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전염병’ 10대 매춘
  • 김은남,이철현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1999.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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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여학생 원조 교제 현장 취재 / 위험한 풍속, 사회 전체 책임

이름 한지원(가명. 나이 만 18세. 수학능력 시험을 막 치른 여고 3년생. 기자가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수능 시험이 있었던 11월 17일 서울 돈암동의 한 전화방에서였다. 10대 매매춘 실태를 취재하고자 전화방에 이틀째 잠복하고 있던 기자에게 지원이의 전화가 걸려온 것은 18일 오전 1시께. 지원이는 만나기를 매몰차게 거절한 남자 친구 때문에 속이 상해 이곳저곳 전화방마다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기자가 신분을 숨겼듯 지원이 또한 처음에는 나이를 속였다. 자기를 스물한 살 여대생이라고 소개한 지원이는 대뜸 “아저씨, 우리 폰 섹스 할래요?”라고 물어 왔다. 기자가 이것저것 캐묻자 지원이는 거리낌 없이 고1때부터 시작된 자신의 성(性) 편력을 자랑스럽게 늘어놓았다.

한 시간쯤 대화를 나눈 끝에 기자가 다짜고짜 물었다. “너, 고등학생이지? 목소리가 너무 어리다.” 처음에 아니라고 딱 잡아떼던 지원이는 전화 통화를 하는 동안 마음이 누그러졌는지 몇 번을 더 따져 묻자 순순히 시인했다. 그제서야 기자는 신분을 밝히고 취재 협조를 요청했다. 지원이는 ‘재미있겠다’며 키드득 웃었다. 날이 샌 후 직접 만나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핸드폰 번호를 주고받았다.

18일 오후 1시. 서울 영등포 ○○백화점 앞. 지원이는 약속대로 나와 있었다. 먼저 m가 진짜 고등학생인지 궁금했다. ‘영계’를 찾는 남자들의 기호에 맞추기 위해 고등학생을 사칭하는 전문 윤락여성도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원이는 겉보기에 학생임이 거의 확실했다. 무엇보다 화장이 유치했다.

어제 치렀다는 수능 시험에 대해서도 지원이는 막힘없이 대답했다. 언어 영역이 까다로워 고생했다는 그는 몇몇 문항을 구체적으로 거론하기도 했다. 대화하는 틈틈이 학교와 친구들 얘기도 자연스럽게 나왔다. 기자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앞으로 며칠 동안 지원이의 일상을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알고 싶다는 제안이었다. 지원이는 흔쾌하게 이를 받아들였다.

다음은 11월 18일~19일 지원이가 들려준 일상을 일기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이 기간에 지원이는 전화방에서 알게 된 낯선 남자들과 통화 또는 만남을 시도했는데, 그 중 일부는 기자가 지켜보는 데서 이루어졌다. ‘11월 18일. 오전 11시께야 이어났다. 전화방 남자들과 통화하느라 너무 늦게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오후 4시. 연락이 뜸했던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려고 했는데 바람을 맞았다. 대신 학교 친구를 불러냈다. 오후 7시. 친구와 함께 수다를 덜다가 학원에서 만난 오빠와 연락이 닿았다. 오빠가 우리에게 피자를 사 주었다.

저녁 11시쯤 그들과 헤어졌다. 집에 돌아온 뒤 평소 번호를 기억하고 있던 전화방으로 전화를 걸었다. 두 남자와 연락이 닿았다. 목소리가 꽤 나이가 든 듯한데 원조 교제를 하자고 한다. 수능 끝나고 여기저기 돈 쓸 데가 많았기에 좋다고 대답했다. 한 사람은 내일 오후 3~4시께 전화를 걸겠다고 했다. 다른 한 사람은 저녁 9시 ㅈ학원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11월 19일. 오후 3~4시께 전화를 걸겠다던 사람은 연락이 없다. 원래 그렇다. 원조 교제 하자는 아저씨 10명 가운데 7~8명은 꼭 이렇게 바람을 맞힌다. 대신 저녁 9시에 만나기로 했던 다른 아저씨가 전화를 걸어 왔다. 회사 회식이 빨리 끝나 8시 30분까지 올 수 있단다. 서둘러 약속 장소로 나갔다. ㅈ학원 앞에 있으려니 핸드폰이 울렸다. 아저씨가 길 건너편에서 손짓을 한다. 일단 가까운 호프집으로 갔다. 아저씨는 29세 회사원이라고 한다. 술을 한잔 걸치니 쑥스러움이나 긴장감이 없어졌다. 아저씨가 이끄는 대로 여관에 들어갔다.

여관에 들어가자마자 아저씨는 콘돔도 끼지 않고 세 차례에 걸쳐 관계를 가졌다. 그런데 정사가 끝났는데도 아저씨는 약속한 10만원을 주지 않았다. 지금 돈이 없으니 내일 한번 더 만나 주면 10만원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일단 있는 대로 달라고 떼를 썼다. 아저씨는 주머니를 탈탈 털어 2만9천원을 주었다. 할 수 없이 내일 다시 만나 10만원을 받기로 했다.

밤 11시 30분. 여관을 나서려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아까 3~4시께 전화하겠다던 아저씨였다. 지금이라도 만나고 싶다기에 30분 ㅈ학원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이번 아저씨도 20대 후반으로 보였다. 아저씨는 비디오방에 가자고 했다. 비디오방에서 영화를 보는데 아저씨가 갑자기 애무를 시작했다. 그 자리에서 그냥 관계를 가졌다.

그런데 관계가 끝난 뒤 아저씨가 이상한 말을 했다. 원래 나를 만나려던 사람은 자기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저씨를 따라 그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는 곳을 갔다. 꽤 규모가 큰 호텔이었다. 나를 데려다 준 아저씨는 어디론가 가 버렸다. 그가 일러준 대로 씻고 기다리는데 덩치 큰 남자가 들어왔다. 조직 폭력배 중간 보스쯤 되는지 ‘형님’하고 따르는 부하도 있었다. 부하를 내보낸 그 남자는 별 말 없이 옷을 벗었다.

그 남자는 상대하기에 너무 벅찼다. 몇 번을 시도해도 삽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남자는 부하를 불러 “얘는 나하고 맞지 않는다. 돌려보내라”고 말했다. 돈도 주지 않았다. 기가 막혔지만 분위기에 눌려 그냥 나왔다. 길거리에 나오니 속이 메스꺼워 약국에 들렀다. 약사는 체한 것 같다고 했다. 호프집에서 먹은 안주가 채 소화되기도 전에 무리를 해서 그런 모양이다.

집에 들어오니 온몸이 후들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재수 없는 하루였다. 몸은 피곤하고, 마음은 비참하다. 돈이 필요해서 그랬다지만 이것이 사람이 할 짓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나는 안다. 시간이 지나면 내 몸은 다시 섹스를 요구할 것이다‘

친구 소개하며 ‘새끼 포주’ 노릇 하는 여학생도
10대 매매춘이 무서운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사고 파는 쌍방의 행위를 강조하는 의미에서 ‘매춘’ 대신 ‘매매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최근의 일반적인 추세이다). 청소년사랑실천시민연합 상임대표 조명현씨 표현을 빌리자면 10대 매매춘은 ;법정 전염병‘으로 지정해야 할 만큼 심각한 수준에 와 있다.

왜 10대인가. 성이 문란하다는 구미 각국도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맺는 행위는 엄격하게 처벌하고 있다. 벨기에 · 스페인 · 이탈리아를 제외한 나라 대부분이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 성관계는 상대방이 동의했다 하더라도 범죄로 간주해 단호하게 대처한다. 그런데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이 나라에서는 왜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10대 매매춘이 속수무책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인가.

일각에서는 성 경험이 적은 여성을 지배하려는 남성의 정복 욕구나 권력욕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동양적인 성 풍습에서 원인을 찾는 시각도 있다. 어린 소녀와 잠자리를 하면 회춘(回春)한다는 속설이 동양 남성의 머리 속에 뿌리 깊게 박혀 있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10대 청소년 매매춘 방지를 위한 입법이 준비되고 있는 것이 대만 · 일본 · 한국의 공통점이기도 하다(28쪽 딸린 기사 참조).

그 중에서 한국의 특징은, 경제 위기가 닥친 이후 손쉽게 숙식을 해결하려는 가출 청소년과 헐값에 노동력을 확보하려는 유흥업소 고용주의 요구가 맞아떨어져 이른바 ‘영계 산업’이 급속도로 번성하고 있는 점이다. 대검찰청이 발표한 ‘청소년 불법고용 유해업소 단속 현황’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98년 9월~99년 8월) 대검에 적발된 유해 업소는 2천6백여 개소, 이들 업소에 고용된 청소년은 5천48명에 이른다. 이 중 직업적인 10대 윤락녀는 20.6%인 8백 4명. 충격적인 것은 이들 윤락녀 가운데 16세 미만 어린 소녀가 40%를 웃돈다는 사실이다(25쪽 표 참조)

윤락 여성이 모인 곳에 가면 연령 하향화 추세는 더욱 실감난다. 선도 보호 시설인 서울 은성원과 한국여성의집, 윤락 여성이 1년 동안 무료로 숙식하며 미용 기술이나 컴퓨터를 익힐 수 있다는 이곳을 처음 찾은 일반인은 잠시 말문이 막히게 된다. 솜털 보송ㅂ송한 10대가 그곳을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항공모함처럼 커다란 신발. 힙합 바지. 오렌지 · 핑크 빛을 물들인 머리. 길거리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10대 날라리’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이들에게서 기존 윤락 여성 이미지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은성원에 수용된 인원은 11월 중순 현재 모두 15명. 그 중 1명만이 20대일 뿐 나머지는 모두 10대이다. 그것도 열여덟 살이면 연장자 대접을 받는다.

지난 1~2년 사이 상황이 급변했다. 입소자 평균 나이가 열대여섯 살로 떨어지다 보니 이제는 스물 한 살짜리가 까마득한 어른으로 보인다.“ 한국여성의 집 권영순 관장의 말이다.

이른바 ‘원조 교제’ 확산은 10대 매매춘 문제를 걷잡을 수 없이 꼬이게 만들고 있다. 올해 초 수도권에 있는 한 실업계 고등학교가 발칵 뒤집힌 일이 있다. 복장이 불량한 한 3학년 여학생의 소지품을 검사한 것이 발단이었다.

가방에서 발견된 수첩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핸드폰 번호 수십 개가 일렬로 적혀 있었다. 그 옆에는 이 학교 여학생 20여 명의 이름과 연락처가 나란히 적혀 있었다. 이상한 낌새를 챈 교사는 여학생을 집중 추궁했다. 여학생의 입에서 나온 사실은 놀라운 것이었다. 고1 때부터 원조 교제를 해 왔다는 이 여학생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가 사귄 남자와 친구들을 연결해 준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테면 ‘새끼 포주’ 노릇을 한 셈이다.

더 경악할 만한 사건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학교 측은 수첩에 연락처가 적혀 있던 여학생 20여 명을 즉시 소집했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한두 학생이 거세게 항변했다. ‘우리만 그런 것도 아닌데, 혼자 당하기 억울하다’는 것이었다. 반신반의한 학교 측은 ‘그렇다면 너희가 알고 있는 3학년 원조교제자 이름을 다 써 내라’고 지시했다. 그 결과 밝혀진 명단이 1백20명. 이 학교 3학년 전체 학생이 7백여 명이니까 그 중 5분의 1이 원조 교제에 연루된 셈이었다.

눈앞에 벌어진 사건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던 학교 측은 1백20명을 전원 소집해 자술서를 쓰게 했다. 일부는 교제 사실을 극력 부인했다. ‘밥만 먹고 헤어졌다’거나 ‘남자가 씻는 사이 돈을 들고 여관에서 도망쳤다’는 학생도 있었다. 결국 학교 측은 원조 교제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난 30여 명을 전학시키는 선에서 문제를 덮어버렸다. ‘1백20명 가운데 70~80%는 원조 교제를 했으리라는 심증이 들었지만, 진실이 드러날 경우 그것이 몰고 올 파장이 더 두려웠다’는 것이 이 학교 교사의 말이다.

남성 중심적 시각 담긴 ‘원조 교제’ 용어
검찰 통계에서도 원조 교제는 분명한 사회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98년 12월~99년 1월 대검 강력부는 청소년 유해업소 2천5백여 곳을 집중 단속한 일이 있다. 이들 업소에서 일하다 적발된 10대 청소년은 1천3백여 명. 그 중 8% 가량은 원조 교제를 경험했거나 현재 교제 중이라고 응답했다. 여기에서도 중학생 뻘인 16세 미만이 32.4%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우리 사회는 흔히 원조 교제와 10대 매매춘을 동떨어진 문제로 인식한다. 기존 매매춘의 연장선상에서 10대 매매춘 문제를 바라보는 반면, 원조교제는 새로운 사회 풍속도쯤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원조 교제는 매춘의 한 갈래일 따름이라고 한국성폭력상담소 최영애 소장은 잘라 말한다. 원조(援助)라는 용어 자체가 철저하게 남성 중심적인 시각에서 나온 것이며, 남성의 매춘 행위를 미화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돈을 매개로 성을 사고파는 것.’ 원조 교제는 이 같은 매매춘의 정의에 정확하게 부합한다. 그런데도 원조 교제라는 용어는 성을 사는 성인과 성을 파는 청소년 모두에게 허위의식을 조장한다. 올 여름 방학 때 가출해 호프집 · 단란주점을 전전하다가 보호 시설에 수용된 김희선양(16 · 가명)은 ‘서로 즐겼으되 돈을 받았을 뿐’이라고 자신의 원조 교제 경험을 말했다. ‘몸을 팔았다’는 의식은 그 어디에도 없다. 비즈니스와 사랑을 엄격하게 구분하며 ‘애인 아닌 고객과의 관계에서는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하던’ 고전적인 매출 여성의 모습은 이들에게서 찾아보기 어렵다.

다시 지원이 얘기로 돌아가 보자. 지원이가 성에 눈 뜨고 원조 교제에 빠져든 과정은, 우리 사회 성 산업이 청소년을 어떻게 유린하는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지원이도 처음에는 ‘호기심 때문에’ 성관계를 맺었다고 했다. 상대를 구한 방식은, 신문에 광고가 실린 국제 전화방을 통하는 것이었다. 전화방에 메시지와 호출기 번호를 남긴 지원이는 두 남자를 만났다. 한 사람은 명문 대학에 다닌다고 밝힌 스물한 살 젊은 남성, 다른 한 사람은 ㄱ전문대 야간부에 다니고 있다는 서른두 살 회사원이었다.

대학생은 키스하는 방법을, 회사원은 폰 섹스 하는 방법을 지원이에게 자상하게 일러 주었다. 두 남자와 차례로 섹스를 즐기며 지원이는 성이 주는 쾌감에 눈을 떴다. 그때까지만 해도 지원이는 ‘나이 차를 따져 보니 결혼까지는 생각할 수 없을 것 같아’ 서른두 살 회사원과는 헤어질 정도로 순진한 구석이 남아 있었다.

원조 교제로 성 안 차면 향락업소 취업
그때가 고1 초반. 그로부터 1년 동안 지원이는 채팅과 전화방을 통해 닥치는 대로 남자를 만났다. 전화방에 전화를 걸지 않는 날은 한 달에 두세 번이 고작이었다. 그러다 보니 씀씀이가 커졌고 돈이 필요했다.

지원이가 원조 교제에 눈을 돌린 것은 1학년 후반. 신형 핸드폰이 갖고 싶었던 지원이는 자신이 갖고 있던 ‘스카이넷 700’모형을 과감하게 ‘스카이넷 1000’으로 바꾸었다. 그랬더니 한 달에 5만원 씩 할부금이 나왔다. 당시 지원이가 받던 한 달 용돈은 10만원 가량. 그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원조 교제이다.

첫 원조교제 상대자는 3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조직 폭력배였다. 손과 목덜미 부근에 문신이 보이기에 커피만 마시고 헤어지려 했는데 남자가 돈을 먼저 건네는 바람에 마음이 약해졌다.

두 번째 스물아홉 살 회사원과 원조 교제를 할 때 지원이는 섹스를 끝낸 뒤 욕실에 돈을 갖고 들어갈 정도로 노련해져 있었다. 남자가 가반을 뒤져 돈을 갖고 도망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원조 교제는 자유분방한 성관계를 즐기던 청소년이 향락업소에 취업하게 되는 중간 지점에 서 있다. ‘원조교제로 받는 10만~15만 원이 성에 안 차 단란주점에 아르바이트를 나가기 시작했다. 단란주점에서 2차를 나가면 25만~30만 원을 받는데, 이 돈은 주인과 나눠야 하는 1차와 달리 온전히 여자 몫이다.’ 고1때 가출한 뒤 곧바로 단란주점에 뛰어들었다는 김미진양(17 · 가명)의 말이다.

미진이는 한때 백화점 점원으로 근무한 일이 있다. 그러나 하루 12시간 일해도 3만원밖에 주지 않는 그 생활을 견디기 힘들었다. 단란주점에 맛들이면 다른 일에 눈 돌리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미진이의 말이다.

이른 나이에 경험한 매매춘은 이들의 몸과 마음을 황폐하게 만든다. 낙태는 다반사이다. 심지어 임신 중절 수술을 받은 직후 보호 시설에 수용된 열다섯 살 소녀가 주말에 외박을 나갔다가 또다시 임신한 사례도 있다고 은성원 최정은 총무는 전했다.

이들은 남자가 그립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꼬맹이(동년배를 지칭)는 노는 것이 통하니까 좋고, 아저씨는 돈을 주니까 좋다. 성적인 쾌감? 그것은 비슷비슷하다. 아저씨들이 좀 아프게 굴지만 참고 있으면 좋아진다.” 김희선양의 말이다.

더 비극적인 것은, 이들에게 현실과 미래가 유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10대 윤락 여성의 90%가 중졸 또는 고등학교 중퇴 학력을 가지고 있고(대검찰청 통계), 성병 · 낙태로 몸이 망가진 현실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장밋빛 미래를 꿈꾼다. “아이들에게 5년 · 10년 후 자기 모습을 그려 보라면 어김없이 자상하고 돈 많은 남편 만나 자식 키우며 사는 미래를 떠올린다. ‘이미 버린 몸’이라는 식으로 자포자기하던 과거 윤락 여성과 비교한다면 철이 없더라도 낙관적이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나 할까.” 한국여성의 집 권영순 관장의 말이다.

한창 자라나는 10대가 성에 관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성 개방 또한 시대적인 추세이다. 그런데도 10대의 성을 매매 대상으로 삼는 것은 우리 사회의 특수한 병리 현상이다. 현실이 이런데도 사회는 결과만을 따진다. 청소년의 성의식이 문란해서 10대 매매춘이 늘고 있는 양 화살을 청소년 개인에게 돌리는 것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지난 5~8월 성인 남성 3백여 명을 상대로 설문 조사와 심층 인터뷰를 한 결과 ‘요즘 청소년들이 돈을 벌려고 기꺼이 향락업소에서 일한다’고 생각하는 남성은 72.3%, ‘요즘 청소년들이 깊이 생각하지 않고 성관계까지 간다’고 생각하는 남성은 60.5%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남성들의 인식에도 불구하고 10대의 성을 사는 남성은 범죄자일 수밖에 없다고 변화순 박사(한국 여성개발원 수석연구원)는 잘라 말한다. 아무리 쌍방이 원한 일이었다고 강변하더라도 성관계에 경제적인 동기가 개입되었다면 그 밑바닥에는 매매춘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비자발성 · 강제성이 깔려 있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다시 말해 이는 사회적인 범죄 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권영순 관장은 또 이렇게 말한다. “기성세대는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사고한다. 이들의 눈에 10대는 ‘조신한 소녀’와 ‘끼 있는 계집’으로 나뉠 뿐이다. 그러나 평범했던 내 딸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 한순간이라는 현실을 직시한다면 더 이상 청소년에게 손가락질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결국 10대 매매춘의 최대 희생자는 ‘성적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만큼 성숙하지 못한 청소년일 수밖에 없다. 변화순 박사가 지적한 대로, 사회는 마땅히 이들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 이 같은 책임을 소홀히 한다면 한국 사회는 ‘10대를 강간하는 사회’라는 혐의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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