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으로 달려가는 미국내 한인 징용 피해자
  • 최영재 기자 ()
  • 승인 1999.1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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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기업 상대로 피해 배상 소송 … 승소 가능성 높아

‘원고:미국 워싱턴 주 타코마 시 최재식, 피고:니폰 스틸 주식회사, 미쓰비시 중공업 주식회사.’

 99년 9월7일 미국 워싱턴 주 타코마 연방지방 법원에 제출된 고소장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 날짜로 접수 일부인이 찍힌 고소장 아래에는 ‘이소송은 ’배상청구권을 가질 수 있는 불법 행위 피해자 보호법:Tort Victim Protection Act'과 ‘불법 행위에 대한 외국인 피해자 배상청구법안:Alien Tort Claims Act'에 법적 근거를 두고 있다. 이 법에 따라 미국이나 미국과 협정을 맺은 어떤 나라가 법을 어기고 외국인에게 피해를 입혔을 경우, 이를 보상하도록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다.···’라고 적혀있다.

 이 재판의 원고 최재식씨(76)는 태평양전쟁 강제 징용 희생자이다. 그는 현재 미국 워싱턴 주 타코마 시에 살고 있다. 최씨는 소장에서 42년 20세 때 일본 규슈로 끌려가, 3년간 철강(니폰 스틸)의 전신인 야하다 철공소에서 고철을 들어 날랐고, 히로시마와 오카이야마에서 전기 생산용 땅굴을 하루종일 팠다‘고 진술했다. 최씨는 ’좋은 일자리를 주겠다는 일본군 관계자 말에 속아 부역에 나섰는데, 정신적·신체적 학대를 받았으며, 합당한 배상이 없었다‘라고 덧붙였다.

강제 노동 시킨 회사가 피고
 원고측 소송을 이끌고 있는 사람은 재미 교포 윤영일 변호사(55·미국명 에디 윤, 29쪽 인터뷰 기사 참조)이다. 이 소송은 애초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 대학 법대 아시안 법률 프로그램에서 연구 중인 일본인 인권 변호사 도쓰카 에쓰로 변호사가 윤변호사에게 제안해 이루어졌다. 유태인들이 독일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소송하는데, 한인 징용 피해자도 당연히 소송할 수 있다는 충고였다. 도쓰카 변호사는 일본군 종군위안부 실태를 국제 사회와 유엔 무대에 체계적으로 고발한 인물이다. 그는 이 활동으로 일본 우익 인사들에게는 눈엣가시가 되었지만, 96년 한국여성단체연함이 주는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받았다. 또 윤변호사 뒤에 버티고 있는 단체는 미국 담배산업을 상대로 소송해 승리한 ‘하겐스 버만’이라는 소문 난 법률 회사이다. 윤변호사는 현재 이 법률회사 소속이다.

 소송의 피고는 미국 현지에서 영업하고 있는 일본 기업 니폰 스틸과 미쓰비시 중공업이다. 니폰 스틸은 일본 도쿄에 본사가 있지만, 미국 뉴욕과 텍사스에 현지 법인을 두고 있다. 미쓰비시 중공업 또한 도쿄에 본사가 있지만 미국 뉴욕에 분사가 있다. 원고인 최씨는 처음에 자신이 강제 노동을 한 야하다 철공소와 니폰 스틸과의 인과 관계를 밝혀 니폰 스틸을 피고로 고소했지만, 미쓰비시 중공업은 소송에 끌어들이지 못했다.

 여기에 도움을 준 이가 도쓰카 변호사이다. 그는 최씨 진술을 읽고 당시 최씨가 판 땅굴이 미쓰비시 중공업의 비행기 공장이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소송을 내면서 시애틀에서 현지 기자와 만난 윤변호사는 “일본 철강과 미쓰비시 중공업은 강제 노동을 금한 국제노동기구 협약 제 29조를 직접적으로 위반했다”라고 주장했다. 최씨가 소송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타코마 시에 살고 있던 김용환씨(76)와 원점복씨(81)도 여기에 가세했다. 김씨는 42년 전남 영광에서 규슈 해군 건축부에 끌려가 군대 훈련을 받은 후, 3년간 건축노동을 했다. 그는 이 기간에 일본 인부들과 싸우다 헌병대에 끌려가 밧줄로 얻어맞고 부젓가락으로 고문받아 지금까지 얼굴에 상처가 남아 있다. 원씨도 45년 서울에 있던 ‘조선 비행사’에 현장 징용으로 끌려가, 8개월 동안 트럭에 짐을 실어 나르는 일을 했다.

 일본을 상대로 한 이런 종류의 소송은 원래 이기기 힘든 싸움이다. 원인은 65년 한·일 협정 때문이다. 한·일 양국은 당시에 일본이 한국 정부에 지급한 배상금으로 모든 문제를 풀었다는 입장이다.

2백여년 잠자던 법안에 의거해 제소
 하지만 미국에서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소송한 사례는 한 번도 없었다. 소송하겠다는 아이디어 자체를 내지 못했던 것이다. 전후 보상과 관련한 최근의 국제 여론을 보면 이 재판은 승소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같은 사례는 독일 기업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나치 독일은 점령 지역에서 강제 연행한 외국인 노동자 5백70만명, 포로1백90만명과 다수의 강제수용소 수용자를 군수 공장으로 몰아넣었다. 독일의 유수 기업인 AEG·지멘스·벤츠·폴크스바겐등이 이런 강제 노동으로 이득을 본 기업이다. 독일이 패전한 뒤 미국 뉴욕에서는 ‘독일에 물가적 손해 변상을 추구하는 유태인 회의’가 결성되었다. 이 유태인회의는 50년부터 해당 기업에 배상을 청구했다. 여러 가지 굴곡이 있었지만 결국 독일 기업들은 유태인 회의 등에 5백만~3천만 마르크(30억~1백80억 원)를 지불했다. 99년 2월16일 독일 슈뢰더 총리는 나치 시절 강제 노역에 종사한 사람들을 위해, 정부와 기업이 함께 20억~25억 마르크(1조2천억~1조5천억원)에 이르는 배상 기금을 마련해 개별 보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과거 불법으로 이루어진 강제 노동에 대한 보상 사레는 그뿐이 아니다. 90년 10월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시민자유법’을 제정해 과거 미국 정부가 저지른 외국인 강제 노동에 배상한 적이 있다. 미국은 일본군이 진주만을 공습한 직후인 42년, 미국 서해안에 살고 있던 일본계 미국인 12만명을 루스벨트 대통령의 특별행정령에 따라 수용소로 강제 이주시킨 사례가 있다. 이때 피해를 본 일본계 미국인에게 보상한 것이다. 영국 정부는 98년 4월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에 박해받은 유태인 재산을 부당하게 점유한 것을 사과하고, 1차로 2백만 파운드(약 37억원)을 내놓겠다고 공식 천명한 바 있다. 또 99년 2월1일에는 나치 독일이 강제 노동자와 유태인 홀로코스트 희생자에게 강탈한 금괴를 판매해 재미를 본 오스트리아 은행이 배상금으로 9천2백만 달러(약1천1백억원)를 피해자들에게 지급하기로 했다.

 이같은 과거사에 대한 문제 제기는 식민 지배 청산 과정으로도 연결되고 있다. 네덜란드의 경우 인도네시아에 대한 식민 지배 청산 과정에서 정부개발원조라는 형태보다는, 청구권과 배상을 명확히 한다는 입장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흐름은 최근 미국이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의 전쟁 범죄에 대해서 칼날을 다시 세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올해 11월 들어 연방 상원에서 난징 대학살과, ‘731부대’의 인체 실험 같은 일본군의 잔학 행위에 대한 미국 정부 기밀 자료를 수집해서 공표하기 위해 대통령 특별위원회를 설치하는 법안을 만들고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미국이 면책을 조건으로 입수했던 731부대에 관한 기록은 물론, 극동군사 재판에서 다루었던 난징 대학살에 대한 미공개 자료가 대거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또 미국은 나치 독일과 동맹국 점령 지역에서 강제 노동이나 생체 실험 대상이 되었던 피해자나 유족이 국적을 가리지 않고 미국 법원에 손해 배상청구소송을 제기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 민주당 찰스 슈마 상원의원이 11월4일 제출한 이 법안은, 나치 독일에게 피해를 본 모든 사람과 유족이 오는 2010년 1월까지 미국 연방법원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법안은 일본을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법이 통과되면 미국에서 일본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한인 징용 희생자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윤변호사는 미국의 ‘외국인 피해자 배상청구법안’에 의거해 이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서명한 이 법안은 필리핀의 전 대통령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에게 적용될 때까지 거의 묻혀 있었던 법이다. 당시 마르코스 치하에서 박해를 당한 뒤 미국으로 망명한 필리핀 피해자들이, 이 법을 토대로 마르코스 대통령을 상대로 소송을 내면서 이법은 빛을 보기 시작했다.

 윤변호사는 이 법안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고소하는 데도 이용한 바 있다. 광주항쟁 당시 신군부에 체포되어 고문받은 뒤 미국으로 망명한 피해자들을 원고로 한 소송이었다. 이 소송은 미국 연방대법원까지 갔으나 패소했다. 연방대법원은 98년에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미국에 살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 사법권 관할에 들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제소되는 일본 기업 눈덩이처럼 불어날 듯
 그러나 미쓰비시 중공업과 니폰스틸은 경우가 다르다. 이 두 기업은 뉴욕에 지사를 두고 있다. 더구나 캘리포니아 주는 지난 여름에 외국에서 진행되는 강제 노동에 대해 해당국에 항의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제인 폰다의 남편이자 반전주의자인 캘리포니아 주 민주당 하원의원 톰 헤이든이 제출한 법안이다. 하지만 윤영일 변호사는 헤이든 법안을 적용하면 미국의 일개 주가 외국 정부와 외교 분쟁을 빚을 우려가 있으므로, 오히려 이번 소송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 소송은 원고와 피고가 눈덩이처럼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인 징용 피해자가 한둘이 아니므로, 사실 관계만 확인되면 얼마든지 원고로 합류 할 수 있기 때문이다(38쪽 표 참조). 제소되는 일본 기업도 불어날 전망이다 태평양전쟁 당시 강제 징용을 통해 이득을 취한 일본 기업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고측 일본 기업을 늘리기는 그리 쉽지 않다. 강제 징용 노동자를 쓴 태평양전쟁 당시의 기업과, 현재 일본 기업과의 상관 관계를 밝혀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소송은 배상 금액만도 수백억원 규모가 될 것 같다. 원고측에는 담배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승리한 법률회사가 포진해 있고, 피소된 일본 제철회사에도 호화 멤버가 속속 가담하고 있다. 그런 만큼 ‘세기의 재판’이 될 가승성이 있다. 그러나 판돈 규모와 쟁쟁한 변호사가 가담한 송사라는 사실을 떠나서, 한국민에게는 이 재판 결과가 매우 중요하다. 바로 한민족의 아픈 과거사를 정리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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