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 사냥’ 비결은 공격적인 해외투자
  • 타이베이 · 조용준 기자 ()
  • 승인 2006.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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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천국 대만, 과감한 국제화로 활로 찾아


 

타이베이시 敦化南路에 자리잡은 東豊印染股彬有限公司의 천준마오(陳俊茂) 사장 집무실은 허름하기 짝이 없다. 일반 회사원들이 죽 앉아 있는 사무실 한켠에 베니어로 막아서 구분만 해놓은 곳이 바라 사장실이다. 한평을 조금 넘을 만한 크기다. 비서도 따로 없다. 연간 20억달러가 넘는 매출액을 올리는 東豊어패럴의 규모를 감안한다면 중국인 특유의 검소성을 떠올려도 납득하기 어렵다. 일반 업무와 천사장의 일정을 함께 담당하는 여사원은 대만에서 가장 흔한 우롱차를 종이컵에 담아 가져왔다(그것도 청바지 차림으로).

“사장 집무실로는 조금 작지 않습니까???

“크기가 무슨 소용입니까. 불편하지만 않으면 그만이지.??

“대만의 직물산업은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처럼 노동력이 풍부한 나라 때문에 이미 오래 전에 경쟁력을 잃지 않았습니까???

“물론 그렇습니다. 해마다 올라가는 임금과 노동력 격감, 뉴 타이완 달러(NT.$)의 절상 등으로 점점 경쟁하기 힘든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두가지 경영혁신으로 그 위기를 타개했습니다.??

천사장은 東豊어패럴의 경쟁력이 떨어지자 아예 경쟁국인 인도네시아에 3개, 말레이시아에 2개, 중국 본토에 1개의 해외 공장을 만들었다. 또 컴퓨터를 도입하고 설비를 자동화 시스템으로 바꿔 고임금 노동력을 줄였다.

천씨의 해외 공장 설립에서도 중국인 특유의 분산투자 방식을 엿볼 수 있다. 중국인은 자본을 어느 한곳에 몰아넣지 않는다. 자본이 집중되는 만큼 위험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해외 공장을 설립할 때 주저하거나 힘든 점은 없었습니까???

“대만의 중소기업은 그냥 앉아서 기다리지 않습니다. 우리를 포함해 대만의 중소기업들은 매우 공격적이고 능동적입니다(그는 ??very aggressive??라는 표현을 두 번씩 강조했다). 어떤 방법이든 기다리지 않고 그냥 나가는 거지요. 물론 대만 중소기업들은 예전부터 국제화되었기 때문에 해외 진출에 대한 두려움이 상대적으로 덜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대만 정부가 중소기업 활동에 도움을 주는 것은 어떤 점입니까???

“도움이라구요???

천씨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전혀 없다??고 고개를 흔든다. 그의 얼굴에는 ??정부의 도움이라니 가당찮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이야기가 한국의 중소기업 문제에 이어졌다. 그는 ??한국의 중소기업들이 왜 도산하는 것 같느냐??고 도리어 묻는다. 그의 얼굴은 이미 그 원인을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이다.

대만의 92년말 1인당 국민총생산은 1만1백96달러, 무역수지는 91년보다 23억달러가 줄었지만 1백10억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실업률은 1.5%로 완전고용에 가깝다. 저축률은 27.9%이고 외환보유고는 92년 11월 현재 8백39억달러로 세계 최고이다(이상은 대만 행정원 主計處의 예측).

중소기업이 전체으 97.2%

대만과 한국은 무엇이 다른가. 1인당 국민총생산이 6천7백달러 선에서 머물고 있으며, 하루에 평균 30개씩 중소기업체가 도산하는(작년 한 해에만 1만7백69개) 한국과 대만은 어떤 점에서 차이가 나는가. 과연 무엇이 대만의 중소기업을 살찌우고 있는가.

널리 알려진 것처럼 대만은 중소기업의 천국이다. 가장 최근 통계인 ‘대만 경제연구원??의 자료(92년 9월)를 보았다. 90년 현재 대만의 중소기업 수는 79만4천8백34개로 전체 기업의 97.2%에 달한다. 극소수 몇몇 기업만 빼놓으면 대만 기업은 거의가 중소기업이라는 얘기다. 이 중 제조업에 종사하는 중소기업은 모두 7만2천2백49개밖에 안되지만 전체 제조업체의 93.9%에 해당된다.

고용인원 수는 2백71만5천7백99명으로 전체의 62.9%이다. 89년에 비해 5.6%가 줄어들었다. 날이 갈수록 올라가는 임금을 줄이기 위해 공장의 설비 자동화를 서둘렀기 때문이다. 90년 한 해 수출한 양을 보면  총 3백85억2천2백만달러어치. 89년에 비해 5.5%가 줄었지만 전체 수출액에서 57.3%를 차지한다.

대만 경제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위치는 이처럼 절대적인 것이지만 천사장 말처럼 중소기업에 대한 대만 정부의 특별한 지원과 정책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대만에는 중소기업 은행이 8개나 되지만, 이것도 대만기업의 90% 이상이 중소기업이기 때문이지 특별히 중소기업을 우대하기 때문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중소기업이 금융기관에서 대출받을 때 80% 이상이 ‘꺾기??를 강요당하고 신용대출은 1.1%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대출받기 어려운 것은 대만도 마찬가지다.

대만주재 대한무역관 金弘志 관장은 “언젠가 재정부 관리가 ??우리가 한국을 보고 배울 지경인데 왜 자꾸 당신 나라 관리들이 와서 중소기업진흥책을 말해달라고 하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정책이나 제도는 우리가 대만보다 앞서는 부분이 많다. 우리나라의 중소기업은 온실 속의 화초 같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최근 펴낸 《중소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91년말 현재 6만7천6백50개의 중소제조업체 중 하청생산을 하고 있는 업체가 무려 73.6%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업체 중 하청생산에 대한 의존도가 80% 이상인 기업이 88.4%에 달하고 있다. 단적으로 말해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대한 종속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법정최대 결제기일인 60일이 넘는 어음 결제로 인한 폐해는 말할 것도 없고, 혼잣힘으로 시장을 개척하려는 ‘문??을 스스로 닫아 건폐쇄구조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관장은 다음과 같은 말도 들려준다. “87년에 대만의 증권지수는 1천대였다. 그것이 90년 2월에는 1만2천대까지 올랐다. 그러다가 5월에 들어서자 3천대로 떨어졌다. 이 과정에서 증권투자에 손댄 중소기업 중 상당수가 도산했다. 그런데도 소문이 잘 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투자자들이 온통 난리를 쳤지만, 여기서는 증권회사를 찾아가 기물을 부수며 항의하거나 정부에 압력 넣는 시위도 벌어진 적이 없다. 왜? 내가 한 거니까 내가 책임을 진다는 거다. 이곳 기업인들은 처음부터 아예 정부 지원을 기대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자발적으로 처리한다.??

한국과 대만 기업인들의 기업형태와 체질을 직접 대비할 수는 없다. 기업 이전에 오래 전부터 양 민족을 지배해온 민족성에서 비롯되는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또한 두 나라가 근대화 과정에서 추구해온 경제정책의 기조, 그로인한 산업구조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다.

8년 동안 홍콩과 중국 본토에서 근무한 후 대만에 들어온 삼성물산의 鄭錫崑 지사장은 “대만과 한국의 중소기업을 비교하기 위해서는 미리 문화와 관습을 바닥에 깔고 이야기해야 한다??면서, 한국과 대만은 ??말끔함과 끈적끈적함의 차이??라고 표현한다.

같은 유교문화권, 다른 장사 관습

대우의 全炳雨 지사장은 “우리나라 유교 문화는 ??돈을 멀리하라??고 가르쳤다. 그런데 여기의 유교는 ??돈은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이라고 가르쳤다. 이들은 만원 버스 안에서 1원짜리를 흘렸을 경우 끝까지 찾아내지 그냥 가는 일이 없다. 똑같은 유교문화권인데도 왜 그렇게 차이가 나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대만 한국무역관의 郭福禪 과장은 한가지 해답을 제시한다. “중국 유학의 가장 중요한 이념이 ??常과 變??이다. 이들은 유학을 시대상황에 맞춰 항상 새롭게 발전?변화시켜왔다. 반면 우리나라는 명나라 시대의 주자학을 아직도 곧이곧대로 숭상하고 있다. 똑같은 유교문화권이면서도 장사하는 방식에서 그토록 차이가 나는 것은 이러한 측면도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중국인의 장사 기질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대만 정부는 85년에 발표한 간접교역 3개 원칙에 따라 중국 본토와의 직접교역은 금지하고 있으나, 이는 형식적인 제재일 뿐 사실상 직접교역과 투자를 묵인하고 있다. 중국을 방문하는 것조차 엄격히 금하고 있을 때에도 대만인들의 중국 투자가 이뤄지고 있었던 만큼 금지해야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대만 경제부의 한 관리는 “장려하지도 금하지도 않는다??는 원칙을 말해주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의 허가 없이 북한이나 동유럽권, 러시아에 투자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대만 정부의 ‘3不通??원칙(不通商?不通航?不通郵)은 90년 5월 리덩후이(李登輝) 총통이 취임하면서 한때 폐지 여부를 검토하기도 했지만 최근 들어 다시 강화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올 2월에도 대만 정부는 이에 대한 법령을 재정비하면서 간접투자 및 간접교역 원칙을 명시했다. 현재 중국 본토에 대한 대만인들의 투자액은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대륙쪽에서는 8천억달러 정도로 추정하고 있고, 대만쪽에서는 2천6백억달러로 어림잡고 있다. 대만의 경제학자들은 6천억달러 정도라고 예상하면서도 ??아마 대륙쪽의 추정액이 정확할 것??이라고 말한다.

대만 중소기업처의 천밍장(陳明璋)씨는 “환율절상과 임금상승 때문에 기업들이 애를 먹었지만 도산한 기업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도 해외투자를 통해 새 활로를 찾는 경향이 뚜렷하다. 얼마나 나가는지 정확히 집계할 수 없지만 대단한 붐이다??라고 말한다.

본투 투자에도 열중

대만 중소기업들의 중국에 대한 투자는 주로 福建省의 샤먼(廈門) 경제특구나 廣東省 선전(深?) 경제특구에 몰리고 있다. 대만의 통계로는 92년말 현재 샤먼에 약 3백여개, 선전에 약 4백여개 업체가 진출했다고 하나 실제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샤먼에 대한 투자는 90년 5월 대만의 최대 기업인 타이완플라스틱의 왕우이친(王水慶) 회장이 이곳에 총투자규모 70억달러짜리 종합석유화학공단을 건설한다고 발표할 정도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타이완플라스틱의 계획은 2년여가 지난 아직도 실행되지 못하고 있다. 대만 정부가 중국 본토 투자액수와 똑같은 금액을 국내에 투자하도록 강요하고 있고, 중국 정부 역시 샤먼 석유화학공단에서 생산하는 제품 전부를 내수에 사용하라는 왕회장의 요구를 거절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 본토에 대한 자본투자는 역시 중소기업이 선도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타이완플라스틱 같은 대기업이나 많은 중소기업이 본토 투자에 열중하고 있는 것은 어떤 이념 때문이 결코 아니다. 경제적 융화를 통해 ‘하나의 중국??을 이루겠다는 거창한 이념은 이들에게 없다. 최근 몇년간 고도성장을 이룩한 대만 기업인들 사이에서는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한다는 위기감이 널리 퍼졌고, 단지 돈벌이가 되니까 투자한 것 뿐이다.

중국 샤먼이나 선전 특구는 같은 중국권이므로 대만 중소기업이 진출하기에 쉬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대만의 중소기업들은 동남아와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 기업은 거의 꿈도 꾸지 못하는 도미니카·자메이카 등 카리브해 연안국과 저멀리 남아프리카공화국에까지 투자 손길을 뻗치고 있다. 남아공에는 섬유·전기·가전 같은 제조업 중심으로 92년말 현재 약 3백여 업체가 진출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이곳에 진출한 미국 중소기업의 배가 넘는 숫자이다. 대만 기업들은 교역의 중심지인 남아공 요하네스버그를 전초기지로 삼아 아프리카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만이나 싱가포르에서 70세가 넘는 할아버지들이 새로운 장사거리를 찾아 외국으로 떠나는 일은 아주 흔하다. 싱가포르 대우지사 金昌來 지사장의 다음과 같은 경험담은 대만에도 예외없이 적용된다. “몇년전 우리와 공동으로 법인을 만들었던 중국인 할아버지가 있다. 그뒤 우리가 따로 독립법인을 만들었을 때 그의 나이는 75세였다. 나는 우리와의 일도 끝나고 해서 편안히 여생을 보내려 하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그 다음날 여장을 꾸려 남아프리카로 떠났다. 그쪽에 새로운 투자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국제시장에 대한 정보를 정부나 대기업을 통하지 않고 이미 국제화한 감각을 통해 그들 스스로 얻는다. 국내에 주저앉아 무엇을 할까 망설이는 시간에 재빨리 해외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밑바닥에는 東豊어패럴 천사장의 말처럼 ‘공격적인??기질이 깔려 있다.

4년 동안 대만에서 살고 있는 (주)금성사 全昌秀 지사장은 그들 중소기업의 특징을 다음처럼 정리한다. 첫째, 기업을 운영하는 데 간접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우리나라처럼 공장 하나 설립하는 데 도장이 수백개씩 필요하지도 않고, 그 과정마다 해당 관리에게 ‘급행료??를 줄 필요도 없다. 무슨 성금, 무슨 기금 따위 준조세도 없다. 이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대외경쟁력 면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문제이다. 둘째, 사업에 대한 결정이 대단히 빠르다. 가족경영이 대부분이고 보니 저녁 식사 자리가 곧 고위 경영진 회의가 된다. 그러니까 몸체도 가볍고 업종 변환도 재빠르다. 셋째, 정부가 중소기업들로 하여금 상당히 쉽게 활동할 수 있도록 풀어주고 있다. 보조도 없지만 쓸데없는 간섭도 없다. 중소기업들이 자율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넷째, 전세계에 퍼져 있는 화교의 정보망과 인력을 최대한 이용한다. 투자하려고 계획한 나라에 굳이 지사를 설립할 필요도 없이 화교에게 약간의 수수료만 주고 간단하게 상품 판매망을 구축한다. 다섯째, 기업의 체질 자체가 국제화되어 있어서 모험심과 도전의욕이 강하다.

그러나 중소기업 위주의 대만 경제구조가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소규모의 중소기업 체제로 움직이다 보니 사업에 깊이가 없다. 경제발전에 커다란 저해 요인으로 등장하고 있는 사회간접자본 부족도 오직 돈벌이에만 치중하는 중소기업 체질에서 기인한다. 대만 정부는 현재처럼 중국에 대한 투자가 가속화하다가는 산업 공동화 현상이 올까 봐 염려하고 있다. 대규모 사업을 할 만한 대기업이 거의 없는 실정이고,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의 통제력도 약하기 때문이다. 신임 리엔잔(連戰) 행정원장은 취임후 “대기업 활성화 정책을 펴겠다??고 첫 경제방침을 밝혔다. 신임 행정원장의 대기업 활성화 원칙은 바로 이러한 대만의 현실에서 나왔다.

판이한 두 나라 중소기업정책

지난달 21일 대만 경제부는 ‘중소기업개발공사??를 설립하겠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새로 생긴 상공자원부 안에 ??중소기업정책실??을 설립하는 정부 직제개편안이 지난 4일 국무회의에서 통과되었다. 중소기업을 합리적으로 관리해 경제발전에 보탬이 되게 하겠다는 취지는 두 나라 모두 같다. 그러나 대만은 이미 잘 가고 있는 중소기업을 이제부터라도 관리하겠다는 의미가 강하고, 우리나라는 거의 다 쓰러져 가는 중소기업을 살려보자는 의미이다. 비슷한 시기에 중소기업 전담 부서를 만드는 두 나라의 경제정책 중 어느 나라가 성공할지는 1년후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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