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정치 산실' 에서 한 · 미 이해 조정자로
  • 변창섭 기자 ()
  • 승인 2006.05.1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한 미대사관 정치과, '내정 간여는 옛말'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맞은편에 있는 주한 미국대사관. 왼쪽의 공보처 건물과 나란히 한쌍을 이루고있는 이 건물의 8충 804호 정치과에 들어서면 우선 건너편 벽에 걸려 있는 큼직한 한국산수화가 눈에 띈다. 찬찬히 둘러보면 50평은 되어 보이는 널찍한 방안의 벽 여기저기에도 산수화가 여러 점 걸려 있다. 한국인 내방객에게 긴장을 풀어주는 요소이다. 이곳에서는 미국인 여비서 두사람이 내방객을 맞는다. 그밖의 독방에는 아침부터 정장 차림의외교관들이 분주하다.

  출근 시간은 보통 8시반이나 이들은 이미8시쯤이면 출근해 한국 신문의 주요 기사를 정독하고 국무성과 해외주재 미국대사관에서 들어온 전문을 챙긴다. 한국의 대외정책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대니얼 러셀 1등 서기관은 아침부터 무언가 부지런히 복사하고 있다. 평소에도 바쁜 그가 오늘은 유달리 바빠 보인다.2등·3등 서기관으로 보이는 젊은 외교관 서너명이 방들을 오가며 의견을 주고받는 모습도 보인다. 4월21일 오전 9시 30분에 찾은 주한 미국대사관 정치과의 모습이다.  과거 '공작정치의 산실'이라 불렸던 정치과의 내부는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이 없다. 다만 방 왼쪽에 농담으로써 붙였다는 '열핵 보호(thermonuclear protection)'라는 표지가 붙은 유리 기둥이 있고, 그 안에 워싱턴과 직접교신이 가능한 단말기가 있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굳이 정치과의 특징을 찾는 다면 과거 한국 내 정치에 대해 보이지 않게 조종 내지는 간여했다는 점일 것이다. 3공 때부터 한국 정치를 취재해온 한 외국 특파원은 "정부 수립후한동안 한국 정치를 주물렀고 출세욕에 눈이 먼 사람들이 줄을 대려고 안간힘을 쓰던 미대사관의 역사는 정치과의 역사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라고 말했다.

  주한 미대사관 정치과 시대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보통 다섯 기로 나눌 수 있다. 1기는 미군정을 거쳐 49년 정부 수립 후 이승만 정권까지로 한국 정치를 사실상 주물렀던 시기이다. 미국이 한국에 무상원조를 해주던 이때 미대사관은 '총독부'라는 별칭을 얻었다. 2기는 5·16구데타에서 유신 직전까지를 말한다. 정치과가 한국정치를 배후에서 조종하려던 시기이다. 5·16당시 마셜 그린 대사는 미국 정부의 반대 입장을 노골적으로 나타냈다. 또 케네디 대통령은 미국을 방문한 박정희 의장에게 조속히 민정이양을 하라고 촉구할 만큼 미국의 위세가 대단했다.

 

6공 들어 정치 간여 사라져

  3기는 72년 유신 선포에서 79년 박대통령이 암살될 때까지이다. 인권 민주화 미군철수 문제로 한·미관계가 극도로 불편했던 시기이다. 이른바 미대사 관측의 청와대 도청사건이 터지자 박대통령이 보좌관들과 필담으로 대화했다는 시기이다. 특히 73년의 김대중 납치 사건과 관련해 당시 대사관내 중앙정보국 한국지부장으로 있던 도널드 그레그씨는 기민하게 대처함으로써 김씨를 살리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중앙정보국이 한국의 국내정치에 깊이 간여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미대사관측의 한국 정치 간여는 4기에 해당하는 전두환 정권 초기까지 광주 민주화운동과 인권문제를 두고 직간접으로 나타났으나, 대폭적인 민주화가 이뤄지기 시작한 노태우 정권 때부터 사실상 자취를 감추었다. 외무부의 한 실무자는"미대사관 정치과가 한국 내 문제에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6공 들어 사라졌다"고 단언했다.

  E.헨드릭슨 정치 참사관은 "우리는 한국정치에 간여하지 않는다. 우리는 양국 간의 이해를 조정하고 협조를 이루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간여하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에드워드 클로스 서기관은 "정치과가 한국의 국내문제에 간여하던 것은 옛말이다. 우리는 어떤 정치 사안에 대한 충분한 배경 설명을 하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최근에 발표된 한국 정부의 신경제 정책과 관련해, 내용 자체보다는 이같은 계획이 나오게 된 정치적 배경을 소상히 파악해 워싱턴에 보고한다는 것이다.

  현재 정치과는 정치안보, 국내정치, 외교(북한 문제 포함)등 3개 부서로 나뉘어 있다. 각 부서는 1등서 기관이 책임자로 있고 그 밑에 보통 2명의 외교관이 배속돼 업무를 돕는다. 정치과의 업무는 신문사 정치부와 비슷하다. 데스크격인 1등서기관을 주축으로 각자가 일을 분담해 정보를 수집하고 사람을 만나기도 하면서 수시로 보고서를 써낸다.  현재 정치과의 책임자는 헨드릭슨 참사관(47)이다. 그는 싱가포르에서 3년간 근무하다 89년8월 서울에 온 고참 외교관이다. 그는 국무성 아태담당국에서 일한 후 마닐라태국 등 주로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근무했다. 그는 버크넬 대학을 거쳐 조지타운대 외교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는데 전임 찰스 카트만 참사관(국무성 한국과장으로 주한부대사 내정자)에 비해 국내 정치에 정통하지 못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경제과 1등서 기관인 앤 더시 여사가 그의 부인이다. 그는 오는 7월 한국을 떠나며 후임은 이미 1년 전에 취임해 현재 한국어 연수를 받고 있는 마크 민튼(47) 참사관이다. 민튼 참사관은 컬럼비아 대학에서 미국사를 공부하고 예일 대에서 미국의 대아시아 관계사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주일미국대사관에서 오래 근 무한 일본통이다.

   헨드릭슨 참사관이 없을 때 대리를 맡기도 하는 제임스 피어스 1등서기관은 정치·군사를 담당한다.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피어스 서기관은 미8군과 한미연합사, 한국의 국방부 외무부청와대 통일원을 종횡무진으로 뛰어다니며 두 나라간의 안보 문제를 조정하는 일을 맡고 있다. 다소 생소한 '정치·군사(political-mili-tary)'라는 말과 관련해 그는 "한·미 간의 군사나 안보 문제는 정치적측면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용어가 생겼다"라고 설명했다. 요즘은 북한의 핵 문제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외무부의 북미2과, 8군의 J-5, 한미연합사의 C-5측이 그가 상대하는 창구이다.  그는 뉴욕의 콜게이트 대학을 나온 후 69년부터 1년간 한국에서 군인으로 복무한 인연이 있다. 75년 국무성에 들어간 그는 76년부터 2년간 서울에서 3등서기관으로 근무한 후 14년만인 90년 서울에 다시 취임했다. 18년의 외교관 생활을 일본과 한국에서 번갈아가며 보냈다.

  한국 정치 담당인 '내부 부서(internal unit)'의 책임자 에드워드 클로스 1등서기관(상자 기사 참조)은 정당과 국회를 담당한다. 피터로 2등서기관이 그를 도와 재야 인권·학생 노동 문제를 다룬다. 클로스씨는 6월중순 부산 총영사로 자리를 옮기며, 후임은 현재 한국어 연수를 받고 있는 에릭 존씨다.

  탈냉전 이후 한·미간에 협의하고 조정해야 할 의제들이 많아지면서 덩달아 바쁜 사람이 있다. 한국 정부의 대외정책을 주시하는'외부 부서(external unit)'의 책임자인 대니얼 러셀 1등서기관 이다. 그는 특히 북한 문제와 남북한 관계도 함께 다루고 있다. 그는 85년에 국무성에 들어가 2년간 맨스필드 주일대사의 보좌관을 지냈다. 지난해 7월 서울에 취임한 그는 한·중수교와 북한 핵 문제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는 "한국 정부의 관심·희망 사항을 본국 정부에 전달하고 본국의 입장을 외무부를 비롯한 유관 부처 관리들에게 브리핑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그는 당혹스런 일을 겪었다. 주중대사로 임명된 황병태씨가 "한·미관계도 등거리 차원에서 다루겠다"라고 다소 의외성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황대사 발언의 진의를 확인하기위해 외무부 관리들과 여타 접선 경로를 통해 알아보았다. 그 결과 황대사의 발언이 우려할만한 것은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이처럼 오해의 소지가 있는 상황이 발생하면 그는 한국관리들을 만나 진의를 확인하고 워싱턴의 입장을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전달자(communicator)라고 표현한다.

 

"한국에 관심 많은 외교관 점점 준다"

  이밖에 정치과에는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朴仁壎씨가 전문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공군 출신인 박씨는 70년 정치과에 들어온 후 23년째 근무하며 정치과 외교관과 똑같이 대외 활동을 하고있다.

  현재 정치과를 구성하고 있는 핵심 인맥의 특징은 대체로 한국과 인연을 맺어 취임한사람들이라는 점이다. 클로스 서기관은 평화봉사단원으로 인연을 맺었으며 피어스 1등서기관은 한국에서 군 생활을 했다. 이들은 부인도 한국인이다. 이들이 친 한국적인 성향의 외교관이라고 해서 한국에 도움이 된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두 나라 국민이 서로에 대한 인식의 차를 크게 좁히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들은 본국 정부에 이쪽사정을 좀더 정확히 전달해줄 수있는 위치에 있다.

  이와 관련해 피어스 서기관은 "앞으로 미국 외교관 가운데는 평화봉사단원 같은 인연으로 서울에 오는 외교관은 없을 것이다. 한국에 관심이 많은 외교관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조금은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전 주한 미대사였고 현재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 교수인 워커씨가 3년 코스 경영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마지막 학기의 국제 비즈니스 견학장으로 한국을 추천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라고 소개했다.  피어스 서기관의 말속에는 우려가 섞여 있으나 한편으로는 한국이민주화와 경제 성장에 따른 자신감으로 미국의 영향권에서 크게 벗어났다는 뜻도 읽을 수 있다. 서울에 취임하는 외교관이 반드시 한국어를 익혀야하는 것도 그만큼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헨드릭슨 참사관은 요즘 정치과의 주요 관심사가 북한 핵 문제와 한국의 대외 정책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제 국내 정치 분야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외무부 김영목 북미1과장은 "한·미 양국이 긴밀한 동맹국이고 보니 우리는 우리대로 미 의회와 미국내동향에 관심이 많고, 미대사관 정치과도 그런 차원에서 한국의 국내 동향에 관심을 갖는 것으로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클로스 서기관은 "오늘날 주한 미대사관 정치과는 워싱턴과 서울간에 서로의 정확한 입장을 전달하고 이해시킬 수 있는 '양면의 창(two-way window)이다"라고 지적했다. 이 말은 그만큼 한·미관계가 정상화되고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