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월묘 참배 저지 “우리가 잘못했다”
  • 남문희 기자 ()
  • 승인 2006.05.15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남총련’ 3·18 면담 무산 사과…광주문제 새 국면

 광주직할시 동구 금남로 5가 19번지. 비교적 번화한 거리의 아담한 3층 건물 2층에 광주?전남 지역 재애운동 단체의 총본산인 ‘민주주의민족통일광주전남연합(이하 광주전남연합)?? 사무실이 있다. 광주?전남 22개 재야단체의 연합 사무실 치고는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이다.

 지난 3월31~4월1일 이곳 광주전남연합사무실에서는 광주전남 지역 재야 운동권의 향배와 관련한 중요한 토론이 벌어졌다. 광주전남연합이 주최한 비상중앙위원회 총회로, 이틀 동안 지난 3월18일 김영삼 대통령의 광주방문 이후 전개된 일련의 상황에 대한 평가와 함께 앞으로의 운동 방향을 새롭게 모색했다. 총회 사안의 무게 때문인지 31일 오후 내내 연합 사무실은 팽팽한 긴장감에 싸여 있었다. 젊은 실무자 몇몇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는 가운데, 굳은 표정을 한 회의 참석자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5월 관련 단체(이하 5월 단체)에서 파견한 두사람의 대표중 한사람인 심인식씨(5?18 광주민중항쟁연합 공동의장)의 표정은 더욱 굳어 있었다. 지난 3월18일 김영삼 대통령의 망월동 참배와 5?18 단체 대표들과의 면담이 무산된 후 5월 단체 사이에는 광주전남연합 탈퇴론까지 제기되는 등 5?18 단체와 광주전남연합 사이에 심각한 갈등 양상이 전개돼왔기 때문이다. 심인식씨는 “5월 단체들의 내부 논의 결과 연합 탈퇴는 광주 운동권의 분열로 비칠 우려가 있어 일단 유보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광주 운동권이 분열 모습을 보이게 한 데 대해 연합측에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며 긴장을 풀지 않았다.

 그의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3?18 면담 무산이 광주?전남 지역 운동세력에게 남긴 후유증은 상당히 심각한 것이었다. 이는 김영삼 대통령의 광주 방문을 통해 13년간 표류해왔던 광주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무너진 데 대한 허탈감에서 비롯한 것이리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번 사태를 통해 광주전남연합 등 재야운동세력과 ‘5민련(5?18광주민중항쟁운동연합)????5추위(5?18광주민중항쟁기념사업추진위)??등 5월 단체들 사이에 의견대립이 첨예한 형태로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광주 지역 재야단체와 5월 단체 사이에는 광주 문제를 해결할 방법론을 둘러싸고 심각한 의견 차이가 있어 왔다. 이러한 의견 대립은 본질적으로는 김영삼 정부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출발해, 광주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 그리고 이에 대한 해결 방안 등 중층 구조로 서로 얽혀 있다. 명노근 교수(전남대?영문학)는 이를 강경론과 온건론의 대립으로 구분한다. 강경론은, 김영삼 정부는 정권 획득 과정에서 부도덕한 방법을 사용했고, 5?6 공화국의 잔존 세력을 정권의 존립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6공화국 후기 정권?? 또는 ??민간 파쇼 정권??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이에 비해 온건론은, 권력 회득 과정에서 일부 부도덕한 점이 있긴 하지만 선거를 통해 집권함으로써 절차적 정당성을 얻었고, 개혁 조처들을 통해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받는 데 성공 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시민 반응 냉담해 강경론 위축

 특히 광주문제에 대해서는 양자가 현 정권에서도 완전한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은 같지만, 강경론의 입장이 ‘광주 학살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다른 어떤 문제보다 선행돼야 할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는데 비해, 온건론은 진상 규명이나 책임자 처벌은 한계가 있는 만큼 부상자 치유?광주시민 명예 회복?광주항쟁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기념 사업 등 손쉬운 문제부터 먼저 풀어가자는 입장이다.

 대체로 광주전남연합에 소속돼 있는 ‘남총련(광주전남지역총학생회연합)??등 학생운동 세례과 여타 재야 단체들이 강경론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면, ??5추위??나 ??5민련??등 5월 단체들은 온건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의 광주 방문에 대해 5월 단체들은 광주문제 해결을 위한 절호의 기회로 보고 망월묘역 참배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해서도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광주전남연합 소속 재야 단체와 남총련 등 학생운동단체는 “광주 학살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대한 의지 표명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망월묘역 참배는 용납할 수 없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3?18 면담 무산 이후 광주전남연합을 주축으로 한 이러한 강경 입장은 광주 시민들의 냉담한 반응이나, 대통령 면담이 무산된 데 대한 5월 단체들의 책임추궁에 부딪혀 상당히 위축된 게 사실이다. 더구나 재산 공개 등 김영삼 정부의 일련의 개혁조처가 적극성을 띠면서부터 재야 운동권 내부에서 조차 현정부에 대한 기존의 시각을 교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처럼 이번 비상중앙위원회 총회는 광주전남연합으로서는 안팎으로부터 기존의 입장에 대한 압력이 가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치르게 된 것이다. 따라서 그 주제의 심각성으로 인해 회의는 난항을 거듭했다. 원래는 3월31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로 예정되었던 회의 일정이었으나 그 다음날 오후 3시에 속개할 정도로 의견 조정이 쉽지 않았다. 한 참석자가 전하는 말에 따르면, 전반적인 회의 분위기는, 망월묘역 참배 거부가 원칙적으로는 옳았지만 전술적인 차원에서는 광주시민의 정서를 고려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잘못된 결정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특히 망월묘역 ‘사수 투쟁??에 나섰던 남총련 대표들도 기존 입장에서 상당히 후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이틀 간의 난상토론 끝에 광주전남연합은 4월2일 기자회견을 통해 “망월묘역 참배가 무산됐다고 하여 5월 단체 대표들과의 면담마저 취소한 것은 상당히 유감스럽다. 이번사태로 인해 광주 지역 운동권의 분열 모습이 드러나게 된 데 대해 광주시민에게 사과한다. 앞으로 광주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는 등의 공식입장을 천명했다.

 

새 정부 개혁도 인식 변화 요인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공식적으로 천명하지는 않았지만 이번 총회를 통해 광주문제 해결에 대한 광주전남연합측의 기존 입장에 획기적인 변화가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번 회의의 실무책임자이기도 했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비상중앙위 총회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광주 문제 해결의 전제조건이다??라는 기존의 원칙론적 입장에서 한발 후퇴해, 이 두 문제를 ??부상자 치료?광주시민의 명예회복?집단배상 문제와 병행해 추진할 과제??라고 재규정했다고 한다. 기존의 원칙적인 입장에 비해 ??획기적인 변화??라고 설명한 이 관계자는 3?18 면담 무산 이후 광주 운동 단체 내부에서 벌어진 상황도 중요한 요인이나, 김영삼 정부의 일련의 개혁정책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도 입장 변화의 한 요인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현정권에 대한 기존 시각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지난 5?6공 때는 광주 문제가 그 자체를 해결한다기 보다는 정권타도 투쟁의 고리로 인식되었던 데 비해 앞으로는 해결해야 할 문제 자체로 인식하고 이를 위해 운동력을 집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곧 닥쳐올 5월 관련 각종 행사에서도 전과같은 정치적 구호나 물리적 시위보다는 광주시민이나 국민이 공감할 수 있도록 합법적이고 대안을 제시하는 투쟁 형태를 취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광주전남연합의 이같은 내부 결정 사항은 앞으로 이들 단체들이 광주 문제 해결을 위해 5월 단체들과 한 목소리로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또한 앞으로는 광주문제를 해결하는 데 높은 목소리보다는 낮은 목소리로 합리적이고 유연하게 대처하겠다는 입장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이들의 낮은 목소리에 대해 이제는 김영삼 정부가 다시 화답을 보내야 할 차례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