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치맛바람 법정에 서다
  • 워싱턴 · 김승웅 특파원 ()
  • 승인 2006.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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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협회 등 3개 단체 “의보개혁위 ‘비밀회의’는 위법” 제소

워싱턴에 치맛바람을 일으킨 미국 대통령 부인 힐러리 여사가 피소됐다. 의사협회·의료제도개선위원회·국가법률정책센터 등 3개 이익 단체가 그를 제소한 것이다. 이 중 의사협회는 지난 43년 설립해 회원이 3천여명인 막강한 단체이다.

제소 이유는 힐러리가 72년 제정된 연방자문위원회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이 법률에 따르면 미합중국 연방정부에 자문 역할을 하는 모든 위원회의 모임은 공개하도록 되어 있다. 문제의 발달은 의료보험제도개혁 특별위원장인 힐러리가 일의 완벽한 처리와 보안을 위해 모든 회의나 보고를 극비에 부친 채 혼자 처리함으로써 연관 분야의 이익단체들을 따돌린 데서 비롯했다.

지난 1월25일 특별위원장에 취임한 힐러리는 소관 부처 장관 6~7명과 의료제도 전문가 4백여명을 비상 동원해 의료보험제도를 개혁하기 위해 강행군을 해왔다.

매일 오전 6시30분을 전후해 웃도록 오른쪽 팔 윗부분에 분홍색 리본을 단 의료제도 전문가 4백여명이 백악관 별관 출입문 앞에 모여 차례로 입장하는 모습은 그동안 여러차례 워싱턴 지역 매스컴의 뉴스거리였다.

힐러리는, 의료보험제도가 엄청난 재원 마련을 전제로 한 범국가적 제도인 데다 수많은 이익 단체와 직결돼 있으므로, 4백여명 모두 로비스트들로부터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당사자들에게 누차 강조하고 철저한 보안을 당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료보험제도 개선 방안이 ‘힐러리 사단??에 의해 비밀리에 추진된다는 사실에 대해, 이 제도가 개혁됨으로써 자칫 가장 큰 손실을 입게 될지 모를 의사협회가 발끈하는 것은 미국 사회에서는 자연스런 일이다.

회의를 공개하라는 원고측 요구에 대해 피고인 힐러리측 변호사는 위원회법에 부수된 예외조항, 즉 “연방정부의 정식 국가공무원이나 전임 근무원으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는 회의를 비공개로 진행할 수도 있다??라는 규정을 들어 항변하고 있다.

법원 “힐러리 법적 지위는 공직자 아니다??

이에 반해 원고측 공격은 법리로 무장하고 있다. “위원장인 힐러리가 정식 연방 공무원이냐, 아니면 전임 근무원이냐. 이도 저도 아니라면 그 회의는 공개해야 마땅하다. 만약 공개하지 못하겠다면, 이는 힐러리가 연방 공무원이나 전임 근무자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클린턴 대통령은 ??친인척임명금지법??을 위반한 셈이다.??

한마디로, 위원회법의 예외 조항을 힐러리에게는 적용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여기서 원고측이 물고 늘어지는 대통령의 친인척임명금지법이란, 대통령 친인척을 관직에 임용하는 것을 금하는 법이다. 이는 케네디 대통령이 동생 로버트 케네디를 법무장관에 임명해 말썽이 나자 사후에 만든 법이다.

힐러리에게 관직을 줄 경우 클린턴은 범법자가 되는 셈이다. 원고와 피고 간의 1차 심리는 지난 5일 워싱턴DC의 지방 법원에서 열렸다. 법무성 변호사 제프리 거트만이 힐러리의 변호를 맡았다.

다음은 거트만 변호인의 변호 내용.

“퍼스트 레이디와 세컨드 레이디(부통령부인)는 공무를 수행한다. 이 결과에 따라 엄청난 규모의 국가재정이 결정된다. 따라서 두 사람의 신분은 어디까지나 국가 공무원의 신분과 동등한 것으로 봐야 한다. 두 사람의 역할과 의료보험제도가 갖는 역사적 현실은 미의회에서도 이미 인정한 바이다.??

이 날 심리를 맡은 램버트 판사는 사안의 중요성을 인식한 때문인지 “될 수 있는 대로 속히 판결하겠다??라고만 밝히고 서둘러 폐정을 선언했다. 그리고 폐정 6일 뒤인 지난 12일 다음과 같은 판결문이 백악관 힐러리 집무실과 의사협회에 통보됐다. ??본 법정은 미합중국 대통령 부인의 법적 지위는 공직자가 아닌, 국외자임을 밝혀둔다.??

힐러리의 치맛바람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의료보험개혁안이 지니는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시안이 마련될 때까지 비밀회의의 진행이 불법이라고 보지는 않는다??라고 판결했다. 원고 피고 둘 다 이기고, 둘 다 진 셈이다.

힐러리 개혁안 5월초 개봉

문제가 되는 미국의 의료보험제도는 한국으로 치면 실명제만큼 논란이 심하고, 역대 정부를 괴롭힌 난제 중의 난제다. 미국 의료보험제도의 문제점은 두가지로 압축된다. 빈 독에 물붓기 식으로 엄청나면서도 별무 효과인 의료보험제도와 그로 인한 재정적자, 그러면서도 아직 3천5백만(전체 인구의 7분의 1)이 의료보험 무혜택자들이라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지난 한 해 연방정부의 예산 가운데 16%인 2천5백억달러(약 2백조원)가 의료 혜택비로 나갔다. 그러나 이 액수는 재정적자에 따라 적체된 이자나, 주정부 또는 지방정부에서 지출된 1천1백50억달러의 의료혜택비는 계상되지 않은 액수다.

이것저것 다 합쳐 계산하면 미국에서 ‘의료??라는 이름으로 사라지는 돈의 규모는 92년 한 해에만도 8천억달러로, 미 국민총생산액(GNP)의 7분의 1에 해당한다. 게다가 이 액수는 98년에는 25% 정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엄청난 돈 가운데서 정작 수혜자인 환자나 극빈자, 노인에게 돌아가는 몫은 줄어들고 큰 돈줄기는 방대한 병원 운영비나 의사?변호사 들의 주머니에 쏠리고 있다는 여론이다.

힐러리가 구상중인 의료보험제도 개혁안은 ①중소기업 별로 풀을 이뤄 보험회사를 상대로 보험료를 인하하는 방안 ②캐나다와 유럽에서 실시하는 국민보험제도 원용 ③보험료 일체를 고용주가 전담하는 방안(대신 세금 9% 감면 혜택을 준다) ④보험회사간 경쟁을 유도해 보험료를 인하하게 하는 방안 등 네 가지로 압축된다. 이 중 네 번째 방안을 채택할 공산이 가장 크다. 뚜껑은 의회제출 마감인 5월 초가 되어야 열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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