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세대, 인식론적 혁명 몰고오는가
  • 이문재 기자 ()
  • 승인 2006.05.15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상 커뮤니케이션, 커뮤니케이션 이론, 문학비평 이론, 그리고 사회학을 전공한 학자들이 ‘영상 세대의 출현과 인식론의 혁명’이란 주제를 놓고 공개 토론회를 가졌다. 계간 《세계의 문학》이 주최한 이 토론회는 지난 4월1일 서울 강남출판문화회관에서 열렸는데, 앞으로 1년에 4회씩 매 회마다 우리 사회의 사회문화적 쟁점을 선정해 문화 현실의 안팎을 깊숙이 탐사해 나갈 예정이다.

  정근원씨(서강대 강사·영상 커뮤니케이션)가 발제를 맡고, 김성기씨(사회학)가 사회를 맡은 이 날 토론회에는 강명구 교수(서울대·커뮤니케이션 이론) 도정일 교수(경희대·문학비평 이론) 김용호씨(커뮤니케이션 이론)가 약정 토론자로 참가해 ‘영상 언어’‘영상 문화’‘영상 세대’란 무엇인가를 논의의 중심으로 삼았다. 토론자들은 영상세대의 등장이 과연 인식론을 ‘혁명적’으로 뒤바꾸는 것인가라는 문제를 쟁점으로 부각시켰다.

 

 오른쪽 뇌 쓰는 영상 세대는 ‘표현 세대’

  발제 논문에서 정근원씨는 컬러 텔레비전의 보급과 더불어 영상 시대가 본격화되었다고 보았다. 정씨는, 복사를 기준으로 영상이 커뮤니케이션에 참여하는 정도에 따라 영상의 역사를 3단계로 구분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목판화 단계가 제1시대이고, 사진기기가 발명되어 영상의 무한 복제가 가능해지면서 영상은 제2시대를 맞았다. 영상의 인플레이션 시대라고 불리는 제3시대는 컬러 텔레비전이 보급되는 것과 함께 열렸다.

  “우리나라는 서울올림픽을 전후로 영상 시대의 제3시대로 진입했다??고 정근원씨는 밝혔다. 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인은 전지구적 차원의 영상 송수신이라는 체험을 겪었고, 현재 20대 전후 신세대는 영상 시대의 일대 전환기와 맞물리며 성장해온 것이다. ??이들은 외부를 인식하는 데 영상이라는 새로운 매체를 사용해 영상 언어에 익숙한 세대??인 것이다.

  정씨의 논문은, 올 8월 열리는 대전 엑스포, 올해 안에 개국하는 종합유선방송(CATV), 그리고 96년이면 개인용 컴퓨터(PC)가 현재의 전화 보급률 수준에 육박하게 되는 것을 계기로 영상 시대는 새로운 단계로 진입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정근원씨는 문자 세대와 영상 세대의 비교(79쪽 참조)를 통해 영상 언어가 인식 과정이나 그 가치관에 있어 문자와 큰 차이가 있음을 강조했다. 왼쪽 뇌를 주로 사용하는 문자가 영상에 비해 폐쇄적이고 지시적이며 표현의 유연성이 경직돼 있는데 견주어, 오른쪽 뇌와 관계하는 영상은 사실의 재현?크기?미학성?복잡성?일반성?힘?질 여덟가지가 문자보다 뛰어난 능력을 갖는다는 것이다.

  정씨는, 그러나 문자 언어가 수행해야 할 역할은 계속 엄존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새 세대는 영상 세대이자 표현 세대??라고 규정했다. 영상 세대는 스스로를 더 자유롭게 표현하는 양식을 추구할 것이다. 이 논문은, 새로운 영상 세대는 인류 역사상 처음 좌우 뇌와 전감각을 인식과 지각, 나아가 커뮤니케이션에 사용하는 ??인식 혁명??을 이룰 것이라고 매듭지었다.

  발제 논문에 대한 토론은 ‘영상 세대의 성격??과 ??인식론의 변화 정도??를 놓고 논쟁으로 번졌다. 강명구 교수는 ??영상과 영상 세대에 대한 개념 규정이 막연하고, 여기에 인식론까지 결부시켜 논지가 애매한 구석도 있다??고 지적하고 ??문화를 형성하는 주체, 현실을 인식하는 주체로서의 인간과 영상을 소비하는 인간을 혼돈하는 것은 아닌가??라고 말했다.

  강교수가 보기에, 영상 언어를 통해 인간이 자기를 표현하고 정체성을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직 생산자로서의 영상 세대는 도래하지 않았다. 강교수는 영상 시대(세대)를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해석할 것을 제안하면서, 영상 시대를 논할 때 문화생산의 메커니즘과 그것이 수용되는 과정 및 논리를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식론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인식론의 변모를 개인의 차원에 둘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식의 생산이라는 범주에서 고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교수는 제국주의 시대의 지배 언어였던 문자에 비해, 자본에 지배당하는 영상 언어는 영상 생산자와 그 소비자를 더 엄격히 구분하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영상 언어가 인간을 해방시킬 것인가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에 대해 정근원씨는 영상 세대 논의는 현재가 아니라 빠르게 닥쳐오는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라면서 “컴퓨터 통신에서 보듯이 영상을 통한 자기 표현은 가능하다??라고 답하고 ??문자 언어의 내용을 기준으로 영상 언어의 형태를 비판하는 것은 엄숙주의 또는 권위주의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영상 기호가 문화 수준 떨어뜨릴 수 있다??

  도정일 교수는 발제 논문이 밝힌 대로 문자가 그렇게 폐쇄적이지 않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문자 언어의 은유는 영상이나 이미지의 개방성을 오히려 압도한다면서 강명구 교수가 언급했듯이 영상 문화의 정치?경제적 측면을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도교수는 영상 시대가 등장한 것이 과연 인식론적 혁명성을 가져오는가를 문학과 관련해 따졌다. 그는 “영상 매체가 생산하는 이야기 조직 원칙과 제시 방법이 문자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다른 법칙이 있는가. 만일 영상 매체만의 독특한 법칙이 있다면 거기에 영상 매체의 혁명성이 있을 것인데, 기본적으로 그런 것은 없다??라고 말했다. 포스트 모더니즘과 영상 문화가 지닌 표피성을 경고하는 도교수는 ??언어 기호에 비해 영상 기호는 감추거나 비밀을 만들지 않는데, 바로 이같은 속성이 문화의 전반적인 능력과 수준을 저하시킬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한편 김용호씨는 영상 문화를 문자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파악하지 말고 문화의 총체적 변화를 해석하는 새로운 문화 개념으로 이해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영상 문화의 파급이 사회적으로 큰 변화를 몰고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즉 여성 문화?신세대 문화가 좀더 부상할 것이며, 시간?공간 개념이 달라짐에 따라 사회적 질서가 재편됨은 물론 국제주의와 지역주의가 동시에 진전되고, 나아가 취약 문화를 기준으로 사회 집단이 분류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