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삼국지’ 최후 승자는?
  • 박재권 기자 ()
  • 승인 1999.1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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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유통 전쟁 발발... 현대는 고급화, 롯데는 확장, 신세계는 할인점 전략 펼쳐

백화점 업계의 선두 주자인 롯데 · 현대 · 신세계가 공세적인 확장 전략을 펼치고 있다. 롯데는 8개인 마그넷을 2003년까지 70여 개로 늘려 이마트를 제압하겠다고 선언했고, 신세계는 2003년까지 이마트를 62개로 늘려 1위 자리를 고수하겠다고 맞받아쳤다. 현대는 지난 1일 C.I(기업 이미지 통합) 선포식을 갖고, 종합 유통 서비스업체로 거듭나겠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국내 백화점 업계는 제2차 유통 전쟁에 돌입하게 되었다.

제1차 d통 전쟁은 90년대 중반에 시작되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말을 신봉한 서울의 대형 백화점들이 남진(南進)정책을 펼쳤고, 지방 백화점들이 대형화로 맞불 작전을 구사했다.

이렇게 시작된 유통 전쟁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가 닥치면서 싱겁게 끝났다. 무리한 확장 전략으로 자금난에 시달리던 지방 백화점들이 극심한 경기 침체와 소비 위축을 이겨내지 못하고 두 손 들고 말았다. 미도파 · 뉴코아 등 서울의 중견 부도 행렬에 합류했다.

롯데 · 현대 · 신세계는 몸집을 늘릴 절호의 기회를 맞게 되었다. 굳이 땅을 사서 건물을 지을 필요 없이, 싼값에 기존 백화점을 인수했다. 롯데가 분당 블루힐 백화점, 부평 동아시티백화점, 서울 그랜드 백화점을 인수했고, 신세계가 마산 성안백화점을 사들였다. 현대는 (주)주리원을 인수해 현대백화점 울산점 · 성남점을 개점했고, 광주 송원백화점과 신촌 그레이스 백화점을 위탁 경영 방식(OMA)으로 접수했다.

그 결과 백화점 업계의 판도가 달라지게 되었다. 1위 자리는 롯데가 지켰지만, 신세계가 2위 자리를 현대에 넘겨주고 3위로 밀려났다. 이들 3사의 지난해 매출액은 롯데가 2조9천억원, 현대가 2조원, 신세계가 1조3천억원. 이들 3사가 백화점 업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97년 47%이던 것이 IMF 사태를 거치면서 75%로 껑충 뛰었다.

이들이 벌이는 제2차 유통 전쟁에서 가장 공세적인 쪽은 롯데이다. 롯데는 영업 전략 면에서 두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하나는 남보다 먼저 신규 사업에 뛰어들지 않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업이 된다 싶으면 대규모로 자금을 투자해 순식간에 시장 판도를 뒤엎는 것이다. 명동 상권을 거머쥐고 있던 신세계백화점을 따라잡은 것도 그런 식이었다.

IMF 사태로 롯데는 두 가지 도전에 직면했다. 첫째는 고급화 전략을 택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점이다. IMF 사태 때 할인점을 이용하던 사람들은 경기가 호전되어도 쉽게 백화점으로 발길을 돌리지 않는다. 이 때문에 부유층 고격을 상대로 한 영업 전략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롯데는 고급 백화점이라는 이미지 면에서 현대에 뒤진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롯데는 본점 1층에 샤넬 · 까르띠에 · 프라다 · 불가리 등 명품 매장을 끌어들였다. 그런데도 매출이 기대만큼 오르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주차시설이 열악하기 때문. 샤넬 매장의 한 관계자는 처음보다 많이 좋아졌다고 말했지만, 백화점 관계자는 여전히 실적이 좋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롯데는 새로 인수한 그랜드백화점을 고급스럽게 단장해 서울 강남 부유층 고객을 끌어들일 계획이다. 현대 아성에 도전하겠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랜드백화점이 강남 중심 상권에서 벗어나 있어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 알 수 없다.

롯데의 제2 전선은 할인점이다. 롯데는 마그넷을 지금의 8개에서 2003년에는 70여 개로 늘려 이마트를 누르고 1위 자리를 빼앗겠다고 장담한다.

문제는 이 같은 확장 전략이 지금 단계에서 적절한가 하는 점이다. 할인점 시장에서는 이미 이마트가 확고한 우위를 점하고 있고, 여타 업체들이 치열하게 확장 경쟁을 벌이고 있다. 경기도 분당 · 일산은 이미 과잉 상태이다. 이런 상황ㅇ서 뒤늦게 할인점 시장에 주력하는 것이 옳은지 업계 전문가들은 반신반의한다.

무차별 공세 펴는 롯데, 자금에 문제 없나
롯데의 자금력도 의문이다. 롯데백화점 한 관계자는 “신격호 회장의 일보 재산이 대부분 부동산으로 묶여 있다. 따라서 자산 가치가 폭락한 지금은 당장 현금화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 같은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코스닥 시장에 등록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롯데=자금력’이라는 외부 시각과는 약간 차이가 나는 대목이다.

어쨌든 롯데는 양면전을 치러야 한다. 한쪽으로는 현대의 고급 백화점 전략과, 다른 한쪽으로는 신세계의 할인점 전략과 맞붙어 싸워야 한다.

롯데의 도전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쪽은 업계3위로 밀려난 신세계이다. 신세계는 내년 5월 서울 강남점과 마산점을 개점할 예정이다. 2003년까지는 대구 · 부산 · 서울에 한 곳씩을 추가해 백화점 수를 5개에서 10개로 늘리고, 매출 규모도 4조원 정도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와 함께 본점 개축 계획도 마련했다. 주변 부지를 매입하고, 1천5백억원을 들여 3천대 주차시설을 갖춘 초대형 백화점을 짓기로 했다. 이를 통해 부유층 고객을 다시 끌어들인다는 전략이다. 문제는 서울시이다. 서울시는 도시 미관 · 도심 교통난을 내세워 제동을 걸고 있다. 신세계는 허가만 떨어지면 내년 5월부터 공사를 시작하겠다며, 서울시의 선처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하지만 신세계의 주력은 할인점이다. 신세계는 현재 18개인 할인점을 2003년까지 62개로 늘릴 계획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할인점 업계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굳히겠다는 전략이다.

신세계가 할인점 사업에 매력을 느끼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백화점 시장은 90년대 중반을 고비로 성숙 단계에 돌입했다. 반면 할인점 시장은 앞으로 3~4년간은 30~40%씩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LG경제연구원은 2005년에 할인점 시장 규모(16조5천억원)가 백화점 시장 규모(16조원)를 능가할 것으로 내다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신세계는 이마트 사업에 주력해 국내 최대 유통업체로 성장할 계획이다.

이아 정반대 길을 걷는 것이 현대백화점이다. IMF 사태를 거치면서 비약적으로 몸집을 불린 현대는 강남에서 부유층 고객을 상대로 확고한 아성을 쌓았다. 그 덕에 IMF 사태의 영향을 가장 적게 받았고, 또 가장 빨리 IMF 터널을 빠져나왔다. 현대는 여기서 충분한 이익을 누리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할인점 경쟁에는 뛰어들 필요조차 느끼지 않고 있다.

문제는 내년이다. 롯데와 신세계가 강남에서 현대 포위 전략을 구사할 태세여서, 이것이 현대의 시장을 얼마나 잠식할지가 관심사이다. 현대백화점 오중희 홍보부장은 걱정 없다는 태도다. “무역센터점의 일부 고객은 이탈할지 모른다. 그러나 압구정점은 끄덕없을 것이다.”

롯데 · 현대 · 신세계가 벌이는 2차 유통 전쟁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벌써부터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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