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공 뿌리에 ‘회귀’의 싹
  • 조용준 기자 ()
  • 승인 1991.01.10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씨 하산 계기로 핵심들 결속강화 움직임

지난 30일 全斗煥씨 하산을 계기로 여권 세력구조가 새로운 판도로 조성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全斗煥씨의 백담사 하산에 관한 盧泰愚 대통령의 24일 발언→합당 이후 줄곧 계파모임을 자제해왔던 민정계의 25일 송년모임→27일 개각→전씨의 연희동 복귀 등 가히 기습적이라 할 만한 일련의 수순이 정치권 전체에 경색기류를 드리우면서 여권 내부에도 미묘한 파장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전두환씨의 국회증언 날짜를 89년 마지막 날로 잡았던 여권 핵심부는 이번에도 역시 90년의 마지막을 기해 백담사 하산을 단행, 어수선한 세밑 분위기를 최대한 이용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5공청산에 모든 힘을 기울였던 정치권은 겉으로는 전씨의 연희동 복귀 자체가 그다지 문제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펴왔다.

 민자?평민 양당 의원들은 대부분 “전씨의 국회증언으로 5공청산은 결론이 났으니 전직 대통령이 굳이 산속에서 머물 필요는 없다”는 주장을 펴왔다. 민주당 의원들만이 “입산 자체가 허구였으므로 하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새삼스럽다”고 지적하고 있을 따름이다.

 

하산 이후 5공세력 동향 주목거리

 사실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 전체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하산 그 이후, 즉 전씨를 비롯한 5공세력의 동향이지 하산 그 자체가 아니었다. 특히 ‘같은 배’를 타게 된 만자당내 민주계는 전씨의 하산이 자파에 끼칠 영향을 분석하기에 여념이 없는 눈치다. 민정계가 하필이면 이 시점을 택해 전씨의 하산을 추진한 진정한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다.

 일반의 예상과는 다르게 “전 전대통령이 하루 빨리 자연인으로 복귀하는 것이 이 나라의 장래를 위하는 길이라 생각한다”라는 논평까지 발표, 전씨의 하산을 환영했던 金泳三 대표도 실제로는 전씨의 연희동 복귀를 강력히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대통령의 24일 발언이 나오기 전에 청와대측은 미리 두 김씨의 양해를 구했고, 이 과정에서 평민당의 金大中 총재가 전씨의 ‘정치활동 불가’를 전제조건으로 연희동 복귀를 일찌감치 양해한 반면 김대표는 끝까지 반대의사를 고집했다가 할 수 없이 번의 했다는 것이다.

 김대표가 전씨의 하산은 동의하면서도 연희동 복귀를 반대했던 이유는 전씨의 연희동 복귀를 가장 강하게 반대해왔던 자신의 이미지에 흠이 갈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김대표는 평민당의 김총재가 전씨의 사면을 주장하는 등 정치적으로 먼저 치고나갈 것을 우려하는 주변의 설득에 의해 결국 찬성으로 돌아섰다는 후문이다.

 전씨의 이번 하산이 갖는 첫 번째 의미는 6공화국의 숙제를 또 하나 정리한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전씨 거취문제는 노대통령 자신이 임기 종반기를 맞기 전에 서둘러 해결해야 할 사항이었다. 이 문제를 성공적으로 매듭짓지 못할 경우 자신의 퇴임 후가 불안할 뿐 아니라 바로 곁에다 화근을 두게되는 이중의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5공과의 관계개선이란 의미도 무시할 수 없다. 여권은 올해부터 본격화되는 선거정국을 위해 어떻게 해서든 범여권을 결속시킬 필요를 느끼고 있다. 호남권을 제외하면 지방의회선거에서는 어느 정도 자신을 가질 수 있지만 그 나머지 선거에서는 현실적으로 민자당의 압승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당 지도부의 공통된 견해이다. 따라서 자치단체장선거와 국회의원선거를 치르게 되는 92년 상반기까지의 1년여 동안 여권은 우선적으로 내부 다지기에 주력, 93년의 대통령 선거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될 절박한 사정이다.

 전씨의 하산에서 가장 주목받는 대목은 역시 5공의 정치세력화이다. 그동안 뿔뿔이 흩어진 채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던 5공세력이 일거에 결집, 자생력을 갖는 정치집단으로 변모할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고 봐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같은 민자당내에서도 시각이 서로 엇갈리고 있다. 민주계의 黃秉泰 의원은 “5공은 결코 정치 세력화할 수 없다”고 단언하는 반면 鄭順德 사무총장은 5공의 정치세력화가 당연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물론 權翊鉉 權正達 許文道씨 등이 14대 총선출마를 공언, 지역구 활동에 열심이지만 이들이 5공세력을 결집해 본격적 정치세력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고 보기엔 아직 이르다. 그러나 이들이 전씨의 하산에 크게 고무돼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들이 최근 구 민정당 창당 10주년 기념행사의 대대적인 개최를 계획했던 것도 이런 동향의 한 단면이다. 권정달 구 민정당 사무총장과 민우회(13대 공천 탈락 인사들의 모임), 민정동우회(민정계 원외지구당 위원장들의 모임) 등 소위 5공 소외세력이라 할 수 있는 인사 1천여명이 총망라돼 준비작업을 벌인 이 행사는 원래 1월15일 올림픽 펜싱경기장에서 대규모로 열릴 예정이었으나 청와대와 민자당?백담사에서 모두 만류해 규모를 대폭 축소했다.

 권정달씨는 이 모임의 준비를 위해 지난해 12월 백담사를 비밀리에 방문, 사전 협의를 하기도 했다. 전두환씨는 이 자리에서 “왜 경거망동하려 하느냐. 자제하면서 조용히 기다리라”고 권씨를 심하게 질책했다는 후문이다. 민정계의 朴泰俊 최고위원과 金潤煥 총무도 “조금만 기다리면 적절히 배려하겠다”는 약속으로 이 행사 자체를 취소시키려하고 있어 5공세력의 대규모 집회는 일단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같은 정황으로 미루어 5공세력이 정치전면으로 나서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판단도 나오고 있다. 섣불리 정치적 움직임을 보일 경우 국민감정을 더욱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민자당과 평민당의 견제에 말려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로 추락할 위험성마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이 최대의 역량을 결집할 시기는 14대 총선의 공천이 시작되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5공세력의 구심점이 되고있는 권익현씨와 미국 체류중인 鄭鎬溶씨에게 새삼스럽게 관심이 쏠리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노대통령은 자신의 손으로 ‘처단’하다시피 했던 이 두 인물에 대해 그동안 끊임없이 화해의 몸짓을 보였다. 노대통령은 샌프란시스코 한?소 정상회담 당시 현지에 있던 정호용씨를 극비리에 접촉하는 등 적극적으로 화해에 나선 데 이어 지난해 11월에는 권씨를 특사자격으로 임명해 남미를 돌아오는 길에 정호용씨를 만났고 귀국하자마자 백담사를 방문, 5공세력에 대한 노대통령의 관계개선 의지와 유대감을 충분히 전달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정호용씨 귀국설도 파다

 최근에는 정호용씨의 귀국설도 제기되고 있다. 정씨의 귀국설은 그가 어떻게 해서든 정치권 재진입을 시도하고 있으며 여권 핵심부도 이에 긍정적이라는 사실과 귀국 시기는 자치단체장선거와 14대 총선이 본격화하기 이전에 될  이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즉 대구시장이나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 또다시 TK의 구심점으로 부상할 기회를 노린다는 내용이다.

 국내에 있는 정씨 측근들에 의해 유포되고 있는 이런 가설은 5공세력의 재등장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민정계 일부의 분위기 때문에 아직 확인될 만큼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민정계의 한 중진 의원은 “권익현씨와 정호용씨에 대한 대통령의 태도는 단순한 관리 측면으로봐야지 그 이상의 의미를 달아서는 곤란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전두환씨의 하산처럼 정씨 문제 또한 노대통령으로서는 서둘러 해결해야 될 사항이란 점만은 분명하다. 정씨 측근들은 노대통령이 권익현씨를 통해 ‘특별 메시지’를 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권의 최근 기류는 민정계가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으로 집약할 수 있다. 5공세력에 대한 ‘끌어안기’가 민주계와의 결별에 대처하기 위한 준비작업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민정계가 어떤 형태로든 모든 친위세력을 동원한 새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이에 대한 구체적 해답은 지방의회선거가 실시되는 3월경부터 서서히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