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뇌’를 만드는 몇 가지 비결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1999.1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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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내 혁명>저자 하루야마 시게오 박사, 좌담회에서 식생활 · 운동 · 명상법 소개

“평소 쓰지 않던 근육을 사용하면 뇌가 좋아합니다. 이를 테면 우리가 걸을 때 보통 무의식적으로 무릎을 굽히며 걷습니다. 이제부터는 무릎과 팔꿈치를 쭉쭉 펴면서, 피노키오가 된 듯한 마음으로 걸어 보세요. 그러면 뇌가 좋은 자극을 받아 ‘뇌 내 모르핀’을 방출합니다”

뇌 내 모르핀, 베타 엔돌핀, 플러스 발상. 이런 낯선 단어들을 한순간에 일반인에게 친근하게 만들었던 <뇌 내 혁명>의 저자 하루야마 시게오 박서(60)가 한국을 찾았다. <뇌 내 혁명>은 95년 초판이 나온 이래 일본에서만 6백만 부가 팔렸다는 전후(戰後) 최대 베스트셀러. 국내에서도 40만 명 가까이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는 하루야마 박사는, 한국인체과학연구원과 한국인체과학학회가 11월 13일 주최한 ‘한 · 일 뇌 호흡 심포지엄’에 참석하러 한국을 방문했다고 밝혔다.

심포지엄을 앞두고 하루야마 박사는 한국인체과학연구원 이승헌 원장(47)과 대담했다. 이원장은 97년 ‘한국판 뇌 내 혁명’이라 할 <뇌 호흡>을 발표해 화제를 모은 주인공. 두 사람은 대담에서 뇌의 기능과 역할, 뇌와 건강 사이의 관계에 대해 상당 부분 공통된 견해를 밝혀 눈길을 끌었다.

이들의 주장은 어찌 보면 놀랍도록 단순하다. ‘마음가짐이 건강을 좌우한다.’ 여기에서 건강이란 신체적 · 정신적 · 사회적 건강을 한데 아우른다. 똑같이 상사 호출을 받았다 해도 ‘또 혼쭐나는구나’라고 지레 걱정하는 사람은 가중되는 스트레스로 자기 건강을 해치다. 반면 ‘지난번에는 혼났지만 이번에는 칭찬을 받을 거야’라고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스트레스를 쫓아버린다.

“5백만 년 간 인류가 축적한 지혜, 우뇌에 저장”
이 정도는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렇다면 마음이 어떻게 건강을 좌우하는가. 하루야마 박사와 이 원장은 마음을 관장하는 뇌의 비밀을 밝힘으로써, 그 메커니즘을 규명하려고 노력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곧 두 사람은 이제까지 심리학 · 철학 · 종교의 관심사에 머물렀던 마음을 뇌 과학의 관점에서 재조명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하루야마 박사는 <뇌 내 혁명>에서 창시한 뇌 내 모르핀이라는 용어를 여전히 중심 개념으로 사용하면서도 더 정교해진 사상 체계를 선보였다. 예를 들어 아무리 행복한 환경에 있는 사람이라도 화를 내거나 누군가를 증오하면 뇌 속에서 노르아드레날린이라는 독성 호르몬이 분비된다. 반면 아무리 괴로운 환경에 처해 있어도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사고하면, 뇌는 베타 엔돌핀이라는 몸에 좋은 호르몬을 분비한다.

베타 엔돌핀이 바로 뇌 내 모르핀의 일종이다. 뇌 내 모르핀은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만들 뿐 아니라, 노화를 방지하고 자연 치유력을 높이는 뛰어난 약리 효과를 갖고 있다.

이승헌 원장은 심기혈정(心氣血精) 원리로 이를 설명했다. 동양 사상에 등장하는 이 원리는 마음[心] 가는 곳에 기(氣]가 있고, 기 있는 곳에 피[血]가 따르고, 피가 따르는 곳에 정(精)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다시 말해 마음에 따라 기가 결정된다는 것이 심기혈정 원리인데, 마음을 집중함으로써 오장육부나 신체 각 기관 · 조직을 건강하게 조절할 수 있다고 이 원장은 말했다.

원리가 그렇다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게끔 건강한 뇌를 만드는 방법은 무엇인가. 여기에 대해서도 두 사람은 상당히 유사한 실천법을 제시했다. 먼저 하루야마 박사는 <뇌 내 혁명>에서 제시한 3단계 건강법을 약간 변형 · 발전시킨  실천법을 내놓았다.

그 첫 단계는 고단백 · 저칼로리로 이루어진 식생활이다. 뇌 내 모르핀을 구성하는 주된 재료가 단백질인 만큼, 고단백 식사는 필수라는 것이 하루야마 박사의 주장이다. 두 번째 단계는 근육을 튼튼하게 만드는 운동이다. 단 유해 산소를 발생시키는 격렬한 운동은 절대 금물이며 맨손 체조나 걷기 같은 가벼운 운동이 좋다. 앞서 소개한 ‘피노키오식 보행법’ (이른바 ‘하루야마식 워킹’)으로 하루 5천 걸음 이상 걸으면 이상적이다.

세 번째 단계는 명상이다. 뇌 내 모르핀이 분비돌 때 뇌는 반드시 알파파(뇌파의 일종)를 방출하는 상태로 바뀐다. 그런데 알파파를 방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명상이다. 여기에 덧붙여 하루야마 박사는 명상에 들어가기 전 오감을 자극하는 단계를 새로 추가했다. 그림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 훈련이 명상에 몰입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이승헌 원장은 액션 - 뮤직 - 이미지(메시지) 세 가지 요소를 동원한 뇌 훈련법을 제시했다. 일반인이라면 결가부좌를 하고 앉는 것보다는, 가벼운 동작을 취하거나 음악을 듣고 흐름을 타는 편이 명상에 몰입하는데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흥미 있는 것은 두 사람이 모두 ‘영적인 건강’을 궁극적인 건강 단계로 강조했다는 사실이다. 이에 따라 하루야마 박사는 <뇌 내 혁명>에서 선보인 좌뇌 ·우뇌 기능에 대한 생각을 부분적으로 수정했다. <뇌 내 혁명>에서 그는 언어나 계산 논리를 관장하는 좌뇌를 진정시키고, 감성 · 직관 · 창조력을 주관하는 우뇌를 많이 사용하면 뇌파를 알파파 상태로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었다.

이번에 그는 우뇌 기능에 새로운 한 가지를 추가했다. 선조가 물려준 모든 정보가 유전자로 저장되어 있는 장소가 바로 우뇌라는 아이디어가 그것이다. 곧 우뇌에는 인간이 생존하는 데 가장 중요한 본능이나 자율 신경계 활동을 포함해, 도덕 · 윤리관 · 우주의 법칙 따위 ‘5백만 년 동안 인류가 축적한 슬기로운 지혜’가 담겨 있다는 것이 하루야마 박사의 주장이다.

따라서 명상에 몰입해 일정한 상태에 도달하면 우뇌가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을 걸어오는데, 이것이 바로 플러스 발상(긍정적인 사고)이자 우주의 지혜라는 것이다.

이승헌 원장은 단순히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는 단계를 넘어, ‘인류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대승적인 사고를 할 때 뇌 호흡 훈련에 급격한 진보가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이는 깊은 명상 상태에서 참 자아[眞我], 나아가 우주의 본성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하루야마 박사의 설명과 통하는 데가 있다.

일각에서는 “신비주의적 망상” 일축
일각에서는 이 같은 주장을 신비주의적인 망상이라고 일축한다. 실제로 하루야마 박사는 2년 전 분게이슘쥬샤가 발행하는 <슈칸분슘>으로부터 호된 공격을 받았다. <뇌 내 혁명> 내용은 의학적으로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가설에 지나지 않으며, 뇌 내 모르핀 따위 개념 또한 의학적으로 전혀 입증되지 않은 ‘싸구려 약장수의 주장’이나 다름없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이에 대해 하루야마 박사는 인식의 차이일 뿐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네 살 때부터 이미 할아버지에게 침구 · 지압술을 배웠고, 여덟 살 때 침술사 자격을 따냈다는 하루야마 박사는 훗날 ‘논리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서양 의학을 공부하면서도 ‘몇 몇 질병에 두드러지게 우세한 효능을 나타내는’ 동양 의학에 대한 관심을 접지 않았다.

결국 자신의 작업은 서양 의학과 동양 의학의 접점을 찾아 전일적인 건강법을 개발 · 보급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하는 그는, 누가 뭐라고 하든 실천을 통해 자기의 건강법이 옳았음을 증명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그 증거는 첫째  ‘술 마시고 즐길 것 다 즐기면서도’ 나이보다 스무 살은 점어 보이는 그의 외양이 될 터였다.

그가 87년부터 일본 가나카와 현 다이와 시에 설립해 운영하는 ‘전원 도시 후생병원’ 또한 중요한 증거이다. 단지 식이요법 · 운동 · 명상이 주된 처방일 뿐인데도 17개 진료 과목, 2백70여 병상을 갖추고 있는 이 병원에는 진찰을 희망하는 환자가 끊이지 않고 있다.

<뇌 내 혁명>을 발표한 뒤로 사람들이 뇌에 보인 관심은 ‘시골 의사로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다는 것이 하루야마 박사의 고백이다. 국내에서도 뇌 호흡 훈련 프로그램을 거쳐 간 이가 10만 명을 넘어섰다는 것이 한국인체과학연구원의 추산이다. 21세기는 정녕 ‘뇌의 세기’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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