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이냐, 독이냐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1999.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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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그라를 보는 두 개의 눈

비아그라는 21세기 성(性) 문화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까. 비아그라 때문에 부부 관계가 파경에 이르렀다는 외국의 사례가 심심치 않게 보도되면서 국내에서도 이를 둘러싼 사회문화적 논쟁이 불붙고 있다.

  먼저 포문을 연 것은 지난 10월17일 결성된 '비아그라 오ㆍ남용 방지와 여성 보호를 위한 시민 모임"(反비아그라 시민동맹). 이 모임 대표를 맡고 있는 홍정식씨(50)가 비아그라 문제의 심각성을 느낀 것은 지난 추석 때였다. 비아그라 일곱 알을 포장한 '럭키 세븐' 세트가 고급 양주마저 제치고 최고 인기 선물로 떠오른 것을 보며 홍씨는 충격을 받았다(당시는 비아그라 판매가 허용되기 전이었다).

  뜻 맞는 동료ㆍ여성단체 회원 20여 명과 모임을 결성한 지금 홍씨는 지하철 객차 안에서도 서슴없이 비아그라의 부작용을 역설한다. 성 문화를 타락시키고 혼외 정사를 부추겨 가정 파탄을 부를 위험이 있는 비아그라에 대해 '나가그라' 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역설하면 지하철 승객들은 '와' 웃으며 박수를 친다.

  홍씨와는 정반대로 '비아그라 전도사'를 자처하고 나선 의사도 있다. 미국 보스턴 대학에서 비아그라를 연구하는 김창규 박사(45ㆍ연이산부인과 원장)가 그 사람이다. 비뇨기과도 아닌 산부인과 의사가 비아그라 예찬론을 펴는 것은 분명 이색적이지만, 이에 대한 김박사의 해명은 간결하다 "나는 산부인과 의사이면서 동시에 남자이다. 따라서 나는 여성의 성적 특성을 이해하며, 이 약이 남성뿐 아니라 여성의 성생활에도 혁명을 일으킬 것임을 확신한다."

  발기 부전 환자들은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기보다 아내에게 냉담하게 굴기 일쑤이다. 당연히 부부 관계가 나빠지고 아내들은 외도에 눈을 돌린다. 그러나 부부간 화목을 위해서나 장수를 위해서나 성생활은 필수라고 김박사는 강조한다. 남성은 정자를 정기적으로 배출하는 것이 건강의 지름길이며, 여성은 정자를 자궁에 받아들임으로써 각종 병균에 대한 면역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비아그라는 끊어졌던 부부 관계를 이어주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수컷 거위에게 좋은 것은 암컷 거위에게도 좋다'는 미국 속담대로, 비아그라는 여성의 성기능 장애에도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이 김박사의 예찬이다. 보스턴 의대 제니퍼 버만 교수와 공동으로 행한 임상 실험에서 비아그라는 성관계 때 고통을 느끼는 폐경기 여성이나 자궁 적출ㆍ나팔관 수술을 받은 여성의 음핵 내 혈관을 확장시킴으로써 강력한 효과를 발휘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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