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몽 ‘남미 에너지 동맹’
  • 김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 승인 2006.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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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브라질 등 4개국 ‘노림수’ 제각각…유가 폭락하면 분열 가능성 높아

 
남미 네 나라(브라질·베네수엘라·아르헨티나·볼리비아) 간의 이른바 ‘에너지 동맹’은 경제난을 배경으로 등장한 각국 좌파 정권이 유가 급등과 최근 미국과의 무역 및 방위산업 부문 마찰을 계기로 서로 결속함으로써 가능했다. 

주도국은 베네수엘라. 1999년 집권한 독재자 차베스 대통령은 오는 12월 임기 6년의 중임 재선을 앞두고 야당이 대선을 보이콧할 경우 앞으로 25년간 자신의 통치권 수임 여부를 국민투표에 붙이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에너지를 둘러싼 그의 행보는 다분히 이런 정치적 야심과 무관하지 않다. 독설형인 차베스 대통령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위상을 회복시키는 데 일조했을 뿐 아니라, 남미 지역에 민족주의 바람을 일으키면서 반미 노선의 선봉에 선 지도자임을 자처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에너지 동맹에 선수를 친 쪽은 브라질. 차베스 대통령이 지난해 6월 ‘페트로카리브’라는 이름으로 중미 및 카리브 나라들에게 석유를 배럴당 40달러에 공급한다는 우대 판매를 약속하는 석유 동맹을 제안해 쿠바·자메이카 등 13개 나라의 합의를 받아내면서 그의 다음 목표가 남미 나라일 것은 자명해졌다.

그러자 브라질도 반격에 나섰다. 모랄레스가 볼리비아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안정적인 가스 공급과 개발 투자를 보장받기 위해 올해 1월 역내 에너지 공동 개발을 먼저 제창한 것이다. 그러나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개발권접수를 포함한 단호한 국유화 조처였다. 이에 투자 동결로 맞서보려 했던 브라질이 국유화 결정을 존중한다는 입장으로 후퇴하면서 남미에너지동맹은 어정쩡한 모습으로 출범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각개 격파 전략, 위력 발휘할 수도

따라서 동맹의 결속도는 약하다. 시장 친화적  경제 개혁을 추진해온 온건 중도좌파 노선의 브라질 룰라 대통령과 아르헨티나의 키르츠네르 대통령은 천연자원에 의지해 국가 주도의 사회정책에 몰두하고 있는 차베스·모랄레스 대통령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특히 남미 최빈국인 볼리비아의 모랄레스 대통령은 지난 두 세기 동안 칠레·파라과이·브라질에게 영토를 빼앗기고 내륙국으로 전락한 볼리비아의 실추된 국가위상을 회복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결국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양보 이면에는 남미 종·횡단 가스관 건설 사업 등 차베스의 선심 공세로부터 단기적으로 실속을 챙기자는 의도가 깔려 있다. 또 최근 두 나라의 관세 동맹국인 우루과이와 파라과이가 친미 노선으로 선회하며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을 탈퇴하려 해 대내외적으로 내부 결속을 과시할 필요가 있었다. 모두 동상이몽인 셈이다.

그러나 당분간은 에너지 동맹에 유리한 조건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고유가 기조가 계속되고 세계적으로 자원민족주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으며, 남미 나라들에서 좌파 정권이 속속 들어서는 와중에, 미국의 지도력은 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치러질 페루·멕시코·에콰도르의 대선 결과에 따라 중남미의 다른 에너지 생산 국가들이 참여하는 이른바 확대된 ‘페트로아메리카’가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미국이 주도하는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개념에 대항하는 남미 역내 경제 통합을 가속화시킬 것이다.

한편 장기적으로 보면 동맹의 와해를 초래할 변수도 산재해 있다. 우선 유가가 폭락할 경우 차베스 대통령의 석유 퍼주기식 외교는 위력을 상실할 것이며, 각국의 국영 에너지 회사들은 1980년대와 같은 외채난에 빠질 것이다. 이것은 좌파 민족주의 정권들의 몰락으로 귀결될 것이다. 

볼리비아가 브라질 및 아르헨티나 기업들에 대한 보상 및 가스공급 가격 협상이 미궁에 빠질 경우에도 동맹 기저를 흔들 수 있다. 또 남미의 맹주 브라질이 올해부터 석유를 자급자족하고 가스의 경우에도 상대적인 위상 위축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낼 경우 내부 분열을 부채질하게 된다. 

미국과 스페인 등 남미에서 경제적 이해관계가 큰 나라들이 에너지 동맹국에 대해 원조나 수입·외채 탕감 같은 기존 관계에 변경을 가할 경우에도 동맹은 위기를 맞을 수 있다. 특히 FTAA 협상 결렬 이후 남미 나라들과의 개별적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몰두하고 있는 미국의 각개 격파 전략이 위력을 발휘할 경우 중남미가 두 진영으로 나뉘면서 동맹의 전도에 먹구름을 드리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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