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의 땅 가난한 기적소리
  • 글 표완수 국제부장 ()
  • 승인 1991.0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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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통일열차 2박3일 탑승기 / 한국 기자로선 처음 사이공-하노이 1천7백㎞ 종단

베트남 최대의 도시 호치민시(구사이공)에서 수도 하노이까지 베트남의 남북 종단 특급 통일열차를 타면 2박3일, 꼬박 48시간이 걸린다. 1천7백30㎞. 서울~부산 거리의 4배이다. 기자는 12월7일 오후 2시5분 통일열차를 타고 사이공역을 출발, 12월9일 오후 2시5분에 정확하게 하노이역에 도착했다.

 통일열차를 타고 하노이까지 가겠다는 취재 계획을 사이공에서 사귄 베트남인 친구들에게 이야기했을 때 그들은 모두 반대의 뜻을 나타냈다. 호치민시 탄빈여행사의 책임자 구엔 둑 한(47)마저 열차여행을 반대했을 때는 항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도가 많아 위험하다”

 “무엇 때문에 안된다는 것이냐. 여행허가증도 이미 받아놓지 않았느냐.”

 “열차 안에서 습격을 당하거나 물건을 도난당할 우려가 있다.”

 “베트남은 사회주의국가 아니냐. 사회주의 국가의 열차 안에서 강도가 웬말이냐.”

 “사람들이 못살아서 할 수 없다.”

 ‘통일열차 2박3일’은 도 민 투안(37)과 그의 부인 왕 킴 완이 동행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12월6일 호치민시 북동부 하이바쭝 거리의 한 식당에서 우연히 만나 인사를 나누게 된 그들은 이튿날 열차편으로 하노이에 돌아갈 계획을 갖고 있었다.

 차표는 사이공에서 하노이까지 일등석 기준으로 외국인이 미화 1백9달러, 내국인이 40달러이다. 투안부부는 좌석 2개를 혼자 쓸 것을 권유했다. 일등석의 경우 객실 하나를 네명이 쓰도록 도어 있어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아야 외국인에게 그만큼 안전하리라고 그들은 생각했던 것이다.

 투안은 2백18달러가 아니라 80달러에 차표 두장을 내게 사준다. 내국인 가격이다. 그리고 내게 베트남사람인 척하고 말을 하지 말라고 일러준다. 차표 위쪽에 ‘퉁냣(Thon Nhat?통일)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역 이름은 지금도 사이공이다. 열차는 탄손누트공항에서 약 3㎞ 떨어진 호아흥(Hoa Hung)에서 출발한다. 사이공역이 약 2년전에 거기로 옮겨졌단다.

 역사는 정말 낡고 찌든 건물이다. ‘버려진 도시의 역’같다. 개찰구 직원이 내게 뭐라고 말을 한다. 나는 떠밀리는 듯 말없이 지나가고 대신 완이 뭐라고 대꾸한다.

 역사를 빠져나가 플랫홈 쪽으로 나서니 장사꾼들이 물건을 사라고 외치는 소리가 소란스럽다. 예닐곱살밖에 안돼 보이는 어린아이들도 있다. 열차 좌석에 앉아 객실의 문을 닫았는데도 문을 밀치고 들어올 기세다. 투안과 완이 뭐라고 지껄이자 그들은 내가 듣기에도 욕설이 분명한 무슨 소리를 내뱉고는 도망친다. 역사의 스피커에서는 계속 목쉰 소리가 울려댄다. 내용을 물으니 소지품 조심하고, 차에 매달리지 말라는 것 등 주의사항들이란다. 열차 안은 굉장히 무덥다. 객실 천정에 선풍기가 하나 매달려 있으나 돌아가지 않는다. 결국 완이 부채 두개를 사서 하나를 나에게 건네준다. 사이공대성당 앞 노천시장에는 크리스마스카드와 트리가 빽빽이 들어차 있는 이시간에 나는 사이공역의 하노이행 통일열차 안에서 부채질로 더위를 식히고 있다.

 

녹슨 철교 아래 붉은 강물

 12월7일(금) 14시 : 출발시각인 오후 2시가 되었는데도 열차는 움직이지 않는다. 넝마같은 옷을 걸친 아이들이 포르노잡지, 담배, 귤, 바나나 등을 들고 열차 안을 누비고 다닌다. 마침내 2시5분에 열차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녹슨 선로 위에 방치된 못쓰는 객차들의 모습에서 베트남전쟁 종전 15년 세월과 전쟁의 상흔이 동시에 느껴진다. 15년 기간은 통일의 세월이기는 했으나 그것은 동시에 베트남 사람들에게 가난과 정체의 세월이었다. 통일열차가 계속 경적을 울린다. 사이공의 변두리 지역 철길 옆에는 바나나 나무와 아자수가 빽빽하다.

 붉은색과 검은색의 디젤기관차가 끄는 통일열차에는 10칸의 객차가 연결되어 있다. 객차는 모두 ‘국방색’. 내부구조는 우리의 것과 완전히 달라 약 70㎝ 폭의 좁은 통로가 한편에 나 있다. 그리고 객차 한칸에 9개의 객실이 있다. 1등실은 승객 4명, 2등실은 6명이 타고 3등칸은 승객 제한이 없다.

 회색 유니폼에 붉은 완장을 두른 남자 승무원이 문을 열고 들어와 스위치를 올렸다 내렸다 하며 선풍기를 돌려보려고 한다. 선풍기는 움직이지 않는다. 승무원은 땀을 닦으며 그냥 나간다.

 14시10분 : 붉은 완장을 두른 남자 승무원과 남색 제복에 모자까지 쓴 승무원이 열차를 돌며 차표 조사를 한다. 나는 베트남 지도를 살펴보고 있고 투안이 그들에게 차표를 보여주며 뭐라고 설명을 한다. 차표 조사를 마친 그들에게 완이 귤 몇 개를 권한다. 껍질은 파랗지만 속은 노랗게 익은 것들이다. 그들은 끝내 사양하고 나간다.

 2시18분 열차가 멎는다. 뒤로 약간 흐르더니 멈춰선다. 창밖을 내다보니 역은 아니다. 철길 옆으로 바나나나무와 야자수가 울창하다. “우리는 48시간 후 하노이에 도착한다”는 말을 투안이 다시 내게 한다. 열차안에서의 2박3일은 하노이 사람인 그에게도 힘겨운 여정인가 보다.

 2시22분에 열차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완이 머리가 몹시 아프다고 한다. 내가 가방에서 바이엘 아스피린 10알을 꺼내준다. 2시30분에 열차는 사이공강 철교를 지난다. 철교 난간은 지독하게 녹슬어 있고 강물은 벌겋다.

 14시40분 : 회색 유니폼의 남자승무원이 다시 와서 선풍기를 돌려보려고 한다. 이번엔 부속품까지 가지고 왔다. 그러나 선풍기는 끄떡도 않는다. 열차 안에서 사람들은 못쓰는 물건은 모두 차창밖으로 내던진다. 투안이 빈 맥주캔을 버린다. 나도 따라 창밖으로 던진다. 2시55분에 역이 아닌 곳에서 열차가 다시 멈춰선다. 남자승무원이 수리공을 데려왔다. 선풍기를 끝까지 고칠 모양이다. 열차가 다시 움직인다. 강아지풀이 무성한 들판을 지난다. 3시경에 결국 선풍기를 고쳐낸다. 시원한 바람이 쏟아져나온다. 완이 그들에게 맥주를 권한다. 그들은 사양한다. 근무중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투인이 나의 담배를 집어 그들에게 권한다. 담배는 좋다고 한다.

 열차는 계속 달린다. 요동이 매우 심하다. 갑자기 평지에 묘원이 전개된다. 묵은 비석들이 서있다. 논밭이 보이고 들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띄자 투안은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한다. “베트남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다‘고.

 

“부시는 매우 소심한 사람”

 투안은 고르바초프(소련 대통령)를 세계 제일의 정치지도자로 생각하고 있다. 반면 부시(미국 대통령)는 매우 소심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고르바초프는 지금 슬프다.” “왜 그런가.” “소련사람들이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 “아니다. 소련사람들은 옐친을 좋아한다.”

 열차는 들판 위를 계속 달린다. 익은 벼를 베어 논 위에 세워놓았다. 그 옆에서는 파란 벼가 자라고 있다. 몸통이 하얀 나무가 약 2m 높이로 줄지어 서있다. 곁가지 없이 위로 곧게 뻗은 그 나무를 투안은 ‘산’(San)이라고 설명한다. 쌀이 없을 때 그 뿌리를 먹는다고 한다. 많이 먹으면 술마신 것처럼 어질어질해진단다. 작은 마을을 지난다. 웃통을 벗은 아이들이 제기차기 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 지방에선 돼지를 놓아 기르는지 동네에 돼지들이 돌아다니는 게 눈에 많이 띈다. 어느 집 안으로 들어가려는 돼지를 끌어내느라 한 아낙네가 돼지 꼬리를 뒤에서 잡아당기고 어린 아이들이 돼지 몸뚱이를 잡아끄는 광경이 보인다.

 17시5분 : 6시~7시 사이에 가져오라고 완이 주문했던 저녁식사를 5시 조금 넘으니 가져온다. 남자 승무원 셋이서 양동이를 들고 다니며 밥과 국과 반찬을 배식한다. 이빠진 사기 접시에 쌀밥을 고봉으로 잔뜩 퍼준다. 우그러진 양재기 2개를 준다. 한쪽에는 말간 국이 절반쯤 담겨 있고 다른 그릇에는 반찬이 들어 있다. 닭조림 두 덩어리와 두부부침 한 조각, 그리고 파란 완두콩을 삶아 간한 것이 담겨있다. 포크는 스테인리스 제품이지만 스푼은 양철로 된 찌그러진 것이다. 저녁식사를 하려고 하니 열차의 요동이 더욱 심해진다. 우리 셋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린다. 식사는 그런 대로 먹을 만하다. 5시가 지나면서 이따금 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저녁식사를 마치니 태양이 멀리 산마루에 가까워지고 하늘에 구름이 보인다.

 객차 앞쪽에 있는 화장실은 정말 낡은 시설이다. 창쪽 한구석에 누렇게 더께가 않은 망가진 좌변기가 있고 반대편 벽에 세면기와 수도꼭지가 붙어 있다. 물이 나오는게 다행이었다.

 18시50분 :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역에서 열차가 멎는다. 소란한 소리와 함께 장사꾼들이 몰려든다. 50~60년대의 한국의 시골역 풍경과 똑같다. 플랫홈 이곳저곳에 모판이 놓여 있고 모판 위에는 포도 바나나 등 과일과 찜닭 국수 등이 쌓여 있다. 그 옆에 불빛이 희미한 램프가 놓여 있다. 초라한 역사는 컴컴하고, 까만 하늘엔 수없이 많은 별들이 반짝거린다.

 투안이 가방에서 비닐끈을 꺼내 객실 문의 손잡이를 잡아맨다. 문단속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창유리가 없어져 휑하니 뚫린 문을 끈으로 묶는다고 무슨 소용이 있으랴. 밤이 되니 더위도 한풀 꺽인다. 선풍기 스위치를 내렸으나 선풍기는 멎지 않는다. 밤새 선풍기를 켜놓은 채 잠을 자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완이 2층 침대로 올라가고 그 밑에 투안, 투안의 맞은 편에 내가 드러눕는다. 사이공역에서 열차가 움직이면서 여승무원이 가져다준 베개를 베고 담요로 배를 가린다. 머리 위 차창밖에 별들이 촘촘히 박혀있다.

 소란스런 소리에 눈을 뜨니 열차가 멈춰서 있다. 밖은 불이 환한 게 제법 큰 역인가 보다.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소리가 부산하다. 몸을 일으켜 역이름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리니 언제 잠이 깼는지 완이 나트랑이라고 알려준다. 내 귀에는 꼭 ‘냐창’으로 들린다. 시계를 보니 12시40분.

 12월8일(토)5시30분 : 눈을 뜨니 날이 훤하다. 주위에 산이 제법 많이 보인다. 차창 밖을 보니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고 가랑비가 온 것이지 이슬이 내린 것인지 땅이 축축하다. 이른 아침인데도 철길 옆으로 뻗어 있는 1번 공로상에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많이 띈다. 장대 양쪽에 물건을 매달아 메고 다니는데 베트남의 전통적 운반수단인 이것을 ‘돈 간’(Don Ganh)이라 부른다. 공로상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이따금 눈에 띈다. 그런 곳이 다름아닌 시골의 시장이라고 투안이 설명한다. 6시10분에 반칸이라는 작은 역에서 5분간 쉰다. 마을에 교회건물이 보인다. 이른 아침인데도 아이들이 거리에서 뛰어놀고 있다.

 

한국인?베트남인?독일인 한데 모여

 7시에 퀴논에서 멀지 않은 푸캇에서 다시 열차가 멈춘다. 밖이 떠들썩하다. 완이 짐을 지키고 투안과 나는 열차에서 내린다. 물 한 대야씩을 사서 양치질과 세면을 한다. 플랫홈 옆 가게에 앉아 국수를 주문한다. 내 것에는 ‘고수’의 일종인 빈대냄새 나는 야채는 넣지 말라고 특별주문을 한다. 과일바구니를 들고 다니며 하나라도 더 팔려고 애쓰는 시골여인들의  표정이 절박하다. 국수를 말아주고 지폐를 챙기는 아주머니들의 손길이 활기차다. 국방색 제복에 빨간 견장을 단 ‘공안’(공안경찰)들의 모습만 아니라면 이 시골역의 어느 곳에서 공산주의국가의 면모를 엿볼 수 있겠는가.

 투안이 자신은 북한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럼 남한은 어떤가.” “남한은 좋다.” “남한은 이전에 베트남과 싸운 나라인데도 좋은가.” “그건 옛날이다. 과거는 잊어버려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자신이 겪은 창피 때문에 과거를 잊으려고 하지 않는다.” “왜 북한은 싫은가.” “쿠바와 친한 나라다.” 완은 남북한 축구에 대해 신문에서 읽은 일이 있다고 말한다. 양측 선수들이 유니폼 셔츠를 바꿔 입은 게 참 재미있다고 말한다.

 9시15분 : 앞칸에 미국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보니 금발의 백인남성 한명이 베트남 사람과 술잔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는 자신을 서독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지금은 그냥 독일사람 아니냐니깐 맞다며 반가워한다. 루츠 베벤되르퍼라는 이름의 그 독일인은 이번이 두 번째 베트남 여행인데 사업일로 후에에 간다는 것이다. 그는 나름대로 베트남의 미래를 점친다. 1~2년 지나야 본격적인 개방이 이루어지고 3~5년이 지나야 개혁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그이 맞은 편에 앉아 있던 베트남 남자가 내게도 베트남 소주 한잔을 권한다. 그래서 독일인과 베트남인과 한국인은 술잔을 부딪친다. “베트남의 내일을 위하여!”

 비는 계속 내린다. 쾅나이지방에 가까워지면서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염전이 자주 눈에 띈다. 열차가 서행하더니 멈춰선다. 창밖을 내다보니 사람들이 철길 보수작업을 하고 있다.

 통로에 나가 창에 몸을 기대고 연변풍경을 바라본다. 옆에 서있던 사람이 담배 한대를 권한다. 영어가 유창한 사람이다. 구월남군 공병소령 출신으로 이름은 이 두옹홍(60). 통일 후 9년간 재교육센터에 갇혀 있다가 84년에 석방됐다고 한다.

 11시40분 : 점심식사를 벌써 가져온다. 투안이 웃으며 손짓과 표정으로 신호를 보내온다. 승무원들이 빨리 일을 끝내고 낮잠자려고 이렇게 일찍 서두르는 것이라고. 접시밥에 말간 국 하나, 그리고 삶은 달걀 1개, 쇠고기 조림, 생숙주나물과 ‘낑깡’처럼 생긴 나무 열매에 간한 것이 반찬으로 나왔다. 나무열매는 ‘카’(Ca)라고 하는데 자신은 그것을 매우 좋아한다고 완이 말한다.

 12시  3분에 열차는 출라이를 지난다. 미군이 많이 있던 곳이라고 투안이 설명한다. 철로 근처의 가옥들은 모두 야자수로 둘러싸여 있다. 12시20분에 디엠포를 지난다. 투안이 디엠포와 탐키 사이에 위치한 누이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여기서 과거에 베트남군(월맹군)과 한국군이 일대 접전을 벌였다고 한다. 그 이전까지는 베트남군이 한국군을 두려워했으나 이곳에서 벌어진 육박전에서 수많은 한국군이 전사한 뒤 한국군을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후 베트남군은 미군과 한국군에게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는 게 투안의 이야기다.

 13시40분 : 눈을 뜨니 창밖에 여전히 가랑비가 뿌린다. 다낭이 가까워지면서 긴팔옷과 짧은 소매가 함께 보인다. 열차 안에도 스웨터를 꺼내 입은 사람들이 있다. 머리에 커다란 짐을 인 노파가 철길 아래 좁은 길 위를 걸어온다. 이내 뒤로 멀어져가는 노파의 맨발바닥이 안쓰럽다.

 14시40분 : 사내아이들 대여섯명이 바나나 나무 껍질을 막대기에 꿰어 돌리는 놀이를 하고 있는 마을을 지나 열차는 우리 한국인의 귀에 익은 다낭에 도착한다. 북위16도선상에 위치해 남북으로 길게 뻗은 베트남의 한가운데 자리잡은 해안도시 다낭. 이곳에서 20분간 정차한다는 스피커소리가 울린다. 완에게 가방을 부탁하고 플랫홈으로 내려간다. 제법 큰 도시의 역답게 역안에 가게들이 즐비하다. 역사에 붙어 있는 가게에는 옷가지와 과자, 사탕류도 보이지만 플랫홈 위에 있는 대부분의 가게의 공통품목은 333캔맥주, 국수, 삶은 닭다리, 구운 밀가루빵, 삶은 달걀, 커피, 음료수 등이다. 과일류는 아낙네들과 소년들이 바구니에 넣어가지고 다니며 판다. 오전에 통로에서 만났던 구 월남군 공병소령 출신 홍을 만나 함께 커피를 마신다.

 객실 안으로 들어오니 완이 ‘오이’(Oi)라는 과일 하나를 깎아준다. 감귤만한 크기에 껍질이 초록빛이다. 속살이 단단하고 물이 별로 없다. 맛이 떨떠름해서 반만 먹겠다니까 다 먹으란다. 차창을 통해 완이 파파야 한개를 산다. 어른 팔뚝보다 굵은 게 우리 돈으로 1백50원 정도. 지금까지 앞쪽에서 끌던 기관차가 다낭에서부터는 뒤로 가서 위족에서 끈다고 투안이 설명한다. 여기서 앞뒤의 방향이 바뀌는 것이다.

 3시가 넘어서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다낭역을 출발, 그 유명한 하이반협곡을 향해 달린다. 평원 위에 대규모 묘원이 나타난다.

 16시10분 : 열차는 하이반협곡에 들어서고 있다. 협곡 진입 전에 열차 뒤쪽에 기관차가 하나 더 붙는다. 앞에서 끌고 뒤에서 미는 것이다. 협곡은 그만큼 가파르다. 많은 승객들이 통로에 나와 밖을 내다본다. 열차가 터널을 통과한다. 사이공 출발 후 처음으로 만나는 터널이다. 터널을 지나니 오른쪽으로 망망대해가 펼쳐진다. 여기가 바로 남지나해의 서쪽 끝이다. 멀리 비안개 속에 어선 몇척이 한가로이 떠 있다. 4시45분에 세 번째 터널을 통과한다. 완이 통로에 나가 밖을 내다본다. 나는 카메라 셔터를 마구 눌러댄다. 멀리서 독일인 베벤되르퍼도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다.

 우리가 탄 객차담당 트란 녹치(30)가 객실에 들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통일열차는 사이공에서 하노이까지 여섯차례 선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나트랑 다낭 후에에서는 승객들의 승하차를 위해 서고, 나트랑 위에 있는 이우치 동호이 빈에서는 기관차 엔진을 위해 선다는 것이다.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그렇다는 것이다.

 4시50분에 일찌감치 저녁식사를 가져와 우리는 또 한바탕 웃는다. 하이반 협곡의 길이는 20㎞, 한시간을 힘겹게 올라온 다음 내려가기 시작한다.

 

“한국산 인삼을 좋아한다”

 5시15분쯤 협곡은 거의 끝나가는 느낌이다. 오른쪽으로 멀리 저녁 바다가 뽀얗고 기차길 옆으로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초가집 속 희미한 불빛 아래서 사람들이 기차를 쳐다본다.

 7기쯤 되어 후에역에서 차가 멈춰선다. 하늘은 깜깜하고 플랫홈에는 주룩주룩 비가 내리고 있다. 역사의 불빛이 흐릿하다. 사람들이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낙네와 소년들이 비를 맞으며 과일바구니를 차창으로 들어올려 과일을 사라고 외친다. 멀리 역사의 사무실 안에 국방색 제복의 ‘공안’들의 모습이 보인다. 역사의 도시, 문화의 도시, 관광의 도시 후에의 모습은 어둠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완이 무엇이가를 사서 풀어놓는다. 후에의 명물이라며 먹어보라고 권한다. 조청에 참깨를 바른 것 같은 이 네모난 것을 그녀는 ‘메승’(Me Xung)이라고 알려준다. 쫄깃쫄깃한게 매우 달고 맛이 있다.

 저녁 8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밤이 이슥한 느낌이다. 객실 안이 호젓하다. 장거리 여행에 지쳤는지 통로를 오가는 사람들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투안이 나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물어온다. 한국의 어디에 사느냐. 집에는 방이 몇 칸있냐. 아이들은 몇이냐. 자동차는 있느냐. 집은 회사에서 얼마니 멀리 떨어져 있느냐. 월급은 얼마나 되느냐. 그는 한국이 베트남에 투자하고 협력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여러번 강조한다.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산 인삼을 매우 좋아한다. 우리 딸아이에게 사먹이려고 해도 속을까봐 겁이 나서 못산다.” “속는다는 게 무슨 말인가.” “인삼의 약효는 모두 빼낸다음 실속없는 뿌리만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판매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건 불가능 한 일이다. 한국사람들은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한국사람들이 그런다는 게 아니라 장사들이 그런다고 한다.” 우리는 배꼽을 잡고 웃는다.

 투안이 말을 잇는다. “한국은 베트남에 죄를 짓고 있다.” “옛날의 전쟁이야기인가.” “아니, 인삼 때문이다.” “무슨 소리인가.” “베트남의 정치지도자 중엔 고령인 사람들이 많다. 연설문조차 제대로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이 인삼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그들이 그렇게 버티고 있는게 모두 한국산 인삼을 먹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눈물이 나도록 웃는다. 통일열차의 두 번째 밤이 빗속에 깊어간다

 12월9일(일) 6시20분 : 빈에서 5분 쉰다. 귤이 유명한 곳이다. 장사들의 외침소리가 부산하다. 찜닭 귤 국수가 눈에 많이 띄고 여기저기 물을 담아 놓은 대야가 보인다. 세면용 물을 팔고 있는 것이다. 정차 시간이 짧아 화장실에 가서 대강 세면을 한다. 아침식사로 바나나 잎새에 싸인 찹쌀 주먹밥과 순대처럼 생긴 것 한조각씩을 완이 내놓는다. 순대같은 것을 ‘지오’(Gio)라고 가르쳐준다.

 옆으로 보통열차가 지나간다. 객실 안에 짐과 함께 사람들이 빽빽하다. 우리가 탄 통일열차가 특급열차라는 것을 새삼 실감한다. 밭에서 김을 덮는 소녀 둘이 보인다. 곳곳에서 밭을 가는 농부들의 모습. 천연덕스레 소등에 앉아 풀을 뜯기는 예닐곱살짜리 아이들이 보인다.

 9시반쯤에 탄호아 지방에 들어선다.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열차 속도가 빨라지는 느낌이다. 탄호아 못미쳐 작은 개울에서 투망질하는 젊은이들이 보인다.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모녀가 두레질을 한다. 딸 아이는 7~8세밖에 안돼 보인다. 논에서 고기를 잡는 아이들도 있다.

 10시5분 : 탄호아를 지나자 함롱교가 보인다. 미군의 폭격이 치열했던 다리이다. 1백60m의 이 다리를 폭파하기 위해 미군은 무려 7만t의 로켓포탄을 발사했다는 게 베트남당국의 주장이다. 베트남군은 이 다리를 지키기 위한 전투에서 미군기 1백2기를 격추시켰다고 밝히고 있다. 트란 녹 치가 차장과 함께 객실로 들어온다. 차장처럼 남색 유니폼을 입은 사람이 또 한사람 따라 들어온다. 차장은 자기 이름이 두옹 트롱 리엠, 32세라고 밝히고 함께 온 사람도 이 열차의 차장이라고 소개한다. 통일열차는 2박3일을 달려야 하기 때문에 차장이 교대근무를 한다는 것이다.

 “베트남인인 줄 알고 인사못해 미안하다. 통일열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좋다. 승무원들과 승객들의 인심은 좋지만 시설은 많이 개선되어야겠다.” 그는 한국의 열차에 대해 궁금한 게 많은가보다. 한국의 열차는 무슨 색깔이냐, 새 것이냐, 운임은 얼마냐 등을 물어본다. 통일열차의 파란색 내부색깔이 좀 촌스럽지 않으냐는 질문도 한다. 통일열차의 엔진 등 중요 부품은 중국에서 들여온 것이고 내장 등 일반 시설은 베트남에서 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일지 같은 두꺼운 장부를 펴더니 거기에 통일열차를 타본 나의 소감과 요망사항을 적어달라고 한다.

 12시 가까이 되면서 날이 갠다. 어느새 햇볕이 뜨겁다. 가도 가도 논과 밭이다. 하노이가 가까워지면 산이 많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했던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고 있다 베트남군의 전투모로 눈에 익은 둥그런 국방색 모자 ‘무캇’을 슨 사람들이 부쩍 눈에 띈다. 한낮의 무더운 날씨인데도 사람들은 대개 긴소매 옷차림이다. 하노이의 거리와 집들이 보인다. 승객들이 통로에 몰려나와 밖을 내다본다. 낡은 트럭과 지붕위에 짐을 잔뜩 실은 버스가 지날 때마다 먼지가 뽀얗게 피어오른다. 열차는 정확하게 오후 2시5분에 하노이역에 도착한다. 사이공을 출발한 지 48시간만이다.

 하노이역의 모습은 꼭 50~60년대의 서울역 풍경이다. 일렬로 통과하는 출구의 혼잡이 말이 하니다. 역사를 빠져나와 우리 셋은 시클로 2대에 나눠타고 투안이 싸다고 소개해준 호아빈 호텔로 향한다. 호텔 앞에서 투안부부와 작별한다.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그 아이가 영어로 물어온다. “사우드 코리아.” 소년은 알아듣지 못한다. “코리아 모르는가.” 고개를 가로 젓는다. “남주띤”(남조선)하니 그제야 소년의 얼굴이 밝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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