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영상뒤에 배고픔의 슬픔이
  • 이성남 차장대우 ()
  • 승인 1991.07.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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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산업 영세성에 유명 감독도 생활고

 “연아니다" 또는 "이 세상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 몇명이나 되는가. 돈까지 벌겠다면 과욕이다. " 한국의 영화감독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돈 걱정은하지 않아도 되는, 그래서 오직 열정만으로 영화에 종사하는 예술인의 자긍심으로 풀이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이는 영화를 지키기 위한 안간힘이자, 해결의 실마리가보이지 않는 현실에 대한 탄식이다.

 감독들은 아이 분유값을 빌리러 다녔던 경험 등을 저마다 갖고 있으며, 부인이 파출부일을 해서 생계를 꾸려가는 경우도 있다. 이같은 구차한 형편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유명 감독이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다. 한 유명 감독은 "감독 생활 15년 동안 때로 처자식 굶기면서 빛으로 살았다. 아직도 상당 부분 빛이 남아 있다"고 실토한다. 자기집을 전세로 주고 자신은 월세로 살거나, 또는 서울의 집을 전세로 주고 자신은 변두리에서 살면서 그 차액으로 생활하는 감독도 많다. 한국 최고의 감독으로 추앙받는 임권택 감독조차 한 작품을 끝낼 때까지 다음 작품의 계약이 성사되지 않을 때는"마음이 불안한" 형편이다.

임권택 감독도 "마음이 불안한 형편"
 (남부군)의 정지영 감독을 예로 들어보자. 서울의 38만명을 위시해 전국 1백만명이 이 영화를 관람했다고 볼 때 1인 4천원기준으로 총 수익료 40억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중 20억원은 극장주가, 20억원은 투자가들에게 돌아간다. 다른 영화의 3옵절 이상 촬영하면서 세해 동안 (남부군)에 매달렸던 정감독이 받은 총 연출료는 3천만원이었다. (남부군) 제작기간에 그는 오히려 1천만원의 빛을 졌다.

 한국영화의 오늘을 짊어지고 있는 중견감독들의 연출료는 얼마나 될까 최고의 연출료를 받는 이는 한편에 4천~5천만원을 받는 임권택 감독이다. 그 뒤를 이어 (깊고 푸른 밤)의 배창호 감독이 3천만원대이고,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정지영 이장호 김호선 박철수 장길수 박광수 장선우 신승수 강우석 감독 둥이 2천~3천만원대이다. 그러나 이 돈이 다 생활비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판공비가 따로 없기 때문에 상당부분은 자료조사 및 접대비로 지출된다. 또 제작기간에 4~S명의 연출부를 '私조직'처럼 거느리는 입장에서는 씀씀이가 커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대개의 영화사는 연출료를 3~4개월짜리 어음으로 지급하는 실정이어서 이것을 월 2~3%의 할인율을 적용받아 영화사에서 되바꾼다. 예컨대 1천만원을 받은 경우, 서너달을 기다리든가 아니면 9백만원 정도의 현찰로 바꾸는 것이다.

 영화계의 이같은 고질적인 풍토는 단순히 제작사의 탓이라기보다 영화자본의 악순환의고리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제작사 역시 극장주나 지방 배급업자로부터 영화상영시점으로부터 6개월에서 1년짜리 어음으로 자본을 회수받기 때문이다.

 신인 감독의 첫 연출료는 평균 6백~7백만원이며, 개중에는 아예 연출료를 포기하는 감독도 있다. 첫 작품이 다행히 홍행에성공하면 주가가 올라가지만, 실패했을 때는 영화사에서 그를 다시 찾을 때까지 무작정 몇해씩 대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89년에(내 친구 제제)를 연출한 이세룡 감독은 87년부터 현재까지 영화감독으로서의 총수입은 <내 친구 제제> 연출료로 받은 1천만원뿐이라고 말한다.  그 1천만원에서 조감독료 4백만원을 제하면 5년 동안 6백만원으로 생활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의 처지는 원고료 수입이 있고 부인이 직장을 가지고 있어 그래도 나은 편이다.

조감독의 월 평균소득은 8만원
 감독의 형편이 이 정도이니 ‘연출부’로 일컬어지는 조감독의 처지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오죽하면 “기아선상의 급료를 받는 조감독들이 어떻게 먹고사는지가 세계 9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는 자조적인 말이 충무로에 나왔을까. 4~5명으로 구성된 연출부에게는 영화 한편당 평균 4백~5백만원이 지급된다. 제작기간을 1년으로 칠 때 조감독의 월 평균소득은 8만원 정도이다.

 평균 27세쯤에 조감독 생활을 시작하여 극심한 생활고를 겪으며 대개 5~10년을 버틴다. 한 감독은 자신의 조감독이 결혼하겠다고 하자 “축하에 앞서 가슴부터 철렁 내려앉았다”고 심경을 토로한다. 현재 조감독협의회 소속 75명을 포함, 총 1백50여명에 달하는 조감독 중 이같은 역경을 딛고 조감독의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소리가 일고 있다. 연출부 일은 영화제작에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기능이라고 전제한 이들은 “조감독이 ‘연출 수업생’이라는 논리는 영화수익 중 조감독에게 돌아갈 몫을 다룬 누군가의 손으로 돌리려는 음모”라고 주장하면서 이의 시정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한 작품당 급료의 최저선을 1인당 월 평균 35만원을 기준으로, 제작기간에 계속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감독·조감독들의 이같은 주름진 생활상이 알려지지 않은 까닭은 무엇인가. 연출료가 감독의 능력으로 평가되는 풍토 때문에 연출료를 밝히기를 꺼려하는 데도 연유하지만, 그보다는 한국 영화산업의 영세성 앞에서 감독들 스스로 자신의 권리 주장을 포기한 탓이 크다. 아래 표에서 나타나듯 한국 영화산업의 규모는 미국·일본에 견주면 ‘거인과 꼬마’만큼 차이가 난다. 따라서 전체 제작비에서 연출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선진국과 비슷한 7~8%이라고 해도 한국 감독이 생활은 그들과 견줄 바가 못된다.

 실제로 태흥영화사 도아수출공사 우진필름 화전공사 등 몇군데를 제외하고는 대개의 제작사들이 비디오 판권료와 ‘지방장사’를 해서 제작비를 충당해야 하는 형편이다. 따라서 감독들은 인건비의 불합리성을 인식하고 있어도 2~3억원이 넘는 남의 자본으로 만든 영화가 흥행에 참패할 경우 “감독이 책임지지 않는다”는 전제조건에 심리적으로 굴복당하고 있다.

 더군다나 외화 직배 이후 극장주들은 스크린 쿼터제를 제대로 지키지 않을뿐더러 극장대관 및 수익분담에서 한국영화보다 외화에 더 유리하게 운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제작사 셋중 둘은 “양키물건장사로” 흥행수익만 노리는 외화수입업의 길을 택하고 있다. 감독들이 “한국영화를 제작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제작사를 욕할 수 없다”고 옹호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처럼 시장바닥이 좁은 데다 직밲지 겹친 마당에 감독의 처우개선을 요구하기란 “장사가 안되는데 월급을 올려달라는 종업원”에 비유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도 “생존도 버거운” 영화인의 낮은 연출료를 묵과하기는 어렵다. “감독은 제작문제에 관여할 수 없다”는 충무고의 불문율 속에 막대한 흥행이윤이 분배되지 않는 측면도 크기 때문이다. 젊은 영화인들은 영화제작비의 산출 및 분배의 적정선을 가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영화사와 지방 배급업자간에 형성된 ‘블랙마켓’의 규모가 밝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가 하면 영화사와 감독간에 체결되는 계약서(70쪽 아래 참조)에는 제작사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불평등 조항이 명시되어 있다. 특히 제13조항은 “비디오 판매권리, TV방영권리, 유선방송권리, 수출 및 재상영 권리를 무조건 제작사에게 양도한다”고 되어 있다. 이에 감독위원회에서는 “작곡가에게 저작료가, 작가에게 인세가 지급되듯이 영화감독에게 영상 저작료가 지급되어야 한다”며 이의 시정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극장상영 외에 발생되는 수입 중에 감독의 영상저작권료 10% 수령을 주장한다.

“배급의 영역을 넓혀야 한다.”
 최근 수년간 미국 영화제작사의 수입내역을 보면 영화관 수입이 격감한 반면 가정용 비디오 및 CA-TV에서의 수입이 급증하고 있다. 이같은 사실로 볼 때 앞날의 한국 영화시장 또한 다원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중앙대 연극영화학과 남재봉씨는 석사논문으로 제출한 <영화에 있어서 산업성에 관한 연구>에서 현재 안정되지 못한 한국 영화산업의 배급, 흥행시장의 영역을 기존 극장에만 그치지 말고, “비디오·방송 및 그밖에 경제적 이익을 올릴 수 있는 새로운 시장 확대를 위해 노력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한편, 정지영 감독은 고사 직전의 한국 영화를 육성할 수 있는 몇가지 정책방안을 제시한다. 모든 영화인의 소망인 ‘스크린 쿼터제’ ‘검열’철폐와 함께 제시한 ‘극장 6회 상영제’는 주목할 만하다. 이것은 관람객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문화영화와 뉴스를 없애는 대신 현행 5회 상영제를 6회로 바꾸자는 것이다. 1회를 더 상영함으로써 극장주와 제작사에게는 상당한 이익이 돌아갈뿐더러 문화영화 및 뉴스 제작에 사용되는 정부 예산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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