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나물로 차리는 봄날의 소박한 밥상
  • 이영미(대중예술 평론가) ()
  • 승인 2006.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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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위쌈과 취·부추 무침 제 맛…재첩국·병어회도 진해

 
  대중 예술에 대해 글을 쓰는 내가 어쩌다 외도를 하여 <팔방미인 이영미의 참하고 소박한 우리 밥상 이야기>라는, 민망하게도 긴 제목의 음식 책을 내고 나니, 요즘은 만나는 사람마다 우리 집 밥상에 뭐가 오르느냐고 묻는다. 어제 오늘 우리 집 밥상에 오른 음식들은 식물성이 대부분인데, 머위 쌈·돌나물 물김치·취나물 무침·부추 무침였다. 단백질 종류로는 게장·재첩국·병어회 등이 식탁에 올랐다.
 

이천 시골에 살면 가장 좋은 계절이 바로 봄이다. 온갖 나물을 가장 싱싱할 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4월 말부터 5월 중순까지는 집 앞에 심어놓은 두릅나무에서 두릅 따먹는 맛에 살았고, 5월 초부터는 머위와 취나물, 돌미나리 등을 먹으며 제 맛에 취했다.


 머위는 물이 많은 곳에 심어놓았는데, 어찌나 번식력이 좋고 생명력이 강한지 해가 갈수록 무성해진다. 손바닥만 한 머위를 줄기째 잘라다가 펄펄 끓는 물에 살짝 데친다. 머위는 워낙 쓴 맛이 강한 식물이지만, 아직까지는 우리지 않고도 먹을 만하다. 데친 머위 잎은 쌈장에 싸먹고, 줄기는 껍질을 벗기고 쌈장에 찍어 먹는다. 쌉싸래한 맛이 입맛을 확 돌게 만든다. 
 
열무김치보다 연하고 새콤한 돌나물 물김치

이렇게 머위 쌈을 먹는 것도 5월 말이 마지막이다. 6월 초만 되어도 머위 잎은 맛이 너무 강하고 거칠어져 그냥 먹기가 힘들어진다. 이때에는 데친 잎을 물에 우려 쓴 맛을 제거한 후, 쌈장이나 고추장 등에 무쳐 먹는 것이 맛있다. 부드러우면서도 머위의 향취는 그대로 남아 있다. 


 
 
취는 전문 나물꾼들이 그악스럽게 따가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는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살려 나만이 아는 곳의 취를 꽤 따올 수 있다. 취의 제철은 바로 5월부터 6월 중순까지이다. 지금 이 계절에 산에서 나는 싱싱한 취를 말리기는 너무 아깝고, 기름에 볶아 먹는 것도 재료의 맛을 너무 죽이는 것 같아서, 나는 데쳐 무치는 방법을 제일 좋아한다.


역시 재료가 좋을 때에는 재료의 맛을 한껏 살리는 단순한 조리법이 제일이다. 취를 살짝 데쳐서 고추장과 양조간장을 섞고 설탕을 조금 넣고 무친다(물론 깨소금과 파·마늘은 기본이고, 기호에 따라 참기름을 넣어도 된다). 야산에서 갓 캐낸 취는 어찌나 향이 강한지, 정말 취 맛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한다.


 봄나물이 어찌 이것뿐이랴. 부추 역시 겨울을 난 봄 부추가 가장 맛있다. 여름 부추처럼 세지도 않고 향도 은은하다. 오죽하면, 첫 부추는 사촌도 주지 않는다는 옛말이 있을까. 재료가 맛있으면 어떻게 먹어도 맛있는 법.


이런 부추를 익혀 먹는 것은 너무 아깝다. 나는 그냥 송송 썰어 달래처럼 간장에 무친다. 조선간장과 양조간장을 섞고 고춧가루와 깨소금만 넣는다(부추에는 파·마늘 양념이 필요 없다). ‘달래 간장’만큼 향이 강하지는 않지만 봄 부추의 보드라우면서도 독특한 향취가 아주 좋다. 더운밥에 얹어 먹거나 싹싹 비벼 먹어도 밥 한 그릇이 뚝딱 사라진다.
 

봄에는 김치 거리가 참 애매한 계절이다. 아니, 제철이 없는 지금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촌스

 
러울 수 있지만, 비닐하우스 재배를 하지 않는다면 정말 이 계절은 김치에게는 과도기이다(적어도 중부 지방에서 통배추나 알타리 무는 비닐하우스가 아니라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김장김치는 이제 여름 날 준비를 하며 냉장고 어느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아직 얼갈이배추와 열무는 떡잎 수준이다.


 이때 빛을 발하는 것이 바로 돌나물김치다. 돌나물이란 것은 사실 별 맛이 없다. 그저 아작거리고 풀냄새가 나는, 별로 매력은 없지만 새봄에 풀을 먹는 기분으로 먹는 것이다. 그런데 많이 따다가 물김치를 담그면 꽤 매력적인 음식이 된다. 찹쌀 풀 끓인 것을 섞어 열무김치 담그듯이 만드는데, 새콤하게 익으면 열무보다 훨씬 연하다.


 봄의 국거리로 매력적인 것은 역시 조개다. 서해안에 사는 사람이라면, 바지락이나 백합 같은 좋은 조개로 국을 끓이면 정말 끝내준다. 대도시 사람들은 흔히 바지락이나 백합 같은 조개는 그저 된장국에 국물 맛을 내는 정도로 생각하나, 정작 그 조개만 많이 넣고 끓이면 겨울 홍합 끓인 국물 맛과는 또 다른 아주 매력적인 국이 된다. 혹시 부지런한 사람들은 소래나 광천 바닷가 시장을 찾아가볼 일이다.

병어회, 뼈째 얄팍하게 썰면 ‘준비 끝’

예전에 민물조개가 흔하던 시절에는 아마 강가 사람들도 이런 조갯국을 많이 끓여 먹었을 것이다. 부산이 고향인 내 남편은, 재첩 국에 대한 그리움이 진하다. 새벽부터 항아리를 이고 “재치 국 사이소!”를 외치고 다니는 ‘깅상도 아지매’들이, 지난 밤 술 푸고 돌아온 남편을 위해 해장국을 준비하려는 주부들에게 송송 썬 부추 띄운 재첩 국을 팔았단다. 그 재첩은 낙동강에서 나는 것들이었고, 낙동강 강가에는 재첩 껍데기가 동산처럼 수북이 쌓여 있었다. 물론 낙동강 물이 맑던 옛날 이야기이다. 


 
 
지금 우리 집 밥상에는 중국산 재첩으로 끓인 국이 올라와 있다. 수산시장에도 국산 재첩은 구경조차 할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자루당 3천 원짜리 중국산을 사다 먹는 수밖에. 재첩은 바지락이나 백합처럼 들척지근한 맛이 강하지 않고 첫맛은 쌉싸래하다. 물을 좀 적게 넣고 바특하게 끓여야 하며, 좀 오래 끓여도 조갯살이 질겨지지 않으니 국물 맛이 충분히 우러날 만큼 끓인다. 국물에는 마늘 다진 것을 넣어야 하며, 먹기 직전에 부추를 썰어 넣어야 제 맛이다.


 봄에 생선회는 병어회가 가장 좋다. 강화도에 갈 수 있다면 밴댕이회를 맛볼 일이나, 도시 사람이라면 수산시장에서 파는 싱싱한 병어를 사다 직접 회를 떠 먹는 것이 좋다. 광어나 우럭과는 달리 양식이 아니며, 싱거운 겨울 병어와 달리 맛이 진하다. 은빛 비늘과 대가리와 내장만 제거하고, 뼈째 얄팍하게 썰면 그만이니 이처럼 쉬운 회가 어디 있을까. ·만원 안팎으로 밥상이 넉넉해지는 자연산 생선회 맛은 이 봄의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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