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의 개혁 뒷걸음 좌시하지 않겠다”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1999.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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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파,‘영진위’구성 놓고 거세게 반발

최근 격화하던 영화계 보 · 혁 갈등이 봉합하기 어려운 수준에 접어들었다. 이른바‘개혁파’영화인들이 기존 영화인협회(이사장 김지미)와 별도로 영화인회의(가칭 · 임시 대표 명계남)를 출범시킨 것이다.

 개혁파가 딴살림을 차기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 재출범이다. 지난 6일 영진위는 박종국씨(전 문화공보부 기획관리실장)를 위원장에 추대했고, 조희문 교수(상명대 · 영화학)를 부위원장으로 선출했다(조희문 5표, 문성근3표, 기권2표).

 석달 동안 표류한 끝에 재구성된 지도부 면면을 본 일부 영화인은 거세게 반발했다. 영화 진흥법에 반대해온 인물이 지도부를 맡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주장이다. 우선 관료출신인 박종국 위원장은 전력 시비에 휘말렸다.‘유신 시절 사전 겸열 등 폭압 정책 담당자였던 관료가 민간 자율 기구 사령탑을 맡는 것은 취지에 어긋난다’는 이유다.

 부위원장으로 뽑힌 조희문 교수도‘등급외 전용과 시기 상조론’을 펴는 등 보수적인 목소리를 대변해 왔다는 점 때문에 우려를 낳고 있다. 한국영화감독협회는 조교수를 지목해‘진흥위원의 일원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반대할 일이 아니나, 부위원장으로서 전체 의견을 주도해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영화계 내에서 박종국 · 조희문 체제가 김지미씨 작품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김지미씨를 중심으로 한 보수파는 그동안 격렬한‘장외투쟁’을 벌여 왔다. 발단은 영진위가 처음 구성되던 석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진위 첫 회의에 불참한 김지미(영화인협회 이사장) · 윤일봉(옛 영화진흥공사 사장)씨는,‘영진위 위원 전체가 모이지 않은 상태에서 지도부(신세길 · 문성근 체제)를 선출한 것은 절차게 문제가 있다’며 위촉을 거부했다. 하지만 김씨의 태도는, 개혁파가 주도권을 잡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해석되었다. 이전에도 김씨는 젊은 영화인들의 모임인‘충무로 포럼’을 주도하는 문성근씨를 겨냥해‘돌출 행동을 할 경우 영화인협회에서 제명하겠다’고 경고 편지를 보내는 등 개혁파를 경계하는 데 앞장섰기 때문이다.

 개혁파도 입장이 강경했다.‘(두사람이) 회의일자를 통보받고도 불참한 것은, 돌아가는 판세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 판을 개겠다는 것에 불과하다’고 응수했던 것이다. 이후 영화계에는 김지미씨가 막후 로비에 돌입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소문은 곧 현실로 드러났다. 곧이어 신세길 위원장은 사표를 제출했고, 문성근씨도 부직원장 보직을 내놓아야 했던 것이다.

 보 · 혁 진영이 영진위 구성을 놓고 양보 없는 다툼을 벌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영진위가 향후 정책과 돈을 좌지우지할 주요 기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올해는 등급외 전용관 · 스크린 쿼터 등 안팎으로 현안이 산적해 있다. 얼핏 주도권 다툼으로 비칠 수 있는 현재의 보 · 혁 갈등은, 현안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그 의미가 명확해진다. 보수로 회귀할 우려가 큰 것이다.

개펵파, DJ정부의 ‘배신’에 분노
 영진위 인사를 둘러싼 영화계의 반발은, 김대중 정부의 보수화를 염려하는 문화계 전반의 목소리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영화인회의는 국립 현대 미술관 관장(오광수)과 새천년기념사업위원회 상임 위원장(신현웅)인사를 예로 들어, 문화부의 대표적인 산하 기관을 퇴임 관료나 반개혁적 어용 인사들의 점령지로 둔갑시켰다고 비난한다.

 이들은 영진위가 표류한 석 달 동안 박지원 문화관광부장관이 보인 태도만 지켜보아도 현정부의 의중을 읽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 근거로 △박장관은 국회 증언에서 김지미 · 윤일봉 씨가 위촉을 수락했다고 말했으나, 두 사람은 8월 말에야 위촉장에 서명했으며 △결국 결원 상태를 3개월이나 방치함으로써 주무 장관으로써 직무를 유기했다는 것이다. 영화인회의는, 박장관의 태도를‘반개혁 세력’을 영진위로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라고 몰아붙였다. 박종국 위원장 · 조희문 부위원장의 사퇴(한국영화감독협회)까지 요구하고 나선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국민회의가 야당이던 시절, 새 영화진흥법 초안을 마련할 때부터 보조를 맞추어온 개혁파로서는, 현정부에 대한 배신감이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다.‘보수파의 반발을 핑계로 내세워 마음 놓고 보수로 뒷걸음질 치고 있다’는 것이다.                    
魯順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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