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在野로'관료병'수술
  • 서명숙 기자 ()
  • 승인 2006.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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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씨 등 행정부 영입 추진 … "비호남 · 친YS안 발탁" 지적도


 

 

  대륙의 황사 바람은 지형까지 바뀌놓을 만큼 위력적이다. 문민정부의 강한 개혁 바람도 기존의 '정치지형'을 뒤흔들고 있다.

  집권층 안의 수구 세력들은 개혁 바람에 흽쓸 떨어져 나가거나 개혁 속도와 강도에 강한 불만을 숨긴 채 납작 엎드려 있다. 반면 오랜 기간 정부와 갈등 관계를 맺어온 재야세력들은 金泳三 정부의 개혁 진행 과정을 호의 어린 눈길로 지켜본다. '정권을 지지하는 뿌리깊은 범여권 세력' "정부와 갈등하는 전통적인 재야 세력'이라는 한국 정치의 지형이 허물어져 내리는 것이다.

  그 단서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우선 대통령이 직접 재야 단체의 지도자와 만나 의견을 듣는 '유례없는 일'이 발생하는가 하면, 역시 사상 처음으로 여당·행정부와 재야가 현안을 놓고 머리를 맞대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김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4·19 행사일에 4·19묘지를 참배한 데이어, 광주 문제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멀지않아 5·18단체 대표들과 만날 예정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치 지형의 변화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여권 지대인 청와대와 정부 기관에 재야인사들이 잇따라 진입하는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 청와대 수석·비서관 인사에 재야 인사가 발탁된 데 이어 최근에는 행정 부처 혹은 정부 산하 기관에 영입하는 작업이 적극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재야 진입 물꼬 튼 김정남 수석

  김영삼 정부의 재야 수혈 1단계는 청와대수석 인사였다. 김대통령은'田炳岐 인사 파동' 직후 사회문화수석(현 교육문화수석) 자리에 일반인에게는 이름이 덜 알려진 재야인사 金正男씨를 등장시켰다. 대선 기간에 김영삼 후보를 지지하는 재야 인사 모임인'신한국 창조를 위한 시민연합'(신한련)의장을 지낸 김정남 수석 발탁은 즉각 정가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재야의 핵심 인사가 권부 핵심인 청와대에 '유사이래 처음으로' 진입했기 때문에 자연히 그의 행적과 발탁 배경, 앞으로 역할에 관심이 쓸린 것이다.

  김수석은 기자 회견에서 밝혔듯이 오랫동안 '익명의 세월'을 살아온 인물이다 64년 한·일 회담 반대 시위를 주도한 것을 시작으로 30여년을 재야 민주화 운동에 전념해은 그는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 명망가는 아니다. 그러나 그는 원로 그룹과 활동가 그룹을 연결하고 운동 노선 설정에 깊숙이 개입했으며, 각종 문건을 작성하고 구속 수배자 됫바라지에 전념하는 등 궂은 일을 도맡아온 '재야의 마당발'이다. 따라서 정가에서는 '김정남 포석'을 김대통령의 개혁 의지와 개혁속도, 그리고 개혁의 지향점을 짐작케 하는 주요 단서로 풀이했다.  교육문화수석실의 기능과 역할은 아직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다. 교육문화수석실의 한 관계자는 "실제보다 역할이 더 크게 알려지는 데 대한 부담감이 있다.

  교육문화수석실이라는 이름 그대로를 연상하면 된다"라고 조심스런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현 정부 내에서 그의 역할은 상당히 포괄적이고 비중이 크다는 게 정가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그는 오랜 지기인 金德龍정무 제1장관과 함께 정부내 재야 창구인 동시에, 재야 영입 통로 역을 맡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광명시 보궐선거 공천자로 진보적 정치학자인 孫鶴圭 교수를 발탁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한 데 이어, 광주 재야 단체 인사들과 김대통령의 면담에 앞서 '의견 조정역'을 맡고 있다.

  재야인사영입 제2단계는 수석 인사에 뒤이은 보좌관·비서관 인사였다. 이 과정에서 인권 변호사 郵聖哲씨가 정무 제1장관 보좌관(차관급)으로, 민중당 사무차장을 지낸 金永唆씨가 교육문화수석실 재야 담당 비서관(1급)으로 발탁돼 눈길을 끌었다.

  경제정의 실천시민연합 상임 집행위원장을 지낸 정보좌관은 지난해 총선에서 민주당이 영입 노력을 기울였던 온건 재야인사다. 정씨도 당시 민주당 입당을 적극 검토했지만, 지역구 조정이 이루어지지 않아 성사되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반면 김영준 비서관은 노동문제에 오랫동안 관심을 기울여온 온건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한 때 이재오 사무총장 밑에서 민중당 사무차장을 지냈다.

  '재야의 집결장'인 교육문화수석실에는 김비서관 말고도 채야 소장파 10여명이 4·5급행정관으로 일한다. 이 가운데 김비서관과 함께 '나라정책연구실' 출신인 정관용 행정관은 주목할 만한 인물이다. 현대사회연구소 노조위원장으로 6공 당시 사무직 노동 운동의 대표적인 싸움을 주도했던 그는 운동권의 소장파 이론가로 활약하며 '재야의 아이디어맨'으로 손꼽혀 왔다.

  재야 영입의 3단계가 최근 검토 되고있는 행정부처 내의 재야 인사 수혈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재야 인사 영입으로 국정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것이 김대통령의 기본취지"라고 전제하고 "정치권 개혁에 이어 행정 부처 개혁이 개혁의 순서이다. 자연히 재야 영입의 다음 단계는 청와대가 아닌 행정부처에 대한 수혈이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 관계자는 "행정 부처에는 특정 분야에서 오랫동안 전문성을 쌓아온 인물들이 발탁될 공산이 크다"라고 전망한다.

  이런 맥락에서 현재 정부가 영입을 추진하는 재야 인사는 이재오 전 민중당 사무총장·환경운동가 최혜성씨·이신범씨 등 10여명 선인 것으로 알려진다. 이 가운데 이재오씨와 최혜성씨는 자원재생공사 등 환경처 산하 정부투자 기관 투입이 구체적으로 검토 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씨는 재야 운동권에서 김근태·장기표 씨와 함께 '조직 운동의 제1세대'로 꼽혀온 인물이다. 6·3세대인 이씨는 70년대부터 반유신 활동·남민 전관련 등으로 다섯차례나 구속 돼 만10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91년 민중당 사무총장이 됐고 지난해 3월 총선 때는 서울 은평구에서 출마해 제도권 진입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그는 선거에 실패한 뒤에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지역구를 샅샅이 순례하고 여성 학교를 운영하는 등 지역에서 탄탄한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그의 영입을 추진하는 측에서도'일단 어떤 조직이든 맡으면 바람을 일으키며 철저히 장악하는'그의 조직력과 추진력을 높이 평가한다.

   최혜성씨는 서울대 철학과 출신의 6·3세대로 그가 만든 '지식사회연구소'는 대선 당시 김정남 수석이 지휘한 '신한련'의 모체 역할을 했다. 일찌감치 제도권으로 진입해 여러정당을 전전한 끝에 지난해 총선에서는 서울강남 을구에 출마했던 이신범씨는 87년 대통령선거 때 이미 김영삼 후보와 인연을 맺은바 있다.

 

민주계 강화, 민주당과 재야 연결 차단

  김영삼 정부는 이렇듯 청와대·행정부 안에 재야 인사를 배치하는 형태 외에도 간접적인 참여도 이끌어 내고 있다. 지난 9일 감사원이 발표한 원장 자문기구인'부정방지대책위원회' 위원 17명 명단에는 印明鎭경실련상임집행위원 韓明淑 여성단체협의회 회장·金昌國 서울변협 회장·金周彦 한국기자협회 회장 등이 포함됐다. 이들 대부분이 과거 정부와 '소원한관계'였던 비 제도권단체 소속이다. 김주언 기협회장은 "어떤 단체나 개인이든 부패 방지의 의무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고 각 직능 단체들이 자정노력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에 참여한 것이다"라면서도 "정부가 비판적 성향의 채야와 민간 단체들을 참여시킨 것이나, 그런 단체들이 거리낌 없이 참여한 것은 상당한 변화다"라고 말한다.

  부정방지위 외에 새로 임명될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이하평통) 위원에도 재야 인사들이 상당수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김대통령은 지난 12일 "평통에 통일문제를 연구해온 재야 인사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평통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의 지시가 내려진 만큼 이를 전향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야 일각에서는 대통령후보로 나셨던 재야인사 白基完씨의참여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백씨는 지난 4월초순 sbs의〈주병진 이야기쇼〉에 출연해 김영삼 대통령에 대한 호의적인 발언으로 눈길을 끌기도 했다. 백씨는 87년 후보 단일화 추진과정에서 김대중 후보의'섭섭한 대접" 때문에 양김씨 가운데서는 김대통령과 가까운 거리를 유지해 왔다.

  김대통령의 적극적인 '재야 끌어안기'는 근본적으로 그가 추진하는 개혁 드라이브의 성격에서 비롯한다. 30년간 유지돼온 기득권층의 옛 질서를 깨뜨리고 개혁과 쇄신을 이뤄내려면 기득권에 오염되지 않은 인물이 필요하다. 이를 충족시키는 데 재야 출신만큼 적임자는 찾기 힘들다. 급격한 사회 변화 속에서 지난 몇년 사이에 사회적 영향력을 많이 상실했지만, 도덕성에 관한 한 재야의 담보능력은 뛰어나다. 민자당의 한 중진급 인사는 김대통령은 개혁 추진 과정에서 재야 인사들을 일선의 정치 보위병으로 포진시키고 있다"라고 지적한다.

  현실적인 고려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집권 두달째에 이른 현 국면은 김대통령 입장에서 보면 국가 경영기라기보다는 개혁 반대 세력과 정치적 반대 세력을 평정하고 민주계 정권을 창출해 내는 정권 창출기다. 재야를 긴급 수혈함으로써 턱없이 부족한 민주계 인력을 보충해 민주계의 범위를 확대할 수 있다. 민정·공화계의 입지를 최소화하고 강력한 친정 체제를 확립한다는 차원에서 앞으로 치러질 보궐 선거에서 몇몇 재야 인사를 발탁할 가능성이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집권 세력 안에서 수구 세력의 조직적 저항이나 반발이 일어날 경우에 대비해서라도 이런 외연의 확대는 매우 필요하다.

  재야 영입과 화해 무드는 대 야당관계는 물 른 전반적인 국정 운영에도 유리한 포석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를 통해 여권을 부담스럽게 만들어 온 재야와 야당의 연결고리를 깸으로써, 국정운영의 부담을 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강여와 약야'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민주당의 개혁모임 출신 한 의원은 "반체제 세력의 거센 도전을 아예 용납하지 않았던 과거 정권과는 달리 현 정권은 아예 그쪽을 제도권으로 흡입함으로써 재야 세력을 약화시키고 정통성 시비를 완전히 차단하고있다. 여당이 국민 정서를 읽어내고 선도적으로 정치 세력을 확대재생산하는 데 비해 야당은 점점 보수화하고 제자리에 머물러있다는 게 더 큰 문제다"라고 말한다. 재야의 여권 진입 흐름에 당황한 민주당은 金元基 최고위원 등이 나서서 '재야 내의 야당입지'를 모색하지만, 재야 세력들은 당내 채야 출신들마저 입지를 위협받는 민주당의보수화 경향 때문에 민주당에 비판적 눈길을 보내고 있어 과거와 같은 연대를 기대하기는 힘든 실정이다.

 

"재야의 정권 참여는 한시적 현상" 주장

  재야의 입장에서는 30년만에 부활한 문민정부의 개혁에 일정한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예전처럼 정부 참여가 '일방적인 변절'로 매도되지는 않아 부담을 털 느끼게 된 점이 참여 쇄도의 한 요인이 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대통령선거 이후 투쟁의 목표와 초점을 잃은 채 대중적 지지를 상실했다는 무력감과 전문성을 요구하는 사회적 변화가 한몫 거들고 있다. 지난 10일동학사에 모인 옛 민중당지도부가 이재오씨의 정부 참여 문제를 놓고 "개인적인 선택인 만큼 조직적인 반대나 찬성의 방침을 내릴 수는 없다"고 논의를 유보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김영삼 정권 아래서의 재야 참여가 일정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비판론도 있다. 우선 참여했거나 참여 가능성이 높은 인사들의 지역적 기반이 비호남권으로 한정돼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이 정치적으로는 87년 대통령선거에서 후보 단일화 입장을 보였거나 90년 이후 독자 정당을 추진하면서 재야 세력의 주된 흐름이었던 김대중씨에 대한'비판적지지' 혹은 '민주대연합'의 반대축에 있어온 인물들이다.

  따라서 재야의 현 정권참여는 전반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지역성에 기반한 분열적 현상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또 김영삼 정부의 전체 정치 일정에서 재야의 참여는 정권 창출기인 집권 초기에 그치는 '한시적 현상'이 되리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기존 정치 지형의 한 귀퉁이가 허물어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제 '정부와 재야는 곧 대립'이라는 과거의 정치문법만으로는 현실을 읽어낼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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