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증시 외국인 ‘덕’ 본다?
  • 소성민 기자 ()
  • 승인 1999.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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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말부터 순매수 ‘질풍노도’ ... 종합 주가지수 950~1000선 ‘낙관’

기나긴 ‘눈치 작전’이 마무리된 것일까. 증시가 3개월여 만에 e시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지난 달 28일 793 포인트부터 치솟기 시작한 종합 주가지수가 1주일도 안되어 100 포인트 이상 급상승하는 ‘괴력’을 발휘한 것이다. 올 들어 급등하던 종합 주가지순ㄴ 7월 9일 1027 포인트를 기록한 뒤 추락해, 지난 달 790 포인트대로 밀리기까지 ‘기간조정’ 양상을 보여 왔다.

최근 급격한 지수 상승을 주도한 세력은 외국인 투자자. 외국인들은 지난 5월부터 주식을 팔아치우는 데 치중해 왔으나 지난달부터 순매수 규모를 늘리기 시작해, 28일께부터는 연일 2천억원 안팎에 달하는 매수 우위 기조를 유지했다.

증시 관계자들, 외국인 투자자 속셈 몰라 당혹
11월 2일까지는 기관 투자가들도 순매수세에 대거 가담해, 올 상반기 ‘쌍끌이 장세’가 재현되는 것이 아니냐는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올 상반기에 종합 주가지수가 폭발적으로 상승했던 것은 외국인과 기관 투자가들이 경쟁적으로 주식을 사 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관 투자가들이 11월 3일부터 순매도로 돌아서며 매수 강도가 시들해진 반면, 외국인들은 마치 질풍노도와 같이 매수세를 멈추지 않았다. 막강한 자금력을 과시하는 외국인들이 다시 한국 증시로 몰려들자, 많은 주식 투자자들이 ‘연말 대목장’이 서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이번 외국인 매수세에는 많은 증시 관계자들이 당혹해 했다. 외국인들이 ‘기습적으로’ 대규모 순매수 행진을 벌였기 때문이다. 증시 전문가들은 한국 금융 시장이 안정되기 전까지는 외국인들이 견고한 매수세를 보이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굿모닝증권 이근모 상무(국제 및 조사 본부장)는 “전혀 뜻밖이다. 지난주(10월 하순) 미국에 갔을 때만 해도, 외국인 투자 세력들은 한국 시장에 대해 여전히 보수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있었다”라고 전했다.

펀드매니저인 마이다스에셋자산운용의 김기환 이사도 “우리가 모르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 같다. 시장 상황으로 보아 900 포인트가 넘으면 매수를 중단할 줄 알았는데, 계속 ‘미친 듯이’ 사들이고 있다”라고 의아해 했다.

외국인들은 왜 느닷없이 주식을 대거 사들이고 있는 것일까.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국내 기관 투자가들은 그 어느 때보다 외국인 투자 세력들의 의중을 간파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금융 시장이 여전히 불안하고 기관들의 매수 여력 또한 충분치 못한 상황에서 자칫 외국인들의 뒤를 잘못 쫓다가 ‘뒷북’을 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들, 첨단 기술주 투자 늘려
전문가들은 외국인들이 10월 28일부터 근 열흘간 대규모 순매수를 기록한 사실을 일단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한다. 가장 중요한 근거로 꼽는 점은 대우 문제가 수습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이다. 현대증권 정태욱 이사(리서치 센터 본부장)는 “대우처럼 큰 재벌도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과 거대 재벌이 무너져도 한국 경제가 잘 견디고 있다는 사실이 외국인들로 하여금 한국 증시에 대해 더 높은 신뢰도를 갖게 한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대우 사태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는 점 못지않게 중요한 요인으로 미국 증시가 안정세를 나타내고 있는 점을 꼽을 수 있다. KTB자산운용 장인환 사장은 “다우존스 지수가 10000 포인트 아래로 붕괴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많이 약해졌다. 나스닥을 중심으로 미국 증시가 급반등하면서, ‘신경제(New Economy)'에 대한 신뢰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최근 미국 나스닥 지수가 3000 포인트를 뚫고 올라가 신고점에 도달한 사실이나, 한국 코스닥 지수가 급반등하며 200 포인트를 회복한 사실은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 ‘거품' 우려를 불러일으키며 지난 수 개월간 폭락했던 첨단 기술주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낮은 인플레이션을 유지하면서도 높은 성장률을 지속할 수 있다는 신경제 이론이 득세하면서, 외국인들은 한국 증시에서도 첨단 기술주에 대한 투자를 늘이고 있다.

굿모닝증권 이근모 상무는 “외국인들이 처음에는 낙폭이 큰 우량주와 금융주를 집중 매입하더니, 요즘에는 하이테크 관련 주들도 열심히 사들이고 있다”라고 밝혔다.

진정 기미를 보이는 대우 사태, 안정될 조짐을 나타내는 미국 증시 외에도 최근 외국인들의 매수세를 자극한 요소들은 많다.

우선 세계적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가 연내에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할 가능성이 큰 점을 들 수 있다. 또 한국이 <파이낸셜 타임스>(FT) · 스탠다드 앤드 푸어스(S&P) 지수에 편입될지 모른다는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 10월 초순 FT지수를 산정 · 발표하는 FTSE인터내셔널 사는, 한국과 대만 증시를 FT지수 안에 편입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외국인들의 매수세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는 미국의 세계적 투자 기관인 모건스탠리가 투자 일정을 조정한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마이다스 에셋 자산운용 김기환 이사는 “모건스탠리가 한국주식 편입 비율을 현행 23%에서 향후 18%로 낮추기로 했는데, 최근 시행 일정을 내년 1월에서 5월로 연기하는 바람에 투자 비중을 미리 줄여 놓은 이들만 답답하게 되었다”라고 설명했다.

“미국 금리 인상해도 추격 크지 않을 것”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외국인들의 시각은 일단 상당히 호전된 것으로 평가된다. 대우 사태가 타지자 직접적 피해가 미치는 증권 · 은행 등 금융주들을 집중 매도했던 외국인들이 이 종목들부터 다시 사들이기 시작한 사실도 그 같은 평가를 뒷받침한다.

문제는 외국인들이 매수세를 얼마나 더 지속할지 여부다. 새 밀레니엄을 맞기 전까지 한국 증시가 넘어야 할 산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악재로 지목되는 것 또한 호재로 작용하기도 했던 대우 문제다. 정부가 계획대로 대우 계열사 워크아웃 작업을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을지, 해외 채권단과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극복해야 할 난관이 아직도 숱하다.

미국의 금리 인상 여부도 관심사이다. 금융 전문가들도 기연가미연가하고 있지만, 오늘 16일 미국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금리 인상을 단행할 가능성이 여전히 높다.

지난 9월 미국 증시가 금리 인상에 대한 우려감으로 급락하자, 외국인들은 한국에서도 주식을 대거 내다 팔아 폭락 장세를 주도했다. 불과 한 달 보름 전의 일이다.

대부분 증시 전문가들은 미국 금리가 혹시 연내에 오르지 않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오를 수밖에 없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미국이 연내에 금리를 인상한다 해도 일시적으로 미국 증시가 출렁거릴 수는 있지만, 지난 9월 때와 같은 큰 충격은 없을 것으로 내다본다. ‘동조화 경향을 보여 온 한국 증시 또한 마찬가지다.

현대증권 정태욱 이사의 전망은 이렇다. “금리를 0.25% 포인트쯤 올리더라도 당분간 더 올리지 않겠다든가 혹은 중립적 자세를 유지하겠다든가 하는 언급이 뒤따르면 충격은 단기에 그칠 것이다. 9월의 장세 경험이 ‘학습 효과’를 일ㅇ켜, 금리가 인상되더라도 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완화해 줄 수 있다.”


‘우량주 매입 후 보유’ 투자 전략 바람직
이밖에도 장세의 발목을 잡을 복병으로 꼽히는 요소가 Y2K, 연말께 Y2K 문제에 대한 우려가 불거지면서 외국인들이 현금 비중을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이 많다. 그러나 김기환 이사처럼 “별 문제 없다. 외국인들이 Y2K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한다면, 두 달도 안 남겨둔 지금 주식을 사들일 이유가 있겠는가”라며 낙관하는 전문가도 있다.

가장 확실하게, 현실적으로 증시의 발목을 붙들 요소로 지적되는 것이 11~12월 사이에 집중된 공급 물량이다. 지난달만 해도 증자 · 공모 등 6조5천억원에 달하는 공급 물량이 쏟아질 것으로 발표되었다. 하지만 요즘은 기업이 부채 비울 200%이하를 맞추기 위해 공급 물량을 10조원 이상 쏟아내리라는 증권 전문가들의 전망이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연말 종합 주가지수가 950~1000 사이에서 형성될 것이라고 보는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지수의 향방을 정확히 예측하기란 불가능하다. 전문가들은, 기업 실적이 좋아지고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는 한 상승 추세가 계속될 것이므로 우량주를 ‘바이크 앤 홀드(Buy and Hold; 사서 보유)’하는 전략이 바람직하다고 권한다.

전문가들은 특히 정보통신 · 인터넷 · 디지털 등 첨단 기술 관련 주(위 상자 기사 참조)가 앞으로 증시를 주도하리라는 데 대해서는 별 이견이 없다.

삼성증권 리서치센터 김군호 팀장은 “순환 매매가 이루어지면서 어떤 종목이든 오를 수 있다. 외국인들의 투자 유형을 따르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라고 조언하기도 한다. 여하튼 외국인 동향을 주시하지 않는 ‘나홀로 투자’로 증시에서 승자가 되기는 힘든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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