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바다’ 이병우를 아시나요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6.05.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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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리스트·작곡가 거쳐 영화음악 감독으로 ‘대성’…<왕의 남자> <스캔들> 등 맡아

 
혹시 이병우씨(41) 아세요? 아신다면, 어떤 이병우요? 1980년대 포크그룹 ‘어떤날’에서 기타 치던 남자 말인가요? 양희은이 불렀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나 들국화의 명곡 <오후만 있던 일요일>의 작곡자요? 그것도 아니면 <야간비행> <흡수> 같은 걸작 기타 음반을 연주했던 클래식 기타리스트? 다 맞습니다. 그렇지만 일단 잊어주세요. 지금부터 만날 이는 영화음악감독 이병우니까.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를 보면서 그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선생이 고아 소년을 피아니스트로 키워낸다는 줄거리는 다소 상투적이다. 콤플렉스를 가진 범재와 철없는 천재를 대비시키는 구도도 어디선가 본 듯하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찜찜한 의문들을 날려버릴 미덕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 최초의 ‘클래식 음악 영화’답게 슈만·라흐마니노프·드뷔시 등의 음악이 끊임없이 귀를 간질거렸다. <기억속의 피아노> <나의 피아노> 등 새로 만든 곡들도 클래식 명품들 틈에서 제 역할을 다했다. 누가 만들었을까. 엔딩 크레딧을 기다렸더니, ‘음악감독 이병우(무직도르프)’라는 자막이 흘렀다. 무직도르프는 이씨가 대표로 있는 음악 프로덕션 이름이다.

 
이씨에게 <호로비츠를 위하여>는 조금 특별한 영화다. 대개는 편집이 끝난 화면을 보며 음악을 입히는 게 영화음악감독의 일이다. 하지만 <호로비츠를 위하여>에서 그는 촬영 초기부터 영화에 개입했다. 음악영화의 특성상 음악이 먼저고 연기가 나중일 수밖에 없었다. 극중 김지수(엄정화)와 경민(신의재)이 연주할 피아노곡을 고르고, 경민이 지수에게 선물할 노래를 작곡하거나, 초보급인 엄정화씨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일까지 그와 무직도르프 식구들이 담당했다. 심지어 캐스팅에까지 ‘힘’을 발휘해서, ‘어른 경민’역으로 나오는 피아니스트 김정원씨는 그의 빈 국립음대 후배라는 이유로 ‘차출’되었다.

서울 청담동의 그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 그는 영화 <괴물>의 음악 작업을 막 끝내고 있었다. 32인치 LCD 모니터를 포함해 모니터 3대가 달린 컴퓨터 시스템이 그의 작업실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는 “요새 기타보다 컴퓨터 앞에 앉아있을 때가 더 많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가장 잘 나가는 영화음악감독 소리를 듣는다. <왕의 남자> <마리이야기> <장화홍련>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연애의 목적> <분홍신>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등이 그의 손을 거쳤다. 그는 연말까지 3~4편의 영화음악을 더 만들 예정이다. 

1996년 임순례 감독 부탁으로 <세 친구>의 음악을 맡은 적이 있지만, 그를 영화음악감독으로 세상에 널리 알린 작품은 <스캔들>이다. “시나리오를 받고 고민했어요. 극중 연대가 서양의 후기 바로크 시대와 비슷했어요. 사극이지만 국악은 쓰지 말자고 생각하던 터여서, 아예 후기 바로크풍의 클래식 음악을 작곡했죠.” 르네상스 시대에 즐겨 쓰였던 악기인 ‘챔발로’로 연주한 <스캔들>의 주제곡들은 그의 예상대로 ‘대박’을 터뜨렸다.

“영화음악은 공동 작업, ‘내 음악’ 고집 안해”

같은 사극이지만 <왕의 남자>는 음악을 달리했다. “<스캔들>이 유희적이라면, <왕의 남자>는 동양적이고 서사적이었어요. 그에 맞춰서 음악도 동양적인 뉘앙스를 살리고자 했죠. 다만 영화 속에 국악이 계속 나오는데 영화음악마저 국악을 쓸 수는 없었죠.”

그의 음악 인생은 무척 다채롭다. 포크 가수였던 그는 1989년 갑작스레 유학을 떠나서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 클래식기타과를 수석 졸업했다. 미국 피바디 음악원에서 전문 연주자 과정을 마쳤고, 예일 가든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이후 여러 차례의 국내외 연주회를 통해 고정 팬을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딱히 자기 음악을 고집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마감시간이 정해져 있고, ‘고객’(영화 제작자)의 간섭이 끊임없는 영화음악을 그는 즐기며 만든다. “내가 귀가 얇아서, 감독 뿐 아니라 배우나 스태프들한테도 의견을 잘 구하고, 잘 바꿔요. 그 때문에 음악하는 동료들한테 싫은 소리를 듣기도 하죠. 하지만 영화음악은 공동 작업이잖아요.”

그의 성공 이유 중에는 이런 품성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 물론 실패담도 있다. “<피아노 치는 대통령>의 음악을 맡았는데, 제작자가 전혀 코믹하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서 중간에 접었어요. 여러 장르를 해봤는데, 코믹물이 가장 어렵죠.”

이병우씨가 그동안 만든 영화음악들을 가지고 5월20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이병우 영화음악 콘서트’를 연다. 그와 신이경(피아노) 이주한(트럼펫) 소윤규(베이스) 박 윤(퍼커션) 장재형(보컬) 등 무직도르프 식구들이 15인조 오케스트라와 함께 무대에 선다. 그동안 그가 음악을 맡았던 영화의 장면들도 대형 스크린을 통해 비춰질 예정이다. 문의 02-515-6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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