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NP에 녹색 숫자도 써넣자”
  • 김상익 차장대우 ()
  • 승인 2006.05.10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 산출 방식으론 ‘국민총생산’과 ‘생활의 질’ 별개…‘개선’ 논의 활발



 한 나라의 경제를 재는 잣대로 유용하게 쓰는 국민 총생산(GNP)에도 녹색 옷을 입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3월12일 열린 한국환경경제학회 학술발표대회에서 吳浩 成 교수(성균관대·환경경제학)는 “환경오염과 자연파괴가 늘어날수록 국민총생산이 자동적으로 커지게 되어 있다”고 국민 소득 통계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그린 지엔피(Green GNP)’에 대한 연구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총생산은 경제적 진보를 나타내는 지표이다. 그러나 이는 환경오염으로 인해 복지가 감소한다든지, 환경파괴로 자연자본의 재생산 능력이 감소하는 것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예컨대 대기오염 때문에 더러워진 건물의 유리창을 닦아주고 얻은 청소 회사의 소득은 국민총생산에 포함된다. 또 교통체증이 심할수록 기름 소비가 늘어나게 마련인데, 이때 발생하는 유류 추가 판매분도 국민총생산을 키운다. 수질오염을 개선하기 위한 정부의 투자도 국민총생산에 포함되지만 복지와는 거리가 멀다.

 국민총생산이 증가한 것만큼 생활의 질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증거는 이밖에도 많다. 교통체증으로 인한 출퇴근 시간 증가, 주택값과 의료비의 급격한 상승 등은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특정 부문의 복지가 감소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환경파괴 손실부분 포함시켜야

 현재의 국민총생산 계산 방식은 환경파괴로 인한 손실을 외면할 뿐 아니라 국민소득을 과대포장한다. 공기·물·토양의 오염이 심해지면서 이를 원상복구하기 위한 투자가 날로 늘어나지만 이같은 투자는 새로운 소득을 창조하는 것도 아니고 복지를 증가시키는 것도 아니다. 국민총생산은 또 자연자본의 잠식을 소득으로 잡는 잘못도 범하고 있다. 과거 연평도 앞바다에서 잡히던 조기는 우리에게 지속적인 소득을 보장할 수 있는데도 지금은 씨가 말랐다. 조기를 남획할 때 어민의 소득은 국민총생산에 포함됐지만 남획의 댓가로 씨가 마른 것은 반영되지 않고 있다. 폐수 때문에 미역과 여패류가 죽은 것도 마찬가지다.

 그린 지엔피는 환경 측면에서 국민총생산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개선한 경제지표다.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투자한 비용을 소득으로 잡지 않고, 환경이 오염됐을 때 그 피해를 금전으로 추정해 계산하며, 자연자본재에도 감가상각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환경을 고려한 국민총생산’을 측정한다는 것이다.

 그린 지엔피에 대한 연구는 83년 유엔환경계획(UNEP)과 세계은행이 처음 워크숍을 연 이후 본격화됐다. 오교수는 “선진국들은 멀지않아 현재의 국민총생산을 수정해 그린 지엔피로 대체할 전망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그린 지엔피를 만드는 데 필요한 국민 계정을 개선하기 위한 연구도 시작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총생산을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은 대략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프랑스와 노르웨이 같은 유럽 국가는 국민총생산의 개념을 확대하여 근본적인 개혁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반면 유엔과 미국 서독 일본은 현재의 국민총생산이 갖고 있는 장점을 살리고 환경 측면에서의 단점만 보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프랑스 방식은 구체적이고도 일관성있는 방대한 자료와 정교한 평가기술이 요구되지만, 유엔 방식은 기존의 국민계정 체계를 이용하기 때문에 손쉽게 그린 지엔피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오교수는 “자료가 충분하고 평가기법이 완숙한 경지에 다다랐을 경우에는 프랑스 방식을 선택하는 게 좋지만 자료가 부족하고 경험이 미숙할 때는 유엔 방식을 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우리나라는 국민소득계정을 수정하여 환경문제만을 감안한 유엔 방식을 목표로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경우 별도로 몇개의 계정만 추가하면 기존의 국민소득 통계와 환경이 고려된 새로운 통계도 얻을 수 있어 어떤 것이 얼마만큼 빠지는지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국민총생산이 환경오염과 자연파괴로 인한 손실까지도 소득으로 계산하여 성장과 발전이 거듭될수록 왜곡이 커진다면, 그것을 지표로 사용하여 추진하는 경제정책도 뒤틀릴 것이 분명하다. 그린 지엔피는 환경을 오염시키고 자연을 파괴하는 행위가 국민소득을 얼마만큼 깎아내리는지 분명히 알게 해준다. 숫자상의 소득 증가가 때로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할 때 환경에 대한 인식도 바뀔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