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광고의 진실은 절반의 진실
  • 고명희 기자 ()
  • 승인 1991.0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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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트랄, 랩 선전문구 구매자 혼란시켜…객관?과학적 정보제공 미흡

최근 ‘정보성 광고’가 크게 늘고 있다. 과거에는 상품을 인식시키는 정도에 머물렀으나 소비자의 의식이 높아지면서 단순한 이미지광고 차원에서 한 걸음 나아가 상품의 장점을 나열함으로써 소비자에게 파고들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선동적이어서 오히려 소비자의 혼란만 가중시키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뉴트랄’과 ‘랩’이다.

 ‘컴퓨터 앞의 직업병-오늘부터 사라집니다’ ‘텔레비전을 버릴 것인가? 뉴트랄을 붙일 것인가?’ ‘왜? 뉴트랄이 팔요한가’ ‘뉴트랄을 둘러싼 보도, 한사람의 작은 실수였습니다’ ‘아빠, 우리집 텔레비전엔 언제 뉴트랄을 붙여요?’

 텔레비전이나 컴퓨터에서 발생하는 유해한 전자기파를 중화한다는 뉴트랄의 선전문구이다. 이처럼 과연 뉴트랄이 전자기파를 중화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과학적 해석을 둘러싸고 소비자단체와 업계가 몇 차례 공방전을 치렀다.

 동전 크기만한 뉴트랄은 전자기파가 발생하는 곳에 붙이기만 하면 전자기파가 중화된다는 예방기구로 (주)상용이 수입?판매하고 있다. 그런데 일간지 및 잡지에 실린 뉴트랄광고는 ‘전자기파 중화장치인 뉴트랄을 붙이면 두통 시력장애 백내장 불면증 근육통 피부염 불임증 기형아출산 등 전자기파로 인한 피해를 막아준다’는 내용을 한결같이 담고 있어 전자기파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소비자에겐 황당무계한 소리처럼 들렸던 것이다.

 

뉴트랄은 치료장치 아닌 예방기구

 그러자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은 체신부 전파연구소에 뉴트랄의 효능을 실험해줄 것을 의뢰했다. 전파연구소는 “뉴트랄을 컴퓨터에 붙여 실험해본 결과 붙이지 않았을 때와 똑같은 세기의 전자기파가 방출되었다”는 회신(발신인 하덕용 계장)을 보냈다. 이 사실은 각 일간지가 ‘전자기파 중화장치 뉴트랄, 효능이 없다’는 식으로 보도함으로써 소위 뉴트랄논쟁은 시작됐다.

 체신부 산하 전파연구소는 전자기파 무반향실에 뉴트랄을 부착한 개인용 컴퓨터를 넣고 컴퓨터에서 발생한 전자기파를 3m 거리에서 측정한 다음 뉴트랄을 떼어내 같은 방법으로 측정했는데 전자기파의 발생강도에는 변함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상용은 지난해 12월19일 전파연구소로부터 잘못을 시인하는 다음과 같은 공문을 받았다고 한다.

 제목 : 뉴트랄 시험으로 인한 피해진정회신-민원 01254-2153(90.12.11) 관련.

 1)전파연구소의 시험이 뉴트랄의 효능시험이었는지. 답변 : 전자기파장해검정에 따른 시험이었음. 2)효능시험이었다면 어떠한 내용이었는지. 답변 : 그런 시험이 아니고 법에 규정된 전자기파세기측정시험이었음. 7)…언론보도의 사실 여부에 대하여 책임있는 해명을 하지 않은 까닭은. 답변 : 전자기파장해검정은 주파수 30~1000MHz의 범위에 대하여 전계강도세기의 변화 여부를 측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이외의 사항은 전파연구소에서 해명할 성질의 것이 아님.

 결국 전파연구소는 그동안 각 일간지에서 전파연구소의 실험결과를 인용. ‘뉴트랄, 효능이 없다’는 제하로 보도한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시인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상용이 ‘뉴트랄을 둘러싼 보도, 한사람의 작은 실수였습니다’(<한겨레> 90년10월25일자, <동아일보> 90년10월23일자)라는 제목으로 일간지에 대대적으로 낸 광고는 뉴트랄 성능에 관한 의문을 풀기에는 미진하다는 게 소비자의 평가이다.

 ‘유해전자기파 중화장치’에 대한 소비자의 이해를 돕기보다는 ‘어처구니없는 실험결과’ ‘프랑스 보건성의 공인과 국제발명품 대회에서 금상?은상 수상’ 등의 선동적 문구로 자사 수입품에 대한 선전에 치우치고 있기 때문이다.

 

효능 입증할 만한 객관적 자료 미흡

 방재공의학연구소장 李揆學 박사는 ‘전자기파란 전기에서 나오는 파장’으로 우리생활에 문제가 되는 것은 톱니모양의 파장을 가진 ‘초저주파’라고 한다. 그는 “전자기파로부터 인체를 보호하기 위해 미국 소련 캐나다 스웨덴에 이어 일본이 이미 건강안전기준을 마련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전자기파가 인체에 끼치는 해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라고 말한다. 이박사는 뉴트랄을 붙이면, 매질에 따라 방사선파에서 초저주파에 이르는 광대한 폭의 전자기파에 ‘하이퍼 소닉’이 발생돼 그 파장이 유해전자기파를 변조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박사는 ‘전자기파 중화’란 용어의 사용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한다. 그것은 물리학이나 전자공학적 용어라기보다는 생화학적 용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뉴트랄논쟁 내내 ‘전자기파 중화장치’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주)상용의 朴相準 사장은 “전자기파 자체를 중화하는게 아니라 유해전자기파를 무해전자기파로 바꾸는 것을 ‘중화’라고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렇듯 작은 부분으로 전체를 오도하려는 듯한 수법은 수차례에 걸친 임상실험을 통해 그 효과가 입증된 제품이라는 설명에서도 여전히 반복된다. 그 가운데 ‘국내 임상실험으로 효능 입증’이라는 광고문안의 배경을 알아보자. 89년 12월호 <최신의학지>에 실린 ‘VDT에서 방출되는 전자기파가 흰 쥐의 혈중 Norepinephrine Epinephrine의 농도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의 공동연구자 중 한사람인 이근덕(전 지방공사 강남병원 신경정신과) 박사는 “건강한 흰 쥐 60마리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뉴트랄을 부착한 컴퓨터가 본연의 기능을 잘 수행한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고 했을 뿐”이라면서 이같은 동물실험 결과가 연구목적인 문제제기 차원을 떠나 상업적인 목적으로 인용된 것을 못마땅해했다.

 뉴트랄광고는 지난해 12월19일 열린 공정거래위원회에서 허위과장광고 여부에 대한 심의를 받았다. 선전문구 가운데 ‘백내장 시력장애 불면증 등 치료에 대해 효능이 입증된 객관적인 자료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에 대해 (주)상용은 뉴트랄은 치료장치가 아니고 예방기구일 뿐이라고 반박한다. 박사장은 “뉴트랄은 유해전자기파를 변조시켜 인체에 무해케 함으로써 전자기파로 인한 건강상의 문제를 막아주는 장치이다. 백내장 등 VDT증후군에 대한 치료효과를 제시하라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현재 (주)상용은 이의를 신청하겠다고 벼르고 있어 소비자가 정당한 판단을 할 정보제공은 뒷전으로 미룬 채 뉴트랄논쟁은 장기화될 조짐이다.

 

전자렌지용 시판으로 ‘랩’논쟁 재연

 발암물질 포함 여부를 둘러싸고 86년부터 논쟁이 시작된 랩도 소비자를 오도하는 업체간 싸움의 전형적인 예이다. 랩의 재료와 랩을 만들 때 첨가하는 가소제 및 산화방지제가 발암물질이냐, 아니냐를 둘러싸고 벌어진 이 논쟁은 크린랩의 승리로 끝났었다. 소비자단체인 한국부인회는 세계소비자운동연맹본부가 있는 네덜란드 국가시험소에 ‘랩’의 유해성 여부를 실험해줄 것을 의뢰했다. 그 결과 ‘기준치 이하이긴 하나 염화비닐수지(PVC)에서 강력한 발암물질인 VCM이 검출되었다’는 회신을 받고 이를 발표, 발암물질을 둘러싼 논쟁은 일단 종지부를 찍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폴리염화비닐덴(PVDC)을 사용한 랩이 전자렌지용으로 시판되면서 일단락된 랩논쟁이 재연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11월19일자 <조선일보>에는 ‘대기업들, 전자렌지용? 렌지용 랩이라니요?’라는 문구와 함께 ‘무엇이 옳은가, 마음의 눈으로 판단해보십시오’ ‘자신과 이웃을 위해 진실을 말해주십시오’라는 광고가 실렸다. PVDC제 랩인 럭키의 수퍼랩과 삼성화성의 렌지랩은 PVC 20%에 폴리 비닐리덴 80%을 섞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여전히 발암물질이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이다. 크린랩의 김병인 대표는 “PVDC가 내열온도 1백40℃로 기존 제품보다 약간 높다(PVC 1백30℃, LLD-PE 1백20℃)고 해서 전자렌지에 적합하다는 것은 무리다. PVC의 단점은 그대로 적용된다”고 말한다. PVC를 원료로 랩을 만들던 대기업이 약간 변형시켜 이제는 전자렌지용 랩으로 선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반면 크린랩은 폴리에틸렌(PE)의 단점을  보완하여 만든 LLD-PE랩(선상 저밀도 폴리에틸렌)을 시판하고 있는데 이것만이 전자렌지에 적합하다고 김대표는 주장한다. 그러나 전자렌지에는 가급적이면 랩을 사용하지 말고 꼭 써야 할 경우에는 해동시키는 것으로 만족하거나, 랩과 음식물이 직접 닿지 않도록 음식물을 전자렌지용 그릇에 담은 뒤 공간을 두고 랩으로 덮는 게 올바른 사용법이라고 식품공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소비자는 광고 위한 ‘제물’이 아니다

 식품을 포장할 때 사용하는 랩은 규제기준보다 적은 양이라도 병약자나 어린이에게 유해할 수 있다. 그러나 랩논쟁이 한창이던 89년 당시 문제됐던 5개사 제품(크린랩 싱싱랩 썬랩 유니랩 골드랩)에 대한 상품 테스트를 한 한국소비자보호원 金萬永 연구원은 “안전성에 대해선 모두 규격제품이었다. 이제는 안전성에 대한 논의보다는 사용법에 대한 정보가 필요한 시점”이라면서 각 랩마다 내열온도 투습도 가스투과도 등이 다르므로 식품마다 적당한 것을 선택해 사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PE랩은 투습도가 낮은 반면 가스투과도가 높으므로 야채 과일 생육 등 ‘숨쉬는 식품’에 좋다, 반면 PVC랩은 투습도가 높은 반면 가스투과도는 보통이므로 김치와 같이 물기가 많거나 냄새나는 식품에 적합하다는 설명이다(실험 당시 결과는 63쪽 도표 참조).

 두가지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난 문제점은 우리나라에는 믿을 수 있는 과학적 실험을 할 만한 단체가 없어 소비자의 판단을 돕기보다는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긍정적인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뉴트랄의 경우 전자기파에 대한 각성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랩논쟁은 PE의 단점을 보완하여 산화방지제로 사용하던 화학첨가제를 옥수수유로 대치시킨, ‘무독성 제조공법’으로 만든 LLD-PE랩이 89년 3월 미국의 특허를 따내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우루과이 라운드로 실험을 요하는 많은 제품이 쏟아져 들어올 전망이다. 그때마다 소비자는 시행착오 끝에 얻어내는 작은 성과를 위한 ‘제물’이 돼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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