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서의 주택’ 첫 삽
  • 이문재 기자 ()
  • 승인 2006.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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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21인 <분당 신도시 주택 전람회> 21세기 주거 문화 전망



 분당 신도시에 한국 최초의 ‘작품 타운’이 세워진다. 한국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가 21인이 모여 21세기 한국 주거문화를 모색하는 <분당 신도시 주택전람회>가 그 첫 번째 행사인 설계 및 모형전을 시작으로 막이 오르는 것이다. 오는 3월30일부터 4월11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미술관에서 열리는 ‘분당 신도시 주택설계전’은 건축계 안팎으로부터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번 전시회는 한국 현대건축사의 맥락에서 볼 때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행사고, 세계적으로 흔치 않은 대형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토지개발공사(사장 권영각)가 주관하고 국토통일원 도시연구실장 안건혁씨(81쪽 기사 참조)가 기획한 <분당 신도시 주택전람회>는 한마디로 말해 ‘문제투성이의 한국 주택’이 ‘문화로서의 주택’으로 한 차원 올라서는 분기점을 이룰 것으로 기대된다.

 

“주거문화의 전통과 미래가 만난다”

 아파트로 대표되는 현재의 주택은 삶의 터전이 아니라 투기의 대상일 뿐이다. 우리의 전통과 동일성을 거세한 채 서양의 설계를 직수입한 현재의 무국적 주거(아파트) 환경을 문화의 관점으로 접근하기란 불가능한 것이었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러할 테지만, 집은 더이상 집이 아니었다. 당국이나 수용자, 건축가나 건설업체, 도시설계자 모두에게 그러했다. 건축계에선 한옥 이후 우리의 주거문화는 멸종되고 말았다고 말한다.

 원로 건축가 엄덕문씨(엄이종합건축사)를 비롯, 강석원 공일곤 김석철 김 원 김인철 김종성 도창완 류춘수 민현식 박연심 승효상 원정수 지 순 윤승중 이성환 장석웅 장세양 조건영 조성룡 황일인 씨 등 중견·여성·소장 건축가 21인이 참여하는 이번 주택전람회는 한국 주거 환경에 대한 반성과 성찰에서 출발한다. 이같은 현실 인식은 한국의 전통적 환경·주거문화에 바탕을 두면서 21세기, 즉 정보화 사회·지식사회·탈공업사회를 전망하고 있다.

 <분당 신도시 주택전람회>는 이번 전시회에 선보이는 설계에서 출발해 시공업체의 입찰 및 시공을 거쳐 분양이 끝나는 94년 가을까지 계속된다. 실재하는 한 마을이 ‘전시작품’이 되는 것이다. ‘작품 타운’은 분당 신도시 중앙공원 남쪽 약사골 앞에 펼쳐진 1만9천여평 특별설계구역 안에 건설된다. 이곳을 단독주택 20필지, 연립주택 20필지로 분할해 70~80평 크기 단독주택 20가구와, 35~70평 규모 연립주택 1백70가구 등 모두 1백90가구가 들어서는데, 각 건축가가 단독 한 채, 연립 한 동씩을 설계했다.

 이번 프로젝트를 발주한 토개공측은 “비록 분당 신도시가 주택 2백만호 공급 계획의 일환으로 시작된 것이지만 우리는 이제 주택의 양적 성장에만 만족할 수는 없다”라고 말한다. 건축 및 환경의 질을 향상시키는 계기가 될 이번 전람회의 배경에 대해서는 “분당 신도시의 주거환경, 환경예술, 여가문화, 과학·교양 부문 등으로 나뉘어진 종합적인 문화환경 계획 가운데 주거환경 부문의 가장 대표적인 사업으로 추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3일간 열리는 이번 주택설계전은 각각의 주택들이 2백분의 1 모형으로 제작한 전체 배치도를 중심으로, 각 건축가들의 설계도와 모형이 전시된다. 이 전시회는 설계 과정에서 동원된 이미지를 전달하는 슬라이드 쇼와, 매일 2~3명의 건축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일반인 및 건축업자에게 설명하는 시간을 따로 마련했다. 또한 강연회와 심포지엄을 각 한차례씩 곁들인다. 이번 전시회는 건축축제, 견본시장, 공청회 등 다양한 성격을 갖는 것이다.

 토개공이라는 정부투자기관으로부터 아무런 조건 없이 ‘작품’을 만들어보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받았을 때 건축가들은 반갑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당혹스러웠다. 김인철씨(인제건축)는 “건축계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전람회였다”고 말했다. 그동안 건축은, 당국은 물론 업자 수요자 등 모두에게 부동산이었지 결코 작품이 아니었던 것이다. 건축계에선 이번 전람회가 열릴 수 있게 된 근본적인 이유를 “건축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변화”에서 찾고 있다. 아파트 입주자들이 자신의 취향에 맞게 실내를 뜯어 고친다거나 아파트 업체가 선택사양을 제시하는 변화가 그 작은 징후들이다.

 “건축가들은 주택문제를 철저히 외면하거나 그 문제에서 철저히 외면당해 왔다”고 김원씨(광장건축)는 말했다. 전시장에서 있을 심포지엄에서 주제발표를 맡은 김씨는, 정책순위에서 무관심의 대상으로 전락한 주택 현실이 투기꾼들의 지나친 관심으로 ‘사회적 기형아’가 되고 말았다고 지적하면서 한국 아파트의 ‘현대사’를 다음과 같이 되돌아 보았다.

 와우아파트가 열어 놓은 시영야파트 시대는 붕괴 사고가 증명하듯 80년대 중반까지 암흑기를 불러왔다. 집단주거 분야는 건축가들이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또는 들여놓아선 안되는 이방지대였다. 86아시안 게임과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현상 설계를 통해 국제수준의 선수촌을 세운 것이 아파트 설계에 건축가가 참여한 최초의 ‘역사’였다. 조성룡·우승규 씨가 설계한 두 선수촌 아파트는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후 아파트 설계는 분양가 규제 때문에 ‘최저 공사비=최고의 설계’란 희귀한 등식이 성립되었다.

 

‘마을공동체’ 이념 실현에 주목한다

  지난 연말 중국 민원해남공사가 실시한 ‘대해화원 국제현상설계’에서 미국 일본 중국을 제치고 당선되어 한국 건축가의 대형 프로젝트(86층 메인빌딩, 66층 아파트 등) 수행능력을 국제적으로 입증한 류춘수씨(이공건축)는 “분당 신도시의 부정적 이미지를 희석하기 위한 의도도 있을 것이지만 토개공이 신도시를 문화적 차원으로 유도한다는 측면은 역사적인 것”이라면서 주택은 건축가의 함정이라고 말했다. 다시말해 대형 프로젝트를 즐겨하던 건축가들이 주택에서는 졸작을 보인 전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번에 전시하는 작품들은 건축주가 없는 상태에서 설계한 것이어서 건축가의 개념적인 사고를 강조하려는 시도가 두드러진다. 공동주택의 경우 △한 세대가 1,2,3층을 독립적으로 사용하는가 하면 △현재의 연립주택처럼 층별로 세대를 구분하거나 △정원을 공유하는 문자 그대로의 공동주택을 제시하는 형태로 대별된다. 단독주택은 크게, 전통적인 양식에서 모티브를 찾은 작품과 모더니즘적 요소를 부각시킨 경향으로 나뉜다.

 미래의 주택에 대한 건축가들의 전망은 다양하다. 원로 건축가 엄덕문씨는 “사람이 성장하려면 몇번이고 몸에 맞는 새옷으로 갈아입듯이 주거의 소유 개념도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 별로 달라진다”면서 주거 형태의 순환성을 부각시켰다. 세 세대 가족을 염두에 둔 엄씨의 연립주택은 노부모의 주택을 별도로 옆에 두고 모시는 구조로, 담이 없이 한 집안에서 동거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자녀·부모·조부모가 한 집에서 살아가면서 조부모의 공간을 부모가, 부모의 공간을 그 자녀가 사용하는 것이다.

 공동주택은 큰 어려움이 없지만, 단독주택은 건축주가 없다는 조건이 제약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건축가들은 그래서 사용자를 상상해 설계에 임하기도 했다. 정보화 사회가 정착하면 창조적 직업에 종사하는 재택근무자가 늘어나고 가족의 형태도 달라질 것이므로, 화가 사진가 등 스튜디오가 필요한 전문인이나 3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을 대상으로 삼은 모델이 많았다.

 

한국 건축 진단하는 심포지엄도 열려

 이번 주택 전람회에 참여한 건축가들은 ‘작품 타운’이 하나의 마을인 만큼 ‘생활공동체로서의 마을’이란 점에 가장 먼저 주목했다. <분당 신도시 주택전람회>에 대한 다양한 시각들은 전시 기간에 열리는 심포지엄(4월9일)에서 공개적인 토론을 거칠 것으로 보인다. 이 프로젝트를 구상한 안건혁씨가 기조발표와 사회를 맡고, 도시 설계의 입장에서 작품 타운의 문제점을 지적할 강홍빈 박사(서울시)와, 참여 건축가를 대변하는 김 원씨, 그리고 각 작품들을 비평할 김광현 교수(서울시립대)가 주제 발표를 한다. 토론자로는 건축행정 담당자, 주택전람회에 참여하지 않은 건축가, 전통건축을 연구하는 학자, 문화비평가, 주택건설회사 관계자, 실수요자(시민) 등이 나선다.

 건축가 민현식씨(민현식건축)는 “이번 전람회에 대한 외국 건축계의 관심도 높다”고 말했다. 유럽처럼 중심이 해체되고 다양화로 치닫는 포스트 모던사회에서는 이같은 행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고, 한국을 모델로 삼는 제3세계에서 보기엔 더없는 견학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 건축사는 독일의 바이쎈호프 주거단지(1927)와 오스트리아의 비엔나공작연맹단지(1930~1932)라는 두 주택전람회를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반 데 로에, 꼬르뷔지에, 그로피우스 등 당대의 유명 건축가들이 단독·연립 주택의 설계를 맡아 이루어진 바이쎈호프 주거단지는 이른바 ‘근대건축운동’을 태동시켰을 뿐만 아니라 디자인의 혁명으로 일컬어지는 바우하우스 운동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91년 일본 민간업자가 세계 유명 건축가를 초빙해 후쿠오카에 설립한 주택단지(넥서스 타운)는 위의 두 전람회와 함께 세계 3대 주택전람회로 손꼽힌다. 이 넥서스 타운은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지금 한국에서 분당신도시 주택전람회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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