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습 드러난 ‘탐욕의 독버섯’/사고 부른 ‘뇌물 사슬’ 밝혀져.. 경찰·공무원 85명 구속·조사중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1999.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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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화재 참사 수사

인현동 소재 라이브Ⅱ 호프는 꽃봉우리도 피우지 못한 55명의 생명을 앗아간 괴물답게 시커먼 입을 벌리고 있었다. 의자로 내리쳐도 깨지지 않던 통유리는 산산조각 나 없어졌고, 건물 내부는 검댕이로 뒤덮여 있었다. 사건 현장은 경찰이 3명씩 짝을 이루어 감시하며 민간인 출입을 막았다. 인천지방경찰청 2층에 자리 잡은 수사본부에는 하루 24시간 불이 켜져 있었다. 화재 사건 관련자에 대한 수사가 밤새 진행되는 것이다.

지난 11월 3일 주인 정성갑이 자수하자 더 탐욕스러운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호프집 불법 영업 이면에 인천 공무원 사이에 형성된 부패와 비리 구조가 또아리를 틀고 있었던 것이다. 라이브Ⅱ 호프 주인 정성갑이 정범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인현동에 서식한 괴물이 고귀한 생명을 집어삼키는 것을 방조 내지 부추겼다고 밝혀진 인천 공무원들은 공동 정범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상인은 경찰, 번영회는 공무원 매수
라이브Ⅱ 호프처럼 인천 공무원의 비호를 받으며 무허가로 영업하고 있는 업체는 6백여 곳. 또 다른 정성갑이 뇌물로 얽어맨 부패 망을 방패로 삼아 어린 생명을 노리는 참사가 이천 전역에 잠복해 있는 것이다. 화재 사건으로 불거진 정성갑의 뇌물 사슬은 한 예일 뿐이다. 정성갑이 가진 뇌물 수첩은 인천 지역 공무원이 연루된 비리와 부패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는 중·고등학생에게 술을 팔아 모은 돈으로 인천 지역 경찰·구청·소방서 직원을 매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 대가로 인천 공무원들은 자기 자식이 희생될지도 모르는 현장을 방치했다.

라이브Ⅱ 호프 화재 참사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관련자는 무려 85명. 업소 단속·허가·인가 권한을 가진 시·궃ㅇ 공무원이 15명이고, 불법 영업 단속권을 가진 경찰은 51명이다. 소방 공무원도 6명이나 된다. 그 가운데 10명이 구속되었고 12명이 불구속 입건되었다. 이 숫자는 수사가 진행될수록 불어나고 있다. 인천 공무원 사회에 정성갑이 키워놓은 독버섯이 하나씩 햇빛에 드러나는 셈이다.

독버섯이 가장 번창한 곳은 인천중구청. 임말이 보건복지과 식품위생팀장을 비롯해 6명이 수사 대상이 되었다. 더욱이 식품위생팀 직원 신윤철씨는 공문서 허위 작성과 직무유기 혐의, 이성일 문화예술팀원·정성모 문화공보실장은 뇌물수수 혐의로 수사 대상에 올랐다. 화재가 난 지역을 담당한 직원들은 라이브Ⅱ 호프가 불법 영업한다는 사실을 알건 보고받고도 아무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세영 중구청장은 지난 11월 7일 소환되었다. 그는 동인천상가번영회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청장이 수사 대상으로 떠오르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정성갑의 진술이었다. “상가 활성화 차원에서 중구청장은 부하 직원이 중구 일대 무허가 업소를 단속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동인천사가번영회는 상가 점주들이 달마다 내는 일정액의 회비로 운영되고 있다. 상가를 활성화하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행사를 기획하기도 하지만, 주요 업무는 관내 공무원을 매수하는 일이라고 알려졌다.

“우리는 중구청 직원의 단속은 걱정하지 않았다. 그쪽은 상가 번영회가 (로비를)맡았다.” 정성갑의 수첩에 경찰관 24명의 이름과 연락처가 적혀 있는데, 중구청 직원은 하나도 없는 이유를 경찰이 추궁하자 정성갑이 한 진술이다. 중구청은 상가번영회가 맡아서 달래고, 경찰은 개별 점포 주인이 무마하는 것으로 역할 분담이 된 셈이다. 정성갑은 중구청 식품위생팀 소속 6~8급 직원에게 월 20만~30만원씩 쥐어주면 구청 단속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따라서 정성갑이 가장 신경써야 할 곳은 경찰이었다.

학생들, 여전히 위험 지역 활보
정성갑은 축현파출소 서흥선 경장에게 뇌물을 주고 단속 정보를 빼돌렸다. 서경장은 경찰 수사에서 정성갑으로부터 60만원을 받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단속이 ‘뜨면’ 서경장이 귀띔하고, 이 정보는 무전기로 업소 관리자에게 전달된다. 그 때문에 주변 점포들이 아무리 불법 영업을 신고해도 라이브Ⅱ 호프는 단속에 걸려들지 않았다.

경찰은 112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가 단속에 실패한 것을 ‘불발’이라고 부른다. 불발은 특히 관리 대장에 기록해야 한다. 다시 이 업무를 맡은 이는 신명기 전 중부서 방범과장과 이홍호 전 풍속담당 경장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라이브Ⅱ 호프에 대한 불발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더욱이 지난해 5월 경찰청으로부터 112 신고 접수 뒤 미처리된 업소를 특별 단속하라는 지시를 받고도 화재가 나던 날까지 단속을 하지 않았다.

변호사를 만난 뒤 진술이 바뀌기 전인 지난 11월 4일, 정성갑이 뇌물을 주었다고 자백한 경찰관은 12명이나 되었다. 라이브유통 통합매상 장부를 복사한 뒤 친분 있는 남자에게 맡겼던 경리사원 양경순씨는 “정성갑은 경찰에게 뇌물을 주어야 한다며 여러 차례 20만~30만원씩 가지고 나갔다”라고 진술했다. 양씨가 제출한 장부 사본에는 ‘98.12.26 회장 파출소 20만원 봉투’ ‘99.1.1 단속 중부서 70만원’ ‘99.1.6. 김밥 20,000 과일 20,000 중부경찰서’ 같은 내용이 빼곡히 적혀 있다.

경찰에 충분히 ‘투자’한 만큼 정성갑은 주위 감시를 아랑곳하지 않고 범법 행위를 자행했다. 라이브Ⅱ 호프 주변 상점 주인은 “심야 영업이 해제되지 않았던 지난 해 9월 이전에도 새벽 4~6시까지 버젓이 불법 영업을 해왔다”라고 증언했다.

정성갑은 또 자기 외제 승용차에 부과된 갖가지 과태료도 제대로 납부하지 않았다. 인천 중·동·남 구청에 열다섯 차례나 압류 등록되었으나 단 한 차례도 과태료를 내지 않았다. 정성갑이 공권력을 얼마나 우습게 보았는지 알 수 있다. 중구청 관계자는 “무허가 업소를 여덟 군데나 운영했던 정씨가 과태료를 체납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인천 지역 학생들은 지금도 공무원 부패와 비리로 방치된 위험 지역에서, 목숨을 저당잡힌 채 위험한 잔치를 벌이고 있다. 인현동의 한 여관 주인은 “사고 이후 인현동이 썰렁해지자 학생들이 주안 가은 곳을 몰려 가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장소는 바뀌었지만 참사 현장과 비슷한 곳에 여전히 학생들이 모여들고 있다는 얘기이다.

지난 11월 6일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 합동추도식에서 학생 대표 이선형양(인천여상 2년)은 기성 세대에게 물었다. “어른들은 우리더러 새천년의 주역이다. 나라의 동량이며 미래다라고 여러 말씀을 하시지만 그런 대접이 이런 희생을 치르게 하는 것인지요?” 하지만 대답할 책임이 있는 어른들은 자기 죄를 감추기에 급급하고, 아이들은 여전히 위험에 방치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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