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우 칼날’에 민자 ‘오싹’
  • 김재일 정치부 차장 ()
  • 승인 2006.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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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친정체제로 ‘과격한’ 당 감축 가능…민정계, 개혁에 반발할 수도

민자당에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당직자들이 ‘최형우 칼날??에 다칠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들이다. 당감축 ??사명??을 띠고 투입된 신임 최사무총장이 당 사무처를 축소하고 운영비를 줄이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감축 대상인 국장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통고했다. 당무회의에서 기구가 확정되는 대로 보직 명령을 내고 보직에서 제외된 사람은 대기 발령을 낼 것으로 보인다. 최총장은 ??당에 남는 게 꼭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당은 자기 희생을 필요로 한다??고 말해 당에 남더라도 대우가 예전과는 다를 것임을 시사했다.

한 당직자가 전하는 민자당 감축 방향은 이렇다. 중앙당 국장급 69명 중 49명, 시·도 사무차장을 포함한 부국장급 1백명 중 70여명, 부장급 70여명 중 20명 정도를 다른 곳으로 방출한다. 그 중 국장·부국장급 10명 정도가 청와대로 자리를 옮긴다. 국운영비 월2백만원과 사무처 요원의 봉급외 활동비는 지급을 중단한다. 활동비는 부장급이 44만원, 국장급이 1백만원이다. 최총장이 들어와 감축 내용이 한층 강화된 것이다. 한 사무처 요원은 대우 문제 때문에 1년내 스스로 당을 떠나는 사람이 많으리라고 말한다. 감축 대상 요원들은 경부고속전철관리공단이나 신공항관리공단 등 새로 생겨 아직 노조가 없는 정부투자기관에 취업을 알선하고 있다.

“당에 월급쟁이는 필요없다??

선거 때 사조직 ‘나라사랑본부??를 관장한 최총장은 당 사무처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 사조직에서 일한 사람들은 자기 돈 써가면서 고생했으나 당 사무처 요원들은 월급 외의 돈까지 받으면서 생색을 냈다는 것이다. 그는 당에는 정치하려는 사람이 남아서 일해야지 ??월급쟁이??는 필요없다는 야당식 발상에 익숙해 있다. 민자당 인사들은 최총장이 여당 사무처 속성과 당무를 잘 모르기 때문에 사정없이 칼질을 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최총장이 취임하자 민주계 국장과 사무처 요원들은 안도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당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민주계 수장격인 최총장의 손이 안으로 굽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최총장은 ‘누가 봐도 객관적인 잣대??를 기준으로 당을 정비하겠다고 했으나, 사무처 요원들은 정당에서 객관적인 평가 기준을 찾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한 당내 인사는 결국 경선 과정에서 친김영삼 쪽이었느냐 반김영삼 진영이었느냐가 기준이 될 것 같다고 전한다.

최총장은 당을 강력하게 장악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는 취임사에서 “당의 위계질서를 확립하겠다. 위계질서를 어기는 당원에게는 가차없는 나의 의지를 표출하겠다??라며 강경한 용어로 위계질서 확립을 강조했다. 그는 또 ??김종필 대표를 제대로 모시자??는 말을 되풀이했다. 이는 ??내가 김대표에게 깍듯이 대하듯 당직자들도 위계를 지켜 내게 깍듯이 대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최총장 본인의 당 장악 의지와는 별개로 그의 정치적 위상은 일단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김영삼 대통령이 바로 그의 후견인이기 때문이다. 김대통령이 그를 사무총장에 임명한 것은 당을 직접 관장하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김대통령은 측근인 박관용 김덕룡 최형우 의원을 각각 대통령 비서실장, 정무1장관, 당 사무총장에 앉혀 청와대·정부, 그리고 당을 확실하게 장악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당직 인선에서는 김윤환계인 김종호·신경식·강재섭 의원을 각각 정책위 의장·총재 비서실장·대변인에, 이한동계인 김영구 의원을 원내총무에 임명해 계파 안배를 고려한 흔적이 보인다. 그러나 관측통들은 엄밀하게 말해 김대통령의 친정체계를 강화하기 위한 인사였다고 입을 모은다. 이미 민자당에서 계파는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최총장은 취임하자마자 “이제부터 민자당에 계파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는데 이는 김대통령의 뜻이기도 하다.

최총장은 물불 안 가리고 밀고 나가는 다혈질이다. 그는 힘이 주어지면 휘두르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지의 장비에 비유되곤 한다. 3공과 5공의 끊임없는 핍박과 회유 속에서도 그의 정치 활동 대부분은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최총장의 성격을 잘 아는 김대통령은 과감하게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그를 기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종필 대표가 있기는 하나 앞으로 당은 김대통령과 최총장이 직접 교감하는 가운데 운영할 것으로 보인다. 투박하고 직선적인 성격, 거침없는 말투가 특징인 그가 어떤 식으로 당의 군살을 칼질할지 당내외 인사들의 관심거리다.

민정 중진은 휴면…김대표는 위상 유지

최총장의 떠오름과 함께 앞으로 민자당 세력 판도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 당직 개편전 중진 의원들 간에는 자파 의원을 심기 위한 물밑 신경전이 치열했다. 앞으로 권력투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었다. 그러나 김대통령의 최총장 낙점으로 계파 의식은 더욱 희미해지고, 계파 활동은 잠복할 수밖에 없게 됐다. 관측통들은 민자당내 판세에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내다본다. 김대통령의 당 직영체제 아래서 친위사단이 늘어나면 최총장의 입지는 강화될 것이다. 그러나 최총장의 위상이 높아진다 하더라도 그가 과연 자기 계보를 늘리고 관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김윤환 이한동 이춘구 등 중진의원들은 휴면기에 들어간 것처럼 보인다. 표면에 드러나지 않게 활동하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들은 불만이 있어도 지금은 드러낼 수 없는 입장이다. 숨을 죽이고 김대통령의 개혁 행보를 지켜볼 뿐이다. 김윤환 의원의 경우는 자파 당무위원 수가 예전의 10명에서 14명으로 늘어난 점을 들어 기반이 강화됐다는 분석도 있다.

실질적으로 거의 전부가 김영삼 직계라고 할 수 있는 민자당 의원들의 분파 작용은 국회의원선거가 임박해 서서히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당내 갈등이 표출될 소지가 전혀 없지는 않다. 한 관측통은 중진을 포함한 민정계 의원들이 개혁을 빌미로 계속 소외되면 얼마든지 불만이 증폭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되면 분당 가능성까지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개혁 바람 속에서 각 분야에 자율화 분위기가 정착하고 정치 사찰 중단이 여론으로 기정사실화되는 시점에 그들은 불만을 직접 표출하면서 행동할 것이라고 전한다. 그러나 또 다른 충격조처가 없는 한 민정계 의원들의 탈당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민정계 중진들은 각자 차기를 노리고 있어 김대통령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함부로 운신할 수 없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당내 갈등 요인은 민정계보다는 오히려 최총장의 업무 형태에 있다. 한 당내 인사는 “최총장이 화약을 지고 불 속에 뛰어드는 식으로 일을 저지르려 한다??고 말하면서 불안해했다. 한 민주계 의원도 ??작전 개념이 없는 사람??이라고 그의 무모성을 인정한다. 그의 취임사에 대한 의원들의 반응에서 당내 갈등이 재연할 가능성을 읽을 수 있다. 최총장이 위계질서 확립, 계파 불인정 방침과 더불어 의원 재산 공개를 우격다짐식으로 촉구하자 일부 의원들은 ??너 혼자 잘해 봐라. 얼마나 잘났나 보자??라며 반발을 보였다.

“여권의 오랜 병폐인 사무처를 과감히 정리한 총장으로 남고 싶다??는 최총장의 의욕이 지나쳐 과욕으로 나타날 때 당내 잡음이 생길 뿐 아니라 스스로 반발세력을 키우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김대통령은 김덕룡 정무장관과 함께 최총장이 정치적 무게를 갖도록 어느 선까지 키우려 할 것으로 보인다. 민정계 중진과 민주계 측근 등 2인자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이 서로 견제토록 하는 것이 집권 기간에 대통령 자신에게 편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대통령이 최총장을 지원한다 하더라도 최총장이 일을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해 말썽이 일어날 경우 신임도 잃고 위상도 곤두박질칠 가능성이 있다.

김종필 대표의 위상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도 관심을 끈다. 과거 행정이나 이미지로 보아 김대표는 김대통령의 개혁 행보에 장애가 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따라서 그의 당 대표직 사임을 시간문제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지난 3일 저녁 청와대 만찬에서 김대통령은 “김대표가 중심이 되어 당을 이끌어 달라??고 부탁했다. 김대표가 변화와 개혁 시대에 당 간판으로는 어울리지 않으나 자타가 공인하는 ??어른??이기 때문에 김대통령으로서는 그를 앞세우는 것이 당을 분란 없이 다스리기 쉽다고 생각했을 법하다. 그렇다면 김대표는 내년 8월로 예정된 다음 전당대회까지는 대표직을 유지할 가능성이 많다. 김대통령은 김대표를 당분간 그대로 놔두고 당을 실질적으로 총재-총장 체제로 끌고 갈 것으로 보인다. 세찬 개혁 바람 속에서 민자당은 위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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