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와 공신들 ‘한 지붕 두 마음’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6.05.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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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선은 정회장 측근들 제거 기대…원로들은 1인 지배 종식 원해

 
현대·기아차 비자금 수사가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수사 과정에서 알려지지 않았던 뒷얘기들이 하나 둘 흘러나오고 있다. 이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정의선 기아차 사장과 관련된 부분이다.

정사장은 지난 4월19일 현대·기아차그룹이 ‘정몽구 회장 부자가 갖고 있는 시가 1조원에 달하는 글로비스 주식 전부를 사회에 헌납하기로 했다’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과정에서 완전히 소외되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현대차 사정에 밝은 한 법조계 인사는 “당시 정사장은 거의 실신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라고 전했다.

글로비스 주식 31.9%를 갖고 있는 정사장은 발표 직전 ‘통보’만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8천억원’을 사회에 헌납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사재를 헌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1조원’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것이다.

알려진 대로 당시 현대·기아차그룹이 이런 발표를 하기까지에는 이른바 원로들의 역할이 컸다. 중국 베이징에서 박정인 현대모비스 고문 등과 함께 이 구상을 한 정몽구 회장이 이전갑 현대차 기획총괄담당 부회장에게 지시해 발표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은 ‘정몽구 구속’ 이후 누가 현대차의 조타수를 잡을 것인지와 관련이 있다고 보인다. 정의선 사장 쪽에서는 이번 사태를 그동안 정몽구 회장의 눈과 귀를 장악해 온 측근들이 정리되는 계기로 작용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측근들이 ‘후계자 정의선’을 무산시키는 것은 물론 결과적으로 정회장을 사지로 몰아넣는 구실을 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반면 이들 측근들은 현대차가 정회장 1인 지배 체제에서 벗어나 일정한 자율성을 갖는 협의체 형식으로 운영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이 재계 관측통들의 분석이다.

현대차는 삼성의 이학수 부회장 같은 2인자를 키우지 않고 정회장이 독주하는 경영 행태를 보여왔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정몽구 회장이 감옥에서 나와 ‘교통정리’를 하기 전까지 현대차 내부의 ‘불안정한 동거’ 상태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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