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친, 고향에서 4대 6으로 불리”
  • 예카테린부르크·김종일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6.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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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옐친의 아성이며 그가 성장하기까지 정신적 고향이던 예카테린부르크의 사람들은 옐친이 러시아에 평온과 경제적 번영을 가져다 주기를 소망한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학교 식당에서 일힌다는 35세의 한 여인은 “옐친이 떠난다면 커다란 혼란이 오고 더욱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에 그를 전폭 지지한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번 국민투표에서 그가 이길 것이 확실하므로 미력하나마 경종을 울리기 위한 뜻으로 반대표를 던질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곳 나프타 공장에서 일하는 아나톨리 세르게이비치씨(40)는 이렇게 말한다. “우랄 사람들은 강한 대륙 근성을 가지고 있기에 직선적이며 다소 거칠다. 옐친에게서도 그런 모습이 보인다. 그래서 예카테린부르크 나프타 공장 노동자들은 한때 그의 호탕하고 남성다운 점을 맘에 들어 했으나, 현실적으로 볼 때 20대 같은 그의 모습보다는 현실성 있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굳이 찬반으로 가른다면 5대 5 정도 될 것 같다.”

 예카테린부르크 중앙호텔 지배인은 옐친이 지나치게 허장성세로 정치를 하는 것 같다며, 옐친이 생각하는 정치인이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그는 “러시아 사람들은 사회주의 교육방식 덕에 육체 노동자와 지식노동자 간에 학력차가 없어 비평과 판단의 수준이 높은 편이다. 다만 정보의 독점에서 오는 차이는 있을 것이다. 따라서 옐친이 공개된 정치와 도와주는 행정을 구현해야 이번 국민투표에서 승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곳은 4대 6정도로 옐친이 불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예카테린부르크에서 동쪽으로 3백60㎞ 떨어진 도시 투멘(러시아 최대 원유 생산지이며 정부 재정에 막대한 도움을 주는곳)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 옐친에게 등을 돌린 상태다. 이곳 임금 수준은 모스크바 노동자보다 3-4배 정도 높으나 물가는 모스크바의 2-3배이며, 문화생활을 충분히 영위하지 못해 옐친에 대한 불만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이곳 노동자들은 공산주의를 혐오하면서도 무조건적으로 옐친을 비판 대상으로 삼고 있어 정치 무기력 현상을 느끼게 한다. 투멘 원유생산공장 제2분대 소속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씨(43.부분대장)는 “나는 한번도 모스크바에 가본 적이 없다. 옐친은 정치를 그만두고 자기가 태어난 부드카(투멘에서 1백80㎞ 정도 떨어진 조그마한 마을)로 돌아오기를 바란다”라고 말한다. 그 곁에 있던 30여명의 노동자 모두가 옐친에게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고 한다.

 투멘에서 키오스크(노점)를 운영하는 이반 이바노비치씨(24)의 얘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의회가 옐친을 지지하여 그의 개혁의지에 도움을 줘야 하는데도 그렇지 못해 서방이 등을 돌리고 있다. 놀기 좋아하는 러시아 사람에게 하스불라토프는 가십거리와 술 먹을 기회만을 주는 것 같다. 또한 많은 젊은이가 국민투표에 참여하지 않을 것 같아 큰 걱정이다.”

 이반 이바노비치의 말처럼, 길 가는 젊은이들을 붙잡고 물어보니 한결같이 국민투표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예카테린부르크와 투멘의 많은 사람은 옐친을 영웅이 아닌 범부로 여기며, 그가 개혁을 할 수 없다면 하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아성이 다른 인근 지역과 더불어 4대5의 비율로 열세를 보이는 반면, 이번 투표의 승부를 좌우할 모스크바와 수도권 지역, 그리고 상트 페테르부르크와 블라디보스토크를 포함한 동북쪽에서는 옐친이 6대 4 정도로 우세하리라 전망된다.

 모스크바 대학 교수인 아나톨리 파블로비치씨(52. 정치학 박사)는 이번 국민투표에서 “옐친이 승리할 수 있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는 이어 “정치.경제적으로 혜택을 입지 못한 지방에서는 옐친이 불리하리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그의 고향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관료주의에 찌든 러시아 행정의 특성을 생각할 때 지방의 행정조직과 기회를 넘보는 의회의 의원들이 논공행상을 위해서라도 옐친을 위해, 특히 중앙 무대에서 결정한 사항의 이행을 위해 뛸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서방측이 워낙 러시아를 빈민국 내지는 후진국으로 여기기 때문에 오히려 반옐친 감정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이 점과 관련해 서방측은 조심스럽게 접근해야만 한다. 아무튼 이번 국민투표는 중앙 정치 무대에서 결정나리라 여겨진다”라고 전망한다.

 자유 지성인들이 주요 구독자인 일간지 <베키>의 한 기자는, 이번 국민투표가 잘못하면 불법과 타락, 그리고 폭력이 난무하는 국민투표로 치달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내무성 특수수사대는 현재 러시아 전역에서 30여만명의 폭력배가 준동한다고 밝혔다. 국민투표 기간에 이들 폭력조직이 옐친을 위해 무언가 ‘헌신적인 노력’을 할 것이라고 한다. 또한 하스불라토프 진영이 국민투표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가능성도 농후하다고 전해진다.

 위와 같은 판단의 근거는 이렇다. 첫째, 러시아가 워낙 광활한 탓으로 국민투표가 일사불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최대 시차는 11시간). 둘째, 91년 이후 인구 집계가 정확치 못하고, 유동인구가 엄청남에 따라 투표율이 50%를 넘기 어렵다는 점이다. 셋째, 공정한 투개표와 집계를 위해서는 첨단 장비를 동원해야 하는데, 현재 책정된 20억루블로는 첨단 장비 설치가 불가능해 공정성을 놓고 치명적인 시비가 일 것이라는 점이다. 넷째, 각 민족간 전쟁으로 극도의 혼란이 올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다섯째, 하스불라토프측이 국민투표 결과를 정치쟁점으로 삼아 가을 정치 의회까지 끌고갈 경우 옐친에게는 결정적인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4월 11 - 18일은 러시아정교의 부활절 기간이다. 이때 국민의 70% 이상이 금식.금주를 지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18일 저녁부터 1주일간 술 잔치가 벌어지리라 예상된다. 이러한 가운데 26일 국민투표일에 얼마나 맣은 사람이 투표장으로 향할는지 의문이다. 러시아정교회의 파벨 니콜라이비치 신부는 작년의 경우 부활절 이후 각급 공공 단체의 출근율이 고작 60%에 머물렀다고 말한다.

 현재 정국으로 볼 때 옐친이 국민투표에서 패하면 수세에 몰려 있는 극우 보수파들이 도처에서 진행되고 있는 소수민족 간의 전쟁을 러시아 전체로 확대시킬 가능성도 있다. 그것은 세계평화와도 직결되는 문제이다. 급진개혁 성향의 신문인 <네자비시마야>는 3월에만 제1면 머리기사로 다섯차례씩이나, 러시아와 그루지야 사이에 있는 압하스 분리 자치주의자들의 독립 요구를 보수 공산파가 국민투표용으로 이용할 경우 내전으로 치달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옐친과 그의 곰 부대가 이번 25일 국민투표에서 하스볼라토프의 독수리 부대와 보수공산세력을 제거할지 불확실한 데다, 국민투표 과정에서 보.혁 간의 유혈 폭력사태가 일어날 조짐이 보여 러시아의 앞날은 풍전등화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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