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트리오 키운 어머니 열정 겉만 보면 곤란
  • 김춘미 (음악평론가) ()
  • 승인 1991.0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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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사랑이 바탕돼야

이원숙 여사의 저서 <너의 꿈을 펼쳐라>를 읽었다. 20세기 들어 이땅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를 헤치며 살아온 한 어머니의 수기이다. 학문적?이론적으로 헤아릴 필요도 없는, 한 사람의 삶에 배어 있는 소망이 투지와 함께 얽힌 이야기이다.

 1910년대에 태어나 오늘에 이른 사람치고 이원숙 여사가 겪은 만큼 시련을 맛보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와닿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진다. 또 그 과정에서 맺은 열매가 탐스럽기에 우리는 그것을 고마움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여기에 바로 음악이라는 특수한 대상이 개입된다.

 어려움을 투지로 극복해 성공한 사람은 무수히 많다. 그러나 어려운 때에 당장 먹고 사는 일과 관계없는 음악에 눈을 돌린 사람은 많지 않다. 더욱이 악기를 다루는 일은 오랜 시간과 투자를 요하는 것이어서 아무나 감히 뛰어들기 어려운 분야이다. 그렇지만 완성도를 보일수록 사람들 눈에 잘 띄는 것이 또한 음악이기도 하다.

 

정말 가치있는 것이 무엇인가

 어려운 때에 음악에 눈을 돌린 어머니의 판단이 빨랐고, 오랜시간 뒷바라지를 마다하지 않은 이여사의 자기희생이 있었기에 음악이라는 특수 분야에서 정명화 경화 명훈이 세계에 이름을 떨칠 수 있었다. 물질과 기계를 이용해야 국제적 경쟁력이 생기는 산업부문과 달리 한국인의 정신력과 문화적 능력으로 이들이 이룬 음악적 성취는 더욱 값진 의미를 가진다고 하겠다.

 문제는 이원숙 여사가 아니라 교육열에 들떠 있는 오늘의 우리 어머니들인 듯싶다. 이원숙 여사라고 하는 모델이 자녀교육에 있어 자칫 자녀사랑의 본질적 차원에서가 아닌 외형적 모방의 대상이 될까 우려된다는 이야기이다. 자녀를 위한 일이라고 여겨지면 아무리 험난한 길이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려들 각오가 되어 있는 어머니들이 많다.

 오늘날 주변의 교육 환경을 돌아보면 그러한 사람들을 쉽사리 발견할 수 있다. 골목마다 흔히 볼 수 있는 게 피아노학원이다. 미술학원 주산학원 등등 어린이가 들고 다니는 학원가방이 한두개가 아니다. 우리 어머니들의 교육열이 높은 것은 세계가 다 아는 일이지만 다시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원숙 여사의 책은 본질적인 몇가지 질문을 제시한다. 하나는 정말 가치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다. 사람들은 정당한 이유없이 어떤 것을 다른 것보다 더 가치있다고 결론지어버리는 경우가 흔히 있다.

 가치에 대한 주관적 시각이 정해지면 아이의 재능과 성격이 어떤 분야에 맞는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타당한 근거와 판단기준도 없이 ‘이것이 저것보다 가치있다’고 믿고 그 생각에 따라 그리로 아이들을 몰아넣는 것은 큰 잘못이다. 이원숙 여사에게는 아이의 입장에서 미래를 바라보는 눈이 있었다.

 

인격적 깊이에서 솟아오르는 샘 있어야

 실제로 가치있는 것이 일부 사회에서는 가치없는 것으로 간주될 때가 있다. 두 번째 질문은, 우리가 속한 사회가, 가치라고 믿는 바를 가치없는 것으로 규정할 경우 교육을 통해 그것을 바로잡으려는 투지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자식을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인으로 키우겠다는 이원숙 여사의 가치관이 두렷했던 반면 그 시대와 환경은 그에 상반되는 가치관이 팽배해 있던 시기였다. 이때 자신이 믿는 가치를 정말 가치있는 것으로 만들기로 그녀는 교육의 방향을 잡았고,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어려운 상황도 꿈을 실현시키는 발판으로 만드는 투지를 발휘한 것이다. 이에 반해서 방향없이 쏟아붓는 부모의 열성은 아이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결과를 낳는다.

 이여사가 주는 세 번째 질문은, 과연 우리는 아이들을 진심으로 믿는가 하는 것이다. 아이가 교육받은 이상의 단계로 성장하려면 스스로의 인격적 깊이에서 솟아오르는 샘이 있어야 한다. 단순히 재능을 키워나가고 그것을 발휘하는 정도의 범상함을 뛰어 넘으려면 ‘그것을 왜 해냐 하는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굳게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원숙 여사의 글은, 성장의 토양이 되였던 어머니의 믿음과 사랑이라는 못자리가 인간이 인격을 형성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이렇게 자란 아이가 어른이 됐을 때 다시 ‘우리에게 가장 가치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교육은 저절로 될 듯한 느낌이다.

 

개성을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교과과정

 어린 아이에게 음악은 왜 가치있는 것인가. 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그 아이가 서 있는 자리에서 가치의 수치를 재야 한다. 다음에 그에 따른 교과과정이 있어야 하리라 본다. 수치가 다 다르듯이 과정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현행의 교과 과정과 제도를 그 가치에 부합시키려는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부모는 바로 여기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무엇보다도 부모 스스로가 믿음과 사랑을 지닌 인간이 되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외국의 경우 대부분의 교과과정이 아이들의 개성을 수용할 수 있을만큼 다양하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우리의 권위주의적이고 학벌 중심적인 사고가 그들에게는 덜 중요하게 평가되는 것이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 같으나 실천하기 어려운 우리나라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들이 여기 다 포함되어 있다.

 이원숙 여사의 글이, 우리에게 정말 가치있는 것은 무엇일까를 다시 한번 생각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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