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보·혁 갈등, 정계 재편 신호탄
  • 조용준 기자 ()
  • 승인 2006.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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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독주에‘보수’반격채비 … 여 · 야 테두리 벗어난 헤쳐 모여 가능성


 

   칼자루와 칼날. 이 말은 金泳三 정부출범 이후 정치권의 기류를 가장 잘 나타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민자당의 신임 黃明秀 사무총장은 15일 취임식에서 "민자당은 개혁의 칼자루와 칼날을 함께 잡고 있는 처지라는 사실을 명심해 달라"고 강조했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칼날을 겨누게 된다. 칼자루를 쥔 사람이 바로 자신의 칼날에 베이게 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황총장은 민자당이 개혁의 칼자루와 칼날을 함께 잡고 있는 처지임을 실토했다.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한 경우이다. 왜 그럴까. 

  김영삼 대통령의 취임과 더불어 정치권은 개혁과 보수, 혹은 진보와 수구 세력간의 전면적인 대립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여·야를 막론하고 개혁 그룹과 보수 그룹사이의 갈등은 심각하다.

  민자당 金鐘泌 대표위원은 15일 청구동집에서 "한국은 대통령이 다스리는 人治 국가이지 法治 국가가 아니다"라는 내용의 일본〈마이니치〉신문 서울 특파원 기사를 "방금 동경에서 팩시밀리로 들어온 것"이라고 소개해 김대통령을 은근히 꼬집었다. '인치국가'라는 것은 민주당 李基澤 대표가 "진정한 개혁과 거리가 먼 문민 독재"라고 공격한 말과 다를 바 없는 말이다.

 

개혁 진영에 비판 포문 연 보수세력

  김대표위원은 이미 김대통령이나 崔炯佑 전 총장으로부터 몇 번의 경고성 충고를 받았다. 그런데도 김대표는 사실상의 골프 금지령이 내려진 가운데 지난 11일 골프장에 나갔다. 12일 김대통령은 "부도나는 회사 사장이나 골프를 치러 나간다"고 말해 김대표의 행동에 제동을 걸었다. 김대표는 곧 "다시는 대통령께 심려를 끼치지 않도록 주변을 잘 살 피자"라며 몸을 최대한 굽혔다. 그러나 그로부터 3일후 김대표는 다시 입을 열어 '인치 국가'라고 김대통령을 겨냥한 말을 했다. 이 날 김대표의 말은 '소나기가 오면 피해 간다'는 평소의 처신과 거리가 먼 것이었다. 

  신임 총장이 임명된 지 며칠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민자당 일각에서는 황총장의 '앞날'을 걱정하는 말이 튀어나온다. 이런 말들의 요지는 '황총장이 과연 얼마나 버털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김대통령의 측근 4인방 가운데 이제 金德龍 정무장관만 남았다"는 말도 심심찮게 나온다.

  민주당의 경우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서울 지역의 한 의원은 최근 당 분위기에 대해" 金大中 전 대표가 떠나고 당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통제력이 약화되니까 오히려 호남색이 강화된다. 전에는 김대표가 호남세를 견제했는데 이제는 호남세를 막지 못한 다. 보수 세력으로 뒷걸음친다는 느낌마저 든다. 김대통령은 개혁 드라이브를 하고 있는데 아주 대조적이다"라고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민주당의 보수 세력은 젊은 친구들이 너무 설친다고 당내 개혁파에 대한 불만이 많다. 개혁 그룹은 그들대로 "시대 흐름에 쫓아가지 못하고 당이 점점 옛날로 퇴보한다"고 보수 세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다. 朴英淑 전 최고위원이 최근 여성위원장에서 탈락한 것은 그들에게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서로 불만이 쌓여서 당이 표류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주고 있다. 이대표를 비롯한당 지도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어정쩡하게 방관하고 있다.

  민주당의 이런 모습은 최근 재산공개 문제로 불거지기 시작했다. 李富榮 최고위원을 필두로 정치개혁모임 회원 다수가 포진한 재산공개대책위 입장은 문제가 된 의원들에 대해 당이 단호하게 조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 지도부는 재산 공개 파문의 확대를 원치 않았다. 설사 몇몇 물의 의원에 대해 당 차원의 처벌을 한다 해도, 해당 의원이이에 불복하고 나설 경우 이를 밀고 나갈 확고한 지도력이 갖추어지지 못한 상태이다. 민주당의 툭 불거진 '혹'은 급기야 14일의 의원 당무위원 연석회의에서 폭발했다. 

  金鐘完 의원은 회의가 시작하자마자 악에 받친 듯한 목소리로 "의원이 죽는데 당 지도력이 어디 있는 거야"라고 고함쳤다. 그는 또"당 지도부가 '깨끗한 아이들'한테 꼼짝도 못하고"라고 개혁정치모임을 겨냥한 불만도 쏟아 놓았다. 몇몇 의원은 이부영 재산공개 대책위원장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견디다 못한 이최고위원은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

  여와 야를 가리지 않고 벌어지고 있는'보·혁 갈등'은 김영삼 정부 이후 새롭게 나타난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광복 이후 우리나라 정치사는 보수와 혁신 세력간의 대립과 갈등이 커다란 획을 그어 왔으나, 단 한차례도 혁신 그룹에게 공정한 기회가 주어진 적은 없었다. '게임의 룰'차원에서 보자면 언제나 보수 세력에게만 유리하고 그들만 승리하는 일방적 경쟁이었다. 따라서 진보 세력이 일정 부분 힘을 얻고 자생력을 갖춘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김대통령이 재야 출신들을 청와대 비서실에 영입해 진보 세력을 제도정치권의 핵심에 기용한 것은 건국 이래 최초의 일이다.

  그러나 현 단계의 '보·혁갈등'은 아직 완전하지 못한 구석이 있다. 같은 이념을 소유한 사람들이 민자당과 민주당에 나뉘어져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개혁 성향의사람들이 여당인 민자당에도 있고, 야당인 민주당에도 존재하는 형국이다. 이는 우리나라정당이 이념을 중심으로 해서 뭉친 것이 아니라 이해 관계에 의해 생겨난 정당이라는 사실을 반증한다.

  따라서 교과서적인 의미의 정당 정치가 제대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현재 여·에 따로나뉜 보수 세력 혹은 진보 세력이 서로 손을 잡고 각기 이념에 따른 새 정당을 만들어야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당위론이다.

 

개혁세력 동병상련, 야당이 여당 걱정

  그러나 과연 당위론이기만 할까. 민주당에 있는 개혁 그룹이 민자당내 개혁 진영과 손을 잡고, 민정계로 대표되는 민자당내 보수세력이 탈당을 하게 되는 정계 대재편은 과연 일어나지 않을까.

  교수 출신으로 평소 여야 개념에 별로 얽메이지 않는 민주당의 한 의원은 이렇게 말한다. "5월까지는 보궐 선거 정국이 진행된다. 이번 세군데 보궐 선거에서 민주당이 단한석이라도 건질 가능성은 없다. 재산 공개파동으로 생긴 빈자리를 채울 보궐 선거에서도 이길 가능성은 없는 것이다. 이 경우 선거가 끝나고 나면 당지도부를 갈아치우라는소리가 걷잡을 수 없이 터져나와 야당은 위기를 맞게 된다. 이럴 때 청와대에서 과연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재야 출신으로 金德龍 정무장관이나 金正男 청와대 교육문화수석과 가까운 다른 의원도 말한다."과거에는 호남에 대한 포위현상이었지만 지금은 PK(부산 경남)에 대한 역포위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김대통령의 인적 자원은 점점 바닥이 나고 있다. 그는 결국민주당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다.

  현재 정가에서는 6월 위기설이 나오고 있다. 김대통령이 추진하는 개혁 드라이브가 여권 내부의 모순과 갈등 때문에 앞날을 예측하기 힘든 혼미 상황으로 빠진다는 전망이다. 민주계 인사 가운데서도 "김대통령 주변에 개혁의 완급을 조절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분위기가 계속 확대되기만 한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정통한 정세 분석력을 인정받는 민주당 ス의원은 "앞으로 한두 달 정도 지나면 민정계가 꿈틀할 것이다. 이래저래 죽기는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청와대에 개혁 정책을 계속 밀고나갈 정치적 엔지니어가 있느냐 하는 점이다"라고 지적한다. 민주당내 개혁 진영은 김대통령을 비롯한 민자당의 개혁 진영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 묘한 분위기다.

  개혁을 강조하는 김대통령의 발언은 연일 그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여권 내 보수 세력은 그 서슬에 놀라 몸을 바짝 낮추고 있다. 그러나 개혁 진영 내에 약간이라도 허술한 틈이 생길 경우 보수 진영의 반격이 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광복 이후 맨 처음으로 개혁과 보수의 전면전이 벌어질 수도 있다. 누가 칼자루를 쥐고, 누가 칼날에 베일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정계 대재편이 이 싸움의 커다란 변수가 될 것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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