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스스로 개혁하라
  • 김동선(편집국장대우) ()
  • 승인 2006.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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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개혁태풍을 비껴갈 수는 없다. 관이 개입하기전에 자율개혁을 서두르는게 현명한 처사가 아닐까."

 

 

  金泳三 정부의 '개혁 태풍'이 언론 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소문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일견 그럴듯하게 보이는 소문의 내용은 이렇다. 새 정부는 언론도 개혁의 대상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재산 공개와 신문부수 공개 그리고 광고 조사 등을 통해 자생력이 없는 언론사는 스스로 문을 닫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김영삼 대통령이 '신문의 날'(4월7일) 전날 언론학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언론의 폐해에 대해서강도 높게 비판을 가했고, 특히 신문의 과다경쟁으로 날마다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양산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언론계의 고질적 병폐를 매도한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언론계를 향한 개혁 태풍이 임박했음을 암시하는 발언이라고 해석되는 것이다. 

  언론인 재산 공개 소문은 한층 구체적이다. 정부투자기관 내지 정부가 주식을 상당량 갖고 있는 KBS, MBC, 연합통신, 서울신문사장들의 재산을 우선 공개함으로써 모든 언론사 부장급 이상의 재산공개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또 지난 3월말 유력 조간지 사주가 김대통령과 독대한 자리에서 자사 간부들의 재산 공개에 합의 했다는 소문도 떠돌고 있다.

  아무튼 이런 저런 정황으로 볼 때 언론인 재산 공개도 여론의 힘을 얻어 대세로 굳어질 조친이고, 또한 신문부수 공개와 광고 조사가 병행된다면 언론은 그야말로 A급 태풍권에 휘말릴 전망이 다. 특히 신문부수 공개와 광고 조사는 자생력 없는 언론사들을 도태시킬 게 분명하다.

 

언론 개혁 당위성 아무도 부정 못해

  최근 시사 월간지 《옵서버》의 실질 소유주인 민주당 李東根의 원을 광고비 갈취 혐의로 구속한 사건은 '광고 조사'의 위력을 실감케 한다. 물론 야당은 이 사건을 언론 탄압임과 동시에 야당 탄압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약세 언론사들의 광고수주 관행으로 볼 데 '광고 조사'는 언론계를 향한 시퍼런 개혁 칼날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칼날의 위험성 때문에 언론계 일각에서는 새 정부의 언론개혁 프로그램을 '언론 길들이기'로 의심하고 있다. 

  언론도 개혁되어야 한다는 명제에 대한 공감대는 사회 전반에도 널리 깔려 있다. 5공 치하에선 독재 정권의 '나팔수'였던 언론이 6공에서는 가장 힘센 권력 기관의 하나로 떠올랐고, 이런 이유로 '언론 독재'라는 말까지 나왔던 사실을 상기하면 언론 개혁의 당위성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성격이다. 그런데도 언론 개혁을 官이 손대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선뜻 동의할 수 없다. 

  잠시 구미 언론사를 돌이켜 보자. 미국에서 '언론의 신뢰성 위기'로 표현되는 2차 세계대전 전후의 언론에 대한 비판은 작금의 우리 상황과 비슷하다. 이 시기의 언론에 대한 비판은 △뉴스 보도 해설·논평의 부정확 불공정 부주의로 인한 과오 △센세이셔널리즘 △파당적 편향 △사실의 의도적 왜곡이나 과장 △인권유린과 명예훼손 등으로 요약된다. 이러한 일반적 비판이 언론의 '사회적 책임론'을 낳았고, 官이나 외부 규제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언론이 자기 규율(self-discipline)을 통해 정화해야 한다는 명제가 대두되었다.

 

허울 좋은 자율 규제가 관에 칼자루 넘겨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은 미국 허친스위원회와 영국 제1차 왕실신문위원회의 보고서 (각각 1947년, 1949년 발표)였다. 이 두 위원회의 권고와 건의는 언론의 공익적 책임을 위한 자율적 규제 장치로서 언론계 단일 중앙기구인 신문윤리위원회(일부 국가는 신문평의회)를 설치케 하는 데 이바지했다. 구미 언론이 촌지는 물론이고 극장표 한장도 거절하는 엄격한 윤리강령 속에서 자율 규제를 강력하게 시행하고 있는 데에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신문 윤리 강령이 있고, 자율규제 기구로 신문윤리위원회와 방송위원회, 그리고 언론피해 구제를 위한 언론중재위원회가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이 기관들의 언론자율 규제력은 미미하기 짝이 없고, 언론사가 자체 윤리강령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는 곳도 몇몇사에 지나지 않는다.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언론으로부터 엄천난 명예훼손 피해를 당해도 회복할 길이 없다. 언론사를 상대로 싸운다는 것은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격에 비유된다. 힘이 센 언론 기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려 한다면 "독사를 건드려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는 말을 듣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 언론계 현실이다. 그리고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통령이 언론 폐해를 지적하고 개혁 칼날이 언론쪽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언론 스스로 규제를 못하니까 칼자루가 官으로 넘어간 형국이 되고 말았다. 자업자득이 아닐 수 없다.

   현재로서 김영삼 대통령의 개혁 태풍은 그 스스로도 말했듯이 도도히 흐르는 강물과 같아 아무도 막을 수 없다. 언촌계에서 재산 공개와 부수 공개, 그리고 광고 조사에 반대하고 저항할 명분은 전혀 없다. 그러나 언론에 대한 官의 개입은 언론 스스로에게는 치욕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하루 빨리 자정 활동을 강화하여 '자율개혁'을 단행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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