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개혁, ‘저항’ 타넘을까
  • 장영희 기자 ()
  • 승인 2006.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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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부터 부동자금 채권집중 등 이상기류…자율화·개방 실시되면 더 큰 변화 예상

개혁은 이제 겨우 한발 내디뎠을 뿐인데 금융시장은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다. 시중의 부동자금이 대거 채권에 몰리는 이상현상이 금융시장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금융기관 창구에서는 공사채형수익증권·양도성예금증서(CD) 등 고수익 상품과 주택 채권·지하철채권 등 장기 채권에 돈을 몰려들고 있다. 공사채형수익증권은 지난해 말에 비해 수탁고가 무려 6조원(3월6일 현재)이나 늘어났다. 반면 주식시장에서는 뭉칫돈이 썰물처럼 빠져 나가고 있다. 부동산 시장도 지난달 전국 도시 주택값이 5개월 만에 오름세로 반전하는 등 들썩거리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개혁과는 별개로 금융기관들이 유발한 흔적이 있다. 시중 실제 금리가 11%대로 급락하면서 마땅한 자금 운용처를 찾지 못한 금융기관들이 여유 자금을 다른 금융권의 고수익 상품으로 옮기고 있다. 은행과 단자사는 투자신탁사의 공사채형수익증권에 투자하고 있으며, 투자신탁사는 단자사의 기업어음(CP)을 대량 사들이고 있다. 그렇지만 ‘채권밀물??현상의 원인이 금융기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밀물??에는 금융기관 바깥의 돈이 가세되었다고 봐야 한다. 한국은행의 한 관계자는 ??금융실명제 실시가 기정사실화되고 사정 한파가 몰아닥친 영향을 분명히 받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또 차?가명 계좌의 뭉칫돈이 주식시장을 떠나고 있는 움직임에 대해 대신증권의 한 관계자는 ??사정의 칼날을 피하려는 고위 공직자들의 돈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최근의 돈의 움직임은 개혁에 저항하는 기득권세력의 집단반발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 현상은 금융시장의 본질적 변화와는 거의 무관하다. 금융개혁의 일정표가 아직 나오지 않은 생태여서 획기적 조처가 이루어진 것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주로 공직자 재산공개, 금융실명제 실시 분위기 등에 의해 돈의 흐름이 이상기류를 타고 있을 뿐이다. 정작 큰 변화는 금융개혁 이정표와 맞물려 나타날 것이다.

올 6월말까지 일정표 확정

신경제 1백일 계획이 완성됨에 따라 경제 개혁은 시동이 걸렸다. 특히 금융개혁에 대해서는 당국이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늦어도 6월말까지는 금융실명제를 포함한 금융부문의 개혁 시간표를 짤 것으로 예측된다. 7월부터 시행하는 신경제 5개년계획에도 금융개혁은 최우선 과제로 들어간다.

홍재형 재무부장관은 취임후 첫 직원 조회에서 “재무부가 경제개혁에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재무부의 적극적인 자세는 곧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개혁이라는 보따리 중에서 가장 먼저 풀어 헤쳐질 것은 2단계 금리자유화다. 금융개혁이라는 산을 오늘 때 신발끈을 고쳐매는 일과 같은 게 금리자유화다. 금융시장을 자율과 경쟁의 체제로 가져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가격에 대한 규제를 풀지 않으면 안된다.

금리자유화는 91년 11월 1단계 조처가 단행됐으나 자유화의 폭은 미미했다. 은행권 대출의 10% 남짓이 자유화됐을 뿐이다. 진정한 의미의 금리자유화는 곧 실시될 2단계 조처다. 제2금융권의 대출금리는 1백% 자유화되고 은행권은 정책금융을 뺀 75%의 대출금의 값이 시장원리에 따라 결정된다.

한 은행의 부장은 “요즘처럼 긴장하고 살았던 적이 없었을 것이다??라고 털어놓으면서 비로소 ??금융개혁 불감증??에서 벗어났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0여년간 금융을 개혁하겠다는 소리를 들어왔으나 그때마다 구호만 요란했지 별 내용이 없어 이번에도 시큰둥했다. 하지만 갈수록 뭔가 달라질 것 같은 생각이 든다는 거시다. 이 부장에게 2단계 금리자유화는 실감나는 금융개혁 조처로 여겨질 터이지만 이는 금융개혁의 서곡에 불과하다.

본격적인 개혁 프로그램은 금융산업 개편안과 ‘블루프린트??라고 불리는 금융자율화 및 개방 계획이다. 이 둘은 금융개혁의 양대 수레바퀴다. 금융산업 개편안은 재무부가 새 정부 출범 전인 지난해 11월 금융정책 심의기구인 금융산업발전심의회(이하 금발심)에 연구를 의뢰한 과제다. 금발심은 전문가 18명으로 금융제도개편소위원회(위원장 박영철 금융연구원 원장)라는 특별팀을 조직해 안을 만들고 있다. 최종안은 6월말에 결정되지만 4월초 초안이 나올 예정이다. 금융산업 개편안에는 획기적인 규제 완화, 경영 자율화, 대형화 및 전문화, 업무영역 조정과 소유구조?통화관리?감독체계를 개편하는 등 금융제도의 근본을 뒤흔들 굵직한 내용들이 들어 있다.

금융산업 개편안이 내부 개혁이라면 금융자율화 및 개방 계획은 대외 개방을 주로 담고 있다. 재무부는 늦어도 4월 초에 개방 청사진을 제시하겠다고 미국측에 약속했다. 3단계로 짜인 개방계획은 채권시장 개방, 단기금융시장 완전 개방, 여신관리제도 철폐 등 획기적 내용이 들어 있다. 97년 이후로 잡고 있는 3단계 개방 조처가 이루어지면 돈의 들고남이 완전 자유화돼 국경 개념이 없어지게 된다.

금융제도 개편 과제의 실무사령탑인 재무부 정덕구 저축심의관은 “금융제도를 개편하여 국내 금융시장의 효율화와 경쟁력 강화를 상당히 이룬 뒤에 시장개방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래야 시장개방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장개방 속도가 좀더 빨라져야 한다는 견해도 없지 않다. 이는 현실적 어려움에 근거를 두고 있다. 무릇 개혁이란 대가를 치러야 하는 데다가 현재의 한국 상황은 개혁을 원치 않는 저항세력의 힘이 만만치 않아 개혁 자체가 어려워질 공산을 배제할 수 없는 탓이다. 금융개혁은 내용에 따라 이해관계가 엇갈려 개혁에 반대하는 세력을 일률적으로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벌써부터 개혁을 방해하는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증시가 흔들리고 돈의 흐름이 어지러워지는 현상이다.

“개방이란 외부압력, 개혁에도 유리??

이처럼 내부에서 개혁을 미는 힘과 저항하는 힘이 팽팽히 맞서는 대치상황에서 개방이라는 외부의 압력은 이 힘의 방향을 개혁쪽으로 끌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개방이 실물경제의 경쟁력을 높인 것처럼 금융 등 서비스 부문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조기 개방론자의 주장이다.

저항세력의 반발도 문제지만 금융을 보는 시각도 금융개혁에는 ‘지뢰밭??이다. 그동안 정부와 기업은 금융에 과도한 짐을 지워왔다. 금융자금을 마치 재정자금처럼 여기는 금융기관을 정부 기관같이 취급했다. 기업은 걸핏하면 금융지원을 요구해 모든 정책을 금융으로 풀려고 해왔다. 이 결과 엄청난 정책금융이 생겨났고 상업성을 무시당한 금융시장은 낙후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금융연구원 김세진 연구위원은 ??금융을 제자리로 돌려놓지 않으면 금융개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발상의 대전환이 제도개편 못지 않게 중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새 정부는 빠른 시일 안에 경제활성화를 이루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다. 경기를 띄우려면 정부가 지원을 해야 한다. 그렇다고 지금껏 해왔듯이 금융으로 풀려고 하면 막 터지려는 금융개혁의 싹을 밝는 일이 된다. 새 정부의 절묘한 해법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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