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 북한에 전략 물자 몰래 공급해왔다
  • 남유철 기자 ()
  • 승인 2006.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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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간접교역 의한 석유?쌀 정기적 거래??최초 학인…한?미간 외교 문제 될 듯
극심한 석유 부족과 식량난에 시달려온 북한에게 한국의 재벌 그룹들이 비밀리에 석유와 식량을 공급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시사저널》이 북한 문제에 정통한 국내외 소식통들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몇몇 한국의 재벌 그룹이 석유와 식량을 3국 거래 방식에 의해 거의 정기적으로 북한에 공급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전략 물자인 석유나 식량을 북한과 거래하는 것을 엄격히 금하고 있다. 그러나 국외에서 제3국 중개상을 통해 이루어지는 이같은 간접 거래는 이를 추적하기가 사실상 힘들다. 우리 정부는 이러한 거래 내용을 세부적으로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 탈퇴가 큰 국제적 긴장을 일으킨 상황에서 미국은 곧 이같은 한국 기업의 대북한 간접 교역을 문제삼을 전망이다.

서울에 주재하는 한 미국 외교관은 “한국 기업이 북한에 대해 이같은 전략 물자를 계속 공급한다면, 미국은 이를 외교적으로 문제삼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이러한 거래 내용을 파악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강조했다. 이 소식통은 ??미국은 ??한반도 통일을 방해한다??는 잘못된 인식을 줄 것을 우려해 남북교역에 대한 외교적 접근을 지금까지 극도로 자제해 왔다??고 주장했다.

“보안법 외엔 제재할 법규 없다??

싱가포르의 한 유력한 소식통은 “작년부터 한국의 두 재벌 그룹 종합상사가 북한에 정기적으로(on a regular basis) 석유를 공급해 왔다??고 밝히고, 이같은 사실은 이미 싱가포르 석유시장의 전문 브로커(거래 중개상) 사이에 잘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 기업은 작년 초부터, 또 다른 한 기업은 작년 하반기부터 공급하기 시작했다??고 국제전화 인터뷰에서 밝혔다. 북한이 관련된 석유 거래에 정통한 이 소식통은 ??정확한 양은 알 수 없으나, 주로 중국을 경유해 북한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라고 부탁한 한 미국 외교 소식통은 “한국의 한 재벌 그룹이 인도네시아산 쌀을 수차례 북한에 공급한 것으로 안다??고 주장하고, 한국 기업들이 북한에 석유를 제공했다는 사실도 자기에겐 전혀 놀라운 뉴스가 아니라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쌀 거래가 이루어진 시기를 작년이라고만 밝히고 더 이상 자세한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그는 작년 4월 ??북한에 대한 미국의 밀 수출??이 밝혀져 한국에 충격을 준 듯했으나 그것도 ??사실상의 거래 당사자는 한국의 재벌그룹이었다??라는 사실을 《시사저널》에 처음으로 밝혔다 (9쪽 기사 참조).

북한 문제에 정통한 한 미국 학자는 최근 기자와의 국제전화에서 “베트남산 쌀이 한국 기업에 의해 북한을 수차례 수출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같은 사실을 미국의 ??고위 정보관계자??로부터 직접 확인했다고 말했다. ??거래 당사자는 서류상으로 한국 기업이 아니지만, 거래 대금은 한국 기업이 지불했다??는 것이다.

통일원의 한 관계자는 “만약 이같은 전략물자 거래가 사실이라면 이는 국가적으로 매우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북한과의 전략물자 거래를 구체적으로 금하는 실정법이 한국에는 마련되어 있지 않다. 한국의 영토 밖에서 제3국 중개상을 통해 이루어지는 간접 교역은 현행 국내법으로는 규제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도 북한을 다른 무역 상대국과 동일하게 취급한다는 원칙만을 밝히고 있을 뿐이다.

통일원 관계자는 “법적으로 따진다면 국가보안법 외에 걸 수 있는 실정법은 사실상 없다. 그러나 어떻게 법적으로만 따지는 가. 정부 승인 없이 이같은 전략 물자를 북한에게 공급하는 것은 정부 정책에 명백히 반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법으로 엄격 규제

서울에 주재하는 미국 외교관은 “석유와 같은 전략 물자가 북한으로 들어가면 그것이 어디에 쓰이겠느냐??라고 반문하면서 북한과의 교역에 대한 문제를 규정한 한국 법규가 허술하기 짝이 없다고 지적했다. 현재 북한에 대해 무역제재를 가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 어떠한 형태로든 북한과 교역할 수 없도록 실정법으로 명시해 놓았다. 미국은 현재 미국 시민(영주권자 포함)이나 기업이 북한과의 직접적인 교역은 물론이고 거래를 위한 중개?알선?지원 등 어떠한 형태의 거래관계에도 참여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북한과의 무역에서 어떤 형태로든 이익(benefit)을 본다면 그것이 바로 법 위반??이라고 이 외교관은 강조했다.

한국 기업의 북한 담당자들은 북한이 작년부터 석유와 식량의 공급을 ‘애절하게??요청해왔다고 말한다. 국내 종합상사의 한 관계자는 ??석유는 북한에게 마약과 같다. 그들은 석유만 주면 나중에 무엇이든지 다 해주겠다고 약속한다. 북한이 원하는 물자의 90%는 석유이다??라는 것이다. 자기네 회사는 북한과 석유거래를 한 적이 없다고 부인한 이 관계자는, 남북경협이 본격화될 때 북한에서 유리한 투자조건을 확보하기 위해 국내 기업들이 석유를 공급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정부 모르게 할 수 있다는 게 이 관계자의 주장이다. 그는 자기네 회사도 북한으로부터 끊임없이 석유공급 요청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에 줄 대려 현금 뇌물도

북한과 거래하고 있는 한국의 대기업들은 대북투자가 본격화할 즈음에 대비해 북한과의 ‘줄대기??에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다. 한 관계자는 ??말이 ??남북경협??이지 실제로는 우리 쪽에서 북한에 무조건 물자를 공급하는 양상이다??라고 말했다. 북한과의 거래에서 한국 기업들은 ??신용예치??라는 명목으로 사실상 상당한 ??현금 뇌물??을 주어 왔고, 이러한 기업 간의 경쟁은 더욱 격화되는 추세였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남북경협??은 통일원의 남북간 거래실적 통계에는 물론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작년부터 주 공급국인 러시아와 중국으로부터 석유공급이 중단되면서 북한은 체제가 위협받을 정도로 심각한 석유부족에 시달려왔다. 싱가포르 소식통들에 따르면 북한은 이미 “군대를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석유부족이 심각한 상태이다. 북한이 대외적으로 알려진 두개의 정유공장 외에도 또다른 두개의 군사 전용 정유공장을 비밀리에 운영해왔다고 밝힌 싱가포르의 한 전문가는 《시사저널》에 북한의 군사용 정유공장 위치를 처음으로 공개했다(도표참조). 그는 ??지난 1년간 하루 1만배럴 규모의 이 소규모 정제시설이 거의 가동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런 점에서 북한은 현재 비상 석유 비축분도 부족할지 모른다고 그는 분석했다 (《시사저널》 제136호 ??북한 에너지 공황, 유전개발 박차??, 제166호 ??핵개발 부추기는 북한의 석유위기??, 제170?171호 ??에너지 위기 북한에 팀스피리트 한파??참조).

연형묵 경질도 석유 위기 때문

북한 군부는 용한산무역상사와 매봉무역상사라는 두 회사를 직접 설립해 운영해 왔다. 북한 군부는 이 두 회사를 통해 군에 필요한 석유를 한국 기업으로부터 조달하려 해온 것으로 보인다. 지난 12월11일 전격 단행된 정무원 延亨? 총리의 경질도 그가 석유 위기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점과 깊은 관계가 있다. 국내 대기업 북한 관계자들이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金達玄 부총리가 지난해 이란을 직접 방문해 석유 공급 문제를 논의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고 한다. 지난 88년의 경우에만도 북한은 그들이 도입한 석유의 35%를 이란으로부터 도입했다. 그러나 이란·이라크 전쟁이 종식됨으로써 북한으로부터 무기를 도입할 필요가 없어진 이란은 북한의 석유 공급 요청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산업시설은 대부분 자체조달이 가능한 석탄으로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도록 구축돼 있다. 북한의 석유 소비는 그 70%가 군사용이므로 북한에게 ‘석유 위기??란 곧 ??군사 위기??를 의미한다. 북한이 작년부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석유를 확보하는 데 노력해온 것도 석유 부족이 곧 ??군의 무력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미국이, 중단했던 팀스피리트 훈련을 올해 실시하자고 굳이 고집했던 이유도 북한의 석유위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다.

남쪽에서 팀스피리트 군사 훈련이 진행되면 북한도 이에 대응해 대규모 기동훈련을 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북한이 핵사찰을 받도록 압력을 넣는 가장 효과적인 압력수단으로 팀스피리트 군사 훈련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한 외국 전문가는, 이것이 차후에 감행해야 할지도 모르는 북한에 대한 체재를 고려해, 이번 기회에 북한의 석유보급 한계선을 확실히 파악하고, 남아 있는 전략 비축분도 탕진하게끔 유도하려 한 의도가 있는 것이라고 파악한다.

북한은 올해 재개된 팀스피리트 훈련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이번에 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하면서 북한은 팀스피리트 훈련을 가장 직접적인 이유로 제시했다. 북한은 과거 팀스피리트 훈련에 대응해 비슷한 규모의 훈련으로 맞불놓기 작전을 펴왔다. 그러나 올해에는 준전시 상태만 선포했을뿐 별다른 군사적 움직임을 보이지 못했다.

북한이 당면한 ‘사상 최악의 석유 위기??는 작년 이후 북한이 보여온 행동의 많은 부분을 설명해준다. 북한은 팀스피리트 등으로 조여드는 ??북한 군대의 무력화??압력에 핵확산금지조약 탈퇴라는 마지막 카드로 승부하려 하는지도 모른다. <뉴욕타임스>가 미국 정부에게 무엇보다도 먼저 팀스피리트를 일단 중지하라고 주장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에너지 위기에 철저히 무관심으로 일관해온 우리 정부와 국내 북한전문가들은 이를 전략적 맥락에서 분석해내지 못했다.

북한은 작년부터 한국 기업들에게 석유공급을 ‘애절하게??요청해 왔다. 석유공급원이 끊긴 북한에게 석유 위기는 곧 ??군사 위기??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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