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노만의 죽음
  • 김 당 기자 ()
  • 승인 2006.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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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피해 대표 사례....‘불법취업’ 딱지로 보상길 막막


 한 외국인 노동자가 산재 사고로 죽었다. 주난주 <시사저널>(제181호)이 특집으로 다룬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서 산재 피해 외국인의 대표적인 사례로 보도했던 파키스탄인 노만씨(22)가 죽었다. 자기 나라에서 대학을 졸업한 이 청년은 친동생과 함께 이른바 ‘코리언 드림’을 좇아 한국에 왔었다. 노만의 죽음은 흔히 외국인 불법 취업자의 천국쯤으로 알려진 한국이 돈을 벌기에는 너무나 위험한 곳임을 말해 준다. 또 노만의 죽음은 외국인 노동력이 결코 ‘값싼 노동력’이 아니라는 교훈을 우리에게 남겨 준다.

 동판 제조 업체인 대신금속(대표 박승실. 경기도 안산시 성곡동)에서 일해온 노만이 폭발사고를 당한 것은 지난 2월25일이었다. 노만은 여느 때처럼 동료들과 함께 압연기 근처에서 일하다 2백50마력짜리 모터의 축이 부러지면서 튕겨나온 파편을 정면에서 맞았다. 병원측에 따르면 이 사고로 노만은 흉추와 요추가 깨지고 척추신경까지 짓이겨졌다. 신장까지 파열됐던 노만은 외상성 췌장염.요독증.신부전증 증세를 보이다가 4월6일 고대부속 구로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한지 40일만에 사망했다.

 노동부가 집계한 지난해 산재 발생 현황에 따르면, 산재로 인한 사망자가 2천4백29명, 부상자는 10만명이 넘는다. 그러나 똑같은 산재인데도 외국인 노동자의 죽음은 노동부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이들은 대개 불법 취업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로노동상담소에 따르면 외국인 노동자 산재 건수는 신고된 것만도 1백건이 넘는다.

 노동부 분석에 따르면 산재의 주요인은 ‘산재 적색지대’인 영세사업장과 미숙련 노동자, 그리고 프레스 같은 동력기계로 요약된다. 지난해의 경우 전체 재해의 68%가 종업원 3백명 미만인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또 지난해 산재를 당한 노동자의 76%가 입사한 지 2년이 안된 미숙련 노동자였다. 이는 10만명으로 추산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취업 실태와 정확히 맞물려 있다. 외국인노동상담소 등의 분석에 따르면, 불법임을 알면서 인건비 때문에 값싼 노동력을 절실하게 찾는 곳이 종업원 30인 미만의 영세 사업장이고, 거기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대개 2년안에 한국을 떠난다.

 문제는 서로의 필요에 의해 고용계약을 맺은 사용주와 피고용주인 모두가 산재보상 적용대상에서 배제된다는 점이다. 91년 10월까지만 해도 외국인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상의 균등처우 원칙(제5조)을 적용하는 것이 노동부의 지침이었다. 그러나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가 급증하여 사회문제가 되자 노동부는 지난해 8월 외국인 불법 취업자를 산재보상보험법 적용대상에서 배제하라는 지침을 지방노동사무소에 내렸다. 노동부는 현재 외국인 노동자에게 이중 기준을 적용하는 애매한 입장이다. 즉 외국인 노동자에게 산재보상 적용은 안되지만 민사상의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근로감독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사업주가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정부, 외국인 산재보상 사업주에 미뤄

 노만의 아버지 사비르 후세인씨(47)는 아들의 주검 운구 비용을 뺀 4만5천달러를 보상비로 요구하고 있다. 이는 산재보상보험법을 적용한 보상비 3천2백만원에 가까운 금액이다. 회사측은 운구 비용을 포함해 1만5천달러를 제사한 것 말고도 산재보험 적용이 전혀 안되는 병원비 2천4백80만원을 전액부담해야 할 형편이다. 유족이 요구하는 보상비와 회사가 부담할 비용이 크게 차이나지 않는데도 보상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는 까닭은 양쪽이 모두 불이익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노동자는 적군이 아닙니다. 설령 적이라 하더라도 부상당하면 치료해 줘야 합니다. 돈을 벌려고 온 것은 그들이지만 그들을 유인한 것은 우리 기업입니다. 그들은 동정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법대로’ 내국인과 균등하게 대우받기를 원합니다.”

 영안실에서도 화장실 입구로 쫓겨나 죽어서까지 푸대접받는 ‘노만씨 상가 #상소’에서 한 노동상담소 직원이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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