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포탄 맞은 ‘하나회 사단’
  • 정희상 기자 ()
  • 승인 2006.05.10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붕괴냐, 반격이냐





 “그것은 진주만 기습을 연상케 했다. 임기가 남은 군 수뇌부를 사전 언질도 없이 단 하루에 갈아치운 것은 숙청이라는 말로밖에 달리 설명하기가 어렵다.”

 군의 한 고위 관계자는 지난 8일 김영삼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김진영 육군참모총장과 서완수 기무사령관의 군복을 벗긴 조처를 두고 이렇게 표현했다. 취임후 처음 단행한 김대통령의 군 수뇌부 인사는 소폭에 그쳤는데도 군 내부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지난 30년간 육군 수뇌부의 중추를 형성해온 군부내 사조직 ‘하나회’에 대한 대수술의 포문을 연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김대통령은 하나회 군맥 중 최고 실세로 알려진 두 사람을 족집게로 골라 뽑듯 제거했다. 나아가 후임으로 비하나회 출신인 김동진 총장과 김도윤 기무사령관을 기용했다.

 군의 다른 한 관계자는 ‘6월에 있을 정기인사 뚜껑을 열어 봐야알겠지만’이라는 단서를 달면서 이번 조처의 성격과 파장을 이렇게 분석했다.

 “이번 인사는 김대통령이 군부를 장악했음을 과시하고 단호한 개혁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하나회의 핵심에 칼을 들이댄 이상 앞으로 있을 군 개혁에서 하나회 전반에 대한 전면 개편이 뒤따르지 않으면 오히려 김대통령에게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

 육군 조직 요소요소에 포진한 하나회 군맥에 개혁의 칼을 들이대지 않을 경우 새 정부의 개혁의지가 퇴조할 무렵이 되면 ‘대반격’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김진영 전 총장, 인사 불만 터뜨렸다 경질

 김대통령이 하나회 핵심 인물들을 전격 경질하기로 결심을 굳힌 것을 지난 3월5일 육사 졸업식 후에 있었던 군장성들의 ‘회식 사건’때문인 것으로 알려진다. 최근 군장성들 사이에 공공연히 나도는 이 회식 사건에 대해 군의 한 소식통은 이렇게 밝혔다.

 “육사 졸업식이 끝난 후 김진영 총장은 17기 동기생들을 중심으로 한 일부 장성들과 술자리를 같이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그는 김대통령의 인사정책, 특히 국방부장관 기용에 대해 심한 불만을 토로했다고 전해진다. 의전서열 11위이던 소장 출신 권영해 차관을 주로 대장이 맡는 장관직에 전격 기용해 의전서열 1위로 한 것은 군의 위계와 서열을 무시한 참을 수 없는 인사였다는 것이다. 문민정부라니까 차라리 민간인 출신을 장관으로 기용했다면 받아들이겠으나, 군의 특성을 무시한 그런 인사는 용납하기 어렵다는 강도 높은 문제 제기가 있었고, 그 내용이 한 참석자에 의해 김대통령에게 흘러들어감으로써 전격 경질이 결정됐다는 소식이다.”

 신임 권영해 국방부장관이 전례없이 비하나회 출신이라는 점에서 하나회측이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은 충분히 있을 법한 일로 판단된다. 그러나 군장교들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비하나회 출신 일반 장교(장성 포함)들은 권장관을 기용한 것과 기무사 축소를 전폭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이다.

 

‘하나회 사단’ 각계 진출, TK 못지않아

 전방 야전 부대장들이 특히 기무사 개혁을 환영하는 것은 그동안 기무사의 등쌀에 음양으로 피해를 입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기무사는 전방 사단의 각 중대 단위까지 요원을 배치해 부대장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가 하면, 각 사단마다 중령급 기무사 요원이 책임자로 나와 가장 좋은 막사를 짓고는 상전 행세를 해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방 부대장들은 각 사단에 최고급으로 지어진 기무사 막사가 부대로 환원될 때 기무사 기구 축소가 진정으로 이루어진다고까지 주장하는 분위기이다.

 한마디로 숙청이라고 표현할 만한 이번 사건에 대해 육사 출신 한 장성은 군의 현주소와 연결지어 이렇게 말했다.

 “군 수뇌부를 구성해온 하나회 출신 장성들이 과거부터 본연의 임무에 충실함으로써 군부 전체의 자존심을 지켜왔다면 이번 숙청 작업을 군 전체에 커다란 수모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인사로 수모감을 느끼는 군인은 없다. 과거에 하나회 출신 간부들로부터 받은 비하나회 출신 간부의 수모는 그 이상이었다.”

 그는 이어 “대다수 현역 직업군인들은 이 정도 조처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낀다”라며 군에 대한 개혁이 하나회에 대한 전면적인 수술로 이어질 때 군부가 진정으로 단합하는 여건이 마련될 수 있으리라고 내다보았다.

 결국 김대통령은 군에 대한 개혁을 앞세워 하나회 실세로 알려진 군 수뇌부 일부를 제거함으로써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군 전반에서 제기되어온 하나회의 폐해 문제와 맞닥뜨리지 않을 수 없게 된 셈이다. 군 내외의 여론이 전반적으로 하나회 군맥의 실상과 그 움직임을 주시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이다.

 이른바 정치 장교의 온상이라 불리는 하나회가 군 내부에서 기세를 떨치기 시작한 것은 79년 12·12사태까지 거슬러올라간다. 육사 11기 일부가 생도 시절부터 결성해 세력을 확대해온 비밀 사조직인 하나회는 10·26이후 정규 명령계통을 무시하고 사조직 명령계통에 따라 비하나회 출신 상관들을 체포·제거함으로써 쿠데타를 성공시켰다(45~46쪽 기사 참조). 이후 하나회 출신 장교들은 기무사 수방사 특전사 육군본부 합참 등에서 요직을 ‘배턴 터치’하듯이 넘겨받으면서 군 안팎의 눈길을 끌기 시작했다. 하나회 회원들은 육사 각 기수마다 선두그룹을 형성함으로써 이른바 요직과 알짜 병과를 자연스럽게 차지했다.

 군에서는 같은 계급의 장교라도 서열이 있기 마련인데 이 서열에 따라 1차·2차·3차 진급자와 탈락자(예편)가 결정된다. 하나회 회원들은 대부분 자기 기수 안에서 서열 1~4위 안에 들어 동기생보다 빨리 진급해왔다. 현재 군 수뇌부에 포진한 육사 17·18·19기는 서열 1~5위를, 20·21기는 1~3위를 모두 하나회 회원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같은 사정은 학군·갑종·3사 등 비육사 출신 장교는 물론 육사 출신 비하나회 회원에게도 심한 좌절감을 안겨준 것으로 알려진다. 육사 출신이며 하나회 회원이 아닌 한 대령은 육본 인사부서에서 근무할 당시 파악했던 내용을 들어 하나회 회원들의 배타적·독점적 지위 구축을 이렇게 설명했다.

 “알짜 보직인 육본 인사참모부장의 경우 지난 81년부터 전부 14명이 거쳐갔는데 그중 11명이 하나회원이었다. 이 자리는 하나회 회원에게 유리한 인사관리에 적극 이용되는 보직이었다.”

 5공과 6공을 통틀어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을 필요로 하는 참모총장 수방사령관 기무사령관 직에 하나회 출신이 차지했던 비중은 막강했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모두 하나회 창설멤버였으므로 이들 자리는 후배 하나회원들이 독식하는 자리였던 것이다.

 이같은 사정은 현재 군의 요직을 들여다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육참총장과 기무사령관은 이번에 비하나회 출신으로 바뀌었지만 군 최고위층인 이필섭 합참의장(17기·대장)이 하나회 출신이며 역시 4성 장군인 조남풍·구창회 군사령관(각 20기)도 하나회 멤버이다. 현역 3성 장군 중에서는 안병호 수방사령관(20기)과 일선 군단장으로 나가 있는 이태형 중장(19기) 김종배·함덕선·김길부 중장(각 20기)이 하나회 출신이다.

 2성 장군 중 하나회 출신의 포진은 더욱 화려하다. 알짜 보직으로 알려진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에 최승우 소장(21기) 국방부 정책기획관에 최기홍 소장(22기) 합참 작전본부장에 이충석 소장(21기)이 앉아 있는데 모두 하나회 회원이다.

 이같은 인사관행 속에 최근에는 군 내에서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진 인사도 있다. 5공·6공 통틀어 하나회가 독차지했던 특전사령관에 지난해 12월 김영선 중장(19기)이 임명된 것이다. 김중장은 비하나회 출신이다.

 또 육본 작전참모부장도 같은 경우인데, 현재 이 자리는 김정신 소장(갑종 157기)이 맡고 있다. 군 일각에서는 이 두 사람에 대한 인사를 ‘돌연변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그밖에 23기 하나회원 5명은 전원 일선 사단장을 맡고 있다. 준장·대령 계급인 24~26기 하나회원도 대부분 동기생 중에서 선두 그룹을 유지하고 있다.

 하나회의 인맥은 군 내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11기 이후 하나회원들은 각계 요직을 차지함으로써 TK에 못지않은 ‘하나회 사단’을 형성했다. 군시절 비밀결사를 통해 만들어진 인간관계의 뿌리가 정·재·관계 등으로 널리 뻗어나간 것이다.

 

6공 땐 하나회 출신 ‘9·9인맥’이 성골

 6공의 군 수뇌부에 대한 인사는 하나회에 더 보태 이른바 ‘9·9인맥’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는 게 정설이다. 9·9인맥이란 하나회 출신 중에서도 특히 노대통령이 9공수여단장(74년 10월~77년 말)과 9사단장(79년 1월~79년 말)이던 시절 그 휘하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에는 노대통령이 수도경비사령관(79년 말~80년 8월)과 보안사령관(80년 8월~81년 7월)으로 재직하던 때의 참모들도 포함된다.

 현재 9·9인맥으로는 이필섭 합참의장·구창회 군사령관·김진선 육참차장·안병호 수방사령관·최기홍 국방부 정책기획관 등이 군 내에 포진해 있다. 이진삼 전 육참총장·이문석 전 총무처장관·장성득 전 육본인사운영감 등은 최근 예편한 9·9인맥이다. 결국 하나회 출신 9·9인맥이 군 수뇌부를 장악한 가운데 일반 하나회원 장성들이 그 아래 군의 모든 분야에서 중추를 이루는 형국에서 김영삼 정부를 맞은 것이다.

 이처럼 하나회 및 9·9인맥이 군 요직을 독점함으로써 “군대에서는 줄을 잘 서야 출세한다”는 속설을 만들어 놓았다. 비정치 장교들의 불만이 높아지는 것도 바로 이런 데에 있다. 통치권자와의 과거 근무 인연, 비밀 사조직에 가담했는지 여부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는 풍조는 일반 순수 직업군인들에게 큰 위화감을 준 것으로 전해진다. 일반 장교 출신인 한 대령은 “인사 문제를 떠나더라도 하나회 출신 장교가 운영하는 부대에서 사고가 생겼을 때 처리하는 관행을 보면 특혜라는 점이 잘 드러난다. 70년대 초 이종구씨가 전방부대 대대장으로 있을 때 부대에서 10여명이 사상하는 총기 사고가 있었지만 책임자인 그는 무사했다. 박준병씨가 20사단장 때 훈련중 6명이 죽었고, 최평욱씨가 사단장일 때 예하 부대에서 월북사고가 일어났지만 역시 무사했다. 비하나회 출신 장교가 지휘관이었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라고 말했다.


“사조직 장교 1백50명 없어도 군은 이상무”

 20여년간 군 내부에서 중추세력으로 자리잡아온 비밀 사조직은 육사 출신 일반 장교들에 의해서 내부로부터 위기를 맞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해 말 알자회 파문 당시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김진영 육참총장이 비알자회 출신 기수 대표들을 불러모았을 때의 일이다. 김총장이 사태를 원만히 수습하는 데 필요한 의견을 개진하라고 하자 한 장교가 일어나 이렇게 말했다. “총장님께서 이 문제(사조직)를 똑바로 처리하지 않으면 20년후 우리가  총장이 됐을 때 총장님은 역사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육군 최고 지휘관인 참모총장을 상대로 나온 초급 장교의 이 발언은, 군내 사조직이 비정치 장교들에게 얼마나 한맺힌 존재가 되어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군 스스로가 하나회의 폐해를 일소하는 데는 한계가 뚜렷해 보인다. 지난 30년동안 육군의 조직과 질서 구석구석에 뿌리박힌 하나회의 아성이 너무 강고하기 때문이다. 현재 군 내부에서 대부분의 일반 장교가 최근의 수뇌부 인사를 반기는 이유도 이를 사조직 일소에 대한 새 정부의 ‘선전포고’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하나회의 뿌리를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장교들은 그 이유로, 비밀 사조직에 가담한 군인들은 공인 정신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고, 그들이 국방의 중추를 담당할 때 나라와 국민은 불행해진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이들은 나아가 전체 장교 6만5천여명 가운데 하나회 출신 1백50여명이 없다고 해서 우리 군에 결코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강경한 입장이다.

 물론 군 내부에서는 대다수 비정치 장교들의 이런 주장과 궤를 달리하는 시각도 없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하나회원은 육사 출신 중에서도 엘리트급들이 주로 가입했기 때문에 실제 능력이 뛰어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다만 군 내에 사조직을 육성해 정치적으로 이용해온 역대 군 출신 통치권자들이 문제였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군장성 인사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김대통령이 실질적으로 군을 장악하고 군부에 대한 개혁을 이뤄낼 수 있을지는 3개월 앞으로 다가온 군 정기 인사를 보아야 드러날 것 같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