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장 빼고 덕장 파병하라
  • 최영재 기자 ()
  • 승인 1999.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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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티모르 파견 한국군, 난민 보호 · 학살 방지가 목적… 평화 유지할 지혜 · 중립성 필요

한국군을 유엔 평화유지군(PKF)으로 동 티모르에 파견하는 문제를 놓고 여야 간에 논쟁이 벌어지고 이다. 여당 의원들은 정부의 보병 파견 방침을 적극 지지한다. 그러나 야당 의원들은 △인도네시아와 외교 관계가 나빠져 국익이 손상될 염려가 있고 △전투 부대를 보낼 명분이 없고 △파병 자체가 노벨 평화상을 노린 대통령의 무리수라며 반발한다.

  문제는 유엔 평화유지활동(PKO)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엔 평화유지활동은 분쟁 지역 상태에 따라 몇 가지 형태로 나뉜다. 첫째는, 예방 외교 활동이다. 이는 분쟁이 생기기 전에 마찰을 일으키는 근워을 해결하거나, 분쟁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무력 분쟁으로 확산되는 것을 제한하는 활동이다. 95년 3월 유엔이 마케도니아 · 알바니아 · 신유고연방 국경선에 보낸 군감사단(UNPREDEP)이 예방 외교 활동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둘째는, 분쟁이 이미 일어난 상황에서 평화를 조성하고 강제하는 활동이다. 억지로 평화 상태를 강요하는 활동인데, 상당한 무력이 필요하다.

  셋째는, 전통적인 유엔 평화유지활동이다. 전쟁이 끝난 것을 감시하고, 치안을 유지하고, 질서를 회복하고, 분쟁 세력을 무장 해제하는 일이다. 현재 동 티모르에서 필요한 것이 정확히 이 활동이다. 75년 말 인도네시아가 침공한 이래 동 티모르는 내전 상태였다. 독립파 무장 게릴라인 팔렌틸(FALENTIL)과 인도네시아 정규군이 끊임없이 유혈 충돌을 벌인 것이다. 그러다가 98년 5월 동 티모르 침공 당사자인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대통령이 하야하자, 국제 사회와 인도네시아는 동 티모르의 장래를 놓고 협상을 벌이기 시작했다.

분쟁 격화하면 지체 없이 철군해야
  이 협상 결론이 99년 8월30일 동 티모르 주민들이 투표로써 미래를 결정한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주민들은 80%에 가까운 압도적인 지지로 독립을 결정했다. 따라서 동 티모르에서는 유혈 충돌을 빚은 두 주체인 인도네시아군과 무장 독립운동 세력 간에 공식적인 분쟁이 끝났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동 티모르 사태는 의외로 해결 방법이 간단하다. 80%가 넘는 압도적인 주민 결정에 승복하지 않고 학살을 자행하는 반독립파 민병대의 난동을 막으면 되는 것이다.

  이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부대는 보병 부대뿐이다. 그래서 공병 부대와 의료 부대를 보내자는 것은 현지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한 주장이다. 공병과 의료 부대가 동 티모르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오히려 이런 부대를 보냈다가는 낭패를 보기 쉽다. 민병대가 무기를 들고 설치는 상황에서 임무 수행은커녕 병력 자체의 안전이 보장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93년 소말리아에 한국 정부가 공병 부대인 상록수 부대를 보냈을 때를 돌이켜보면 알 수 있다. 당시에도 상록수 부대의 안전 문제는 큰 골칫거리였다.

  유엔 평화유지활동의 마지막 단계는 평화를 건설하는 것이다. 전쟁이 끝난 폐허 상태에서 모든 것을 복구하는 일인데, 이는 모두 공병 부대와 의료 부대 몫이다. 동 티모르에서 반독립파 민병대의 무장이 완전히 해제되고 평화가 찾아왔을 때 이러한 활동이 필요하다.

  동 티모르 파병 문제를 노의하기 위해서는 유엔 평화유지활동의 몇 가지 특징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먼저 유엔 평화유지활동은 유엔 안보리가 주도한다. 한국전쟁 때의 유엔군, 걸프전 때의 다국적군, 소말리아 내전 때의 통합군과는 성격이 다른 것이다. 사실 이 세 가지 경우에서는 유엔 안보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특정한 유엔 회원국(주로 미국)이 분쟁 지역에서 군사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이름만 빌려준 꼴이었다.

  다음은 유엔 평화유지활동의 가장 핵심적인 조항으로‘동의성의 원칙’이다. 이는 유엔 안보리와 총회 동의 · 분쟁 당사국 동의 · 유엔 평화유지활동 참여국 동의가 있어야 유엔 평화유지활동이 성립된다는 뜻이다. 동 티모르 사태의 경우 분쟁 당사국인 인도네시아가 유엔 평화유지활동을 수용했으므로, 공식적으로 인도네시아와 외교 마찰을 빚을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래서 일부에서 제기되는 한국군과 인도네시아군이 교전하는 상황은 있을 수 없다. 한국군과 인도네시아군은 동 티모르에서 치안을 확보하기 위해 협력해야 하는 대상이지 서로 싸울 상대가 아니다.

각국, 앞다투어 실의 챙기기 파병
  다음은‘중립성의 원칙’이다. 유엔 평화유지활동에 참여하는 국가는 현지에서 분쟁 당사자에 대해 중립적이고 공정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월남전에 파견된 한국군은 월맹군이라는 분명한 공격 목표가 있었다. 그러나 동 티모르에 한국군이 들어간다면 적군과 아군을 따질 수가 없다. 현재 난동을 부리는 반독립파 민병대는 유엔 평화유지활동의 공격 대상이 아니다. 평화유지군 병력이 동 티모르에서 할 일은 반독립파 민병대가 주민을 학살하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치고 난민을 보호하는 것이다. 만약 동 티모르의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한다면, 평화유지군 병력은현장의 분쟁에 얽매이지 말고 지체없이 철수해야 한다.

  동 티모르 평화유지군에 참여하는 것은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는 지적이 높?. 호주와 아세안(ASEAN) 국가들이 기를 쓰고 평화유지군의 주도권을 잡으려 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동 티모르 앞바다에 있는 대형 유전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이 문제를 잘 해결하면 국제 사회에서 발언권을 크게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유엔 평화유지활동 전문가인 한국국방연구원 송영선 박사는“국제 사회에서는 공짜가 없다. 호주와 캐나다가 앞장서서 보병을 보내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이 두 나라가 평화 애호국으로 명성이 높고 국제 사회에서 발언권이 높은 것은 일관되고 꾸준하게 유엔 평화유지활동에 참가한 덕택이다”라고 말했다.

  물론 유엔 평화유지군활동 원칙대로 상황이 전개되지 않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가령 반독립파 민병대가 한국군 병사를 습격해서 살해한 뒤, 그 시신을 공개하는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다. 미국은 93년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이런 일을 겪은 적이 있다.

  인명 피해가 날 경우 한국군이 반독립파 민병대에게 보복 공격을 한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사실 동 티모르에서 난동을 부리는 민병대는 무기라고는 칼과 사제 권총 정도를 겨우 갖춘 오합지졸이 대부분이다. 이는 <시사저널> 취재진이 현지에서 확인한 것이다.

  만약 파병 쪽으로 결론이 난다면 가장 중요한 것이 병사들에 대한 정신 교육이다. 동 티모르에 가는 병력은 싸우려 가는 병력이 아니라, 현지 주민을 돕고 싸움을 말리러 가는 병력이다. 유엔 평화유지활동은 상당히 처신이 어려운 작전이다. 군사 평론가 지만원 박사는“중국의 마오쩌둥은 병사와 주민을 물고기와 물에 비유했다. 주민 지원 없이는 병사가 살 수 없다는 것이다. 동 티모르에 병력을 파견한다면 전투력보다는 대민 화합 능력이 뛰어난 지휘관과 병사를 선발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현재 동 티모르 주민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유엔이 보내는 무장 보병이다. 유의할 점은 근육질의 난폭한 전사가 아니라 용맹스럽되 따뜻하고 신사적인 병사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정부와 국회는 유엔 평화유지활동이 어떤 것인지 꼼꼼히 살핀 뒤에, 국제 사회의 인권을 위해 기여한다는 대의와 국가 실리 확보라는 두 가지 명제를 잘 저울질해서 파견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그 활동이 어떤 것인지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벌이는 논쟁은 소득 없는 다툼일 뿐이다.
崔寧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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