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제철 용광로 안팎 도전 뜨겁다
  • 포항·김상익 차장대우·허광준 기자 ()
  • 승인 2006.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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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25주년, 경영 환경 변화 등 난제 많아 -정치 후유증 벗고 내부 개혁으로 제2의 도약



 포항종합제철의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박태준 전 명예회자을 비롯한 창업1세대가 물러나고,4월1일 창립 25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조직 개편과 인사 이동이 이루어진다. 이와 함께 그동안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권위주의에 대한 반성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같은 변화의 바람속에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처럼 보였던 ‘박태준 신화’도 그가 물러난 지 한달도 채 안돼 풍화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미국에서 출간된 포항제철의 기업 스토리 <타오르는 철강(Igniting Steel)>에서 이 책의 저자들은 호항제철의 기업문화에 대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고 적고 있다. “서구 기업에서 종업원들은 자기네 오너를 그냥 ”회장님‘하고 부르지만, 포항제철 근로자들은 휠씬 존경심과 경의를 담아 ’우리 회장님‘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박태준 회장을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박회장은 그들의 마음에 항상 친근한 사람으로 남아 있다. 박태준회장이 종업원들의 가족을 위해 설립한 유치원과 국민학교를 방문하면 그곳 학생들은 그를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비판 용납 않는 게 포철의 문화였다”

 ‘우리 회장님’이 포항제철에서 완전히 물러나기 전까지 근로자들은 그를 신처럼 떠받들었다. 박태준이라는 한 인간의 카리스마는 자랑거리일지언정 흉허물은 결코 아니었다. 따라서 박태준 개인과 그에 의해 영도되는 포항제철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좀처럼 용납되지 않았다. 철강 산업을 연구하는 한 교수는 포항제철이 양적인 팽창을 너무 자랑하지 말고 품질을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충고하느 글을 썼다가 항의 전화를 받는 둥 몹시 혼이 났다. 그 교수는 “비판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 포항제철의 기업 문화였다. 엘리트 의식을 갖는 것도 좋지만 자기들이 이룩한 신화에만 연연해선 곤란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변화가 시작된 이후 포항제철 근로자들은 과거와는 달리 냉정한 눈으로 박태준 신화를 돌이켜보고 있다.포항제철소 제선부에서 근무하는 한 근로자는 달라진 분위기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그에게 여러 가지 공과가 있지만 25년 동안 포항제철을 훌륭하게 이끌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직원들은 그가 가졌던 카리스마나 권위주의적 분위기는 좋지 않게 생각한다.”

 ‘박태준 시대’의 권위주의를 상징하는 것은 포항제철의 성장기에 그가 언제나 가지고 다녔던 지휘봉과 전직원이 의무적으로입은 황색 제복이다. 박태준 전 명예회장은 포항제철을 교향악단에 비유하는 것을 좋아했다. 포항제철은 박태준이라는 지휘자가 휘젓는 지휘봉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왔다. 그러나 지난 3월12일 주주총회에서 새 회장으로 선임된 직후 ‘권위주의 탈피’를 부르짖은 정명식회장은 첫 월례 운영회의에서 “회장과 사장은 서로의 역할이 다른다. 회장은 이사회에서 회장 역할을 하는 이사이고, 사장은 이사회에서 사장 역할을 하는 이사일 따름이다”라고 강조했다. 단 하나뿐이고, 오직 한사람만이 가질 수 있었던 지휘봉은 두 개로 늘어났다.

 정회장은 또 외부인과 접촉이 많은 서울사무소 직원들에 한해서 제복을 입지 않도록 했다. 포항제철 직원들은 이같은 변화를 좋게 받아들인다. 생산 현장에서 근무하는 한 근로자는 “새 회장이 발표하는 조처를 보고는 앞으로 회사 분위기가 긍정적으로 변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박태준 전 명예회장의 핵심 측근이던 한 인사도 “지금은 한 사람의 카리스마에 의존하는 세상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변화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포철이 재채기하면 포항은 감기몸살

 포항제철은 현재 변화의 바람에 흠뻑 취해있지만 국세청의 세무조사와 반덤핑 제소와 관련한 미 상무부의 실사가 겹치는 등 어려운 상황도 동시에 맞고 있다. 포항제철의 한 사무직 사원은 “우리는 회사를 믿으며 그동안 성실하게 회사를 운영해온 것으로 알고 있으므로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낙관하면서도 “술자리에서는 온통 그 얘기뿐”이라고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박태준 전 명예회장은 평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돈을 정직한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해왔다. 포항제철은 80년과 88년에도 조사를 받은 바 있지만 그때마다 결백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전과 다르다. 박태준 전 명예회장이 90년 본격적으로 정계에 뛰어들면서 정치인과 기업인이라는 두 개의 얼굴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박태준씨가 민정계 관리자 노릇을 수행하기 위해 수백억원의 정치자금을 써왔는데 그 돈이 과연 어디서 나왔겠느냐면서 자금 출처를 의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포항제철의 한 간부는 “정치인으로서 당연히 정치자금을 썼겠지만 그 돈은 여러 독지가로부터 나왔을 것이다. 그분은 절대로 회사 돈을 빼서 쓸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법무부는 지난 3월12일 국세청의 요청을 받아들여 黃 老 전 회장 등 전.현직 간부 17명에 대해 출국금지 조처를 취했고, 국세청은 국세청대로 “탈세 혐의가 발견된 것은 전혀 없다”라고 말하면서도 거양개발.삼정강업 등 자회사 및 협력 업체에까지 조사를 확대하는 등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강도 높게 진행되는 가운데 포항의 상공업자나 사회단체 대표들은 몹시 고통스런 상황에 처하게 됐다고 하소연하다. 포항제철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한 철강 관련 업체 사장은 “한 가정에서 아버지가 어려움을 겪으면 모든 가족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포항제철이 어려움을 겪으면 지역 경제 전체가 몸살을 앓는다”라고 말했다.

 포항제철이 포항과 광양의 지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히 크다. 포항시청과 동광양시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91년 현재 시의 재정 가운데 포항제철이 납부한 세금은 각각 9.1%(포항) 와 52%(동광양) 에 이른다. 또 포항과 광양이 철강공단에는 관련 업체가 2백40여개나 입주해 있다.

 지난 3월25일 포항의 상공업자와 사회단체 대표들로 구성된 ‘포항지역발전협의회’ 회원들은 최근 일어난 포항제철 사태를 놓고 대책을 논의했다. 이 회의에서 포항의 어려운 사정을 상공부나 청와대에 전달하자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이와 같은 지역 사회의 움직임에 대해 정명식 회장은 “본의 아니게 정부에 저항하는 것으로 오해받으면 곤란하다. 국세청이 철저히 조사해서 명백히 가려주는 것이 국가의 정책수행을 위해서나 포항제철을 위해 바람직하다”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세무조사와는 별도로 포항제철이 맞닥뜨린 또 다른 어려움은 반덤핑과 상계관세 문제이다. 포항제철은 미국측이 반덤핑 관세율을 예비판정할 때 잘못 계산한 것을 발견해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는 듯했다. 반덤핑 및 상계관세 문제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한 공인회계사는 “미국이 가장 크게 문제삼는 것은 한국 정부가 포항제철에 어느 정도 보조를 해주었느냐 하는 점이다”라고 말하면서 “미국측은 최근 몇몇 은행장이 바뀐 것을 정부가 은행에 노골적으로 압력을 가한 사례로 받아들인다”라고 최근의 분위기를 전했다. 미국은 한국 정부가 은행을 통해 포항제철에 금융특혜를 베풀어왔다고 끈질기게 주장한다. 이 공인회계사는 “낙관하고 있을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라고 우려했다.

 미국의 반덤핑 예비판정 자체가 상징적인 몸짓이라는 낙관적인 분석도 있다. 슈로더증권 서울지점 金賢起 과장은 “예비판정이 있던 날 국제 전화로 미국쪽 분위기를 파악했다. 미국은 영국에 대해 1백7%라는 고율에 예비판정을 내렸는데, 영국이 미국에 판매하는 것은 극히 미미한 분량이다. 영국에 최고율의 판정을 내린 것으로 보아 미국의 속뜻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미국 철강 업계는 경쟁력을 급격히 상실한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총력을 기울여 수입 철강재에 맞서 싸우기를 결정하고 반덤핑 및 상계관세 제소를 무더기로 쏟아냈다.  77~85년 9년 동안 한국산 철강제품에 대한 반덤핑 및 상계관세 제소가 15건에 이르렀지만,  이 가운데 6건은 혐의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고 나머지 9건도 미국이 주장한 수준에 휠씬 못미쳤다. 예를 들어 83년의 덤핑제소 사건에서 미국 철강 업체들은 한국산 후판의 덤핑마진이 64%에 이른다고 주장했지만 미국 상무부는 5%라는 낮은 판정을 내렸을 뿐이다.

 국세청의 세무조사와 반덤핑 문제가 포항제철에 부담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포항제철 앞날에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하는 것은 갈수록 악화되는 전세계 철강 업계의 경영환경이다. 현재 전세계의 철강 제품 공급 능력은 수요를 초과해버렸다. 공산권이 몰락한 이후 동유럽 철강 생산국들이 자본주의 사장에 뛰어드렴ㄴ서 가격 체계도 뿌리째 흔들렸다. 반면 철강 수요는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쇠를 대신하는 신소재가 잇따라 개발되고, 철강 제품이 많이 쓰이는 자동차에도 플라스틱이나 알루미늄이 점차 많이 사용되고 있다. 중국 등 후발국의 추격도 본격화할 기미를 보인다. 이에 따라 포항제철이 자랑하던 경쟁력도 전과 같지 않게 됐다.

 한국이 철강 산업에 뛰어든 60년대 말은 세계적으로 철강 수요가 증가하던 때였는데 멀지않아 70년대 중반부터 심각한 침체기가 오리라는 것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포항제철은 임금이 낮고 새로운 설비를 도입했기 때문에 노동 생산성과 설비생산성을 높일 수 있었고, 그 덕택에 철강 업계에서 단 한번도 적자를 보지 않은 유일한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같은 상황은 80년대 후반 노사분규를 거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우리의 임금이 오른 반면 선진 철강국들은 서서히 경쟁력을 회복했다.

 84년 한국의 철강 생산비는 1t당 2백56달러에 지나지 않았다. 같은 해 미국의 철강 생산비는 4백78달러였고, 일본도 4백47달러를 웃돌았다. 한국의 철강 생산비는 미국의 54%도 채 안되었다. 그러나 90년에는 한국의 생산비가 미국보다 더 높아졌다. 이 기간에 철강 생산비 연평균 증가율은 미국이 0.5%에 그친 데 비해 한국은 무려 11.9%나 됐다.

 이와 관련해 金世榮 교수(단국대. 무역학)는 “92년에는 국제경쟁력이 다소 향상됐으나 우리나라 철강 산업의 생산과 수출,그리고 국제수지는 상당히 우려되는 상태이다”라고 어두운 진단을 내렸다. 김교수는 “철강 산업의 어려움은 미국.유럽.일본 등 철강 선진국들에서만 끝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한국.브라질과 같은 신흥 철강국이 질적 성장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멀지않아 대만.중국 등 후발 국가들의 도전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예측했다.

94년 감가상각 끝나 투자 여력 커져

 포항제철은 날로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나름대로 합리화 노력을 기울여왔다. 기능적인 측면에서 포항제철은 기적을 이루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생산 시간의 단축을 들 수 있다.83년에 건설을 완료한 포항제철소의 생산 시간은 12시간이지만 92년에 건설을 끝낸 광양제철소는 4시간 30분으로 대푝 줄었다. 그만큼 경비를 절약해 더욱 값싼 철강 제품을 공급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 포항제철 연구소에서 8년간 근무한 적이 있는 한 연구원은 “긴 생산라인을 짧게 해 빨리 생산하는 것은 대량생산 체제 아래에서 유효할지 모르지만 다품종 소량 생산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수출 여건이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것은 생산한 제품의 30% 가량을 수출하는 포항제철 입장에서 부담이 된다. 하지만 포항제철입장에서 부담이 된다. 하지만 포항제철은 이제 막 산업화가 불붙기 시작한 중국 시장을 가까이 두고 있다는 이점을 갖고 있다. 포항제철은 지난 25년간 일곱차례에 걸쳐 2백50만t씩 생산설비를 늘릴 때마다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광양4기 준공 때는 공급 과잉을 염려하여 위기론을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그러나 포항제철은 중국에서 돌파구를 찾아 전세계적인 불황 속에서도 매출을 전년보다 5%나 늘릴 수 있었다. 이를 두고 ‘포항제철은 운이 좋다’는 빈정거림도 나왔으나 포항제철측은 “운이 좋은 것도 한두번이지 어떻게 계속해서 일곱 번이나 행운이 따를 수 있겠는냐”라고 반박한다.

 포항제철이 지닌 가장 큰 강점은 94년이면 감가상각 연한이 끝난다는 점이다. 감가상각이 끝나면 포항제철의 가격 경쟁력은 더욱 높아질 것이 분명하고 다른 사업에 투자할 여력도 생기게 된다. 포항제철이 제2 이동통신 경쟁에 뛰어들면서 “연간 1조원 이상 투자할 능력이 있다”라고 강조한 것은 이같은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금리가 계속 인하돼 금융비용 부담도 덜게 됐다.

 포항제철은 92년 10월 광양4기 용광로에 불을 댕김으로써 양적 팽창 시대를 마감했다. 포항제철의 연간 조강생산 능력은 모두 2천80만t으로 세계 3위 자리를 확고히 굳혔다. 김세영 교수는 “포항제철은 지금부터 제2의 도약을 이루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내실을 다져야 한다고 말했다. 즉 부가가치가 높은 철강을 더 많이 생산하고 설비생산성을 한단계 더 끌어올리기 위해 설비에 대한 투자도 꾸준히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지간한 기술로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보통강에 매달리다 보면 후발 철강국의 추격을 뿌리치기 힘들기 때문이다. 포항제철은 올해 고급강 판매 목표를 지난해보다 1백만t 늘린 6백만t으로 잡아놓고 있다.

 생산 설비와 관련해서는 현재 용융환원 제철법(일명 코레스법)의 상업화를 서두르고 있다.용융환원 제철법은 오스트리아가 개발해 89년 세계 최초로 상업화했다. 이 제철법을 이용해 선철(무쇠)을 생산할 경우 코크스와 소결광을 제조하는 공정을 줄일 수 있어 제조 원가를 크게 낮추고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줄일 수 있다. 포항제철 정명식 신임 회장은 “기술 개발에 집중 투자해 세계에서 가장 값이 싸고 품질 좋은 철을 공급하겠다”라고 말했다.

경영 환경 결 따라 부는 변화의 바람

 포항제철이 국내 산업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해왔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국내 자동차.가전.조선 산업 발전은 철강의 안정적 공급 없이는 이루어지기 힘들었다.75년 84kg밖에 안되던 1인당 철강 소비량은 현재 6백kg밖을 넘어서 선진국 수준에 육박했다. 철강 자급률을 90%이상으로 끌어 올리는 데도 포항제철의 힘이 컸다.

 그러나 경쟁 체제가 확립되지 않아 비효율이 생겨났다는 비판론도 없는 것은 아니다.포항제철은 국내 철강 수요의 60%정도를 공급하기 때문에 “마치 수요자에게 선심 쓰듯 거드름 피우며 나눠준다”는 원성을 듣기도 했다. 이 때문에 한보철강을 비롯한 국내 몇 몇 제철회사는 신형 저기로를 설치해 그동안 포항제철에서 공급받던 물량을 자급자족해보려는 생각을 품고 있다. 또 종합상사들은 제3세계의 값싼 철강재를 수입하려고 궁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명식 회장은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싼 값으로 국내에 양질의 철강을 공급해왔다. 다른 기업이 한다고 해서 지금보다 경쟁력이 높아졌으리라고 보지 않는다”라고 단언했다.

 포항제철의 ‘아버지’ 박태준 전 명예회장이 정치권에 한발을 담그는 순간부터 포항제철의 변화는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의 정치적 부침과 함께 포항제철의 운명도 크게 바뀌었다. 그러나 포항제철에 부는 변화의 바람은 달라진 경영환경의 결을 따라 흐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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