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장 가는길 ‘꾼’들로 북적댄다.
  • 정기수. 오민수 기자 ()
  • 승인 1991.07.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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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2만5천명…레포츠 제맛 즐기는 ‘비도박파’는 소수

 회사원 황모씨 (30)는 한달 전 친구 B라 경마장에 한번 갔다가 지금은 서서히 "미쳐가고 있는" 초보 경마팬이다. 레이스가 펼쳐지는 매주 금 ·토 · 일요일 중 적어도 하루는 가봐야 직성이 풀린다. '위험한' 이 초보자는 그러나 어떤 '안전선'을 나름대로 정해놓고 있다. 지갑' 넣어가는 돈은 딱 5만원, 그리고 아내를 반드시 동반한다. 도박에 빠져들지 않기 위한이중의 제어장치인 셈이다.

 황씨는 지난 주말 한 경주에서 1만원짜리 베팅(돈걸기)이 적중, 9,7배의 배당금을 탔다. 돈 1만원으로 8만7천원을 딴 것이다. 그가 지금까지 맞힌 것 가운데 두 번째로 높은 배당률이었다. 그러나 한달간 경마장을 출입한 황씨의 손익계산서는 '본전'이다. 비교적 건전하고 모범적인 편에 드는 황씨의 경우가 이렇다고 할 때 다른 사람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황씨보다 젊은 한 은행원 (27)은 "직장생활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경마에 뛰어들었다. 첫날 5천원을 걸어 9만원을 딴 뒤 경마로 돈을 벌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50만원을 들고 가서 전부 날렸다. 그날 이후 "만회할 욕심에" 그는 더욱 과감한 베팅을 시도, 급기야 5백만원이나 잃고 말았다.

 여수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김모씨 (25)의 경마열은 더 광적이고 향락적이다. 김씨는 주말마다 서울로 올라와 친구들과 함께 경마장을 찾는다. 이들은 돈을 딴 사람이 그날 밤 술값을 내는 '강제성 소비구조'를 스스로 만들어놓고 있다. 김씨는 "친구중에 경마하는 사람이 있으면 자연히 모두 경마에 마지는 것 같다"고 말한다. 전염성과 중독성이 강하고, 또 돈을 따면 따는 대신 잃으면 잃는 대로, 결국 먹고 마시는 게 끝인 도박의 전형을 보여준다.

 하루 약 2만5천명, 연간 2백60여만명으로 늘어난 경마인구 가운데 앞의 젊은 회사원들과 함께 두드러지게 많아진 충이 여성들이다. 경마팬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이들은 특히 신분 밝히기를 꺼린다. 차림새로 미루어 특정직업 또는 부동산 관련 사업에 종사할 것 같은 사람들이 꽤 많다. 그들이 들고 다니는 커다란 손지갑은 경마장이 어쩔 수 없이 투기장임을 실감케 한다.

거지에서 회장까지 다양한 '꾼'들
 경마장을 부정적으로 인식케 하고 있는 기존의 '꾼'들, 그러니까 89년 9월 과천으로 이사오기 전의 뚝섬시대 때부터 경마장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아직도 경마팬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이들의 직업은 "거지에서 회장까지"라고 표현될 만큼 다 안한데 '백구두' 스타일의 중년 신사가 가장 많고 백원, 천원 단위 마권을 사는 할아버지들도 상당수에 달한다.

 5년째 경마장에 '출근'하는 우모씨(38 -노동)는 1만~3만원 생기는 날이면 어김없이 경마장으로 달려온다. 적은 돈으로 일확천금을 노리기 때문에 안전한 선택을 하지 않고 꼭 남이 잘 안 가는 번호를 찍는다. 그래서 우씨는 하루 종일 10개 경주를 "죽때려" 보았자 거의 하나도 못 맞히는 날이 많다 "친구 중에는 집날린 사람도 있다. 그에 비하면 내 경우는 적게 하기 때문에 그저 '재미' 정도에 불과하다. " 우씨는 이렇게 자위하고 있지만 이미 '중독환자'이다.

 얼마 전 개인택시 면허를 잡히고 폭력배들에게 돈을 빌려 경마에 손댔다가 알거지가 된 택시운전사 얘기가 화제에 오른 적이 있다. 경마장에서 만난 한 운전사는 “사당역까지 1인당 2천원씩 받는 합승손님을 태우려고 경마장에 오가다 보니 마권을 한번 두번 사게 되고 그러다 택시까지 빼앗긴것"이라며 "하지만 기사들의 경우 대부분 심심풀이로 한다"고 전했다.

 이와 달리 관람석 6층 특별실에 주로 모여 있는 전문 '도박꾼'들은 한 경주당 수십, 수백만원씩 베팅을 해 일시에 거액을 챙기기도 하고 또 간단히 날려버리기도 한다. 무서운 '범죄 세계'를 보는 듯한데, 즉석에서 2할을 Ep고 현금으로 바꿔주는 수표거래상 '아줌마'들까지 있어 특멸실은 더욱 살벌하게 느껴진다. 사우나탕 소판에 제멋대로 앉거나 누운 사람들처럼 관람자세도 지극히 어지럽고 불량하다.

 특별실의 '상류 건달' 가운데 비교적 점잖게 보인 30대 후반 남자에게 직업을 물었더니 의사라고 했다. "원래 집안에 돈이 많아서 학교다닐 때부터 경마에 빠졌는데 지금까지 날린 돈이 아마 억대는 족히 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강남의 졸부들이 와서 돈좀 풀고 가겠다는데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괜찮지 않느냐" 하는 시각도 있지만 경마장 발전을 위해 어떤 식으로든 도박 행위는 제거해야만 될 암적 존재인 것만은 틀림없다.

 거액의 도박꾼도 그렇고 앞에 열거한 '패가망신' 사례들은 모두 경마가 건전한 대중레저 스포츠로 자리잡는 데 대단히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것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자기 또한 그같은 신세에 빠지지 않을까 우려하여 쉽게 경마장에 발을 들여놓지 못한다.  하루 경마장 관람객이 프로야구 관중을 웃도는 규모에 이르렀다고 하지만 대부분 그 사람이 그 사람, 실질적인 저변확대는 그다지 이뤄지지 않은 상태이다.

 '안심하고' 주말에 가족과 함께 경마장을 찾기 위해서는 "관람료만큼 잃어주다"는 '경마에 대한 기본 인식'이 가·1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안전선'을 정해놓고 경마에 임하는 황씨의 '경마철학'도 그러한 인식을 철저히 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될 때 박진감 넘치는 스릴과 약간의 사행성이 가미된 성인 오락, 또 자기 판단이 적중함으로써 얻어지는 통쾌한 기쁨과 같은 경마의 묘미를 비로소 느낄 수 있다는 얘기이다.

도박 아닌 과학과 추리의 스포츠
 그러면 무리하지 않을 경우 "절대 지갑을 다 털리는 일은 없다"는 보장은 어떻게 해서 가능한가. 우선 경마는 '무조건 찍기'식의 '야바위' 노름이 아니라 객관적 분석 자료와 주관적 판단에 의거해 우승마를 고심끝에 선택하는 '과학과 추리'의 스포츠라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많은 이들이 이같은 경마의 '합리성'을 몰라 도박이라는 선입관을 갖게 되기 쉽다.

 경주에 따라 8~ 12마리 말이 펼치는 1천~2천m 레이스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말이 70%, 기수가 30% 정도이다. 그러므로 말을 먼저 보고 기수는 나중에 고려하는 것이 우승 후보를 점치는 순서이다 . "어느 말이 뛰어난지 잘 아는 사람들이 유리하지 않겠는가"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겠으나 그것을 그렇게 간단히 알아맞힐 수 없도록 한 제도적인 장치가 지나치게 복잡하리 만큼 많다.

 한국마사회가 운영하는 서울경마장은 현재 1천5백여마리의 말을 보유하고 있다. 97%가량이 호주 뉴질랜드 미국 일본 등에서 수입된 이 말들은 I~3년간 조교사들에 의해 경주용 말로 훈련받은 뒤 I~2개월에 한번씩 레이스에 나서게 된다. 열댓 마리 말이 오늘도 뛰고 내일도 뛰는 식이 아니다. 말마다 기량이 다르기 때문에 권투의 체급처럼 7개 등급으로 나눠 비숫한 말들끼리 경주를 시키고 있다. 즉 '칼 루이스'와 '장재근'이 같은 조에서 경쟁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등급은 고정적이지 않아 한번 경기를 치를 해마다 그 성적을 토대로 등급을 다시 조정하게 된다. 또 2개 등급을 흔합편성해 경기를 할 때는 유리한 말이 짐을 더 싣는 '부담중량제'가 시행되고 있다. 성별과 연령에 따라, 전 경기의 성적에 따라'핸디캡'을 부가하는 것인데, 기수도 우승횟수가 많지 않은 사람에게는 3kg까지 감량할 수 있도록 해 실력이 더 나은 기수와 조건을 같이 만들어준다. 다시 말해 칼 루이스와 장재근이 함께 뛸 경우에는 칼 루이스에게 모래주머니를 채워줌으로써 장재근에게도 우승 기회가 되도록 같아지게 하는 제도인 것이다.

 따라서 우승 후보를 고르기 위해서는 이같은 모든 자료, 즉 말의 혈통과 최근 경기성적, 핸디캡 중량, 게이트 번호(육상에서의 레인) 둥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악습관 유무 등 말의 특성을 알아둬야 하고 과거 경기에서 상대말이 누구냐에 따라 성적이 어떻게 차이가 났는지도 비교해보는 것이 좋다. 경기에 나서기 전 I~2개뭘 동안매일 훈련을 시켜온 조교사는 말 못지 않게 승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경마는 트레이너의 비중이 어느 스포츠보다 높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기수가 누구인가를 따져 기초자료에 대한 분석을 마치게 된다.

 이와 같은 자료는 경마장 주변에서 6백원씩에 팔리고 있는 788종의 '예상지'에 모두 수록돼 있다. 과거 기록을 갖고 있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참고서인 셈이다. 그러나 이것은 경기에 임하기 전까지의 선수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의 집합일 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날의 말의 상태이다. 그래서 경기 직전 출전마들이 관람객들에게 선을 보이는 '예시' 절차는 우승 예상마 판단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걸음걸이가 힙이 있고, 머리는 위로 향하고, 눈에 광채가 있고, 귀와 꼬리가 생동감에 넘치는 말을 파악한 다음 몸의 균형, 말발굽의 크기와 체격의 비례 정도, 털의 윤기 등을 살피는 것이 좋은 말을 고르는 요령이다. 이렇게 해서 점찍은 말과 앞의 자료를 통해 얻어진 분석 결과를 종합하여 우승 예상마 판단을 대강 끝낸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모든 변수의 총합은 1천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이를 다 풀려면 매 경주 사이의 막간 30분은 턱없이 모자라는 시간이다. 그만큼 과학적이라는 애기가 될 수도 있으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복잡한 수학을 풀지도 않을뿐더러 사실상 그럴 필요도 없다.  ‘다크호스’라는 어원이 말해주듯이 어차피 ‘뛰어 봐야 아는’ 의외성이 큰 경기가 경마이기 때문이다.

순위 조작 가능성 거의 없어
 그러나 기본적인 ‘공식’까지는 풀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말 이름이 좋아‘또는 ’오늘 날W에 맞는 숫자로‘ 막연히 하나를 찍어봐야 돈만 버리기 쉽다. 따라서 비록 감각적인 수준이라 하더라도 결론이 얼른 떠오르지 않으면 그 경주를 포기하고 다음 경주를 위한 ’수학 풀기‘ 에 들어가는 것이 공연한 낭비를 피하는 길리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왜냐하면 1등 예상말이 정해야져야 ’논리가 있는‘ 베팅 조합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을 거는 방식은 1등 짜리만 맞히는 단승식, 1·2·3등 중 어느 한 말만 맞히면 되는 연승식, 1등과 2등 두 말을 순위에 관계없이 적중시키면 되는 복승식 3가지가 있다. 이 가운데 복승식에 베팅이 가장 많이 걸리는데,u 안전하기로는 연승 ·단승 ·복승식 순이다.

 예컨데 1~10번 중에서 7번이 가장 유력하게 생각되고 1 ,3번이 그 다음으로 예상될 경우(단승식 : 7번 1천원) (연승식 : 7, 1, 3번 1천원) (복승식 : 7-1 1천원, 7-3 1천원)둥의 요령으로 베팅해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한 방식 한 조합만 선택해도 되며 거는 액수는 1백원부터 가능하다. 상한선은 20만원이나 창구에서 신분증을 대조하지 않아 엄격히 규제되고 있지 못하는 실정이다.

 경기 하루 전부터 말과 기수의 출입통제, 경주 때 감시카메라 작동, 사전 사후 도핑테스트 등으로 요즘은 조작의 여지가 거의 없어졌다. 따라서 판단력이 어느 수준에 이르게 되면 대개 상위 3개 말은 50% 이상 맞힐 수 있다. 사람들도 역시 보는 눈은 비슷하기 때문에 배당률은 높지 않지만 그만큼 안전하다는 애기가 된다. 마감 직전까지 30초 간격으로 T퓨터 처리 전광판에 사람들이 어느 번호에 많이 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상배당률이 나오므로 마권을 사기 전 자기 판단에 대』재확인을 하거나 자기보다 다수가 몰린 선』이 더 신뢰성이 있다고 생각될 경우에는 수정, 즉 '커닝'할 기회를 갖기도 한다.

1만원 걸고 7천5백원 건지면 본전
 이렇게만 경마를 즐긴다면 한 경주에 3천-5천원, 하루에 3~4 경주에 참가한다고 할때 1만~2만원어치 마권을 사서 잘하면2~3배 따고, 못해도 5천ll만원 잃고 u는 아주 '이상적인' 결과가 나온다. 이 계산은 현재 경마장 시행제도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곧 마권을 판 총 매출액 75%는 반드시 환불(이익배당)되도록 컴퓨터로 관리되고 있으며, 나머지 25% 중 15%는 마권세 등 각종 세수로 잡히고 10%만이 마사회 운영비로 들어간다.

 경마장에 오는 사람들은 그러니까 75%건지는 것이 곧 본전치기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며, 일은 부분에 대해서 쾌적한 자연 환경 속에서 하루를 재미있게 보낸 값으로 치는 인식을 가지는 게 좋다. 이런 생각으로 주말을 보내러 온 가족들에게는 경마도 경마지만 경마장 주변 부대시설인 어린이 무료 승마장 ·잔디밭 놀이터 · 인공폭포 · 조류 사육장 등을 돌아보는 즐거움이 더 크게 느껴질 것이다.

 선진국의 예로 보아 경마 인구의 증가 오질적 도약은 국민소득 5천달러가 분기점o라고 한다. 여전히 도박이 주목적인 '저질팬들이 많은 것이 우리 현실이지만, 주말이면 돗자리를 펴놓고 도시락을 먹는 가족들이 부쩍 늘어난 요즘 과천 경마장의 모습은 어떻게 보면 밝은 전망을 갖게 하는 것이7도 하다. 이들은 "2만원 들고 와 돈을 따T어쩌다 잡은 행운이요, 잃더라도 그저 말』이 보태주고가는 셈치는" 욕심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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