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봉건 투쟁 성지에 사당이라니 …
  • 나권일 기자 ()
  • 승인 1999.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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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재 동학농민혁명 유적지에는 구민사(救民祠)라는 사당이 있다. 91년 정읍시가 세운 구민사에서는 전봉준 · 손화중 · 김개남 장군과 동학농민군 참전 제위 위패를 모셔놓고 해마다 제를 지내고 있다. 전라북도는 동학농민혁명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면서 황토재 전적지의 전봉준 장군 동상을 옮긴 뒤 그 자리에 48평 규모 사당을 신축하고, 외삼문과 내삼문을 갖춘 전통 양식의 사우(祠宇)를 세우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동학 관련 단체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동학농민혁명 유족회 등 12개 단체와 역사학자 이이화씨, 소설가 송기숙씨 등 전국의 동학농민혁명 전공학자 17명이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반봉건 기치를 내걸고 생명을 바쳐 싸운 농민군을 사당에 봉안하고 유교 의례 절차에 따라 참배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전승지에 사당을 건립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으므로 현재 조성되어 있는 사당도 철거해야 마땅하다”라며 강력하게 반대했다.

반면 정읍시와 정읍시의회는 “사우는 동학농민혁명의 기본적인 이념이나 정신에 어긋나지 않는다”라며 사당 건립을 찬성하고 나섰다. 전라북도 역시 이미 설계를 마친데다 국비 지원이 줄어들 것을 염려해 사당 건립에 찬성하는 편에 섰다.

찬반양론으로 갈리던 사당 건립 논란은 문화재관리국이 현재 사적지로 지정되어 있는 황토재 유적지를 훼손하거나 변경할 수 없다고 밝혀 일단락되었다. 전라북도는 결국 현재의 사적지는 정적인 추모 공간으로 놓아두고 새로 조성되는 기념과 부지는 동적인 기념 · 교육 공간으로 만든다는 계획으로 선회했다. 그러면서도 전라북도는 ‘사당 건립 문제는 보류 상태’라며 동학농민혁명기념관 설계에 여전히 사당 건립을 포함해 놓은 채 미련을 거두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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