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씨 초청 ‘베를린 통일문제 세미나’ 현장 중계
  • 정리 · 베를린 윤도현 통신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06.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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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속 통일 불가피할 수도 있다”

김대중씨는 지난 2월24일 베를린사회과학연구소(WZB) 초청으로 ‘통일의 정치적 문제들??이라는 제목의 세미나에 참석한 한상진 교수(서울대?사회학)와 함께 주제 발표를 한 뒤 독일 학자들과 토론했다. 독일 학자들은 ??한국은 점전적인 통일을 원하지만 일단 통일 과정이 시작되면 급속도로 통일이 이루어지며, 통제 불가능하게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세미나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편집자>

■ 김대중 : 통일에 관한 독일의 경험과 한국의 전망

독일이 통일된 요인은 크게 외재적 요인과 내재적 요인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이 가운데 후자가 더 중요했다고 생각한다. 먼저 외재적 요인 중 가장 큰 것은, 페레스트로이카로 인하여 독일 통일에 대한 국제적 이해와 협력 분위기가 조성되었다는 점이다. 내재적 원인은 첫째, 서독이 민주화에 성공한 점이고 둘째, 서독이 동서독 간의 교류를 위해 경제지원과 빈번한 인적 교류에 노력한 점이다. 셋째, 서독이 흡수통일정책을 지향하지 않은 것인데, 역설적으로 서독이 흡수통일을 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넷째, 서독 마르크화의 위력과 치밀하고 효과적으로 작동한 관료체제,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직접적인 요인은 동독 내의 자발적 봉기이다.

그러나 통일로 인한 부작용 또한 적지 않은데, 그것은 뜻하지 않은 급격한 통일 과정에서 비롯한 것이다. 서독의 경제적 부담은 물론이고 동서독 화합에도 아직 엄청난 어려움이 남아 있다.

브란트 전 총리가 나에게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지만 마음의 장벽은 남아 있다??고 말했는데 이제는 그 말을 실감할 것 같다. 91년 독일 방문 당시 바이체커?브란트?겐셔 세 사람이 한결같이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이 기억에 생생하다. ??당신네는 다행이다. 그것은 우리 독일 통일에서 일어난 많은 문제점을 미리 배워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강력히 조언하고 싶은 것은 통일은 점진적이고 아주 신중하게 진행해야 하며 결코 서둘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독일 통일에서 한국이 배울 점은 다음과 같다. 내재적 조건으로는 첫째, 우리는 서독과 같이 훌륭한 민주제도를 정착시키고 그 기반 위에서 자유와 번영을 이룩해야 한다. 둘째, 상호 이익을 위해 남북간 교류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 셋째, 군사적 대립관계를 종식시켜야 한다. 외재적 조건으로는 첫째, 평화통일을 위한 한반도 주변국들의 협력을 얻는 데 성공해야 한다. 둘째, 북한은 핵사찰에 적극 협력하고 세계 각국과 관계를 개선해야만 한다.

나는 지난 20여년간 3단계 통일방안을 주장해 왔다. 이 때문에 온갖 박해를 받기도 했지만, 이 방안은 현재 여야 간에 큰 이의가 없는 통일안이 됐다. 남한은 흡수통일정책을 추구해서는 안되고 북한에 지나친 압력을 가해서도 안된다. 왜냐하면 북한의 군사적 모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북한의 경제사정은 매우 열악하다. 따라서 외부와의 경제 협력이 절대 필요하다. 그러나 북한은 억압적인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국민이 자유롭게 외부와 접촉하도록 허용할 수 없다. 북한 지도층의 고민은 어떻게 이두가지 모순된 목표를 조화할 수 있는가에 있다. 북한에서 정치적 변화가 일어날 경우, 그에 대한 전망은 지극히 불투명하다. 그러나 어떠한 사태가 일어나도 우리는 남북한가의 화해와 상호 발전이라는 기본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그리고 통일을 위한 필수 조건은, 남한에 진정한 민주 정부가 수립되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 한상진 : 통일 비교연구 위한 몇가지 제안

과연 독일과 동일한 유형의 통일이 한반도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합리적인가. 두 나라는 많은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에 독일과는 다른 한국식 통일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한국인은 나름대로 고유한 통일 과정을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통일에 대해 비교연구를 해야 할 이유는 충분히 있다. 그 이유는 다음 세가지이다.

첫째, 한반도와 독일은 냉전체제 아래서 민족적 분열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런데도 민족적 동질성은 파괴되지 않은 채 잘 존속해 왔다. 따라서 두 개의 연관된 주제를 연구할 수 있다. 그 하나는 ‘냉전이 어떻게 상호 분리, 적대적인 발전에 영향을 주었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어떻게 분단된 민족이 그들의 민족적 동질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였는가??이다.

둘째, 89년 전후에 옛 동독과 다른 동유럽 국가들의 경험은 북한문제를 논의하는 데 어느 정도 참고가 될 수 있다.

셋째, 통일정책을 더 적절하게 개발해 나가기 위해서는 공동연구가 필요하다. 독일 통일 과정에서 실수했거나 지나쳤던 문제점을 피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통일비용이나 대북한 경제원조 등에 대한 논의는 이 맥락에서 검토해야 한다.

통일을 비교연구할 때 독일식 흡수통일을 유일한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첫째, 북한체제가 동독과 같은 방식으로 붕괴할 것인지가 전혀 불확실하다. 둘째, 설사 북한이 무너진다 해도 흡수통일은 남한측에 독일보다 더 큰 부담과 긴장을 양산하면서 통일이념 자체를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흡수통일을 전제로 한 연구는 처음부터 북한 학자와의 공동연구 가능성을 배제해 버린다.

통일 비교연구의 영역으로는 다음 몇가지 주요 분야가 있다. △사회적 발전 속에서 언어 문화와 같은 친통일적 요인들의 진화적 발전 과정 △동서독, 남북한의 민족정책 비교연구 △흡수통일과 연합체통일을 대비하고 후자 지향적인 경제교류와 문화정책을 개발하는 일이다.

통일이 민주주의를 전제로 한다면 김대중씨의 3단계 통일론 역시 민주주의 없이는 실현 불가능하다. 따라서 통일연구는 우리가 그 연구의 규범적 전제조건에 합의할 때 더욱 일관되고 의미있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 토론 참가자의 주요 질문 내용

리트렙스키 교수(베를린자유대·정치학)는 두가지 질문을 던졌다. “3단계 통일방안을 제시했는데 이러한 통일 과정의 주체는 과연 누구인가. 정부인가 아니면 시민사회의 조직 또는 교회단체, 학계 내외의 지식인인가. 통일에 장애가 되는 국내적 요인들은 한반도가 독일에 비해 훨씬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자본주의 사회인 남한과 사회주의 사회인 북한 간의 상호 증오와 실망이 무척 크고, 또 이데올로기 장벽 역시 큰 문제로 남아 있다. 과연 이 상황에서 서로 합의할 수 있는 정책 사안이 얼마나 있으며 또 가능하겠는가???

독일경제연구소 소속 한 젊은 학자는 “김대중씨와 한상진씨 모두 점진적인 통일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우리가 독일의 경우에서 보았듯이 일단 통일 과정이 구체적으로 시작되면 그것은 급속도로 진전되며, 때로는 통일 불가능하게 되어 예상치 못한 많은 비합리적 요소가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볼 때, 두 사람의 통일안은 정치적 역동성과 그 현실적 힘의 변수에 대한 고려가 상대적으로 적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한편 경제기획원 과정으로 현재 독일경제연구소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있는 허 선씨는 “두 사람은 흡수통일을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고 또 그 당위성을 역설했다. 그러나 남한 경제가 북한 경제를 불가피하게 흡수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도 있을 수 있고, 또 현실적으로 그럴 위험성이 커지고 있다. 북한 경제는 중국식 모델을 수용하여 발전적으로 나갈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동유럽 대부분 국가처럼 개혁에 실패할 가능성도 높다. 따라서 한반도 통일 문제는 어떤 고정된 계획, 또는 시나리오에 입각하여 이를 경직되게 추진해 나가기보다는 오히려 현실적 경제관계의 변화에 따라 탄력성 있는 통일정책을 구체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사회를 맡은 클링게만 교수(베를린자유대·정치학)는 “통일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이 남한의 철저한 민주화인가. 그리고 북한의 지배 엘리트들이 과연 북한사회 내의 민주적 개혁을 과감하게 실행할 수 있겠는가??라고 묻고 정치적 역동성에 대한 고려를 강조했다. 이외에 ??흡수통일이 한반도의 경우에 바람직하지 않다면 과정이야 어쨌든 실제적으로 흡수통일을 한 독일보다는, 현재 진행중인 유럽공동체(EC)의 통합 과정이 한반도의 통일논의에 더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하는 질문이 나왔다.

■ 김대중씨의 답변 요지

독일 통일은 세계의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정치는 생물과 같기 때문에 정치의 역동성과 변화에 대한 고려와 대응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한반도의 통일과 관련해 우리는 다음의 두가지 원칙을 추구해야 한다. 첫째, 남북 양측은 전쟁을 피하고 적대적 비협력적 관계를 평화공존의 관계로 전환해야 한다. 둘째, 가능한 모든 분야에서 상호 협력하고 평화교류를 실현해야 한다. 분단국가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민족동질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통일은 그 다음 문제이다. 독일과는 달리 극한적 적대관계에 있는 남북한은 통일을 서두르면 오히려 커다란 부작용만 낳을 뿐이다. 이 점에서 교류확대가 중요하다.

점진적인 통일이 불가능하지 않느냐 하는 질문이 있었는데, 점진적인 통일정책만이 현재 우리의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제안한 3단계 통일방안 중에서는 특히 제1단계인 ‘1연한 2독립정부 형태??실현이 중요한데, 이것은 이미 여러 곳에서 지지를 받은 것이다. 미국의 카네기재단에서도 이를 북한 정부에 적극 권고한 바 있고, 또 그 재단 초청으로 북한 학자들이 워싱턴에서 회의를 가졌을 때 그들로부터 많은 긍정적 반응을 얻었다. 그리고 91년 평양에서 국제의원총회(IPU)가 열렸을 때에도 북한측 의원들이 ??김대중의 통일방안을 반대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했다. 김영삼 정부도 내 제안과 거의 비슷한 3단계안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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