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 없이 개혁은 없다”
  • 남유철 기자 ()
  • 승인 2006.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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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규제 완화만으론 안돼 政經밀월로 내부 개혁 불가 ‘외부로부터 충격’ 필요

새 정부의 경제 각료들이 인선된 직후 한 일간지는 경제면 서두를 이런 제목으로 장식했다. ‘각종 규제 철폐로 경제 살린다.

이 신문은 기사와 사설에서 새 정부가 밝힌 경제분야 행정규제 완화 정책을 크게 환영했다. “불필요한 규제를 철폐하는 것은 경제효율을 높일 뿐만 아니라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해서도 불가피한 조처??라는 논평이다. 그러나 며칠 뒤 이 신문의 사회면을 보면, 동일한 행정규제 완화 내용을 놓고 ??정부가 환경규제를 느슨하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경제 정책은 양면성을 가진다. 모든 경제 정책은 달성하려면 ‘이익??만큼 ??희생??이 따른다. 성장을 추구하면 물가가 뛰고, 물가를 잡으면 성장이 둔화된다. 그런데 우리 언론은 거의가 하나의 정책을 놓고 경제면 따로 사회면 따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정부는 주요한 경제 정책을 입안할 때 대체로 희생 부문은 묻어두고 이익 부문만 일방적으로 홍보한다. 언론은 행정규제를 풀겠다는 새 정부의 경제 개혁안을 대대적으로 지지했다. 그러면서 그같은 개혁안이 환경과 복지 부문에서 국민과 근로자의 희생을 전제한다는 사실을 그냥 지나쳐 버린다.

상공자원부의 최근 보고서를 보면 기업이 정부에 우선적으로 풀어달라고 요구하는 규제는 대개 환경이나 근로자 복지와 관련한 부문에 집중된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아산의 산림보존 지역을 풀어 하청업체들이 공장을 세울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환경관리자나 안전관리자를 고용하도록 돼 있는 규정도 기업이 해제를 요구하는 대표적인 규제 항목이다. 결국 정부가 현재 추진하는 행정규제 완화는 산림보존 지역에 공장을 지어도 좋고, 공장 부지에 최소 5%의 녹지를 마련할 필요가 없으며, 산업재해를 막기 위해 고용하도록 되어 있는 안전관리자도 둘 필요가 없다는 ‘관용??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국민은 알지 못한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불필요한??행정규제이다. 이것이 생겨난 이유는 물량 위주의 고도 성장 정책 탓이다. 정부는 경제 정책을 주도하면서 자유로운 시장경제 기능을 저해해 왔다. 국민도 고도 성장이라는 ??이익??을 위해 재벌에 성장의 혜택이 집중되는 ??희생??을 기꺼이 감수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과거의 성장 전략이 오히려 성장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 되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이 최근 내놓은 정책 보고서는 이같은 상황을 잘 압축해 설명한다. ??개발 초기에 마련해 그동안 정부가 구사해온 민간에 대한 각종 규제가 이제는 성장을 제약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고 있다.?? 정부가 주도한 경제 정책에서 나온 후유증을 정부가 주도하는 개혁으로는 고칠 수 없다. 정부가 개혁하겠다고 쏟아내는 각종 정책은 또다시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다.

정부 지원=행정규제

정부의 모든 활동은 그것이 지원이든 규제든 기업에는 행정적인 간섭으로 나타난다. 중소기업들이 “지원을 안해줘도 좋으니 정부는 가만히 있어만 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 사장이 한 명 자살하면 언론이 여론을 부추기고, 정부는 지원대책을 쏟아낸다. 그 대책이란 것이 결국은 행정규제이다.

재무부에서 중소기업 관련 업무를 다루는 한 과정은 중소기업 지원책을 설명하면서 “사업 전망이 밝고 경쟁력은 있으나 설비자금을 조달하는 데 애로를 겪는 유망 기업을 발굴해 2천5백억원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유망 기업??을 ??발굴??해 2천5백억원을 ??지원??하고 있다는 말을 뒤집으면, 관료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유망 기업으로 선정되지 못한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피해를 보았다는 말이 된다. 정부가 누군가를 선별적으로 지원한다는 것은 한 시장 안에서 경쟁하는 다른 누군가로부터 공정히 경쟁할 기회를 빼앗는 행위이다. 정부가 시장에 직접 간섭하는 이런 행위가 우리 언론에는 ??정부 지원책??이란 이름으로 미화되어 나타난다.

정부가 여신을 직접 관리하는 ‘관치 금융??은 새 정부가 개혁 대상 첫 순위에 올릴 만큼 우리 경제에 부담을 주어온 ??한국병??이다. 일본 노무라연구소 스즈키 요시오 이사장은 최근 《시사저널》과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 경제가 도야하기 위해 풀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로 민간 경제에 대한 정부의 간섭이 없어져야 한다는 점을 꼽았다. 그러나 정부가 ??시장 개입??에 대한 개념을 분명히 이해하고 있다는 징후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재무부 과장이 중소기업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2천5백억원을 특정 기업에 대출하라고 은행에 지시하는 것은 금융시장에 대한 간섭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지원책??과 ??행정규제 완화??를 동시에 내놓으면서 금융을 자율화하고 민간 경제를 활성화하겠다고 말한다.

최근 서울을 방문한 노무라연구소 關志雄아시아조사실장은 “언론이 이런 모순을 지적하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는 아마도 이런 모순을 지적하려는 전문가가 드물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한다. 서울에서 ??신한국 경제??를 조망하고자 여러 학자를 만나 본 관실장은 ??한국 경제학자들은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정부출연 연구소 소속과 재벌 입장을 대변하는 민간 경제연구소 소속 두 그룹으로만 나누어지는 것 같다. 모두가 다 비슷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이다??라고 지적한다. 제3의 견해를 밝혀야 할 학계에서는 실물 경제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무슨 미덕처럼 되어 있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경제관계 정부출연 연구소의 한 연구위원은 ??언론과의 인터뷰 내용조차 사전에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이 관변 학자의 현실이다.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자유롭게 말한다는 것은 아직은 먼 미래의 얘기다??라고 말한다.

칡덩굴처럼 얽힌 행정규제는 공룡처럼 비대해진 정부의 비효율성을 보여주는 빙산의 일각이다. 행정규제를 완화하는 것만으로 관치에 병든 민간 경제가 자유스러워지고, 시장 경제 기능이 활성화할 수는 없다. 과다한 행정규제는 ‘관치 경제??라는 중병의 증세이자 원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출연 경제연구소의 또 다른 연구위원은 ??관료 체제를 개혁해 민간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생각은 바랑부터가 틀렸다??고 지적한다.

“체제 개혁해야 관료 의식 개선된다??

우리나라 관료들은 자기도 깨닫지 못할 만큼 뿌리깊은 ‘관 주도??의식에 젖어 있다. 정책 분야를 맡은 관료들이 직접 글을 쓰고 만드는 월간 경제전문지 《나라경제》를 읽어보면 온통 ??적극 지원해 나갈 것이다??혹은 ??계속 지도할 계획이다??같은 문구로 가득차 있다. 민간 경제연구소의 한 연구위원은 ??공무원들의 ??과도한 애국심??이 가장 큰 문제??라고 꼬집을 정도이다. 종합상사의 한 중견 간부는 ??관료의 의식을 개선할 수 있도록 체제를 변혁하는 일이 중요하다. 3백개의 서류를 하나로 줄인다 해도 그것을 처리하는 사람이 시간을 끌면 아무 소용이 없다??라고 지적한다.


한국에서 공장을 하나 지으려면 우선 창업과정에서 23개 법률에 의한 38개 인·허가 절차를 밟아야 한다. 창업 절차를 마치고 공장을 짓는 데만 다시 21개 법률에 의한 43개인·허가를 받도록 되어 있다. 공장을 짓고도 영업활동 단계에서 기업은 다시 48개 법률에 의한 각종 행정규제를 받는다. 그러나 이렇게 규제 법률이 많다는 그 자체가 기업에 부담을 주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경우 기업을 설립하는 데 갖춰야 하는 서류는 모두 3백25가지로 3백12가지인 우리보다 더 많다.

업계가 하소연하는 진짜 문제점은 행정을 처리하는 속도에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만에서는 기업을 설립하는 데 따르는 행정처리 일수가 1백75일이다. 한국에서는 무려 1천5일 걸린다. 경실련은 지방 기업의 경우 4천80일까지 걸리는 예가 많다고 주장한다. 대만에 비해 행정처리 속도가 최고 23배나 느린 셈이다. 우리보다 서류를 많이 요구하는 일본도 처리 속도는 우리보다 훨씬 빠르다. 우리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4백92일인 것이다. 姜哲圭 교수(서울시립대·경제학)는 “규제해서 먹고 사는 사람이 수만명이다. 이 부문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없이는 논의만 무성하다가 끝나고 만다??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과거부터 논의만 무성하다가 유야무야된 것이 행정규제 완화였다. 언론과 국민은 벌써 잊어버렸지만, 노태우 정부도 개혁이란 이름 아래 추진한 적이 있다. 지난 90년 5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행정규제완화위원회가 발족되었고, 업계 여론을 수렴한다면서 민간 자문위원회까지 발족시켰다. 그러나 규제가 완화되기는커녕 이번의 새 정부가 개혁의 핵심 대상으로 삼을 만큼 악화되기만 했다. 이름 밝히기를 거부한 한 전직 경제각료는 “위원회나 설치해 가지고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는 것이 행정규제 철폐??라고 단언한다. 姜慶植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이사장은 역대 정권마다 이 일에 성공하지 못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정부 안에서도 정부 규제 완화라는 총론에는 찬성한다. 그러나 막상 개별 법규에서 구체적인 규제 조항을 없애는 각론에 들어가면 얘기가 달라진다.??강이사장은 ??이는 규제 권한을 가진 행정기관이 그 권한과 ??영역 지키기??에 대해 미련을 갖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한다.

그가 우려하는 부처간 이권 싸움은 새 정부 안에서도 벌써 나타나고 있다. 민자당과 상공자원부는 현재 각종 규제를 획기적으로 풀어주는 특별법을 만들자고 하고, 통제력을 유지하려는 경제기획원과 건설부 등 규제 부처는 개별법을 개정하자고 맞선다. 한 전직 경제관료는 이렇게 말한다. “정부 조직은 각기 관련 산하 단체와 이익 단체를 갖고 있다. 쉽게 말하면 자기 고객이 있다. 이런 이권 관계를 끊는 일을 행정부가 스스로 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그 자체가 너무 순진하다.??

한국 경제가 활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민간 경제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간섭이 없어져야 한다. 정부를 포함해 경실련부터 재벌을 대표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에 이르기까지,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공정한 경쟁과 자율을 보장하는 시장경제 기능을 활성화하라고 한결같이 말한다.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 시장기능을 활성화할 수 있는냐 하는 현실 방법론이다.

미국의 경제지 <윌 스트리트 저널>은 최근 우리나라 정부나 재벌이 국민에게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는 한 방법론을 소개했다. “정경유착은 한국 사회의 거의 모든 부문에서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고 있다. 정부의 과다한 규제는 부패와 사행심을 조장하는 근원이 되고 있다. 정치권과 재벌이 나누어 향유하는 이런 이권관계 때문에, 내부로부터 개혁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시장개방과 국제화를 통해 한국 경제를 외부의 경쟁에 노출하는 길만이 유일하고도 현실적인 해결책이다. 한국 경제는 ??외부로부터 충격??이 필요하다.?? 이글은 대외경제정책연구원 洪裕洙 연구위원이 얼마 전 워싱턴에서 발표한 글인데, 이를 <월 스트리트 저널> 이 전재한 것이다.

국가경영전략연구원 강경식 이사장은 80년대초 재무부장관으로 있을 때 금융실명제를 추진했다 좌절한 경험이 있다. 그는 “경쟁과 변화에 대한 두려움, 규제로 인해 보는 이득과 편함을 누리는 세력이 있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개혁을 못하고 있다??라고 지적한다. 그는 ??개혁을 하지 않을 수 없도록 ??강요하는?? 길을 열어가야 한다. 그러자면 개방이 개혁의 가장 큰 줄기가 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강이사장은 재벌은 정부의 동업자이므로 정부의 힘을 가지고 하는 개혁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경실련 운동에 참여하는 강철규 교수도 ??이런 생각은 김영삼 정부의 개혁 논의에는 들어가 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시장 개방이 가져오는 시장경제 기능과 활성화로 이익을 보는 계층은 정치권이나 재벌이 아니라 국민과 소비자이다. 그래서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소리가 우리 사회에서는 이렇게 작다.

가) 개혁을 주장한 김영삼 대통령과 이경식 부총리가 어떤 경제관을 함께 가졌는지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이 없다.**********

개혁이 성공하려면 경제 각료들의 생각이 같아야 한다. 그러나 임명 과정에서 그들의 경제관이 무엇인지는 거론조차 안됐다.

한국서 기업을 세우는 데 걸리는 행정치리 일수는 1천5일이다.

지방에서 4천80일까지 소요된다.

대만은 1백75일에 불과하다.

“행정규제로 이득과 편함을 얻는 세력이 있어 개혁을 못해왔다. 따라서 개혁을 할 수밖에 없도록 ??강요하는??길을 열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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