. 이 기간에 우선주를 갖고 있는 보통주들의 주가는 도리어7.65% 빠졌다. 그러나 우선주들은 자기의 숙주인 보통주를 마음껏 농락했다. 주가 상승률이 215.5%나 된 것이다. 보통주보다 가격이 높은 우선주는8월2일 16개였으나 9월2일에는 1백22개로 폭증했다(9월10일 현재 53개로 급감).

  우선주는 보통주보다 배당(액면)을 1% 더 받지만 의결권이 없다. 대주주 처지에서는 경영권을 위협받지 않고 자금을 조달할 수 있기 때문에'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주식이 우선주다. 물론 96년 10월 상법이 개정되어 이른바 신형 우선주(현재 46종목)가 나오면서 우선주 가치가 조금 높아졌다. 최저 배당률(9%)이 정관에 명시되어 있어 채권 성격도 지닌다. 그래서 신형 우선주에는 '2우B' 하는 식으로 대개 채권을 뜻하는 'B(Bond)자' 가 붙는다. 회사가 올해 배당을 하지 못하면 다음해로 누적되며, 그 동안 의결권을 가지는 것도 신형 우선주가 구형 우선주와 다른 매력이다. 채권처럼 일종의 만기인 존속 기간이 있어 그 기간이 지나면 보통주로 전환(3~10년)된다는 점도 장점이다. 그러나 모든 회사가 이런 상법상의 표준 약관을 그대로 따르는 것은 아니다. 가령 중외제약·현대정공의 신형 우선주는 배당률이 2~3%밖에 안된다.

통정 매매 등 불공정 행위 판쳐
  우선주가 아무리 조건이 좋아졌다하더라도 한 달 만에 보통주보다 몇 배씩 오른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게다가 최근 우선주 파동을 선도한 것은 구형 우선주이지 신형 우선주가 아니다. 가령 신호유화· 충남방적· 진로종합식품 등 보통주와 최소한 1000% 넘게 차이가 나는 종목은 모두 구형 우선주이다(왼쪽 표 참조).

  그렇다면 8월 한달간의 우선주 폭등 현상은 투기였다고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대우증권 리서치센터 이종우 연구위원은 "증자나 배당을 할 때 보통주보다 우친주가 유리하다는 점은 있지만 최근의 주가 상황은 투기적 요소가 강하다"라고 지적했다. 증권거래소는 기본적으로 시세 조정 혐의자들의 불공정 행위와 일부 투자자들의 무분별한 뇌동 매매에 의해 우선주 파동이 일어났다고 본다. 일부 투자자가 장 후반에 주로 사이버 거래를 통해 기습적으로 높은 가격을 써 종가를 높였다는 것이다. 또 특정 투자자가 처· 자녀 및 친인척 것으로 보이는 계좌를 여럿 이용해 매수와 매도 역할을 정하는 통정 매매로 상한가 행진을 이어갔다. 매도 없이 매수로만 주가를 띄우는 '기세' 도 적극 이용했다. 이러니 거래량이 아예 없거나 적을 수밖에 없다.

  사채업자가 우선주 파동을 주도했다는 시각도 있다. 코스닥 시장에서 한몫 잡은 사채업자들이 7월께부터 주가 조정기에 접어들자 우선주로 한탕 작전을 벌였다는 것이다. 일부 증권사의 수익률 높이기 게임이 우선주 급등을 부채질했다는 분석도 있다. 우선주는 상장 주식 수가 적어 시세를 조정하기 쉬웠기 때문에 표적이 되었다는 것이다.

우선주 가격, 보통주의 85% 넘으면 비정상
  가령 대표적인 급등락 종목인 대구백화점 우선주를 보면 그동안 얼마나 엄청난 일이 일어났는지 확연히 알수 있다. 이 주식은 상장 주식 수가 4천2백82주밖에 안된다. 주주 수도 고작 12명. 그런데 7월20일 이후 뚜렷한 이유도 없이 무려 29일 동안(영업 일수 기준) 연속 상한가를 쳤다. 7월19일 1만3천원이던 주가는 8월27일 무려 73만원을 기록해 56배나 뛰었다. 통정 매매가 다반사였고, 장 끝날 무렵에는 '기세' 수법이 동원되었다.

  더 기가 막힌 일은 대구백화점 보통주 가격이 8천3백60원(8월27일)밖에 안된다는 사실이다.  흔히 보통주와 우선주의 가격 차를 괴리율이라고 하며, 이 차이가 얼마나 되는가가 우선주에 투자하는 잣대가 된다. 한때 우선주 괴리율은 67%(98년 10월)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보통주주가가 만원이라면 우선주 주가는 3천3백원이었다는 얘기다. 증권 전문가들은 일반적으로 우선주가 15% 할인율로 발행되기 때문에 보통주의 85%수준을 넘으면 정상이 아닌 것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이 주식은 괴리율이 있기는커녕 도리어 우선주 가격이 보통주의 87배나 되었던 것이다.  보통주와 우선주 사이의 이런 뒤바뀐 관계는 한국의 대표 우량주인 삼성전자 주식에서 일어났다고 해도 말이 안된다. 하물며 대구백화점은 98년 워크아웃(기업 구조 개선 작업) 대상이 된 '부실 기업' 이다.

  '브레이크 없는 벤츠' 같았던 우선주에 강력한 제동 장치를 단 것은 감독 당국이었다. 증권거래소는 8월 중순부터 대부분의 급등 우선주를 예의주시하기 시작했다. 증권거래소가 눈을 부릅뜨고 들여다보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진정 국면에 들어간다. 그런데 이번에는 도무지 약발이 먹히지 않았다. 투기꾼들이 감독 당국을 비웃는 것이 분명했다. 실제로 증권거래소 인터넷 홈페이지와 사설 인터넷 주식 사이트에는 '거래소가 과연 혐의를 밝혀낼 수 있겠느냐'는 등 당국에 도전하는 듯한 글이 하루 10여 건씩 올라 거래소 관계자들을 자극했다.

  증권거래소에 비상이 걸린 것은 당연한 일. 마침내 최강수를 쓰기 시작했다 증권거래소는 8월 말 신호유화· 경농· 한화에너지· 충남방적· 쌍용중공업· 대우금속· 일경통산 등 7개 우선주에 대해 금융감독원에 조사를 의뢰했다. 또 수십개 우선주 종목을 매매 심리중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하기에 이르렀다.

  시세 조종 혐의가 있어 감독원에 조사를 의뢰할 때도 그렇지만, 매매 심리 단계에서는 종목을 밝히지 않는 것이 관례다. 그런데도 증권거래소는 이례적으로문제 종목을 '찍어서' 내놓았다.  왜 그랬을까, 뇌동 매매를 자제시키고 투자자를 보호하려는 뜻도 있지만 무엇보다 우선주 투기꾼들에게 선전 포고를 한 것이다. 상장 폐지나 매매 정지 같은 방법을 동원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증권거래소 심용섭 감리총괄부장은 "보통주와 200% 넘게 차이가 나는 우선주는 정상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총력전을 펼치겠다"라고 여전히 꿈틀거리는 투기꾼들을 겨냥해 강력한 결전 의지를 내비쳤다(9월10일에도 상한가 19개 증목 가운데 우선주가 7개나 되었다).

  당국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주식 시장을 교란하는 투기 세력을 응징하는 가장 강력한 세력은 정상적인 투자자들이다. 우선주가 투자 가치를 가지려면 무엇보다 숙주인 보통주가 우량해야 하고, 보통주와 우선주의 괴리율이 커야한다. 보통주보다 비싼 우선주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 것이 위험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는 지혜이자 투기 세력을 뿌리 뽑는 지름길이다. 주식 가치는 그 주식의 본질 가치에 수렴하게 되어 있다.
張榮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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