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정치권 흔드는 ‘토크쇼’ 돌풍
  • 시카고 · 조광동 통신원 ()
  • 승인 2006.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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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청취자 방송에 직접 참여…언론인의 여론 독점에 반기


 여론이 지배하는 미국 정치에 요즈음 여론을 지배하는 ‘토크 쇼(talk show)??가 강력한 정치 무기로 등장해 위력을 떨치고 있다. 흔히 토크 쇼라고 하면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이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통해 어떤 쟁점을 놓고 토론하고 대담하거나, 말솜씨가 있는 코미디언 같은 말꾼들이 사회와 정치를 풍자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최근 미국 정계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토크 쇼는 그러한 재래식 형태가 아니라 시청자나 청취자가 직접 방송 대화에 참여하는 ??콜인 토크쇼(call-in talk show)??를 말한다. 콜인 토크 쇼는 청취자들이 프로 진행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것이다.

 콜인 토크 쇼의 정치적 힘을 새삼 확인시켜준 사람은 로스 페로였다. 작년 대통령선거에 갑자기 뛰어들어 충격과 자극을 주었던 페로가 가장 잘 이용했던 무기가 토크 쇼였다. 페로가 대통령 출마 의사를 밝힌 것도 CNN에서 토크 쇼를 맡고 있는 래리 킹과의 대담 프로에서였다. 그런 다음 페로는 미국 선거에서 대세를 좌지우지하는 기성 언론을 제치고 시청자를 직접 상대하는 방법을 썼다.

 토크 쇼의 효율성을 뒤늦게 인식한 클린턴은 대통령이 된 후 페로의 토크 쇼 아이디어를 이용해서 새 정부의 정책을 홍보하고 있다. 대통령선거 기간에 CNN의 래리 킹에게 대통령에 당선되면 1년에 두 번씩은 킹 토크쇼에 출연하겠다고 약속했던 클린턴은 아직 킹 토크 쇼에는 한번도 출연하지 않았지만 각 지방을 순회하면서 지방 라디오 토크 쇼에 나가 국민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고 있다.

 

미국 전역 토크 쇼 프로 1천개 이상

 최근 동성연애자 군입대 허용 문제와 불법체류자를 유모로 고용했던 법무장관 후보 인준 문제에서 콜인 토크 쇼는 한몫을 톡톡히 했다. 각 지역의 수백개가 넘는 라디오 토크 쇼는 연일 이 문제를 놓고 클린턴 정부를 두들겼고, 결국 클린턴은 동성연애자들의 입대를 허용하려던 당초의 계획을 수정?연기했으며, 조이 베어드에 대한 법무장관 후보 지명도 철회하였다.

 텔레비전에 밀려난 라디오가 독자적 영역을 가지고 영향력을 회복한 전기가 토크 쇼라고 할 만큼 라디오 토크 쇼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두각을 나타냈다. 현재 미국 전역에는 약 1천개가 넘는 크고 작은 토크 쇼 프로가 있다. 이중에 가장 대표적인 토크 쇼로 래리킹?러시 림바우?하워드 스턴 쇼를 꼽는다.

 래리 킹은 CNN 텔레비전 토크 쇼로 가장 많이 알려진 첫 손가락 꼽히는 토크 쇼 진행자이다.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와이셔츠에 멜빵 차림으로 시청자에게 친숙해진 래리 킹은 이미 오래전부터 라디오 토크 쇼를 맡아왔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최근에는 15년간 계속해 오던 심야 라디오 토크 쇼를 오후 시간으로 바꾸었다. 퇴근길 청취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것으로, 그만큼 라디오의 영향력을 인식한 때문이다.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고 권위 의식이나 스타 의식이 없는 래리 킹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심중을 털어놓게 하고 상대방의 말에서 질문을 끌어내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워드 스턴은 욕쟁이로 유명하다. 너무 노골적인 성관계 얘기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말로 지탄과 인기를 함께 받고 있는 스턴은 외설 방송으로 인해 연방방송위원회에 벌금 60만달러를 물기도 했다. 그는 특히 젊은층에 인기가 있어 젊은이들의 의식을 오염시킨다는 우려와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가장 각광받고 있는 토크 쇼 스타는 러시 림바우이다. 대학을 중퇴하고 디스크자키를 하다가 조그만 시골 방송에서 토크쇼를 진행하던 림바우는 중앙 무대에 발탁돼 하루 아침에 최고의 토크 쇼 진행자가 되었다. 자기의 토크 쇼가 인류에 봉사한다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는 림바우는 클린턴 대통령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조롱하는 것을 즐기고 있다. 현재 전국 5백개 방송국을 통해 1천5백만명을 청취자로 가지고 있으며, 최근에 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어 수백만부가 팔렸다. 하루 세시간씩 1주일에 5일을 진행하는 림바우 토크 쇼는 라디오 토크 쇼에 에너지를 불러일으키고 다소 위축돼 있는 미국의 보수 진영에 자신감과 활기를 넣어주고 있다.

 라디오 토크 쇼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텔레비전에서도 콜인 토크 쇼를 도입했다. CNN의 경우 라디오의 성공에 자극을 받아 이미 17개가 넘는 프로가 나왔으며 이 숫자는 자꾸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텔레비전 토크 쇼는 코미디 형식의 쟈니카슨 NBC-TV쇼가 30년간 지배해오다가 작년에 그가 은퇴한 후 제이 레노가 후계자가 됐다. 이 후계자 경쟁에서 탈락한 데이비드레터만이 연봉 1천6백만 달러에 CBS-TV로 옮겨갈 예정이다. 이러한 코미디형 토크 쇼에도 정치 풍자가 가미되지만, 본격적인 시사 토크 쇼는 오프라 원프리와 필 도나휴 쇼이다. 흑인 여성으로 텔레비전 토크 쇼를 주도하고 있는 윈프리는 스튜디오에 방청객을 초청해 쇼를 진행하면서 시청자의 전화를 받고 있다. 여성 시청자가 많지만, 소재를 가정에서부터 정치?사회 문제 등 폭넓게 다루고 있다.

 

‘전파 공회당??의 출현

 일반 시민이 관객의 입장에서 조연이나 엑스트라 역으로 무대에 뛰어든 콜인 토크 쇼가 이처럼 대단한 관심과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은 미국인의 의식과 문화가 크게 변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 명성있는 사람이나 전문가가 나와서 여론을 주도하고 질문도 언론인들이 해오던 여론 독점 분위기에 반기를 든 반기성문화 의식이라고 볼 수 있다. 일방적으로 뉴스와 의견을 받기만 하고 이끌려 가던 시청자를 권태감으로부터 벗어나게 했다는 것이다. 정치권과 언론이 존경받아 오던 전통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거기에다 반전운동 등 반기성문화를 거대한 사조로 형성했던 전후 세대들이 사회각계의 중심이 돼 파격적으로 옛것을 깨뜨리고 있다.

 라디오 토크 쇼의 폭발적인 인기요인 중에는 첨단 기술을 빼놓을 수가 없다. 자동차에서든 어디서든 전화를 걸 수 있는 셀률러폰이 출연한 것이다. 전화 시설이 현대화하고 방송국이 800전화(무료 장거리 전화)를 설치함으로써 미국 전 지역을 하나의 토론장으로 만들 수 있게 했다. 뉴욕 시민과 와이오밍주 산간 벽지의 농민이 열띤 토론을 할 수 있는 ‘전파 공회당??이 출현한 것이다.

 그러나 토크 쇼가 정말로 여론을 반영하는 것이냐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이 제기되고 있다. 제한된 사람만이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전화를 통하려면 계속해서 끈질기게 전화 버튼을 눌러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만큼 자기 의견이 강하고 집요한 사람이나, 제기된 사안에 이해 관계가 있는 사람과 단체가 적극적으로 참여한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토크쇼에 중독되어 20년간 전화를 걸어온 ‘단골??도 있다. 시카고의 에드 월리엄스 같은 사람은 토크 쇼에 빠져서 하루에 7~8시간씩 듣기도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전문적인??토크 쇼 참여자들은 사회에 대해 분노나 불만이 많거나 편견이 강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침북하는 다수의 여론을 반영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전체 청취자의 2~3%정도가 토크 쇼에 참가한다고 보는데, 목소리가 크고 적극적인 사람들이 토크쇼 진행자의 오락성 인기주의와 결합해서 황색 방송을 뿜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NBC-TV의 원로 언론인 존첸슬러는 이러한 황색 방송을 경계하면서, 특히 언어나 의식이 정리되고 다듬어지지 않은채 계속 자극성을 더해가는 것에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토크 쇼 바람은 쉽게 멈출 것 같지 않다. 그 위력과 강도가 정치권을 흔들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토크 쇼가 앞으로 정치 문화에서 어떤 형태로 정착할지는 두고볼 일이지만, 이미 ‘토크 쇼 정치????토크쇼 민주주의??라는 말을 만들어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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