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 알짜 재산은 그림과 골동품”
  • 서명숙 기자 ()
  • 승인 2006.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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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십억대 르누아르 진품 포함 고가품 다수 소장設 …공개 목록서 빠져 눈총


 

 당 3역과 함께 맨 먼저 재산을 공개함으로써 사실상 민자당 의원들의 재산 공개 ‘가이드 라인’을 설정한 金鍾泌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을 둘러싸고 유독 말이 많다.

 민자당 안팎에서는 김대표가 가진 재산의 진짜 핵심은 골동품과 서화라는 지적과 함께 “김대표가 르누아르의 그림을 갖고 있다” “응접실에 걸린 그림은 렘브란트다”라는 소문이 무성하다. 김대표의 재산에 대한 일반 국민의 관심도 높아서, 지난 3월12일 김대표와 당 3역의 재산 공개 내역이 발표된 직후 각 언론사에서는 “제주도의 ‘김종필 농장’은 어떻게 된 거냐”라는 독자들의 항의성 문의전화도 잇따르고 있다.

 

비서실에선 “아는 바 없다”

 지난 12일 김대표가 발표한 재산 총액은 24억4천8백59만원. 부인(朴榮玉)과 아들(金 進)이 소유한 부동산은 물론 골프장 회원권, 자동차, 정기적금과 예금 등이 다 포함된 것이다. 그러나 민자당 출입기자들 사이에서 ‘김대표 재산의 알짜’라는 말이 돌던 골동품과 서화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이미 예견한 일이기도 했다. 재산 공개에 앞서 “골동품과 서화도 거기에 포함되는가”라는 출입 기자의 질문을 받은 김대표는 “자기집 정원의 유실수나 정원수 한 그루도 다 등록하느냐”라는 특유의 화법으로 빠져나갔고, 그뒤 민자당 내에서는 ‘직계 존비속의 부동산과 은행예금 정도를 상식선에서 공개하고 나머지는 본인의 판단에 맡기는 선’으로 재산 공개의 가이드 라인이 설정됐다.

 그러나 정치인으로서는 보기드문 예술적 감각과 심미안을 자랑하는 ‘아마추어 화가’ 김대표가 소장한 서화와 골동품은 결코 ‘정원의 유실수나 정원수 한 그루’ 차원은 아니라는 것이 정가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소장 여부로 가장 화제거리가 되는 것은 르누아르의 그림이다. 귀여운 여인이나 아이들, 아름다운 풍경을 주로 그린 19세기 인상파 화가 르누아르의 그림은 특히 일본의 극성 애호가들로부터 높은 인기를 누린다.

 국제 경매시장에서의 르누아르 그림 가격은 작품성과 호수에 따라 매우 큰 편차를 보이지만, 대작은 몇십억대까지 호가하며 소품이라도 1억~2억대에 이른다는 것이 화랑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김대표 비서실은 정가에 떠도는 김대표의 ‘르누아르 소장설’에 대해 “르누아르와 관련해서 아는 바 없다”라며 확인을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중견화가 ㅅ교수는 “국내에 공식적으로 확인된 르누아르 소장가는 없다. 그러나 김대표가 르누아르를 소장한 것은 사실이다. 60년대 두어 차례 자의반 타의반으로 외유에 나섰을 때 외국에서 사온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ㅅ교수의 확인에 따르면, 김대표의 소장품은 르누아르가 가장 많이 다룬 소재인 ‘풍만한 여인상’이며, 국제 미술품 시장에서 몇십억대를 호가하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 그림 한 점의 가격만 해도 김대표가 공개한 재산 규모를 능가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게다가 “10여년 전쯤의 일이다. 3호쯤 되는 르누아르의 장미 그림을 본 적이 있다”는 또 다른 인사의 증언도 있는 만큼, 김대표가 르누아르의 작품을 하나 이상 소장했을 가능성도 크다.

 김대표가 소장한 외국 화가의 작품으로는 이밖에도 18세기 네덜란드의 유명한 풍속화가인 렘브란트의 수제자가 그린 유화 작품이 있다. 김대표의 청구동 자택 응접실에 걸려 있는 이 작품은 렘브란트의 화풍을 고스란히 재현한 것이어서 주변에서는 렘브란트의 그림으로 오인하기도 한다. 최근 일부 언론이 가십으로 다룬 ‘렘브란트 그림 소장설’은 바로 이런 착각에서 비롯했다. 김대표는 이밖에 고 박수근 화백과 함께 가장 인기있는 한국 작가로 알려진 도상봉 화백의 소품을 비롯해 평소 교분이 두터웠던 김인승·박득순·임하동 화백의 그림을 소장하고 있다. 하지만 소장품 가운데서도 대작으로 꼽히는 以堂 김은호의 그림(60호)은 80년 신군부에 징발당한 뒤 돌려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랑가에서 ‘가장 고급스럽고 열성적인 수집가 중의 한사람’으로 정평있는 김대표가 소장한 예술품은 그림 말고도 많다. 골동품 수집은 부인 박영옥씨의 취미로 알려져 있는데, 청구동 자택 응접실에만 10여 점이 있다. 미술계의 한 중견 인사는 “한 점만 팔아도 몇 년은 너끈히 버틸 만한 고가품이 많다”라고 장담한다.

 

“예술품 수집벽은 부동산몰수 경험 때문”

 김대표의 예술품 수집 취미는 서화와 골동품에만 머물지 않는다. 김대표는 이화여대에서 조각을 전공한 딸 예리씨의 영향을 받아 조각 작품에도 큰 관심과 애정을 보여왔다. 국내 유명작가들의 조각전을 빼놓지 않고 찾으며, 사들인 조각 소품만도 수십 점에 이르고 있다.

 김대표가 정치권과 화단에서 거론될 정도로 많은 예술품을 소장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 김대표 자신의 ‘아마추어 수준을 넘어서는’ 취미생활과 무관하지 않다. 서울사대에 다닐 때부터 예술적 소양을 드러낸 김대표는 65년 아마추어 화가들의 모임인 ‘일요 화가회’에 가입한 뒤, 67년에는 ‘수재민 돕기 3인전’을 갖기도 했다. 특히 정치방학을 강요당한 시기에는 “화필을 벗해 무료함을 달래고 울분을 삭였다”고 말할 정도로 깊이 빠져들었던 취미이다. 이런 취미가 주변에 널리 알려지면서 교분이 두터운 화가들로부터 작품을 기증받은 경우도 더러 있고, ‘김대표의 취향’을 의식한 주변 사람들로부터 선물받은 사례도 많은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정가 주변에는 김대표의 예술품 수집벽이 반드시 그의 취미생활 때문만은 아니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부정축재자 재산몰수’로 엄청난 규모의 부동산을 순식간에 빼앗긴 ‘뼈저린 정치경험’ 때문에 비교적 안전한 골동품과 서화에 투자한 게 아니냐 하는 추측이 바로 그것이다.

 김대표는 80년 5월 계엄확대 과정에서 권력의 핵으로 등장한 신군부에 의해 ‘부정축재자 1호’로 발표됐다. 당시 발표된 김대표의 부정축재 재산은 2백16억원. 몰수당한 대표적인 재산은, 김대표가 “순전히 열정과 땀으로 일구었다”고 설명하는 제주도 감귤농장이다. 현재 행정구역상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서호·법환동에 걸쳐 있는 이 농장의 당초 면적은 1백30여 필지 14만평 크기이다. 이 가운데 60여 필지 6만3천여평이 90년 서귀포 신시가지 조성 부지에 편입돼 49억여원에 매각되는 바람에 현재는 70여 필지 7만7천평 규모로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거대한 농장’임은 틀림없다. 이 농장은 원소유자였던 김대표가 지난 74년 사회 환원을 결정하면서 공익재단 ‘운정장학회’ 소유로 넘겨졌다가 80년 대표적인 부정축재 재산으로 지목되어 몰수당했다. 2년 뒤 이 농장은 김대표의 ‘자진 헌납’ 방식으로 한국지도자육성장학재단(당시 이사장은 전경환씨)의 재산으로 흡수됐다.

 

어제는 부정축재자, 오늘은 집권당 대표

 시간이 흐르면서 세간에서는 전경환시의 몰락과 김대표의 집권층 진입으로 이 농장이 김대표에게 반환된 것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현 소유주는 엄연히 공익장학재단인 한국지도자육성장학재단이며, 이 농장의 수익금은 전국 각지에서 선발한 장학생들의 장학금으로 쓰인다. 김대표 입장에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완전히 울며 겨자 먹기로 빼앗긴 셈이고, 이런 경험이 부동산 투자보다는 다른 쪽으로 눈길을 돌리게 만들었다는 게 주변의 관측이다.

 사실상 김대표가 예술품을 소장하는 취미를 갖게 된 동기나 소장 경로는 그 자신만이 아는 일이다. 문제는 그 작품들이 어떤 동기에서 어떤 경로로 수집됐던 간에 국민 눈에는 김대표의 희망사항처럼 “정원의 유실수나 관상수 차원”이 아닌 “김대표의 알짜 재산”으로 비쳐진다는 데 있다.

 민자당에는 ‘몇백억대’ 재산설이 나도는 재력가 의원이 상당수 있다. 그런데도 그 수준에 훨씬 못미치는 김대표를 향한 관심과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는 까닭은, 과거 정권에 의해 대표적인 부정축재자로 몰렸던 그가 공교롭게도 ‘정치권 개혁’을 부르짖는 시기에 집권당의 대표로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김대표의 재산은 ‘기대에 못미치는’ 재산 내역을 발표한 민자당내 몇몇 재력가 의원과 함께 재산 공개 전반의 진실성을 가름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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