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훌 벗어던진 성고백 산산이 부서진 메아리
  • 노순동 기자 (soosisapress.comkr)
  • 승인 1999.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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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갑숙씨 파문, 무엇을 남겼나/‘사법적 제재 대상 아니다’합의는 성과

■ 문화현상

검찰의 내사설로 촉발된 탤런트 서갑숙씨의 성고백서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를 둘러싼 파문이, 검찰의 무혐의 판결에 따라 원만하게 마무리되고 있다. 반응은 다양했지만, 적어도 사법적인 단죄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합의에 도달한 것이다. 서씨의 책은, 사법부의 제재는 피했지만 간행물윤리위원회(간윤)가‘19세 미만 구독불가’결정을 내림에 따라 유통에는 상당한 제재가 따르게 된다.

 성고백서 파문의 성과가 출판물 규제에 대한 최대 공약수를 확인한 데 있다면, 민간의 자율 규제망이 놀라울 정도로 기민하고 촘촘하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 시사점을 던진다. 한 예로 교보문고는 간윤결정이 내려지기 전 내부 논의를 거쳐 서시의 책을 일반 판매대에서 끌어내렸다.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내부 판단에 따른 것이다. 교보문고 일반서적과 안방국 과장은“청소년에게 유해하다고 판단되는 도서의 경우 간윤결정과 상관없이 따로 판매대를 설치해 팔고 있다. 다만 법적인 제재가 아니므로 출판사와 긴밀히 협의한다”라고 말했다. 교보문고가 이미 청소년의 문화 공간으로 자리잡은 만큼, 간윤이나 검찰이 결정을 내리기전이라도 그들에게 미칠 영향을‘상식선’에서 판단해 제한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자율규제 사례는 또 있다. 방송사는 논란이 일자마자 서갑숙씨가 음악교사로 출연하던 드라마 <학교Ⅱ>에서 그를 중도 하차시켰다(서씨는 지난 10월25일 기자회견에서‘드라마를 녹화하려 갔으나, 출연정지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고 밝혔다). 한국방송연예인 노동조합(위원장 이경호)의 대응은 의아하기까지 했다. 조합 명의로 성명서를 발표했는데, 방송사의 일방적인 출연 금지 조처에 유감을 표한 것이 아니었다. 이번 파문을 계기로 방송연예인들이 공감하는 수준의 윤리 강령을 만들고 자정 운동을 전개하겠다는 것이었다. 김기복 사무국장은“서씨가 동료에게 미칠 부정적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공인 신분을 망각한 것으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상술일 뿐”“의미있는 도발”등 반응 다양
 제재를 주장하는 이들이‘청소년 보호’와‘상식’을 강조한 데 비해, 한 걸음 물러선 이들의 반응은 다채로웠다. 우선 유보론, 서씨의 집필 동기가 상업주의에 편승한 노출증이라고 보는 이들은, 논란 자체가 짜증스럽다는 반응이다. 소설가 하창수씨는 이번 파문을 표현의 자유와 연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한다.‘진정한 고백은 사실 전달이 아니라,생의 성숙을 겨냥한다’고 지적한 그는, 이번 사안이 문학적 사건이 아니라‘솔직한 토로=진실’이라는 우직한 등식에 걸려든, 대중적 스캔들일 뿐이라고 말했다(<조선일보>). 소설가 김주영씨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백한 용기는 대단하다. 하지만 성찰이 담겨있지 않은 작품은 사회적 통념에 의해 조정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서씨의 글을 우리사회의 위선적인 성 담론에 대한 도발로 보는 이들은 옹호론을 편다.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 발행인 김민숙씨는 서씨 파문을‘성적 주도권’과 고나련된 사안이라고 보았다. 이씨는 서갑숙의 책을 무턱대고 감싸지 않는다.‘<나도 때론… >은, 여성이 성의 환희에 눈 떠가는 과정을 구구절절한 사연에 버무려놓은 구태의연한 자전 에세이’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오히려 책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에 관심을 기울인다. 서씨의 책을 문제 삼는 것이 남성들이 호스트바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그는“이 문제의 본질은 여성이 성의 환희를 남성처럼 다양한 경험을 통해 탐구하려 했다는, 즉 선악과를 따먹으려 했다는 데 남성 사회가 경악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성고백서 파문과 맞물려 책의 서문을 쓴 문화평론가 김지룡씨는 이름값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 이미 그는, 자신이 체험담을 통해 한국과 일본의 성 문화를 진단한 에세이 <나는 솔직하게 살고 싶다>를 펴내 눈길을 끌었다. 이번에는 성차별 논쟁의 복판에 섰다.‘표현 수위가 서씨의 글보다 덜하지 않은데도, 김씨의 책은 심의 대상에도 오르지 않았다. 성과 학벌과 엄숙주의가 작용한 결과다’라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간윤은‘필자가 여성이기 때문에 더 문제 삼았다’는 세간의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김씨의 책을 심의하지 않았다는 언론의 보도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심의 1팀 민병식 부장은, 지난8월 이미 김씨의 책을 놓고 논의했으며, 표현이 노골적인 곳이 있으나 일본과 한국의 성 문화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고 있으므로 일반에 판매하는 데 문제가 dqjt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서씨의 책은 동성애 · 아홉시간에 걸친 섹스 등 듣기 민망한 경험담을 풀어놓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김지룡씨는 간윤의 논리가 외설 시비 때마다 따라붙는 작품성 논란의 변형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간윤의 판단대로 서씨의 책이‘경험담’성격이 짙고, 자신의 책이‘분석서’로 비치는 면이 있다고 해도, 글의 성격이 다를 뿐 그것이 우열을 가르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는“위선적인 성 문화를 고발했다는 점에서 두 책을 달리 볼 이유가 없다”라고 말한다. 시행착오가지 낱낱이 적어놓은 서씨의 경험담이말로 ‘성이란 무엇인가, 특히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성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이에게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는 것이다. 그는“실제 경험을 드러냈다는 것, 그리고 필자가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 문제가 확산된 것만은 틀림없다”라고 말했다.

 문화평론가 서동진씨는 정면으로 시민사회의 보수성을 문제 삼았다. 앞으로 가치관을 둘러싼 논란의 전장은 법정이 아니라 안방이 될 터인데, 이번 파문은 검찰이나 심의기구가 아니더라도 시민 사회의 상식이 얼마나 보수적인지 잘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그는 자체 심의를 통해 책 유통을 제한하는 교보문고의 행위를 놓고 ‘금전적인 손실을 감안한 모범적인 자율규제’사례라고 치켜세운 언론의 보도를 그 예로 꼽았다. 그는 각종 심의기구에서 큰 몫을 하는 시민단체가, 예외 없이 청소년 보호와 표현의 수위를 문제 삼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서갑숙씨“질타와 응원 모두 반갑다”
 서갑숙씨는“질타하는 목소리와 응원의 박수 모두가 반갑다”라고 말해따. 산에 올라 고함을 쳤는데, 한꺼번에 여러 개의 메아리가 되돌아오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그는“논란이 빚어질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반응이 크다. 그만큼‘성과 사랑’이 중요한 화두였음을 실감한다”라고 말했다.

 서씨가 책에서 밝혔듯이, 집필을 결심하는데 가장 애를 먹은 것은 아이들이 이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고 한다. 서씨의 책에 대한 우려도 이 대목에 모아졌다. 이에 대해 서시는“아이들이(성에 대해)모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혼란을 덜어주고 싶었다. 그 마음을 먼저 보아 달라”고 주문했다. 자신은, 부끄럽더라도 실패한 경험과 극복한 과정을 낱낱이 들려주는 방법을 택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서시는 11월 중 누드 사진집을 펴낼 예정이어서 또 한 차례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서씨에 따르면, 그의 고백은, 책-사진-연극으로 이어진다. 에세이가 마음을 벗는 일이었다면, 누드집은 몸을 벗는 일이며, 모노드라마는 이를 관객과 나누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魯順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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