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정국5년사’ 소설로 복원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1.07.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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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대화/《풍운》전 24권 펴내는 강준식씨

 작가 강주식(44)씨가 최근 자유문학사에서 펴낸 대하소설《풍운》제 1부 3권은 문학과 역사의 경계에 서 있다. 이때의 경계는 문학과 역사가 서로를 무력화시키는 개념이 아니라 서로 스며들고 일으켜세우는 , 그래서 인간과 역사의 총체성을 희망하는 긴장의 공간이다. “정교한 역사는 문학을 지향하고 위대한 문학은 역사와 일치한다”는 비평가 임헌영씨의 이 작품에 대한 ‘독후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고 그는 말했다.

 모두 24권이란 방대한 분량으로 매듭지어질 이 대하소설은 1945년 5월말부터 1950년 6·25 직전까지를 다룰 예정인데, 이번에 나온 제1부 <제국의 종언> 3권은, 1945년 5월말부터 8월27일까지를 그 시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이 시기는 일제의 항복과 ‘해방조선’이 교차하는 역사적 순간이지만, 이 소설을 읽어나가다 보면 그 시기에 관해 그동안, 특히 전후세대가 알고 있던 역사적 사실은 매우 적으며, 그 사실마저 거개가 잘못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시대소설이 아니라 역사소설”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모순의 母胎로 여겨지는 8·15와 6·25사이는 민족사의 온갖 희망과 좌절이 뒤엉켜 휩쓸리던 격동·격변의 시절이었다. 그러나 분단 이후 남과 북은 서로의 지배이데올로기로 그 역사의 대부분을 금기의 창고 속에 가두어버렸고 그 금기의 관성은 지금도 남아 있다. 88년 이후 ‘해방공간’에 대한 학문적 탐구와 이른바 ‘빨치산문학’으로 분류되는 소설들이 나오면서 어느 정도의 해갈은 이루어졌지만, 8·15 전후 식민지 지배제력의 핵심부와 민족진영과 좌파·친일파 등 여러 세력의 건국움직임을 그 내부에서 천착한 소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해방조선’을 철저히 살펴보지 않고는 우리 모두가 희구하는 사회통합과 민족통일의 길은 좀처럼 모색할 수 없을지 모른다”고 작가는 밝히고 있다. 그가 “이 작품은 시대소설이 아니라 역사소설”이라고 강조하는 연유도 여기서 비롯한다. 작가의 말은 그간 문학이 역사를 정면에서 수용하지 못했다는 지적으로도 들린다. 몇가지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작가가 구상한 이야기에 ‘시대적’ 세트‘를 넣은 소설은 “단순한 시대소설”이라는 것이다.

 역사소설 《풍운》의 일차적 미덕은 이 작품이 방대한 사료에 바탕하고 있다는 것이다. 《풍운》은 전후세대들의 ‘학습된 사실’을 반전시킨다. 우선, 그해 8원 15일 천황의 ‘옥음방송’(항복방송)이 전파를 타자마자 서울 거리가 만세소리로 뒤덮였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 소설은 당시의 이상한 적막감의 이유를 밝히고 있으며, ‘해방의 감격’은 이튼날 서대문형무소의 사상범들이 풀려나 거리로 나가면서부터 였다고 ‘바로 잡는다.’

 이같은 ‘역사의 교정’에서부터 일제가 패전 직전 여운형에게 치안권을 넘기게 된 배경과 그 내용, 8월16~17일 여운형과 민족진영 그리고 민심을  교란시키기 위해 시도한 일제의 공작들, 예컨대 소련군 입성설, 미·일의 서울시내 시가전 루머, 난데없는 ‘동진공화국’ 삐라의 출처, 저 유명한 “미국놈 믿지 말고 소련놈에 속지 말라. 일본 사람 일어나니 조선사람 조심하라”는 참요의 출처 등을 밝혀내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 제1부는 몽양 여운형을 중심으로 서술되고 있는데 45년 5월말부터 8월초까지는 이름없는 직식인·학생과 농민들의 암울한 시간들이 묘사되다가 8월 초순부터는 몽양과 총독부의 관계로 옮아가 급박해진다. 한강에서 일본 패전 이후 조선의 치안권을 보장받게 된다. 그러나 ‘해방의 기쁨’은 몽양과 좌파, 몽양과 송진우, 건국준비위원회와 민족주의 진영, 장안파와 박헌영파의 갈등이 전개되면서 건국에의 꿈이 금이 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1부3권은 8월 27일 조병옥 등 우파 민족주의 진영에서 고려민주당을 발족시키는 장면에서 일단락되고 있다. 작가는 “좌·우의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으려고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고 말해다.

 강준식씨는 일찍이 서울대 불문과 재학시절인 6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데뷔 직후 몇편의 중단편을 발표, 문장의 주목을 받았으나 71년 미국 유학을 떠나면서 문학의 길을 벗어났다. 80년대 중반 귀국, 당시 한 야당 총재를 도와 정치계에 발을 들여놓기도 했으나 그는 그 ‘풍운의 시절’을 마감하고 문학으로 돌아왔다. 그로 하여금 12년간의 준비와 자료조사, 취재과정을 거쳐 ‘고향인 문학’으로 돌아오게 한 저 ‘해방정국’은, 이제 “통일을 바라보는 남북한이 다시, 그리고 반드시 다녀와야 할 민족모순의 고향인 것”이다. 제2부는 올 가을 무렵 발간되며, 94년경 완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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