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노동, ‘큰 정책’이 아쉽다
  • 김당 · 정희상 기자 ()
  • 승인 2006.05.15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불법’ 족쇄는 부당대우 비호하는 꼴…정부의 ‘점진적 해결’ 약속 주목


 우리 사회는 지금 예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뜻밖의 일??로 당혹해 하고 있다. 그것은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 문제이다.

 현재 외국인 노동자가 국내에 몇 명이나 불법으로 체류 또는 취업하고 있는지를 밝힌 공식 통계 자료는 없다. 다만 경찰청이나 법무부 출입국관리국이 적발한 건수를 근거 삼아 7만~10만명으로 추정할 뿐이다. 문제는 불법 체류 외국인의 대다수가 불법 취업자라는 점이다. 경찰청 추계에 따르면 지난해 4월말 불법 체류자 6만여명 가운데 5만5천여명(91%)이 불법 취업자였다. 따라서 불법 체류자 문제는 곧 불법 취업자 문제인 셈이다.

 법무부 출입국관리국에서는 지난해 처음으로 불법 체류 외국인과 이들을 고용하고 있는 업주를 대상으로 불법 체류 외국인 자진신고 기간(6월10일~7월31일)을 설정해 실태 파악에 나섰다. 자진신고 결과에 따르면 이 기간에 불법 체류 외국인을 고용하고 있다고 신고한 업주는 1만7천96명이고 고용된 외국인은 6만1천1백26명(남자 4만5천4명, 여자 1만6천1백22명)에 달했다. 이중 70%가 제조업에 종사하고 나머지(주로 중국 교포나 여자)는 유흥업소나 식당 종업원, 가정부 일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이들의 출신 국가는 36쪽 도표 참조).

한편 법무부의 불법 체류자 적발 현황에 따르면 87년 3천8백95명이던 것이 90년8천6백62명, 91년 1만7천2백95명, 92년에는 8만6천1백19명으로 5년새 18배나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이같은 급증 현상은 92년도의 ‘자진 신고??로 그 실태가 비교적 정확히 파악돼 나타난 것이긴 하지만 시기적으로 한국이 서울올림픽 이후 동남아시아인들에게 ??제2의 일본?? 또는 ??떼돈을 벌 수 있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어 결과한 것이다. 특징은 88년 이전까지의 불법 취업은 주로 기업체 직원?외국어 학원 강사?연예인이 다수를 이루었으나 89년 이후에는 80 이상이 단순 노무자라는 사실이다.

(1)  이들 단순 노무자들의 취업 현황을 보면 한국에서 인력난이 심각한 직종과 업종을 거의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80년대 중반 이후 노동력 부족 현상이 심각하게 대두하면서 생긴 이른바 3D(더럽고 위험하고 어려운) 직종에 이들 동남아인들이 진출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노동 시장과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설동훈씨(서울대 박사과정?사회학)의 분석에 따르면, 외국인 노동력 유입은 노동부의 〈고용전망조사보고서〉와 국립직업안정소의 〈구인?구직 및 취업동향〉 등에 나타난 국내 노동력 부족 추이와 맞물려 있다. 즉 87년부터 심각해진 제조업 부문의 노동력 부족현상으로 사무직보다는 생산직, 숙련기능직 보다는 미숙련기능직, 대기업보다는 영세 중소 기업(특히 10~29인 규모), 고임금 직종보다는 저임금 직종(특히 월 30만~40만원 수준)에 외국인이 몰려 있다는 분석이다.

(2)  문제는 이들이 본질적으로 작업 환경이 열악하고 일손이 부족한 3D 업종에서 저임금?장시간 노동, 산재?직업병에 시달리고 있는데도 불법 체류자라는 이유만으로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인권 침해마저 자주 겪고 있다는 사실이다.

(3) 법무부가 ‘권장??한 부당노동 행위

(4)  우선 이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임금이 체불되거나 임금을 떼이는 경우이다. 서울자양동성당의 필리핀공동체를 이끌고 있는 테레사 수녀가 지난해 5월 필리핀인 1백7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한달에 30만~40만원을 받는 이들에 대해 흔히 행해지는 착취는 초과근로수당을 주지 않는 것이다. 조사 대상자 전원이 주 6일, 하루 8시간 이상을 일하고 있고, 그중 56%가 10~12시간, 11%가 12시간 이상 노동하고 있는데도 초과근로수당을 받은 적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임금을 아예 받지 못한 경우도 20%나 된다.

(5)  이 조사와는 별도로 매주 일요일 자양동성당에서 진행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을 위한 모임??의 노동상담 사례는 이들의 고충을 좀더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고용인 10인 이하의 영세업체에서 일하는 이들 대부분이 체불 임금 문제를 호소하는데, 한두달 체불은 보통이고 20% 가량은 서너달씩 월급을 못받고 있다. 그밖에 집단으로 월급을 떼이는 사례도 흔하나 가장 난감한 것은 영세 업체들이 임금을 떼어먹고 공장 문을 닫아버린 경우이다. 임신 8개월된 필리핀인 부부를 포함해 필리핀인 8명이 일했던 ㅎ섬유(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의 경우 사장이 91년말부터 이들을 고용해왔으나 지난해 6월부터 임금을 주지 않은 채 공장문을 닫고 잠적해 버리는 통에 생계를 위협 받고 있다. 결국 벌금조차 물 돈이 없는 이들 가운데 4명은 강화된 벌금제 시행을 하루 앞둔 3월31일 천주교 인권 단체의 도움으로 벌금을 물고 필리핀행 비행기를 탔으나 나머지 4명은 정처없는 불법 체류의 길을 택해 어디론가 잠적한 상태이다.

 임금과 관련해서 거의 모든 외국인 노동자들이 겪는 고충은 고용주들이 ‘신분이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예치금과 함께 여권과 출국 예정일에 맞춘 비행기표 등을 보관함으로써 외국인 노동자의 전업을 방지하고 심리적인 통제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상의 ??노예상태??를 조장하는 이같은 부당노동 행위가 법무부의 ??권장사항??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게다가 일을 시작하면서 맡긴 선금(예치금)을 돌려주지 않는 악덕 고용주도 많다고 한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자진신고를 받으면서 불법 체류 신고 외국인에 대해 1년 간의 체류 및 취업 허용 조처를 내렸으나 ‘범법자??인 이들에 대한 관리?감독은 고용주에게 1차적 책임을 지우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즉 ??이들은 출입국관리법을 위반한 범법자이기 때문에 정부에서 감호소를 지어 수용해야 하는데 10만명이나 되는 불법 체류자를 수용할 수는 없으므로 고용주 책임 하에 일정기간 (93년6월30일)까지 체류를 허용한다??는 것이 법무부의 공식 입장이다. 따라서 이들은 형식적으로 감호원인 고용주의 관리?감독하에 감호 지역인 공장을 벗어날 수 없는 ??현대판 노예??가 되어 있는 셈이다. 법무부 당국에서 불법 체류자들이 교회에 가는 것 마저 싫어하는 논리는 간단하다. 이들이 감호 지역(공장)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일부 사업장의 경우 사업주가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근무지 이탈 보고서??를 제출하는 경우도 확인되고 있다.

 

산재 사고 나면 회사도 도산

 그러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들의 고용관계가 적법하지 않다는 이유로 강제 노동이나 산재 사고, 질병 등이 발생해도 국내 노동법을 적용하지 않고 방치한다는 현실이다. 특히 산재의 경우 사례는 적으나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음으로써 한번 발생했다 하면 최악의 상황을 낳는다. 또 이들이 일하는 곳이 열악하고 영세한 제조 업체이기 때문에 산재 발생은 이미 구조적으로 예견돼 있는 셈이다. 문제는 산재 처리 여부인데, 당초 노동부는 이들에 대해 근로기준법 제5조 균등처우의 원칙을 적용하라고 일선 관서에 지시했었다. 그러나 국내 기업체의 인건비 부담이 가중되는 것을 우려해 지난해 8월 이들에 대한 산재처리 제외방침을 지시하는 등 일관성 없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산재 문제가 심각한 이유는 이들의 불법 취업자이기 때문에 산재보험을 적용받지 못해 한번 사고가 나면 회사도 함께 망한다는 점이다.

 지난 2월25일 모터가 폭발해 중상을 입고 고대부속 구로병원 중환자실에 한달 넘게 입원중인 파키스탄인 대학생 노만씨(22)의 사례가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주치의에 따르면 노만씨는 척추신경이 짓이겨져 하반신 마비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또 신장이 파열돼 신장 이식수술을 받지 않는 한 평생 혈액투석(피갈이)을 하지 않으면 목숨을 부지할 수 없게 되었다. 노만씨 등 파키스탄인 5명을 고용하고 있는 동판 제조 회사인 대신금속(대표이사 박승실)에서는 “현재 1천5백만원을 넘어선 치료비와 보상비 문제로 우선 산재보험처리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찾고 있으나 그것이 어려워 존폐 기로에 서 있다??는 것이다.

 상다리 제조업체인 ㅈ공예(경기 파주군 광탄면)에서 네팔인 동료 4명과 일하다 지난 1월 나무 깎는 기계에 손목이 잘린 라이씨(22)의 경우도 비슷한 사례이다. 전문 대학을 졸업한 라이씨는 네팔 현지의 브로커에게 2천달러를 주고 입국해 두번째로 옮긴 회사에서 일하다 사고를 당했다. 이 회사 사장 김씨는 보상비 1천5백만원을 약속했으나 이 약속을 지키려면 문을 닫아야 할 형편이다. 그럴 경우 “6월30일자 출국명령서를 받았으나 어떻게 해서든 더 일하고 싶다??는 몬타바씨는 물론 다른 한국인 6명도 직장을 잃게 될 것이다.

 6월3일이 출국 기한인 필리핀인 호세(26)와 띠르띠라(25) 부부는 출국 연장이 안되면 아예 다른 곳으로 도망다닐 작정이다. 대학을 졸업한 이들 부부는 91년8월에 입국해 일하다 지난해 9월 아기를 낳자 직장을 잃었으나 성공회 교회의 도움으로 현재는 음성 나환자촌에 있는 ㅎ가구(광주군 화도면)에서 44만원을 받고 일하고 있다. 호세씨는 최근 필리핀 대사관을 통해 어렵게 여권을 얻었으나 속인주의를 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시민권을 얻을 수 없는 두 살짜리 아들 킴조셉 또한 6월3일 이전에 떠나야 하는 불법 체류자이다. 호세씨도 다른 불법 체류자들처럼 자신의 여권과 비행기표는 사장에게 맡겼지만 아들의 여권만은 스타킹 속에 넣어 전대처럼 감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필리핀 카면 남양우유 없어요. 크래서 칼 수 없어요. 한국말을 제법 익힌 호세 부부가 돈도 돈이지만 아이 젖을 땔 때까지는 갈 수 없다며, 배수진을 치고 내세우는 출국불가론이다.

 그러나 이 부부의 결연한 각오가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는 알 수 없다. 우선 당장 개정된 출입국관리법이 시행됨으로써 4월1일부터 불법 체류자 및 고용주에 대한 벌금(최고 1천만원)과 체형이 크게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현행 법을 그대로 적용하면 이들이 피땀 흘려 번 돈을 모두 내도 모자라게 될지 모른다. 물론 한국 땅에서 살아나가는 법을 어느 정도 터득한 이들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법망을 피하려 할 것이다.

 

“자칫하면 비문명국가 오명??

 6월30일이라는 ‘데드 라인??을 앞두고 불안에 떨고 있는 이들에게 다행스러운 것은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 대한 전향적인 해결책을 요구하는 종교계의 목소리에 새 정부가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외국인노동자선교위원회(운영위원장 인명진 목사)는 최근 이인제 노동부장관과 김정남 대통령 사회?문화 수석비서관을 차례로 만나 이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촉구했다. 면담에서 이장관은 외국인을 고용한 사업장에 대한 노동부의 엄격한 감독과 임금체불 근절, 그리고 산재 문제를 점진적으로 해결하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김수석은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 대한 면담 내용을 김영삼 대통령에게 보고했으며, 김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법무부?노동부 장관에게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장기적인 대응책을 세우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외국인 노동력 수입에 대해서는 정부 부처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국민 사이에서도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이는 개별 기업 수준에서의 ‘한계 기업 기업??뿐 아니라 ??산업구조 재조정??과도 맞물린 경제성장의 변수이기도 하다. 그러나 노동 문제 전문가들은 ??전면 합법화도 전면 불법화도 아닌, 그러면서도 가장 노동력을 착취하기가 쉬운 형태인 최대한 불안정?불확실한 상태로 외국인 노동자들을 확보하고 있는 현재의 어정쩡한 방식은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국제 노동력은 법보다는 자본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적어도 앞으로 10년동안 외국인 노동자 유입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이라는 것이 이들의 지적이다.

 문제는 이미 들어와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현재 겪고 있는 불평등한 처지와 비인도적인 대우이며, 기업주에게 책임을 떠맡김으로써 이같은 상황을 조장하고 있는 정부의 회피적인 관리 방식이다. 불법 취업자라는 신분상의 약점을 이용해 임금을 제때에 지급하지 않거나 일하다 병들어도 치료비를 대주지 않는 비인도적인 노동력 착취로 얻는 국부라면 우리는 10년뒤 경제선진국이라는 말을 들을지언정 도덕적으로는 비문명화된 국가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