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아닌 화풍으로 영구개혁을
  • 안병찬 (편집인) ()
  • 승인 2006.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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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의 힘에도 계급이 매겨져 있다. 영국의 제독 프란시스 보포트가 고안한 풍력 계급은 바람을 열세가지 종류로 나누고 있다. 정온(靜穩)한 상태는 풍력 계급 0인 것을 말한다. 이때 해면은 잔잔하여 거울과 같고 연기는 곧장 하늘로 올라간다.

 풍세는 계급이 올라갈수록 세어진다. 지경풍(至輕風).경풍.연풍.화풍.질풍.웅풍.강풍.질강풍.대강풍.전강풍.폭풍으로 진화한다. 최고치인 풍력계급 12는 태풍(타이푼)이다. 태풍이라는 바다의 대격변은 해상을 물거품과 물보라로 뒤덮어 완전한 흰색으로 바꾸고 선박을 전복시킨다.

 사회변동의 최고계급은 혁명이다. 혁명은 태풍과 같이 격렬하다. 그 가까운 예는 중국의 무산계급 문화대혁명에서 볼 수 있다. ‘홍기를 높이 들면서 홍기를 따르지 않는 자들’형태는 좌이지만 실제는 우인 자들‘로 8방 포위의 궁지에 몰렸던 모택동은 반모택동파를 모조리 때려부수는 일대 반공으로 문혁을 일으킨다.

 

중국 문혁은 전국이 춤을 춘 ‘태풍’

 모택동은 웃통을 벗어부치고 유소기와 등소평의 ‘당권파’를 타도하는 대자보를 직접 작성하여 당중앙위원회 벽에 내붙였다. ‘사령부를 포격하라-나의 대자보’라는 제목이었다. 중국 천지는 온통 홍위병으로 들끓었다. 가지각색의 동기와 충동에 따라 2천만명에 이르는 홍위병이 <모택동 어록>을 손에 쥐고 대행진을 하면서 말끝마다 ‘파4구.입4신(낡은문화.사상.풍속.관습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세움)’을 외치며 못하는 짓이 없으니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김상협 저 <모택동 사상> 참조).

 ‘우익분자 총대표’ 등소평에게 쏟아진 맹렬한 욕설중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65년 11월25일 등소평은 호탕스럽게 귀주 나들이에 나서니 전호하여 동원된 고급 승용차가 60량, 전세 비행기가 2대, 전용 열차가 1량이었다. 귀주성위원회는 등총(당총서기 등소평)을 맞이하기 위해 1개월의 준비공작을 했으며 귀주의 전경호력을 동원하니 그 경비의 살기등등, 계엄의 삼엄함은 마치 왕공귀족의 기세였다!“(1967년 북경<홍위병보> 제2기). 80년대 들어 어떤 작가는 홍위병이 설치던 그때를 ”전국이 춤을 추고 있었다“고 묘사했다. 아무런 지휘 계통도 없고 절차도 없이 성토하고 써붙이고 군중토론을 벌이며 마구 군중 결정을 내리는 4대(대조.대방.대우보.대쟁론)와, 이른바 대민주의 무법과 무질서를 수습하기 위해 모택동은 군대를 풀고 타협점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성격을 달리하는 인민해방군 대표(군세력).조반파혁명대중조직 대표(신세력).조반운동에서 밀려나지 않은 구당지도부 간부(구세력)로 혁명위원회를 구성하여 가까스로 평온상태를 회복시키게 된다.

 

여론재판 부추기는 언론도 개혁 대상

 풍력 계급 12의 태풍이나 사회 변동의 최고계급에 속하는 혁명을 두고 말하는 소이는 우리 현실 상황과 비교하려는 데 있다.

 김영삼 개혁풍은 풍세로는 태풍이 아니다. 비록 작금의 급변을 가리켜 무혈 혁명이나 혁명적 상황이니 하는 표현이 없지 않았지만 한국 천지는 물보라를 뒤집어쓰지 않았다. 모택동이 ‘사령부를 포격하라’는 대자보를 쓴 것처럼 김영삼은 스스로 웃통을 벗어부치고 자기 재산부터 공개함으로써 사령부(민자당)를 포격한 것과 비슷한 전과를 올리기는 했다.

 모택동은 ‘조반유리, 혁명무죄’라는 구호로 밑에서 치밀어 오르는 홍위병 혁명에 불을 질렀으나 김영삼은 ‘상탁하부정’의 이치에 따라서 위로부터의 개혁을 꾀한 점이 본질적으로 다르다. 김영삼의 윗물맑기 개혁은 민주당과 국민당.무소속 의원들에게 파급되는 성과를 올린 반면 군부와 제3부(사법부)로 이어지는 데는 미치지 못한 것이 한계였다.

 모택동의 혁명 도구는 혁명 군중(홍위병)인데 김영삼은 언론기구를 활용함으로써 여론재판의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그런데 얼노 경쟁이 주도하는 ‘폭로형 개혁’은 스스로 모순을 드러낸다. 언론이 ‘무기병 투서’에 놀아나면서 ‘사실이야말로 진실을 검증하는 유일한 표준’이라는 실사구시의 기능을 외면할 때 개혁의 바다 위에는 물거품이 일어나기 십상이다. 모택동은 군과 신.구 세력의 3결합으로 정국을 개편했다. 김영삼은 당내 낡은 세력 일부를 무력화하여 민주계와 재야 세력을 접목하는 정국 개편으로 ‘신제도권’의 부챗살을 넓히고 있다.

 김영삼 개혁은 풍력 계급 8의 질강풍(疾强風)이다. 잔가지가 꺾어지고 바람을 향해서 보행할 수 없으녀 물보라가 소용돌이치는 정도의 파동이다. 나무 뿌리가 송두리째 뽑히는 전강풍(풍력계급 10) 수준의 대개혁이 아쉽기도 했다.

 앞으로, 개혁의 바람을 멈추지 않는다면 바람직한 성과를 기대할 만하다. 물은 바람이 없어 정지하면 다시 부패의 고리를 만드는 법이다. 김영삼 개혁은 법과 제도를 통한 개혁, 무기명 투서에 춤추지 않는 개혁, 실사구시에 의한 개혁의 길을 다지면서 언제나 풍력계급 4 정도의 화풍이 부는 영구 개혁을 실천해야 참된 성과를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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