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映像의 젖’ 먹고 신세대 문화 창조
  • 송 준 기자 ()
  • 승인 2006.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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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TV 비디오 보며 자란 ‘영상 세대’의 삶



  “내식대로 살겠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평판에는 관심 없다.?? 20대 초?중반 세대가 주장하는 인생관이다. 무엇보다 개성을 중시하는 이들은 개인주의를 표방한다. 이 새로운 세대의 의식 구조는 기성 세대의 가치관과 확연히 구분된다(79쪽 도표 참조).

  이 신세대가 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보호자와 피보호자 관계이던 두 이질적 세대가 삶의 현장에서 ‘동료 관계??로 만나게 되었다. 최근 ??젊은이 문화??를 들여다보고, 새 세대의 문화 현실을 연구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는 것은 이들의 출현이 매우 새롭기 때문이다. 이 새로움은 기성 세대의 눈에는 불안하고 경박하며 일회적인 그 무엇으로 비친다. 모든 측면에서 기성 세대와 다른 것이다.

  지난 4월1일 계간《세계의 문화》이 주최한 기획 토론회(80~81쪽 기사 참조)는 이들 신세대 문화를 ‘영상의 영향?? 차원에서 조망하고 있다. 이 토론회는, 지난해 진보학계가 《문화과학》《이론》과 같은 전문지를 창간하고, ??현실문화연구??같은 동인들이 결성되면서 일기 시작한 문화 현실 연구 열기와 맥락을 같이 한다.

 

 다양한 가치 지향… 기성 세대 속성 파악

  이데올로기의 과잉 시대였던 2~3년 전까지만 해도 문화 현실을 바라보는 학계의 눈길은 무관심이거나 무시, 혹은 피상적인 비판이었다. 대중문화의 현기증 나는 속도 앞에서 학계는 속수무책이었다. 최근 전개되는 일련의 문화 현실 연구 작업들은 이같은 시대적 요구를 바닥에 깔고 있다.

  신세대는 어려서부터 텔레비전?비디오?영화?컴퓨터 모니터 등을 통해 ‘영상의 젖??을 먹고 자랐다. 이른바 ??영상 세대??의 등장이다. 그러나 아직도 영상 세대에 대한 학계나 사회 일반의 개념은 모호하다. 긍정적 입장에서는 미래 정보화 사회의 주역이라고 보지만, 한켠에서는 ??압구정파????오렌지족??의 동일 선상에 놓고 질타한다.

  대체로 영상 세대는 다양한 가치를 지향하는 경향을 보인다. 지난해 4월 처음 사회에 진출한 용호성시(26?문화체육부 사무관)의 경우가 그 구체적인 본보기이다. 용씨는 대학시절부터 음악 영화 문학 컴퓨터 미술 따위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현재 각 예술 단체와 컴퓨터 통신등에 참여한다. 고전?언더그라운드?재즈 등 음악 서클과 ‘시네마천국????코아 시네마 라이브러리??등 영화 모임, 그리고 ??통합과학연구회??라는 문화?사상 연구 동우회에서 활동한다. 그는 또 드럼 연주 학원에도 다니며 주말에는 미술 강좌를 듣는다.

  용씨는 올해 3월 월간 《객석》을 통해 음악평론가로 등단했다(《시사저널》 제180호 참조). 그는 “나는 영상 세대의 초기 단계밖에 안된다??라고 말한다. 자기에게 기성 세대 요소와 영상 세대 요소가 혼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영상 세대는 기성 세대의 속성을 세밀히 파악하고 있다. 기성 세대의 간섭과 획일적 비판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이다. 예컨대 기성 세대가 유교식 대화법, 즉 위에는 언제나 “예??이면서 아래에는 ??버르장머리 없이 어디서 말대꾸냐??라고 짓누르는 권위적 화술의 기미를 보이는 순간 이들은 ??면종복배??라는 방법을 사용한다.

 ㅂ양(22?숙명여대 전산학과)은 “납득하기 어려운 지시일지라도 일단 집안의 평화를 위해 받아들인다. 어차피 기성 세대와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대개는 물의를 빚지 않고 부모 몰래 원하는 일을 모색하고 추진한다??라고 말한다.

  이세연군(23?한양대 수학과)은 “뉴스든 드라마든, 조작된 영상과 왜곡된 정보를 구분하지 않고 내용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기성 세대의 몰비판성은 우민 정치의 토대를 제공하기도 한다??라고 주장한다.

  이들을 가장 질리게 하는 것은 컴퓨터?영상 문화에 대한 기성 세대의 편견이다. 황대준군(23?숭실대 기계공학과)은 “기성 세대의 철학에는 흑?백, 또는 선?악 이분법밖에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부귀와 권력만을 삶의 유력한 가치로 인정한다. 영화?컴퓨터를 보는 시각도 마찬가지다??라고 주장한다.

  황군은 기성 세대의 영화?비디오관이 2차대전 직후의 3S정책(스크린?스포츠?섹스)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여긴다. 기성세대에게 영화란 우민정치의 도구이자 오락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컴퓨터도 시험 공부를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그러나 영상 세대에게 영화와 컴퓨터는 전혀 별개의 의미가 된다. 영화?컴퓨터 등은 각기 뛰어난 정보전달 매체이지만 어느 것도 절대적인 가치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이완수군(23?숭실대 화공과)은 “영상 세대는 영화에서 줄거리를 눈여겨보지 않는다. 어느 화면에만 탐닉하지도 않는다. 매 장면마다 담긴 기호와 정보들을 파악한다. 지독하게 지루한 영화가 엄청난 정보와 의미를 전달해줄 때가 있다??라고 밝히다.

  같은 영상을 보더라도 각 개인이 받아들인 정보의 질과 종류는 다르다. 예를 들면, 권현진양(21?서울대 소비자/아동학과)은 “국회의원 재산 공개 당시 보도된 사진을 보고, 신문?방송이 어떤 의도에서 어떤 각도로 피사체에 앵글을 들이대는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이처럼 정보는 개성의 회로를 통해 私有된다. 이렇게 사유한 정보는 다시 컴퓨터 통신을 통해 전체가 공유한다.

  컴퓨터는 그 자체가 뛰어난 영상 매체(컴퓨터그래픽이나 멀티미디어 등)인 동시에, 영상 세대의 유력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영상 세대는 컴퓨터 통신을 통해 자신의 의견과 주장을 개진하거나(전자 게시판) 소설을 읽고, 전자 오락?놀이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자란다.

  컴퓨터 통신이 가져온 새로운 신세대 문화는 또 있다. 바로 채팅(chatting)이다. 채팅은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전화하듯 대화하는 것이다. 목소리 대신 활자로 말하고, 여럿이 동시에 대화할 수 있다는 점이 전화와 다르다. 원하는 사람을 초청할 수도 있고, 여럿 가운데 ‘귓속말 명령어??를 써서 특정인과만 대화할 수도 있다.

  채팅에 참가하는 사람은 상대방을 존중해 나이와 관계없이 ‘님??이라는 호칭을 붙인다. 이들은 마음맞는 또래끼리 어울려 ??끼리 모임??을 갖거나, 늦은 밤 채팅을 하다 컴퓨터를 켜놓은채 가까운 24시간 편의점에서 잠깐 만나고 헤어지는 ??깜빡 모임??을 갖기도 한다.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이 길어지면 컴퓨터를 벗어나서 커피를 타 마시거나 라면을 끓여먹고 오기도 한다. 상대방은 내가 자기 글을 보는지 안보는지 모른다??는 지적도 있다. 아예 식사를 하면서 채팅하기도 하는 이들은, 의태어?의성어를 써서 자기의 감정과 심리상태를 나타내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같은 다양한 매체 경험은 영상 세대의 가치관에 깊숙이 관여한다. 즉 영구적?절대적인 매체나 정보는 없으며 상황에 맞춰 가장 합리적인 수단을 선택하는 것이 최선의 정보 가치라는 판단이다. 이들에게는 영화도 텔레비전도 컴퓨터도 책도 여러 선택 요소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교제의 양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은 개성을 존중하는 가운데 서로의 공통점을 찾는다. 사소한 것이라도 공통점이 나오면 그것으로 교제를 시작한다. 서지민양(22?이화여대 경영학과)은 “우리는 지독하게 개성을 찾는 반면,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하려는 노력도 같이 키워간다??라고 말한다.

  반면 이들이 정작 중요한 합의를 도출해야 할 때, 치열한 토론을 통해 결론에 이르기란 쉽지 않다. ‘너는 너, 나는 나??라고 개성을 존중하는 적정선에서 타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에게 역사 의식과 사회 참여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감각적 소비문화를 지양한다는 비판도 들린다.

  이에 대해 컴퓨터 전문가 허병두 교사(32?서울 숭문고)는 “다소 조급하고 격정적인 점은 영상 세대의 속성이라기보다 20대가 갖는 젊음의 특징일 수도 있다. 긴 안목으로 믿고 기다려주는 것이 바람직한 기성인의 자세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한다.

  영상 세대 스스로 “우리는 활자 세대와 영상 세대를 잇는 과도 세대??라고 말한다. 아무튼 기성 세대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신세대가 등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 땅의 미래는 그들이 떠맡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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