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품고 세상에 응전하다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1999.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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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집 <천둥 같은 그리움으로> 펴낸 이산하씨

장시 <한라산>(87년)을 발표할 당시 이산하씨는 3년째 수배 중이었다. 번역 원고 <제주도 피의 역사 - 4 · 3 무장 투쟁의 기록>(김봉현 저)을 접한 그는, 글이 전하는 참상에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출판사는 모두 몸을 사렸다. 그 자료를 바탕으로 쓴 1천3백여 행의 시 <한라산>은, 말하자면 80년대의 우회 전술이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서야 이산하(본명 이상백)는 정식 시집을 갖게 되었다. 첫 시집  <천둥 같은 그리움으로>(문학동네)는,1 · 2부로 나뉘어 있다. 고등학교 시절 쓴 두편의 시 <겨울 포도원> <꽃게는 내려오지 않을 것이다>와, 경희대 재학 시절 시인‘이륭’의 이름을 널리 알린 <존재의 언어>등을 2부에 묶었고, 1부에는 85년 이후 쓴 시를 모았다. 얼핏 보기에 이 시들은 <한라산>과 많이 다르다. 문학 평론가 최동호씨는 이 시집 말미에‘이산하는 80년대적 풍문과 같은 존재에 머무르지 않는다’고 썼다.

 그의 시에는 잠언이 많다.‘상처는/정면으로 보지 않으면/더 깊은 상처를 낳거나/또 다른 상처를 낳는다’(<파리>)거나‘아하, 세월을 상기시키는 것과/세월을 덮어버리는 것이 이토록 맞물려 있다니’(<어긋나는 生>)와 같은 깨달음이 그렇다. 하지만 도(道), 성찰의 태도 따위가 그의 본령은 아니다.

 이산하씨는 독자를 두 번 배신한다. <한라산>을 기억하는 이에게 그의 시는 너무 구불구불하다 싶은데, 그 속에 다시 칼(刀)을 세워두었다. 그 칼은 안팎을 고루 겨눈다. 비록‘베인자리/아물면/내가 다시 베’(<生은 아물지 않는다>)고‘스스로에게 삼엄하지 못할 때 발목을 자르’(<지뢰밭>)는 그이지만, 그 성찰은 세상과의 응전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짱짱함’이야말로 20년 동안 쓴 시를 한데 묶을 수 있는 끈일 터이다. 짱짱함 탓에 그는 따뜻한 시를 쓰지 못하는 듯했다. 대신 그의 시는 서늘함과 치열함이 다르지 않음을 일러준다.

 그는“시집 제목을‘아직도 나는 좌파가 그립다’로 할 뻔했다”라고 말했다. 농담은 썰렁했다. 게다가 뒤끝이 남았다. 거기에는 80년대를 풍문으로 돌리는 데 대한 짜증이 묻어 있었고, 이는 자존심 없는 시대에 대한 짜증과 다르지 않았다. ‘아무런 모순 없이 나는, 나라고 말할 수 가 없다’(<구토.2>)는 그도, 모순을 보지 못하는 자들을 대할 때면 확신 범이 되는 것이다. 그는 ‘80년 여름, 이 세계는 터뜨리지 않고선 못 배기는 주전자 속의 물방울이었고, 난 결국 터질 수밖에 없는 인간이 되어갔다’라고 썼다. 하지만‘물방울은 끊임없이 터졌고, 그래도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지배자도 피지배자도 모두모두 이데올로기의 도매금으로 도살되고’(<구토.1>)에 이르면, 그의 치열함은 허무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벌인다.

 10여 년의 침묵 끝에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한 그는“이번 시집을 다리로 삼아 <한라산> 2부로 건너가겠다”라고 말했다.                                           
魯順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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