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개쳤던 국회, 문 열었지만
  • 이흥환 기자 ()
  • 승인 2006.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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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몸살민자당,무기력증 민주당‥‥윤리법 개정 등 쟁점 타결에 관심


 

 마침내 국회가 열렸다. 金泳三 대통령의 새 정부가 출범한지 만 2개 월 만이다. 2개월 동안 국회는 어디로 숨었는지 흔적을 찾아보기 힘든 실종상태였다. 이유야 어떻든 국회의장이 의장직을 사퇴했고, 의원 3명이 아예 의원직을 사퇴했으며 2명은 구속되었다. 입법부로 봐서는 이보다 더 큰 우환이 없다. 그런데도 국회는 행방불명인 채 쓰다 달다 말이 없었다. 여야모두 꿀 먹은 병어리였다.

  어쨌든 뒤늦게나마 국회는 열렸다. 하지만 의원들 사이에서 열기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맥 빠진 분위기이다. 이번 161회 임시국회의 최대 쟁점은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에 대한 입법 여부다. 공직자윤리법이 통과하면 해당 공직자들은 모두 재산을 공개해야한다. 법조계의 한 인사는 "재산 재공개라는 표현은 옳지 않다"고 지적한다. 이번 국회에서 공직자윤리법이 개정되면 공직자의 재산공개는 법률을 시행하는 차원이기 때문에 '재공개'가 아니라'공개'라는 주장이다.

  개정법에 따른 재산 공개는 걷잡을 수 없는계 2의 파동을 예고한다. 공개 범위와 평가 방법, 실사 수단까지 명시한 개정법이 통과되고 이에 따라 재산 공개가 이루어질 경우 정치권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민자당 내에 공직자윤리법 개정을 둘러싸고미묘한 기류가 형성된 것도 이 때문이다.

 

민자당, 공직자윤리법 놓고 갈지자 걸음

  야당인 민주당도 민주당이지만, 당내 의견을 통일하지 못한 채 국회에 발을 들여놓은 민자당도 엉거주춤하기는 마찬가지다. 공직자윤리법을 놓고 민자당은 갈지자 걸음을 걷고 있다. 당초 당론은 4월 국회에서 통과시킨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당내 정치특위는 윤리법 개정안 작업을 서두르기도 했다. 崔炳佑전 사무총장이 있을 때까지만 해도 이 분위기는 유지되었다. 당내에 미묘한 분위기가 감지되기 시작한것은 공교롭게도 최형우 의원이 총장직 사퇴를 발표하고 당을 떠난 직후인 지난 14일 오전부터였다.

  최의원은 이날 오전 9시30분께 金鐘泌대표실에서 열린 고위당직자회의에서 총장직 사퇴 의사를 밝힌 후 황급히 당을 떠났다. 10시부터는 당무회의가 열렸고 당무회의가 끝난 후 姜在涉 대변인은 오전 고위당직자회의의 내용을 발표했다. 강대변인의 발표문 중에는 공직자윤리법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강대변인의 발표 내용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일부 보도에 의하면 공직자윤리법을 개정하고 나서 다시 재산을 공개하는 것처럼 되어 있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 여야 간에 정치특위에서 개정안을 만든 후 국회에서 윤리법이 개정되고 나면 그때 가서 논의할 사안이지 지금은 아무것도 결정된 바 없다. 지난번 공개 후 추가된 사항이나 기존 공직자 중 변등 된 사람 등 공개 대상의 변동이 있을 경우에만 국한될 것이다. 현시점에서는 전혀 재 공개 계획이 없다"

  이때까지만 해도 강대변인의 발표를 주목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최의원의 총장직사퇴로 당 분위기가 어수선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의원의 총장직 사퇴 여파와 연이어터져나온 대형 사건과 사고, 대학입학 부정문제 등으로 재산 재공개 문제는 민자당의현안에서 비껴나 있었다.

  재산 재공개 문제가 다시 현안으로 떠오른것은 임시국회가 임박해지면서부터다. 신임黃明秀 사무총장은 총장 취임 후 처음으로 당무 보고를 위해 청와대를 다녀온 후 한발 물러선 듯한 발언을 했다. "재산 재공개가 꼭 필요하느냐"라는 것이었다. 같은 날 金榮龜 원내총무의 발언은 좀더 구체적이었다. "시한에 구애받지 않고 국민이 납득할 만한 방안이 도출될 때까지 심도있게 토론할 것이다"라는 것이 김총무의 발언이었다. 물론 당내 민정·공화계 인사들도 재산 재공개의 불필요성에 동조하는 입장이었다. 金德龍 정무1장관만이 윤리법 개정후 재산 재공개를 역설했다. 재산 재공개를 둘러싸고 일부 개혁주체 세력과 신중론을 내세우는 민정·공화계 보수 세력간의 갈등이 내비치기 시작한 것이다.

  김대통령은 22일 주례 보고를 하러 청와대로 간 김종필 대표에게 "이번 국회 회기중에 반드시 공직자윤리법을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이로써 민자당은 최소한 겉으로는 국회 회기내 처리로 당론을 정리한 셈이다.  민자당 민정계와 민주당 일부 의원은 "국회가 진작 열렸어야 옳다"고 입을 모은다. 국회를 등한시한 것은 김영삼 대통령의 개혁조처 중 '최대 실수'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나라를 뒤흔드는 개혁 조처를 취하면서도 개혁의 방향이나 일정 등 개혁 작업의 내용을 국민에게 알리는 공식적인 자리를 마련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최소한 국정 운영 계획 전반에 대해 국회에서 한번쯤 국정연설이라도 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대통령이 국정과 관련해 공식으로 입장을 밝힌 것은 신경제정책을 발표한 담화뿐이었다.

  정부·여당만 국회를 등한시했던 것은 아니다. 야당인 민주당도 마찬가지였다. 재산공개 파동으로 입법부가 쏙밭이 되었을 때도 야당은 국회 소집에 대해 말 한마디 없었다. 여당도 여당이지만 야당도 국회를 방치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민주당 일부 의원은 "야당이 임시국회 소집을 적극 주장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말한다. 새 정부의 개혁돌풍에 휘말려 뒷북도 제대로 못 치고 남의 다리만 긁고 앉아 야당다운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는 자기 반성이다.

  이것은 물론 李基澤 대표의 지도력에 대한 간접적인 불만이고 질타이다. 재산 공개가 법의 테두리 밖에서 진행되는 등 김영삼 정부의 개혁 작업에도 허점이 있는 만큼 야당이 그런 점을 조목조목 지적해 비판과 견제기능을 발휘했어야 하는데 전혀 그러지 못한 채 '넋 놓고 앉아 구경만' 했다는 말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왜 덩달아 야당이 재산 공개를 해야 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는 불평도 때늦게 터져 나왔다. 민자당이 재산 공개 파동을 겪었을 때 민주당이 국회 소집을 요구하는 정치력을 발휘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여당을 정치의 장인 국회로 끌어들여 공직자윤리법을 개정한 후 개정한 윤리법에 따라 야당도 재산을 공개하는 순서를 밟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민주당 "민자당에 끌려다닌 것 아니냐"

  이대표 및 당 지도부의 정치력이 도마에 오른 지는 이미 오래다. 이대표도 할 말은 있다. "일사불란한 지도력이 없다고 하는 것은 과거의 권위주의적 발상이다. 특정인(당 대표)의 독단적인 의견이 아닌 당의 중지를 모아야 한다"는 것이 이대표의 반론이다. 하지만'이유야 어쨌든 민주당이 민자당에 끌려다닌 것은 사실아 니냐'는 일부 의원의 재반론은 이대표의 반론을 무색케 만든다.

  21일 이대표는 뒤늦게 "이번 국회에서 공직자윤리법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치고 나왔다. 오랜만에 이대표가 정치력을 발휘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그러나 임시국회에 임하는 민주당의 자세에서 활기를 찾기는 힘들다. '원내 대책은 무대책이 대책'이라는 자조 섞인 말마저 떠돌 정도다. 대정부 질의를 맡은 의원들끼리 사전에 의견을 조정하는 적극성도 보이지 않고 원내대책위 모임도 신통치 않다는 것이다. 원내대책회의가 있기(24일) 하루 전까지도 개회 나흘째인 29일까지의 일정에 대해서만 여당과 합의를 보았을 뿐 이렇다할 원내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민주당은 3개 보궐 선거에서 대패했다. 승리를 벌렀던 경기 광명에서마저 지고말았다. 공천과 선거운동 실패가 패배 원인으로 꼽힌다. 반면 민자당은 광명에서 총력전을별였다. 보궐 선거 결과야말로 민자·민주양당이 처한 현주소다.

  개혁 몸살을 호되게 앓고 있는 민자당과, 무기력증에 제 몸도 못 가누는 민주당. 두 '환자'가 국회에서 만나고 있다.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대한 시기에 무작정 방치해 놓았던 국회의 문을 가까스로 열어 놓았다. 여든야든 의원들의 목소리는 제법 클 것이다. 군인사 비리, 사학 부정, 탈영병 난동 사건 등'거리'는 많다. 새 정부의 개혁 작업에 대한공방도 볼 만한 구경거리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돌발 변수가 없는 한 이번 임시국회는 맥 빠진 국회가 될 것이 뻔하다. 과거 야당공세의 단골 메뉴였던 국가보안법·금융실명제·지자제 등 이른바 개혁입법을 논의한다는 계획도 제대로 서 있지 않다. 김대통령을 진원지로 한 사정 한파는 계속 여의도 의사당 주변에 몰아칠 기세이고, 푹신한 의자에 몸을 묻은 채 자료도 없이 자리나 지키는 다수 국회의원들의 태도가 바뀔 조짐도 없다. 국회에는 눈치보기만 난무할 뿐이다. 개혁의 첫 과제는 개혁입법이다. 입법은 국회의 몫이다. 하지만 국회는 너무 멀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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