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박정희식 개발' 깃발 들어올리나
  • 남문희 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1999.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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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중반부터 모델 연구‥ 베를린 회담 타결로 가능성 되살아나

  94년 11월3일자 <시사저널> 제262호 커버 스토리는 '북한, 박정희식 경제 돌진'이었다. 북한이 앞으로 택할 경제 방향이 60~80년대 한국의 박정희식 개발과 유사한 방향이 될 것이라고 진단한 이 기사는 당시 상황에서는 억측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 해 7월 김일성 주석이 사망해 북한은 정권수립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었고, 국내에서는 북한 체제 붕괴론이 주류를 이루었다. 붕괴론까지는 아니어도 남북한 체제 경쟁에서 최후의 승자는 남한이라는 데에 이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시사저널> 기사가 내린 결론은 사뭇 다랐다. 북한과의 체제 경쟁은 끝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작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 이유는, 박정희 개발 전략이 북한에 적용될 경우 경제 회생은 물론이고 남한과 같은 압축 성장도 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22쪽 상자 기사 참조)

  94년 10월 미국과 북한의 제네바 회담이 타결되어 미ㆍ북한 관계가 순조롭게 진행될 것을 전제로 이루어졌던 '박정희식 북한 개발' 논의는 그러나 96년 이후 약 3년간 잠복기를 거쳤다. 지난 9월12일 미ㆍ북한 베를린 회담 타결은 그동안 수면 아래 잠복했던 북한의 박정희식 개발 가능성을 일거에 백주대로로 끌어내는 계기가 되었다.

  그 가능성의 중심에 선 인물은 북한 개발의 열쇠를 쥐고 있는 김정일 총비서 바로 그였다. 그는 지난 10월1일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을 비롯한 방북단과 점심 식사를 하다가 박정희 얘기를 불쑥 꺼냈다. 영화를 통해서 보니까 서울이 일본의 도쿄보다 더 낫고 세계적인 도시인 것 같다며, "남쪽이 이만큼 발전한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새마울운동 덕분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김정일 "남한 발전은 새마을운동 덕분인 듯"
  김총비서의 이같은 발언은 10ㆍ26 사태 20주기를 맞아 국내에서 고조되던 박정희 추모 열기와 맞아떨어진 점도 있다. 특히 북한 정책 주무부서인 통일부는 김정일의 발언 배경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다. 10월 하순께 통일부는 북한 경제 전문가를 초청해 김정일 발언의 배경과 북한의 박정희식 개발 가능성에 대해 간담회를 했고, 임동원 통일부장관 역시 북한 전문가와 비공식 회동에서 김정일 발언에 대해 매우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물론 김정일의 발언 내용을 북한의 박정희식 개발 전략 추진이라고 확대 해석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이 발언을 계기로 북한이 박정희 식의 경제 발전에 높은 관심을 가져 왔다는 사실이 새롭게 부각되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북한의 향후 발전 계획 역시 그 테두리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지적이 다시 조심스럽게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 내부에서는 그동안 박정희식 개발 전략에 대해 어떻게 평가해 왔을까. 그리고 최근까지 북한이 걸어온 행보와는 어떤 유사성이 있을까. 94년 한국으로 망명하기 전까지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경제학부 교수를 지낸 조명철 박사(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는 이와 관련해 매우 선명한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다. 조씨에 따르면, 북한은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남한 경제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박정희식 수출 주도형 발전 전략으로 인해 산업간 불균형이 심해지고 외채 비중이 높아져, 결국 외세 의존형 경제 구조가 정착되었다는 것이 당시 북한 경제학자들의 인식이었다. 여기까지는 당시 국내의 논의와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80년대 중반 이후 북한 경제학계는 박정희식 개발 전략을 새롭게 해석하기 시작했다. 조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경제학자들이 내놓고 말은 못했지만 전혀 다른 얘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라고 기억한다. 그 내용은 '외국 투자를 유치했다고 해서 외국에 예속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얼마든지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갈 수도 있다'는 것으로 압축된다. 지난해 김대중 대통령의 발언을 연상시키는 이같은 대담한 재평가가 나오게 된 것은, 박대통령 사후에도 한국 경제가 무너지지 않고 고도 성장을 유지했던 것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남한 경제의 실상이 점차 알려지고 남북간 경제력 격차가 더욱 벌어지자 박정희식 개발 전략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북한 경제학자들은 당시 똑같은 잣대를 가지고 북한 경제가 실패한 원인도 분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의 분석은 크게 네 가지 줄기로 이루어졌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남한처럼 수출산업을 육성하지 못한 것이 제일 큰 실패 원인이라고 본 것이다. 예를 들어 70~75년 북한은 국내총생산(GDP)의 60%를 중공업이 차지할 정도로 매우 높은 공업화 수준을 자랑했다. 바로 그 시점에 경공업을 육성해 소비재 산업을 발전시키고 이를 수출 산업으로 전환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 남한 경제에서 '자유 기업'들이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데 비해 북한은 모든 것을 국가가 틀어쥐고 있어 문제라는 지적이 있다. 마찬가지로 경제를 국가가 전부 관리해 비효율적이었고, 과학 기술 육성에 소홀했던 점을 반성했다.

90년 초부터 3단계 수정 과정 거쳐
  북한이 84년 합영법을 제정해 외자 유치에 적극 나서고 8ㆍ3 인민 소비재 생산 운동을 통해 경공업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은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내용이다. 그런데 조씨에 따르면, 당시 북한의 이같은 시도는 바로 남한의 박정희식 전략에 대한 충격에서 말미암은 것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조금이라도 외자 유치에 성공한 사람이나 기업은 무조건 훈장을 줄 정도로 남한의 성공 경험이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라고 조씨는 말했다.

  80년대 중반 이후 남한 경제에 대한 연구 역시 불이 붙었다. 일본 조총련계 연구자들은 남한 서적과 논문을 북한에 전달하는 창구 노릇을 했다. 예를 들어 3공화국 시절 청와대 경제비서관으로 활동했던 ㅇ씨의 저서들은 나오는 즉시 조총련을 통해 북한에 전달되었다. 또한 90년 초 가네마루신 전 자민당 부총재 방북으로 북ㆍ일 수교 회담이 본격화했을 때는 60년대에 남한이 일본의 배상금을 어떤 식으로 활용했는지를 다룬 논문들이 주로 수집되기도 했다.

  북한 경제 일꾼들의 남한 경제 서적 읽기는 최근까지도 활발하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국내의 한 북한 연구자는 자신과 친분이 있는 북한내 경제 일꾼의 사례를 들려 주었다. 그는 유렵의 아주 유명한 대학에서 국제 금융 제도를 연구해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귀국해 북한 대외 개방 정책의 일익을 담당하는 엘리트 경제 관료이다. 그런데 그가 읽는 서적의 80%는 남한 서적이라고 한다. 그리고 나머지 20%는 일본 서적이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남조선의 경험이 우리 실정에 더욱 부합하기 때문'이라고 했다고 한다.

  80년대가 박정희식 개발에 대한 북한 나름의 모색기였다고 한다면, 90년대는 일련의 시행 착오와 함께 북한 현실에 맞도록 계속 수정해온 기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90년 초부터 최근까지 북한 내부에서 이루어진 움직임들은 어렵풋하게나마 세 단계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여기서 '북한 내부'라는 표현을 쓴 것은, 그동안 대외에 발표된 내용을 제외한 내부의 비공개 움직임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다).

  그 첫 번째 단계는, 90년대 초 나진ㆍ선봉 자유경제지대를 내부적으로 추진했던 시기다. 박정희 시대의 수출자유지역을 연상케 하는 나진ㆍ선봉 개발은 김정일의 특별 지시로 착수되었다. 89년 말~90년대 초 김정일은 자신이 직할하고 있던 경제 브레인 팀에 특별 지시를 내렸다. '전세계 40여 군데의 경제특구를 조사해 대안을 제시하라.' 당시 경제 브레인팀의 핵심 인물은 김일성 종합대학 김수용 교수였다. 이밖에도 대외경제위원회 임태덕 부위원장과 인민경제대학 교수 등 경제ㆍ무역 전문가 5명이 극비리에 합류했다. 김정일의 특별 지시를 받은 이들이 해외 사례 연구를 통해 추진한 것이 바로 나진ㆍ선봉 경제특구이다.

  당시 이들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북한 전역의 내수형 기업을 수출 주도형으로 전환하는 계획을 병행 추진했던 것이다. 이 계획은 앞으로 경제 개발을 담당할 인재를 북한이 어떤 과정을 통해 양성해 왔는가를 밝히는 데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즉 이 브레인 팀은 그때부터 나진ㆍ선봉뿐 아니라 북한 전역의 수출 주도형 기업에 배치될 경제 및 무역 일꾼을 양성하려고 치밀한 계획을 수립했던 것이다. 김일성종합대학에 '자본주의 경제학과'가 개설되고, 경제 일꾼들의 해외 유학이 시작되었다. 이들은 중국의 개혁 개방 과정을 주도한 해외 유학파 경제 일꾼의 선례를 따라 '붉은 자본가(Red Capitalist)'라고 불렸다. 89년 김정일 비서가 '붉은 자본가 천명만 있으면 두려울 것이 없다'고 발언했다고 하는데, 이 발언이 일종의 가이드 라인이 되었다고 한다. 89년부터 한 해 1백50명을 목표로 이들이 배출되기 시작했으니 10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 보면 천명 확보 목표는 달성되었으리라는 지적이다.

권력 내부에서 '2010 계획' 은밀히 추진
  두 번째 단계는, 북한 내부에서 나진ㆍ선봉 계획을 실패라고 규정하고 개방 구역 확대를 검토하기 시자한 96년 말부터~94년 초 국내의 북한 소식통들은 북한의 권력 심층부에서 '2010 계획'이라는 것이 추진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당시 국내 소식통들은 2010년까지 경제 개발 청사진과 이를 둘러싼 국내의 정치 일정까지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 계획을 입수하려고 애썼으나 전모를 밝혀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 계획이 최근까지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여려 정황을 통해 감지되고 있다. 한 북한 소식통은 "지난해 김정일이 국방위원장으로 등장한 것이나, 미사일 발사ㆍ금창리 사건 등 북한의 행보를 보면 2010 계획이 최근까지도 끊임없이 작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라고 말했다.

  당시 이 계획의 전모를 입수하지는 못했지만 주요한 골자는 상당 부분 파악되었다. 2010 계획은 특히 지역 개발과 관련한 부분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96년부터 나진ㆍ선봉 지대의 대안으로 등장한 원산ㆍ남포 보세가공구 개발 방안과, 최근에 새롭게 조명되는 신의주 개발 방안이 이 계획의 주요 내용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96년 북한 정무원은 남포ㆍ원산을 보세가공 구역으로 하는 새로운 개방 확대 방안을 마련한 적이 있다. 그러나 미국ㆍ일본과의 관계가 기대했던만큼 진전하지 못함에 따라 이 계획은 몇몇 서방 기업이 투자 조사차 방문하는 수준에 그치고 말았다. 97년 하반기부터 98년까지는 대미 관계가 악화함에 따라 공백기로 남게 되었다.

신의주, 북한내 '마산 수출자유공단' 될 듯
  세 번째 단계는, 지난해 9월 김정일 총비서가 국방위원장에 취임하고 강성 대국론이 새로운 슬로건으로 등장한 이후부터 시작해 최근까지이다. 강성 대국론에 대해서는 정치 군사 분야, 사상 분야 등 다양하게 조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 측면에서는 외자 유치용 협상 전략이라는 시각도 있다. 통일연구원 허문영 정세분석실장은 "과거 김일성 주석은 외유를 통해 외자를 유치했다. 그러나 김정일 총비서는 벼랑 끝 협상을 통해 외자를 끌어당기겠다는 것이다"라고 지적한다. 허실장이 지적한 대로라면 지난해 금창리 사건ㆍ미사일 발사와 올해의 서해 교전은 유리한 조건에서 외자를 유치하기 위한 고도의 트릭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대외에 '강성 대국의 면모'를 과시하고 내부적으로는 '2010 계획'의 수정안을 계속 만들어 왔다는 지적도 있다. 앞서의 북한 소식통은 지난 10월1일 김정일 총비서가 정주영 회장과 면담할 때 서해공단의 입지로 신의주를 새롭게 추천한 사실을 그 근거로 들기도 했다. 그동안 원산ㆍ남포를 보세가공구로 검토해온 북한이 새롭게 신의주를 거론한 것은, 원산ㆍ남포가 군사적으로 민감한 곳이어서 부담을 떨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군사적으로 부담이 덜하고 전통적으로 경공업과 기계공업이 발달했으며, 중국의 단둥과 연계 개발이 가능한 신의주를 중심으로 새로운 지역 개발 전략이 구상되고 있으리라는 분석이다. 이 소식통은 "북한은 현대가 추진하고 있는 서해공단 및 중국과의 연계 개발 등을 통해 신의주를 새로운 수출가공형 공업 지대로 발전시킬 계획인 것 같다"라고 지적했다. 이 경우 북한이 생각하는 신의주의 미래는 70년대 남한의 마산 수출자유공단과 유사한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 남한에서 꽃을 피운 박정희식 모델이 북한에서도 실험될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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